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38
#1337.
실행하다 (2)
“……무슨 일 있었어요?”
최연하가 살짝 풀린 동공으로 한은솔을 바라보았다.
“은솔아.”
“예?”
“너는 뭘 먹고 컸기에 그렇게 운이 좋니?”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누나?”
“그냥 부러워서 그런다, 부러워서.”
“…….”
한은솔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이 분위기?’
밥 먹으러 갔다가 돌아온 이들의 모습이 영 이상하다.
최연하는 반쯤 넋이 나간 듯 멍한 얼굴이고, 이현수는 어디 전쟁터라도 잠시 들렀다 왔는지 초췌해진 얼굴로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려 대고 있었다.
유일하게 멀쩡한 건 강진호지만, 저 양반이야 원래 그러니까.
“그건 또 뭐예요?”
“선물이라던데?”
“선물이라니, 누구 만났어요?”
“…….”
최연하가 한숨을 쉬며 한은솔을 바라봤다.
‘억지로라도 끌고 갔어야 하는 건데…….’
남들은 개고생을 하는 동안, 호텔방에 편히 누워서 놀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새삼 부아가 치민다.
“누굴 만났냐고?”
“예.”
“나도 잘 모르겠다.”
“예?”
황당한 듯 한은솔이 최연하를 바라봤다. 하지만 최연하도 딱히 다른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모르는 게 사실이니까.
“여하튼 음…….”
최연하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그 출연 건은 어떻게 잘 정리가 될 것 같은데.”
“네?”
“나도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해결이 될 거래. 원하는 모든 계약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데?”
한은솔이 빙그레 웃었다.
“누나, 약 했어요?”
“이 새끼가!”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니까 그렇잖아요!”
“그렇지. 말이 안 되지.”
최연하가 순순히 인정하고 소파에 앉아버리자, 한은솔이 되레 놀라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진짜?’
그가 최연하를 모르겠는가. 이건 절대 농담으로 던지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다.
애초에 한한령은 국가정책이다. 특정 몇몇 사람이 반기를 들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국가에서 주도하는 정책에 반발하는 건 힘든 일인데, 중국에서야 오죽하겠는가.
더구나 그 개 같은 CNTV 놈들이 지껄이는 걸 보면, 고위직이 최연하를 콕 찍어서 방해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걸 무슨 수로 뒤집는단 말인가.
한은솔이 괜히 드러누운 게 아니다.
“……누나, 자세히 설명 좀 해봐요.”
“내가 상황을 자세히 몰라서 어떻게 설명을 못하겠다.”
“아니, 이게 뭔…….”
그 순간, 소파에 털썩 앉은 이현수가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야.”
“예?”
“그쪽에서 제 입으로 한 말을 어기지는 않겠지. 자존심 하나는 대륙보다 넓으니까.”
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차이커창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신뢰하지 않는다. 그놈은 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어 버리고도 남을 놈이니까. 하지만 이 말은 차이커창이 아닌 홍왕의 입에서 나왔다.
매사를 의심하고 보는 이현수지만, 그 홍왕의 입에서 나온 말이 뒤집어지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적이지만 신뢰할 수밖에 없는 이가 바로 홍왕이니까.
“아니, 자기들끼리만 알지 말고 설명을 좀!”
“에이 씨!”
최연하가 짜증을 내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 사람이 누군데요?”
“몰라. 저기에 물어봐.”
한은솔의 시선이 슬쩍 강진호에게로 향한다. 하지만 곧 강진호에게서 제대로 된 대답을 듣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시선이 이현수에게 고정됐다.
“그게…….”
이현수가 뭔가 말하려는 듯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라 설명하기가 어렵군. 그냥 대충 숨겨진 권력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숨겨진 권력자요?”
“그래.”
한은솔이 영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요즘 세상에도 그런 게 가능한가?
