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27
#1326.
폭발하다 (1)
“강행이라…….”
김명찬이 힘차게 골프채를 휘둘렀다. 골프채에 맞은 공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다.
“어떻게 생각하나?”
“팔로 스윙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거 말고.”
“아!”
이종욱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주변 상황을 둘러보지 않을 거란 건 예측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지.”
김명찬이 골프 가방에 골프채를 찔러넣으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슬라이스가 낫겠군.’
스윙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 김명찬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으니까. 이 긴박한 시기에 골프가 치고 싶어서 필드에 나왔을 리가 있겠는가.
이쪽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시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을 타국의 정보원들에게 말이다.
“조금 얼굴이 편해 보이십니다?”
“그래 보이나?”
김명찬이 쓴웃음을 지었다.
국가 고위직들이 심심하면 골프장을 들락거리는 건 골프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실제로 골프를 즐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김명찬은 골프가 아닌 골프장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야 하고, 도청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고위직들에게 다른 이들이 접근할 수 없고, 말소리가 새어 나갈 수 없는 드넓은 골프장은 최고의 도피처였다.
“지금 망원렌즈가 몇 개쯤 붙었을 것 같나?”
“글쎄요. 한 두어 개쯤?”
“생각보다 적군.”
“어차피 멀리서 찍기만 한다고 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미련이 남는 놈들은 그거라고 찍겠다고 난리겠지만.”
이종욱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중국으로 정보원을 보내는 것처럼 주변국의 정보원들도 한국에 들어와 있다. 개중에는 국정원이 이미 파악한 이들도 있지만, 그 이상 파악하지 못한 스파이들이 한국을 제멋대로 누비고 있는 중일 것이다.
국가 간의 관계가 경색되고 위기가 찾아오면 가장 바쁜 이들이 바로 그런 정보원이다.
“아직 원거리 도청기는 개발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것도 얼마 안 남았겠죠.”
“끔찍한 소리 하지 말게. 그럼 말도 마음껏 못하고 살 텐데.”
김명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도청기와 인공위성 카메라 덕분에 고위직들은 사생활이 사라진 세상이다. 그 와중에 원거리 도청기까지 개발된다면, 전 세계에 자신을 생중계하는 기분이 들고도 남을 것이다.
“그래서…….”
김명찬이 천천히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강행한다면 가능성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종욱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는 아직 저들의 힘을 계량화하지 못했습니다.”
“음.”
“그리고 적의 힘도 미지수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총회와 무인계의 정체를 알고부터는 그동안 저희가 무슨 일을 해온 건지 회의가 들 정도니까요.”
“그렇겠지.”
김명찬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한민국은 급속도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발전의 한계가 슬슬 드러나는 중이다.
기세와 운, 그리고 근면함을 바탕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이지만, 이제는 확연히 발전의 속도가 더뎌졌다. 그러자 이제는 그동안은 보이지 않던 기초 체력의 한계가 눈에 들어왔다.
기본적으로 강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과거부터 타국의 정보를 조사하고 분석해 왔다. 각국의 정보기관이 타국에도 그 명성을 날릴 만큼 말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제야 겨우 대외적인 정보 단체를 확립하는 과정이다. 그동안은 국내와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으니까.
타국이 무인계의 존재를 완전하게 파악하고 준비할 동안, 자신들은 일부의 권력자만이 무인계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뿐, 국가 단위로 그들을 파악하고 대비하는 것에 실패했다.
국가가 아니라 권력자가, 시스템이 아닌 일부 힘 있는 자가 정보를 휘두른 결과였다.
“그래도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있지 않은가. 정보가 부족하다고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건 자네가 할 말은 아닐 텐데.”
“그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일 자체는 성공하리라 봅니다.”
“그래?”
김명찬이 미묘한 눈으로 이종욱을 바라보았다.
“이유는?”
“제가 만나본 강진호라는 존재는 결코 허세를 부릴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인상적인 평가로군.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말이야.”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네.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기계적인 판단만을 내릴 수는 없으니까.”
그게 꼭 옳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일 자체는 성공한다는 말이 그리 긍정적으로 들리지는 않는데?”
“안 그래도 그 건에 관해서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김명찬이 눈을 살짝 찌푸렸다.
“뭔가?”
“저희의 분석으로는 암살 자체는 성공할 확률이 높지만, 암살 후에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김명산은 대답 없이 앞을 바라본 채 걸었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김명찬이 입을 열었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군. 암살보다 중국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인가?”
“한 번 위치가 노출된다면, 그때부터는 추적이 들어가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의 감시 체계는 한국을 훨씬 능가합니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거리를 감시해서 일이 터질 경우 동선을 파악해 경로를 찾아내는 데 특화되어 있다면, 중국은 실시간으로 국가를 감시합니다.”
“으음.”
“그 엄밀한 감시 체계를 피해 무사히 빠져나올 확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내가 알기로 강진호 회주는 이전에도 중국에서 탈출한 적이 있네.”
