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32
#1331.
대작하다 (1)
최연하는 무척이나 복잡한 심경이었다.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운 일을 겪어서?
아니다.
조금 전에 있던 일이 뇌리에 남아 있어서?
그것도 아니다.
물론 중국에서 제대로 된 계약을 하지 못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나름 구박을 하기는 했지만, 이현수가 그녀를 구해준 것과 그 일련의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최연하에게 무척 인상 깊게 남았다.
이현수라는 사람을 근본부터 다시 보게 됐다. 그게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말이다.
능글맞긴 하지만 중간중간 보여준 차가운 모습과 잔인한 일처리는 이현수라는 사람이 근본적으로 얼마나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런데…….
“으…….”
이현수의 신음이 애처롭게 들려온다.
“엄살 피우지 마라.”
“아니, 엄살이 아니구요, 저 진짜 허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허리가 아파?”
“……아닙니다. 안 아픕니다.”
지금 그 카리스마 넘치는 이현수는 호텔방 구석에서 대가리를 박고 있었다.
이유는 무척 간단하다.
간만에 일을 해냈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버린 이현수는 잔뜩 기대를 품고 최연하와 함께 호텔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해낸 일을 한참 풀어낸 끝에야 이 모든 일을 보고하는 게 늦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그 룸에서 나와 택시를 탄 시점에서는 강진호에게 전화를 했어야 한다. 그게 순리다.
그러다 보니 중간부터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강진호의 손짓 한 번에 구석으로 가 자진해서 머리를 박고 있다.
“…….”
최연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었다.
스무 명도 넘는 사람을 떡으로 만들어 버린, 마치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사람이 강진호의 손짓 하나에 머리를 박고 벌을 받는 중이다.
“중국에 와서 들뜬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흠…….”
강진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그러고는 아차 하고 최연하를 바라봤다.
“피워요.”
“아니, 괜찮습니다.”
“됐으니까 피워요. 여기 너무 넓어서 냄새도 안 배겠구만.”
“그럼 한 대만.”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고생했어요.”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이현수 씨를 보낸 거예요?”
“아뇨.”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일반적인 계약을 저녁에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한국이 아니니 뭐든 조심하는 게 낫다고 여겼죠.”
“……좀 기분이 이상하네. 나도 나름 똑 부러지게 일처리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강진호 씨 앞에 있으면 한 번씩 사고 치고 다니는 애가 된 기분이에요.”
강진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한은솔도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틀린 말도 아니지, 뭐.’
애초에 최연하가 맥주병으로 우차오의 대가리를 후려 까버리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크게 될 일은 아니었다. 그냥 말로 끝낼 수 있는 정도였겠지.
그러니 일을 키운 게 최연하라는 건 확실하다.
다만…….
‘솔직히 깔 만했지.’
거기서 참는 것도 능사는 아니었다. 결국 비웃음을 당하면서 돌아왔을 테니까. 정도를 몰랐다는 건 문제지만.
아마도 강진호도 최연하의 이런 성향을 알고 있기에 문제가 커질까 봐 이현수를 딸려 보낸 게 분명하다. 한은솔의 생각으로는 말이다.
“고생했어요. 내가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에요, 진짜. 이 실장님이 계셔서 괜찮았어요. 없었으면 오늘 무슨 일이 있었을지…….”
최연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흥분이 가라앉자 몸이 떨린다. 손이 자꾸 벌벌 떨려 일부러 보이지 않게 엉덩이로 깔고 앉았다. 그녀가 떨고 있는 모습을 강진호가 보는 게 싫었다.
“괜찮아요?”
하지만 애초에 강진호의 눈을 속인다는 건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괜찮아요. 뭐, 이 정도로.”
강진호가 말없이 최연하를 빤히 바라본다. 최연하는 그 눈빛에 속이 좀 편해지는 걸 느꼈다.
“아니, 솔직히 괜찮지는 않은데…… 괜찮아야죠. 떤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미친개가 달려들었다 생각하면 될 일이니까.”
“음…….”
강진호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현수도 생각 끝에 한 일처리겠지만, 겨우 그 정도로 끝내는 건 강진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저 괜찮다고 했어요.”
“네?”
“자꾸 선 넘으려고 하지 말아요. 강진호 씨도 여기 할 일이 있어 온 거잖아요.”
“…….”
“제가 제일 싫은 건, 제가 강진호 씨한테 방해가 되는 거예요. 지금도 충분히 방해하고 있고.”
“그렇지 않습니다.”
“맞는데, 뭐.”
최연하가 한숨을 쉬었다.
“위로를 하려거든 밥이나 사 주세요. 빈속에 술 때려 넣었더니 정신이 없거든요. 맛있는 거 먹고 나면 기분이 좀 풀릴 것 같으니까.”
그 순간, 이현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가 일어나…….”
“제가! 좋은 식당을 예약해 뒀습니다!”
이현수가 손을 번쩍 들며 말하자, 강진호가 입을 살짝 벌렸다.
“점심부터 아무것도 못 드신 것 같고, 거기서도 뭘 드실 것 같지는 않아서 오시면 배가 고프겠다 싶었죠! 이 주변에서 제일 유명한 식당을 예약해 뒀습니다.”
“이 시간에?”
“후후, 베이징에 24시간 식당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시는군요. 검색하고 검색해서 제일 평이 좋은 식당을 미리 예약해 뒀죠.”
최연하도 입을 벌리고 이현수를 바라봤다.
‘저 양반,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매니저를 했다면 전설이 되었을 거라는 말이 이제는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진짜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런데 왜 일어나지?”
“죄송합니다. 제가 시간을 좀 빡빡하게 예약을 해서, 지금 바로 안내를 해드려야 할 것 같거든요! 제가 직접 모셔다 드리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아서…….”