하기야 중국이니까. 중국에서라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다는 걸 요 며칠 동안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 그럼 진짜 그게 다 되는 겁니까?”
“그럴걸?”
“……와, 이게 뭔 상황이냐? 어제 꿈에 돼지가 나오더니.”
“개는 안 나왔어?”
“그러고 보면 나왔던 것 같기도 하고.”
“…….”
너스레를 떨기는 하지만,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었다. 기세 좋게 중국으로 넘어오기는 했지만, 냉정하게 따져 봤을 때 따낼 확률이 높은 계약은 둘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열 개에 가까운 계약을 모두 다 할 수 있다고?
‘아니, 아니지.’
스케줄이 안 맞는다. 그리고 최연하의 몸이 못 버틴다.
그러니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계약은 최대 다섯 개 정도.
‘그중에서 가장 좋고 돈 되는 계약,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미지를 재고할 수 있는 계약을 골라내야 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은솔이 굳이 그런 것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런 건 여기 있는 높으신 분(?)들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 한은솔은 당장 자신의 일만 처리하면 그만 아닌가.
“우선 CF는 다 찍자구요.”
“…….”
“문제는 드라마랑 영환데, 솔직히 저는 드라마 쪽이 나을 것 같거든요.”
“은솔아, 진정해라.”
“아니, 아니라니까요. 누나, 이건 빨리 확정 지어야 해요. 그쪽에서 언제 연락이 올 줄 알고!”
“끙.”
최연하가 머리를 짚고는 소파에 드러누웠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꿈을 꾼 것 같다.
차이커창의 안내를 받아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호텔로 돌아올 때까지 잠시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 같은 이질감이 들었다.
‘이게 강진호 씨가 사는 세계구나.’
그녀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세계.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만, 묘하게 어긋나 있는 세계. 그 세계에 잠시 발을 내디뎌본 느낌이었다.
최연하가 살짝 심통이 난 표정으로 강진호를 바라봤다.
강진호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여하튼.’
딱히 강진호가 잘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강진호에게 그녀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미묘하게 섭섭한 느낌이 드는 최연하였다.
“일단은 기다려 보자고.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으니…….”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웅!
한은솔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한은솔이 재빨리 전화를 들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어…… 어어?”
한은솔이 탄성을 지르며 전화를 받았다.
“예, 한은솔입니다.”
더듬더듬 중국어로 대답을 하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아, 자, 잠시만요. 그렇게 빨리 말씀하시면 제가 이해하기 힘듭니다. 조금만 천천…… 아! 아, 예! 그렇죠. 예.”
한은솔의 얼굴이 붉게 상기된다.
“예, 예. 아…… 그렇게 갑자기는……. 이틀 뒤는 안 되겠습니까? 내일 아침에 거기까지……. 예? 여기로 오신다구요? 아, 그럼 가능하죠. 예.”
한은솔이 귀와 어깨에 휴대폰을 낀 채 양손으로 카메라 모양을 만들었다. CF 업체 쪽에서 연락이 왔다는 뜻이다.
“예. 그럼 10시에 뵙겠습니다. 예. 아, 물론이죠. 예…… 아, 잠시만요. 지금 다른 전화가 들어와서……. 제가 금방 다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조금만…….”
한은솔이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MK 엔터테인먼트 한은솔 실장입니다. 예. 아…… 계약은 없는 걸로 하지 않으셨나요? 예? 상황이 바뀌어요? 아…….”
한은솔의 입가가 점점 말려 올라갔다.
“글쎄요. 일단은 천천히 이야기를 해보시는 게…….”
통화를 하는 한은솔을 보며 이현수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강진호와 시선을 마주친 이현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차이커창의 성격이 이렇게 급할 줄은 몰랐는데요.”
“차이커창이 급한 게 아니겠지.”
“예?”
“홍왕의 명령이라고 아래쪽에 말이 전해졌을 테니까.”
이현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홍왕이 이런 명령을 내릴 일이 몇이나 있겠는가.