“그건 국가가 상대가 아니었고, 일이 터진 곳이 해안가였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강진호 씨가 있는 곳은 베이징입니다. 중국 정부의 감시 체계가 가장 엄밀하게 돌아가는 곳이죠.”
김명찬이 침음을 살폈다.
이종욱의 말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럴 확률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묻고 싶다는 게 뭔가?”
살짝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인 이종욱이 더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금 말씀드린 사태가 실제로 벌어졌을 경우입니다.”
“음?”
“공식적으로 저희는 강진호 씨와 관련이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은 강진호 씨와 총회가 개인적으로 벌인 일입니다.”
“그렇지.”
“그럼 실제로 중국 정부에서 저희의 개입을 차단해 달라고 요청한다면 어떻게 하실 셈입니까?”
“…….”
김명찬이 아무 말 없이 걸었다.
공을 날린 곳까지 걸어간 김명찬이 눈을 찌푸렸다.
공이 러프에 빠지다 못해 연못에 걸쳐 있었다. 저 공을 치기 위해서는 연못에 발을 담그는 수밖에 없다.
“이보게, 이 과장. 자네, 골프 좋아하나?”
“사실 즐기지는 않습니다.”
“골프를 처음 치는 사람은 말일세, 공을 어떻게든 살려내려고 노력한다네. 저런 공마저도 살려내는 게 진짜 골프라고 생각한단 말일세.”
“…….”
“확실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지. 그게 바로 리스크일세.”
“…….”
“연못까지 들어가서 쳤는데도 제대로 맞추지 못해 공이 더 깊은 연못까지 들어가 버리면? 옷도 젖고 발도 젖었는데 성적은 더 나빠진다. 이게 최악 아니겠는가?”
“맞습니다, 총리님.”
“그럴 때는 말일세…….”
김명찬이 주머니에서 공을 하나 꺼내 바닥에 드롭했다.
“적당한 페널티를 감수하고 안정을 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네. 이게 어른의 방법이라는 게지.”
“예, 총리님.”
“자, 자네 공은 찾았는가?”
“예. 저기에 있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내가 먼저 치도록 하지. 라운딩은 즐거워야 제맛이니까 말일세.”
이종욱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이미 들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진호는 연못에 걸친 골프공과 마찬가지니까. 어설프게 살리려 들다가는 중국과의 관계를 망칠 확률이 높다.
골프공이 알아서 굴러와 페어에 안착한다면 다시 밀어낼 이유가 없지만, 굳이 손해를 감수해 가며 가져올 필요는 없다. 대체할 골프공은 주머니 속에 많으니까.
자세를 잡는 김명찬을 보며 이종욱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게 맞는 걸까?’
효율을 중시하고 리스크를 회피하려 드는 김명찬의 방법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도전이니 과감함이니를 지껄이는 건 잃을 것이 없는 자들의 논리니까.
한 번의 선택으로 자신만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운명을 걸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은 안정적인 길을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다만…….
‘우리가 잃는 것이 골프공이 아니라면?’
골프공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이유는, 언제나 다른 골프공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진호를 흔한 골프공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종욱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언뜻 그럴싸한 비유 같지만,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누가 봐도 강진호는 다른 무인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다. 강진호를 한 번이라도 만나본 사람이라면 다들 이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총리님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종욱이 아는 김명찬이 이런 사소한 오류를 포착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렇기에 망설이는 것이다.
지적해야 하지만, 지적할 수 없다.
알고도 틀리는 일을 어떻게 지적하라는 건가.
중요한 건 김명찬이 왜 이런 빤한 오류를 범하느냐였다.
‘설마…….’
“생각이 많은 것 같군.”
이종욱이 움찔하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닙니다. 그저 뒷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가…….”
“그건 자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닐세.”
“…….”
“나랏일을 하는 이들이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가 월권이지. 내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일이 틀어진다는 오만함이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인데도 말이야.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이종욱이 살짝 눈을 감았다.
분명 이것 이상으로 나가는 건 월권이다. 그가 할 일은 내려온 지시를 잘 이행하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스윙을 하는 김명찬을 바라보는 이종욱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나라를 이끄는 이들은 한 번씩 비정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평범한 이들은 자신의 도덕성만을 지키면 그만이지만, 이끄는 이들은 집단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것이 지도자로서의 완벽함을 충족시키지는 않는다. 때로 이끄는 이들은 도덕성을 버려가며 집단의 이익을 실현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강진호는 너무도 위험한 존재다.
대한민국의 정부가 견제하고 억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심지어 총회 내에서도, 한국 무인계 내에서도 그는 규격 외라는 느낌이다. 한국이 아니라 어떤 나라도 그를 통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힘은 언제나 국가의 체계를 위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총리님…….’
이종욱이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어쩌면 당신의 결단이 폭탄의 뇌관에 불을 붙이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릅니다.’
김명찬이 친 공이 길게 슬라이스되어 날아간다.
“이런, 또 잘못 쳤구만.”
김명찬이 고개를 내저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이종욱이 가만히 김명찬을 바라보다 이내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따라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