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40
#1339.
실행하다 (4)
“뭔가 활력이 없는 느낌인데?”
“뭐가?”
“으음…….”
공영길이 손을 들어 턱을 쓰다듬었다. 그의 이두박근이 터질 듯이 꿀렁거린다.
“으, 혐짤.”
“이 새끼는 몸뚱아리가 뭐 이래? 너, 스테로이드했냐?”
“스테로이드는 얼어 죽을. 새끼들아, 이게 진짜 내추럴이다.”
“얘는 아무리 봐도 한국인 유전자가 아니야.”
공영길은 원래 덩치가 컸다.
그러니 바토르의 눈에 띄어 제자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문제는 안 그래도 커다랗던 몸이 바토르의 훈련을 받으면서 한층 더 벌크 업을 했다는 점이다.
물론 감히 바토르에게 비교할 수는 없다. 바토르는 그런 공영길보다 머리 하나는 터 크고, 좌우로 사람 하나는 더 들어갈 만큼 가공할 어깨를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총회에서 바토르를 제외하면 공영길보다 덩치가 큰 이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솔직히 말해봐라. 너, 바토르 님 숨겨놓은 아들 아냐?”
“인마,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냐.”
“음, 장난이 좀 과했나? 미안하다, 영길아.”
“그게 아니라 바토르 님이 기분 나빠하시지. 저 얼굴을 봐라. 어딜 봐서…….”
“……아, 그러네.”
“이 새끼들이!”
공영길이 콧김을 뿜었다. 그 꼴이 영락없는 화난 곰이다.
“저런 놈이 활력 타령하고 있네.”
“그게 아니고, 새끼들아!”
공영길이 뭔가 말을 하려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정말 뭔가 힘이 안 나는 느낌 아니냐?”
“……좀 그렇긴 하지.”
“이상하게 맥이 빠진다. 수련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그러고 보면 사부님도 잘 안 보이지 않냐?”
이들의 말하는 사부님은 당연히 바토르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러게.”
공영길이 미간을 좁혔다.
“회주님이 없어서 그런가, 영 의욕이 안 나네.”
“음, 그럴 수도 있겠다.”
사실 생각하면 이상한 말이다.
강진호가 거의 매일같이 총회에 출근하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영길 등과 딱히 교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강진호는 회주실로 출근을 하고, 그들은 수련장으로 출근을 하니까.
일주일 내내 출근을 한다고 해도 얼굴을 마주치는 날은 채 하루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강진호가 없다고 의욕이 살지 않는다는 건 굉장히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당사자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데.
“끙, 수련해야 하는데…….”
공영길이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너는 수련 중독이야.”
“이 새끼들아, 우리가 이렇게 시간 낭비하는 중에도 마염 새끼들은 일본에서 실전을 겪고 있을 거라고.”
그 말에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렇지, 그랬지…….”
“아, 생각하니 기분 나쁘네. 이제 솔직히 그 새끼들이랑 우리랑 별 차이 없잖아. 그런데 왜 그 새끼들만 현장 가고 우리는 여기 처박히는 거야?”
“뭐, 어쩌겠냐. 실적이 다른데.”
총회 내의 무인들은 평등하다.
그 어떤 무인들도 특권을 가지지 못한다. 강한 자든 약한 자든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곳이 총회다.
하지만 그 말이 차이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강자가 우대받는 건 무인계의 율법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타인이 차별하지 않는다고 해도 본인이 안다. 강해지지 않으면 결국은 밀려나는 곳이 이 세계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가장 앞서 나가는 것은 누가 뭐래도 마염들이었다.
강진호가 선발하여 조직한 친위대라는 특성, 그리고 그들이 지금까지 쌓아 올린 실적.
그 어느 것도 지금의 공영길들이 따라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실력이 별 차이가 없다는 것도 웃긴 이야기지.’
직접 주먹을 대면하고 맞붙어보지 않은 이상 함부로 할 말이 아니다. 결국 실력이라는 건 언제나 상대적이니까.