아마 지금 이 모든 사태를 주관하고 있는 이들은 평생에 걸쳐 홍왕의 명령을 직접 받아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홍왕의 명을 받았으니, 눈이 돌아가고 혼백이 빠질 만도 하다. 아마 그 심정을 그대로 담아서 업체 쪽에 연락을 했겠지.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목을 뽑아버리겠다는 기세로 말이다.
그러니 이 야밤에 전화통에 불이 나는 거고.
“아, 뭐…… 그런데 한 번 엎어진 계약을 다시 하는 것도 저희가 딱히 좋은 게 아니라서……. 예? 두 배요? 아…… 아, 물론 돈은 좋죠. 돈은 좋은데…… 아무리 두 배라고 해도 그런 게 있잖습니까. 저희 배우님이 좀 섬세하신 분이라 한 번 기분이 상해 버리…… 네? 세 배요?”
이현수가 살짝 질린 눈으로 한은솔을 바라보았다.
‘저 새끼, 크게 될 놈이야.’
그 와중에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허리까지 젖힌 채 전화를 받고 있다. 저기에 담배 한 개비만 들려주면 그림이 완벽해질 것 같다.
“거참.”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기분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며칠 동안 발품을 팔며 갑질만 당했는데 상황이 순식간에 역전됐으니, 그 기분이야 말해 뭐 하겠는가.
아마 하늘을 나는 기분이겠지.
“예. 그럼 내일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아뇨, 아뇨. 내일 만나자는 게 아니라 내일 전화를 드린다구요. 지금 다른 데도 미팅이 잡혀 있어서 내일은 시간이 안 나거든요. 네네.”
미팅 없잖아, 인마.
어린놈이 못된 것만 배워서는!
“예? 다른 업체요? 하하, 제가 그런 것까지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잖습니까. 여하튼 저희 배우님도 몸이 여러 개가 아니다 보니 들어오는 계약을 모두 다 할 수는 없죠. 이런 말은 그쪽만 드리는 건데, 조건 보고 적당히 골라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물론 팀장님은 우대해 드려야죠.”
전화를 끊기도 전에 새 전화가 걸려온다. 연이어 몇 통의 전화를 받은 한은솔의 허리가 부러지기 직전까지 젖혀졌다.
“네. 그럼 끊겠습니다.”
탁.
전화를 끊은 한은솔이 메모장을 켜 재빨리 일정을 정리했다. 정리가 끝나자 휴대폰을 던지듯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벌떡!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됐어. 뭐, 그런 거 가지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겠지만, 남자끼리 고맙니 어쩌니 낯간지러운 말을 하는 건 사양이다.
하지만 한은솔은 이걸 그냥 넘길 수는 없다는 듯이 이현수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다음에 밥이나 한 번 사면 된다니까. 내가 서로 돕고 지내자고 말을…….”
“잠시만요.”
“……응?”
한은솔이 걸리적거린다는 듯이 이현수를 옆으로 밀어낸다.
“…….”
그러고는 재빨리 강진호에게 뛰어가 허리를 폴더처럼 접었다.
“회장님, 평생 모시겠습니다!”
“응?”
“이걸로 저희 엔터테인먼트도 매출 급상승을 노려볼 수 있게 됐습니다.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어…… 어, 그래.”
“헤헤, 그런데…….”
“응?”
한은솔이 영업용 미소를 가득 담고는 양손을 비벼 댔다.
“그런데 혹시 이번 계약 말입니다.”
“응?”
“누나가 못하는 자잘한 계약은 저희 소속사 배우들로 대체할 수 있을까요?”
“…….”
“이것만! 딱 이것만 되면 정말 저희가 날개를 달 수 있거든요! 아시다시피 저희 배우들이 쩔어줍니다! 그러니까 전화 한 통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
이현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저 새끼.
진짜 크게 될 놈이다.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