이현수가 힐끔힐끔 바닥 쪽을 바라본다.
“다시 박을까요?”
“…….”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나 없이도 예약해 둔 식당을 찾아갈 수 있겠냐는 항변이다. 이런 일에서는 이현수를 이길 수가 없다.
“가자.”
“모시겠습니다.”
이현수가 싱글벙글 웃는다.
꽤나 얄밉기는 하지만, 공도 있으니 더는 탓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일단 이현수보다 최연하의 멘탈을 관리하는 게 우선이니까.
“은솔아, 밥 먹으러 가자.”
“……저는 괜찮아요. 지금 먹으면 토할 것 같아서.”
이현수가 눈을 찌푸렸다.
“스트레스가 심했나?”
“아니요. 술 때문에요. 우욱!”
“…….”
이현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호텔 카운터 가면 상비약 줄 테니까, 가서 숙취 해소제랑 위장약 좀 받아먹어.”
“그래야겠어요. 죄송합니다. 저는 못 먹겠…… 우욱!”
이현수가 안쓰러운 얼굴로 한은솔을 바라보았다. 저리 술이 약해서야 어떻게 하나.
“그럼 은솔이는 쉬어. 우리끼리 다녀올게. 괜찮지?”
“예, 누나. 진짜 괜찮으니 다녀오세요.”
“그래, 알았어.”
최연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요.”
“음.”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현수가 바로 달려가 문을 열어주었다.
“모시겠습니다.”
“……예약이 취소됐다구요?”
이현수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지배인을 바라보았다.
“예.”
“아니, 잠시만요. 제가 취소한 적이 없는데, 왜 예약이 마음대로 취소가 되는 거죠?”
“오늘 업장에 사이 있어서 사람을 들일 수 없습니다.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이현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예약을 했는데, 예약이 마음대로 취소가 된다? 노쇼를 한 것도 아니고, 예약 시간에 늦은 것도 아닌데, 이게 업주 마음대로 취소할 수 있는 일이던가?
이현수가 슬쩍 옆쪽을 돌아보았다.
이현수와 같은 설명을 들은 이들이 별말 없이 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서는 이게 당연한 건가?’
이현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다른 이들은 군말 없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내가 알기로 중국인들은 이런 걸 못 참는다고 들었는데?’
지배인의 태도도 너무 당당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의 태도는 너무 담담하다. 그제야 이현수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당의 고위 간부가 식당을 통째로 전세 낸 건가?’
이런 비상식적인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힘이 있을지 짐작할 수 있잖은가.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가 한국이었다면 어떤 권력자라도 이런 일을 벌이지는 못하겠지만, 여기는 중국이다. 중국의 상식은 이현수의 상식과는 다르다.
괜히 사고를 칠 필요는 없다. 그들은 눈에 띄면 안 되는 처지니까.
뻔뻔한 얼굴의 지배인을 빤히 바라보던 이현수가 고개를 내젓고는 몸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다른 식당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강진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지?’
상황이 불쾌한 게 아니다.
의외로 강진호는 끓는점이 낮은 사람이다. 이 정도로는 화를 내지 않는다. 그를 불쾌하게 만드는 건 조금 전부터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이었다.
강진호 스스로도 알 수 없을 만큼 미묘한 감각.
“후…….”
미묘한 불쾌함을 내리누른 강진호가 한숨을 쉬고는 최연하를 돌아보았다.
“일이 꼬이네요. 다른…….”
그 순간, 더는 참지 못한 최연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체 이 나라는 약속을 뭘로 아는 거야? 제멋대로 예약 취소하고 약속 어겼으면 적어도 사과라도 똑바로 해야지! 죄송합니다, 소리 한 번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뭐, 이딴 나라가 다 있어!”
최연하가 주먹을 움켜쥐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평소라면 더 심한 경우를 당해도 사람들 앞에서 흥분하지 않을 최연하지만, 그녀는 오늘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바스라질 대로 바스라진 멘탈이 그녀의 이성을 날려 버리고 있었다.
강진호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최연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조금 화를 가라앉히시고…….”
“아니,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요! 상식이라는 게 있잖아! 아니지. 여기는 원래 상식이 없는 동네지!”
“그 말은 조금 받아들이기가 힘들군.”
강진호와 이현수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순간, 둘의 눈에 익숙하다면 익숙한 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뭐…….”
이현수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전신이 독 오른 고양이처럼 바짝 당겨졌다.
순간적으로 몸이 각성 상태로 돌입하며 전신의 감각이 열렸다. 전투에 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육체가 스스로 판단한 것이다.
“오랜만이군.”
태연히 말을 건네는 사내를 보며 이현수가 신음을 내뱉었다.
“……차이커창.”
이현수를 빤히 바라보던 차이커창의 시선이 강진호에게로 이동했다. 강진호를 마주한 차이커창이 가볍게 웃고는 허리를 깊이 숙였다.
“마왕을 뵙습니다.”
“…….”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홍왕께서 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차이커창이 부드러운 미소로 안쪽을 가리켰다.
호의 가득한, 확연히 공손한 동작이었다.
“호굴이라는 건가.”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까부터 그를 거슬리게 하던 불쾌한 감각의 정체가 뭔지 알 것 같다.
“안에 계신 분이 호랑이인 건 확실하지만, 초대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자국을 방문하신 동맹을 그냥 보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법이니까요.”
“그렇겠지.”
강진호가 성큼 걸어 안으로 향했다.
차이커창이 빙그레 웃으며 강진호와 보조를 맞춰 걷는다.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며 최연하를 돌아보았다.
“가시죠.”
“……뭔 상황이에요?”
“…….”
낸들 알겠습니까.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