마공이라는 무학의 특성상 지켜볼 때보다 상대할 때 그 위력이 커질 것은 자명한 이치다. 어쩌면 마염들의 실력은 공영길들이 생각하는 이상일지도 모른다.
“또 전쟁 한 번 안 벌어지나?”
“……재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실력은 실전에서 느는 법이야.”
“어디서 또 이상한 말 주워듣고 와서 헛소리하고 있네. 이 새끼야, 실력이 실전에서 왜 느냐? 수련하면서 느는 거지.”
“뭘 모르네.”
공영길이 살짝 짜증을 냈다.
이리 초조한 이유는 공영길의 뇌리에서 한 사람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환, 그 새끼는 지금도 강해지고 있을 텐데.’
출발선은 동일했다.
이명환이나 공영길이나 총회에서 딱히 두각을 나타내는 무인은 아니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미묘하게 처지는 위치. 입담이 좋고 나서기를 좋아해서 주목을 끌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벌어졌지.’
차이가.
공영길 역시 강해졌다. 바토르의 제자 중 공영길이 가장 강하다. 과거의 그를 생각한다면 상전벽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명환은 훨씬 더 앞서갔다.
마염의 수장이자 강진호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입장.
제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명환을 제외한 누구도 감히 강진호의 진전을 이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젊은 무인들을 대표하는 이는 공영길이 아니라 이명환이다. 그 말인즉슨…….
‘차기 총회의 수장에 이명환이 가장 가깝다는 이야기겠지.’
처음에는 이성찬이 가지고 있던 자리. 그 자리가 천태훈으로 이어졌다가 이제는 이명환에게로 돌아갔다.
강진호가 아이를 낳지 않는 한…… 아니, 그 강진호가 아이가 생긴다고 해서 총회를 자식에게 물려줄 것 같지는 않으니,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이명환이 총회의 차기 회주 자리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 봐야 한다.
공영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건 질투 같은 게 아니다.
여전히 그는 이명환을 친구로서 좋아한다. 이명환에게 위기가 닥친다면 목숨을 돌보지 않고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경쟁은 별개다.
지고 싶지 않다.
친구로서,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동년배의 무인에게 밀리는 것은 사양이다. 어떻게든 기어올라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야 하는데 이러고 있으니…….”
“뭐가?”
“……니들이 뭘 알겠냐, 이 속편한 놈들아.”
“와, 곰이 말을 한다. 우와!”
공영길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 머리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놈들과 대화를 하고 있으려니, 속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너, 이쪽으로 좀 와봐.”
“응?”
“이쪽으로 나오라고.”
“뭐야?”
공영길이 이채를 띠고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조형식.
둥글둥글한 바토르의 제자들 중에서 그나마 샤프한 턱선을 가지고 있는 남자.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시비 거는 거 아니니까, 이리 와. 애들 안 들리는 곳까지.”
공영길이 미심쩍은 얼굴로 조형식을 따라 구석으로 갔다. 적당히 거리가 벌어졌다 싶은 듯하자 조형식이 입을 열었다.
“야. 적당히 해, 인마.”
“뭘?”
“너만 초조한 척하지 말라고. 니가 느끼는 거 다른 애들도 다 느끼고 있으니까.”
“…….”
“인생 길다. 당장 한두 달 사이에 뭐가 바뀌겠냐. 이건 최소 몇 십 년은 가는 싸움이야.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이라고.”
“마라톤 뛰는 사람이 출발하자마자 전력 질주를 하면 어떻게 되겠냐? 10㎞도 못 가서 바닥에 드러누워 앰뷸런스 불러 달라고 헉헉대겠지.”
“그건 그렇다만…….”
“초조한 건 알지만, 그걸 버티는 것도 능력이야. 괜히 주변에 까칠하게 굴어서 인망 잃지 말고. 회주가 무력 하나로 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너를 지지하는가도 중요한 거야. 진짜 네가 회주가 되고 싶으면 인망부터 관리해.”
