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4
#133.
행동하다 (3)
예상되는 곳은 몇 군데 있었다. 이제 밤에 날이 쌀쌀하니 포상으로 내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갈 곳이라고 해봐야 노래방, 면회실, 취사장, 보일러실, 이 네 곳뿐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으슥한 곳은 보일러실이었다.
강진호는 발소리를 죽여 건물 뒤 지하에 있는 보일러실을 향해 접근했다.
곧 어렴풋한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쪽이군.’
지하인 탓에 원래라면 밖으로 말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겠지만, 강진호의 귀를 피할 수는 없었다. 강진호는 가만히 보일러실의 철문에 귀를 댔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어, 새끼야?”
“죄송합니다.”
“하, 씨발. 이 고문관 새끼, 진짜 사람 속 터지게 하네.”
강진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예상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그 짐작이 사실로 밝혀지자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 씨발 놈아, 니가 짬이 몇 개냐고. 그런데 아직 이런 일 하나 똑바로 못해?”
“……죄송합니다.”
“뭔 말만 하면 죄송하데. 새끼야, 니가 죄송하다고 하고 제대로 처리한 일이 있어?”
“아닙니다.”
“그럼 똑바로 하든가. 하, 씨발. 후임이란 새끼가 이런 병신이니까 내가 쉬지를 못하는 거 아냐.”
강진호가 철문에서 귀를 뗐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군.’
강진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은 너무도 명확하지만, 자신이 아는 주영기란 사람은 이런 것을 묵묵히 감내할 타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신교대에서 보여준 주영기의 모습이라면 이런 인격 모독이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라면 영창을 각오하고 뒤집어엎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영기는 왜 참고 있는 것일까?
짜악!
강진호가 생각을 멈췄다.
그러고는 철문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고개 똑바로 안 들어, 씨발 놈아?”
“죄송합니다.”
짜악!
강진호의 눈빛이 한층 더 가라앉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은 어디서나 트러블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트러블을 해소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민주 사회에서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최우선으로 치고, 그것이 안 될 경우에 밥과 규범에 맡기라 호소하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이 뭔지는 강진호도 잘 알고 있었다.
폭력.
권력에 의한 억압.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비난할 생각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강진호야말로 폭력에 의한 해결을 가장 선호하는 자 중 하나였으니까. 그가 지금까지 해결해 온 일들은 대부분 그의 폭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그러니까 당연하다?
그러니까 이해해야 한다?
자신의 폭력은 정당성이 있었다고 항변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폭력은 폭력.
옹호되어서는 안 될 것이니까.
그런데 이 끓는 속은 뭐란 말인가.
“아, 씨발 놈아. 고개 들라고!”
짜악! 짜악!
철문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이를 악문 강진호가 철문을 걷어찼다.
콰앙!
문에서 들리는 커다란 소리에 안에서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다.
“뭐, 뭐야?”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 씨.”
사람은 없는 것 같았지만,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던 사내는 주영기를 보며 말했다.
“너, 씨발, 일단 생활관 복귀해. 내일도 어리바리 타면 뒈질 줄 알아, 새끼야. 알았어?”
“예…….”
주영기가 생활관으로 돌아가자 사내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병신 새끼 진짜.”
그의 목소리에는 묘한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그리고…….
강진호는 어둠 속에서 그 사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더없이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김학철.’
주영기와 함께 있던 사내의 이름은 김학철 상병.
주영기의 맞선임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강진호의 입장에서는 일과에 시달리지 않고 1분대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섣불리 움직이지 마.’
어제 당장 김학철을 박살 내놓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1분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일을 벌인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강진호가 해야 할 일은 주영기를 돕는 것이지, 자신의 기분을 푸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도록 몇 번이나 1분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 강진호는 흡연 구역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뭐지?’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아무런 문제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아닌 건가?’
냉정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강진호는 주영기가 문제의 원인일 확률을 배재하지 않았다.
어떠한 문제가 있더라도 폭력으로 푸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폭력의 대상이 되는 쪽에서 사태를 키우는 것도 의외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관심 사병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은 아니니까.
인간으로서는 잘못된 것이 없지만 조직 생활에서는 언제나 부적응자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그런 부적응자들을 폭력으로 다스리려 하는 시도는 인간의 오랜 역사와 함께해 왔다.
중원에서도, 학교에서도.
그가 존재했던 그 어떤 조직에서도 비슷한 경향은 늘 존재했다. 단지 그 정도가 심한가, 심하지 않은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
멀리 갈 것도 없이 박유민 역시 폭력의 피해자였다. 단순히 다리를 전다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의 조직에서 배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게 인간인 것이다.
강진호는 인간 찬양론자가 아니고, 인간이 그 어떤 짐승보다도 잔인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한 사람이다.
‘그게 아니라는 건데…….’
