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20
#1319.
공조하다 (4)
“잡아야지.”
“…….”
강진호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뭔 일을 보고 온 거지?’
자리로 돌아온 최연하가 한기를 풀풀 뿜어내고 있었다. 괜스레 뜨금한 강진호가 슬금슬금 최연하의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사람이란 건 풀어주면 한없이 풀어지는 법이지. 날을 잡아서 푸닥거리를 제대로 해야…….”
“…….”
최연하의 이가 빠득빠득 갈렸다.
강진호가 된서리를 피해 살짝 옆으로 몸을 옮겼다.
절대로 저 푸닥거리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일단 지금은 몸을 사려야…….
“진호…… 아니, 철수 씨.”
“넵.”
“이 실장님은 원래 그렇게 뺀질거려요?”
“…….”
뺀질이라…….
강진호는 혼란에 빠졌다.
뺀질이라니, 이현수와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거 영남회의 악마라 불리던 이현수에게는 도저히 가져다 댈 수 없는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부정할 수가 없는데?’
지금의 이현수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뺀질이라는 단어보다 더 적합한 말이 있을까?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는 좀…….”
“흐으으응.”
최연하가 콧김을 뿜었다.
“안 되겠네. 이 사람 좋게 대해주려고 했는데.”
강진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척하자.’
괜히 말려들어서 피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현수의 일은 이현수가 알아서 해야 하는 법이다.
“윗사람들은 큰일 하러 가는데,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 뒤에서 뒷담이나 하고 있고!”
“…….”
“그렇죠?”
“네?”
“그렇냐고?”
“……물론이죠.”
“그래요?”
“…….”
“그럼 하나 묻겠는데, 김철수 씨는 중국에 무슨 일로 가시나요?”
“네?”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 내가 말을 안 했었구나.
“……그냥 할 일이 있어서요.”
“그 그냥 할 일이 뭔데요?”
“그게…….”
사람 죽이러 갑니다.
이건 아니고.
정부에서 부탁한 일을 처리하러 갑니다.
이것도 아니고.
적당한 변명거리를 찾지 못한 강진호의 미간이 좁아졌다. 하지만 강진호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그런 강진호를 구해주는 이가 있었다.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손님?”
강진호가 반가운 얼굴로 승무원을 맞았다.
“괜찮습니다.”
“간단한 간식이나 다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 주류도 준비되어 있으니 혹시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음…….”
강진호가 볼을 긁었다.
“콜라 한 잔 괜찮을까요?”
“예. 그럼 시원한 콜라와 간단한 간식거리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돌려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최연하는 다른 승무원에게 와인을 주문하고 있었다. 강진호를 보며 이를 갈던 얼굴과는 전혀 다른 영업용 미소가 얼굴에 가득하다.
‘예쁘네.’
웃고 있는 최연하를 보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을 제외한 순수한 감탄이다.
“뭘 봐요?”
“네?”
승무원이 가고 나자 최연하가 피식 웃는다.
“아니, 힐끔힐끔 보길래.”
“예뻐서요.”
“…….”
최연하가 입을 꾹 닫고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강진호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인간, 진짜 이상해.’
한 번씩 이렇게 뜬금없이 딜을 박아넣는다.
최연하가 살짝 달아오른 얼굴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진호 씨는 술을 안 먹네요?”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요.”
“이상하네. 술이 약해요?”
“그런 건 아니고…….”
강진호가 머리를 살짝 긁었다.
술이 약하다기보다는 술이 너무 세서 문제다. 딱히 내공을 이용하여 몸을 정화하지 않더라도 완벽하게 다듬어진 육체는 알아서 몸 안으로 들어온 알코올을 분해해 버린다.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결국 강진호는 술을 마실 때, 취기 없이 오로지 술의 맛만을 즐겨야 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음료수가 낫다는 게 강진호의 생각이다.
물론 이런 이유로 술을 즐기지 않는 무인은 강진호 외에도 많았다.
‘총회 입장에서도 그게 낫지.’
웬만해서는 술에 취하지 않는 무인들이지만, 평범한 무인들은 강진호처럼 완벽하게 알코올을 분해할 수 없다. 때려 부으면 결국 취하는 순간이 온다는 뜻이다.
무인이 취한다?
그건 정말 끔찍한 말이다.
예전 중원에서도 취한 무인이 사고를 치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있었다. 평범한 이도 술을 먹으면 큰 사고를 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그러니 무인들이 술에 취해 사고를 치면 그건 평범한 사고로 끝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무인들은 자체적으로 술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잘못했다가는 인생이 끝나 버릴 수가 있으니까.
“음료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카트에 간단한 안줏거리와 콜라를 가져온 승무원이 웃으면서 음료를 세팅했다.
반대편에도 와인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강진호는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는 이런 게 당연했는데.’
그가 마교의 교주이던 시절에는 물 한 잔 마시는 것조차 시비들이 들고 날랐다. 하지만 이 세상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자신이 해도 되는 일을 남이 해주는 게 영 불편하다.
“감사합…….”
가볍게 인사를 하려는 강진호의 귀에 살짝 긴장한 목소리가 들렸다.
“땅콩은 뜯어서 세팅해 드릴까요, 아니면 그냥 드릴까요?”
“…….”
강진호와 승무원이 미묘한 표정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최연하가 슬쩍 땅콩 봉지를 보고는 씨익 웃었다.