“아니, 내가 무슨 회주를…….”
“얼굴에 써 있다, 새끼야.”
“…….”
공영길이 머쓱하게 얼굴을 긁었다.
그런 공영길을 빤히 보던 조형식이 슬쩍 목소리를 낮췄다.
“뭐, 그리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냐. 일단 기본적으로 마염 놈들은 다른 애들하고 교류가 없잖아.”
“…….”
“바토르 님한테 배운다고 어깨에 힘주지 말고, 별것 아닌 것처럼 굴어. 니가 마염들에게 느끼는 감정을 다른 애들이 너한테 느끼는 순간, 너는 끝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무력이 전부는 아냐. 여기가 아무리 총회라고 해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사람이 어디 싸움 잘하는 놈한테만 끌린다냐? 오버하지 말고 페이스 배분해.”
공영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명치를 얻어맞은 느낌이다.
“수련 죽어라고 하고, 니가 이명환한테 처 발리면 아무 의미 없는 말이니까.”
“그럴 일은 없어.”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공영길이 뭔가 말하려는 순간, 앞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어?”
공영길이 다가오는 이를 발견하고는 자세를 바로 했다.
“다 모이세요.”
“예.”
장다징.
바토르의 부관인 장다징이 손짓으로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 공영길이 서둘러 장다징 쪽으로 달려갔다.
이현수 이상으로 거의 무인이라 볼 수 없는 장다징이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바토르가 그를 인정하는 이상, 장다징은 공영길들의 상관이다.
“부르셨습니까?”
“예.”
장다징이 빙그레 웃었다.
입지는 이현수와 비슷하지만, 이현수와 장다징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이현수가 사람을 말과 권력으로 눌러 죽이는 괴물이라면, 장다징은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상사다.
그렇기에 모두가 장다징을 좋아했다.
“바토르 님이 부르십니다. 아무래도 출장 갈 사람을 좀 뽑아야 할 것 같아요.”
“출장이요?”
“예. 자세한 건 여기서 말할 수 없지만…….”
장다징이 안경을 쓱 올렸다.
“아마 실전에 투입될 가능성도 좀 있을 것 같습니다. 임기응변 좋고, 수행 능력 좋은 이들로 스물 정도 선발해 주십시오.”
공영길이 주먹을 꽉 쥐었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실전이라는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심장이 뛴다.
“알겠습니다. 금방 선발해서 가겠습니다.”
“예. 그럼.”
장다징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 뒷모습을 보며 공영길이 눈을 빛냈다.
‘아무래도 중국 쪽으로 가는 것 같은데?’
지금 실전이 벌어질 곳은 거기와 일본밖에는 없다. 하지만 일본에는 추가 인력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스물! 선착순!”
“야, 이 미친 새끼야! 선별하라잖아!”
“괜찮아! 괜찮아! 내가 가잖아. 내가 있는데 뭐가 문제야! 선착순!”
“저 또라이 같은 새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모두가 전력 질주로 공영길에게 달려온다.
“지랄들을 한다.”
조형식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명단은 내가 작성한다.”
“니가 뭔데, 새끼야!”
“아니면 니가 할래?”
“…….”
불만을 토하던 이들이 조용해졌다.
사실 이 머릿속에 근육만 꽉 찬 놈들을 납득시킬 명단을 뽑아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어설프게 명단을 만들었다가는 육체와 육체의 뜨거운 대화를 나눠야 할 확률이 높았다.
“나랑 공영길이랑 둘이서 상의해서 정할 테니까 불만 품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이 곰탱이 새끼들아.”
조형식이 공영길을 데리고 한쪽으로 걸어가자, 남겨진 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저 새끼는 왜 갑자기 지가 상급자인 것처럼 구는 거냐?”
“낸들 알아?”
은연중에 서열을 확립해 버린 조형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