하지만 주영기에게서는 어떠한 잘못도 발견할 수 없었다. 되레 강진호가 그동안 너무 편히 지내지 않았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영기는 열심히 일을 했다.
상병임에도 하루에 앉아 있는 시간이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심심찮게 실수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그 정도의 실수는 누구나 저지르는 것이었다.
‘그럼 이유가 뭐지?’
도통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경우의 수는 두 가지.
오늘 주영기가 특별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던가, 아니면…….
강진호는 가만히 담배를 빨았다.
‘밤이 되면 알겠지.’
불침번의 눈을 피해 건물 밖으로 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생활관 인원 체크를 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강진호는 적당히 모포와 침낭으로 사람이 자는 것과 같은 모습을 만들고 나서 침낭을 머리끝까지 채웠다.
원래는 얼굴을 드러내 놓고 자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미 위병 근무가 끝난 강진호를 깨우러 올 사람은 없을 것이니,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만히 생활관 밖으로 나온 강진호가 보일러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1분대에 누가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이 맞다면 이 시간이 유일했다.
근무표를 통해 본다면 이 시간이 주영기와 김학철이 둘 다 근무가 없는 최적의 시간이었다. 만약 김학철이 뭔가를 하려 한다면 이 시간에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없어?’
하지만 의외로 보일러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휴우.”
강진호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군.’
오늘 이곳에 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적어도 김학철이 잘못이 있을 때만 주영기를 나무란다는 뜻이었다. 오늘 하루는 강진호가 확인하기에 분명 주영기가 잘못한 것이 없었으니까.
물론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폭력을 써서 후임을 때리는 행위가 용납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을 때리는 것보다야 낫다.
‘생각을 좀 해봐야겠어.’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지금의 상황 역시 좋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특히나 주영기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강진호는 담배를 한 대 입에 물었다.
‘잘하고 있는 걸까?’
단언컨대, 예전이었다면 강진호는 주영기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신의 일도 감당하기가 힘든데 다른 곳에 눈을 둘 이유가 없었다.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라…….”
강진호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무래도 강진호와는 딱히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타인을 위해서 살아본 적은 없었으니까.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자.’
주영기의 상황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지만, 강진호의 마음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몰랐다.
이것이 그의 실수였음을.
며칠이 지나도록 머리는 식을 줄을 몰랐다. 야간 위병 근무가 끝나고 생활관으로 복귀한 강진호는 환복을 하자마자 밖으로 나섰다.
‘어떤 방식이 괜찮은 건가.’
꽤나 민감한 문제였다.
그가 나설 수 있는 상황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드러나게 나섰다가는 일이 커질 수 있지만, 그건 누구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었다.
사회도 마찬가지의 일면이 있기는 하지만, 군대라는 곳이 특히 엿 같은 점은 피해자가 반드시 보상을 받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피해자가 더 큰 억울함을 겪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 상황을 공개적으로 해결하려 들면 결국 주영기에게도 피해가 간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경우에 두 사람 모두 다른 부대로 전출시켜 버리는 것이 군대가 가장 선호하는 폭력 사태의 해결법이었다.
그 피해자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해도 말이다.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고, 일선 지휘관들의 문제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걸 공개적으로 밝힌다면 어느 선까지 밝힐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았다. 사단장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도 가능은 하겠지만, 그렇게 될 경우 폭력 사건을 방치했다는 이유로 포대장을 위시로 줄줄이 진급이 막히게 될 것이다.
‘죄도 없는데 말이야.’
강진호가 지켜본 바로는 포대장급에서 아무리 신경을 쓴다고 해도 이런 사건을 방지하는 것은 무리였다. 24시간 내내 생활관에 붙어서 감시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설사 그리 노력한다고 해도 앞에서는 잘해주고 보이지 않을 때 폭력을 가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군에서는 사건이 끊이지를 않는 것이다.
아무리 교육을 하고 감시를 하더라도 사각지대는 항상 있으니까.
강진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가 좋게좋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겠지만, 그런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정당하게 이루어지는, 그런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해자는 벌을 받고, 피해자는 보상을 받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숙제였다.
“그게 어렵다는 건데…….”
강진호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담배 연기를 길게 빨아들이고 나서야 답답하던 속이 조금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실제로야 그럴 일이 없겠지만.
담배로 얻는 시원함이라는 것은 얄팍한 속임수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로 스트레스는 담배를 피울 때 더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까.
마약이나 다름없는 쾌감 물질을 짧게 머리로 밀어 넣어 잠시의 위안을 얻는 것이다.
“끊어야지.”
강진호가 한숨을 쉬며 담배를 끄려는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가, 강진호 상병님.”
“무슨 일이야?”
안색이 파랗게 질려서 뛰쳐나온 장재환을 보며 강진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강진호의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렸다.
“주, 주영기 상병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