“매뉴얼에는 어떻게 되어 있죠?”
“매, 매뉴얼에는 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세팅하라 되어 있습니다.”
“에이, 아쉽게.”
최연하가 장난기 어린 얼굴로 웃고는 손짓했다.
“그냥 주세요. 손 있으니 제가 뜯어도 돼요.”
“아,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여기…….”
“손 없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말이에요.”
승무원이 무척 곤란하다는 얼굴로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더 필요한 게 있으시면 벨을 눌러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승무원들이 멀어지자 최연하가 낮게 말했다.
“저 언니들, 땅콩 소리만 나와도 살짝살짝 경련하는데?”
“…….”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든 강진호의 눈에 빨간 콜라 캔이 들어왔다.
‘오랜만인데.’
콜라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강진호와 같은 상황을 겪는다고 해도 사람에 따라 그리운 것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에게 있어서 이 콜라는 현대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처음 돌아왔을 때는 콜라를 하루에도 몇 캔씩 꼬박꼬박 마셨다.
단순히 콜라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저 뭐랄까…… 그건 강진호가 자신이 현대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의식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현대에 적응하면서부터 어느 순간 콜라와 멀어졌다.
‘초심을 잃은 건가?’
뭐, 이런 초심이라면 잃어도 상관없겠지.
치이이익.
콜라 캔을 딴 강진호가 얼음 컵에 콜라를 따랐다. 기포가 올라오는 콜라를 보고 있으려니 절로 웃음이 난다. 지금 강진호가 중국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도 이 기분에 큰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차가운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신 강진호가 천천히 콜라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맛있어요?”
“네.”
강진호가 기분이 좋은 듯 고개를 끄덕이자, 최연하가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강진호는 딱히 미식가는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미각이 그리 발달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최연하와 함께 다니며 고급 음식을 먹어도 딱히 감상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이 콜라 한 모금에 기분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
이제는 많이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한 번씩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누가 보면 엄청 좋은 와인이라도 한 잔 한 줄 알겠어.”
“그거보다 이게 더 좋은 거 아닌가요?”
“네?”
강진호가 콜라 잔을 살짝 들었다.
“많이 팔리는 게 제일 좋은 거니까.”
“……좋은 사고방식이네요.”
확실히 그런 면으로 접근한다면 콜라가 고급 와인보다 가치 있는 음료라 할 수 있다.
최연하가 와인잔을 가볍게 돌리고는 살짝 입에 머금었다.
“사람이 격식이 있어야죠.”
“……맛있나요?”
“맛있죠.”
“좋은 와인인가 보네요.”
최연하가 가슴을 살짝 내밀며 턱을 들었다.
“뭔지 모르는데?”
“…….”
당신이 시켰잖아.
최연하가 살짝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솔직히 나는 와인은 그냥 다 비슷한 거 같아요. 그런데 그러면 무식하다는 소리 들어서 아는 척은 해야 하거든요.”
속삭이는 최연하를 보며 강진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강진호는 최연하의 이런 면이 재미있다. 뭔가 털털한 듯하면서도 어설프고, 그리고 어설픈 듯하면서도 빈틈없는.
다른 사람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력이다.
“그냥 탄산 있는 거랑 탄산 없는 걸 구분하는 정도? 탄산 없는 걸 선호하는 편이죠.”
“그건 저랑 다르네요.”
강진호는 이왕이면 탄산 있는 쪽이 좋다.
강진호가 가만히 콜라를 바라보았다.
‘재미있지.’
세상을 뒤엎는 무력을 갖췄음에도 설탕물에 이산화탄소를 녹이는 것만은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화학적인 지식이나 실무적인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시도라도 해볼 수 있었겠지만, 당시의 강진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세상처럼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창구가 없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강진호에게 이 콜라는 현대의 상징이고, 무학으로 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
과거의 무력을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총회도 발전시키고 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
강진호의 무력으로도, 총회의 힘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은 분명 존재한다. 그 선을 넘어 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하려 드는 순간, 강진호와 총회의 몰락이 시작될 것이다.
그럼…….
지금 강진호가 지켜야 할 선은 어디일까?
“손님.”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이제 곧 공항에 도착합니다. 치워 드릴까요?”
“아, 잠시만요.”
강진호가 잔에 따른 콜라를 깔끔하게 원샷해 버리고는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부탁합니다.”
“네. 실례하겠습니다.”
간식거리와 잔을 수거한 승무원이 카트를 밀고 나갔다.
‘금방이네.’
인천에서 베이징으로 이동하는 데 겨우 두 시간. 예전이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속도다.
세상은 점점 무인의 자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만이 할 수 있던 것은 점점 사라지고, 그들이 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난다.
강진호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과거의 무력.
무학이 정점에 달하던 시기의 유산을 고스란히 몸에 지닌 강진호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있을까?
신을 믿지 않는다.
세상의 법칙 같은 것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강진호는 인간이 경험하지 않았어야 하는 일들을 이미 경험했다.
‘어렵군.’
강진호가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밀어냈다.
지금은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지금 그에게는 할 일이 있으니까.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고 해내다 보면 언젠가는 그가 궁금해하는 것에도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안전벨트 등이 켜지는 것을 본 강진호가 군말 없이 안전벨트를 맸다.
‘중국이군.’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키며 강진호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 끝은 조금 전부터 절로 들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