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45
#1344.
수립하다 (4)
강진호의 눈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의 시선에 빽빽하게 들어선 숲이 보인다.
사방에 인위적인 건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 드넓은 숲.
그 숲 한가운데에 작은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베이징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하기야.
한국도 서울에서 조금 벗어나면 인적 없는 장소를 찾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으니까. 한국에 비할 바 없이 넓은 중국이라면 그런 장소를 확보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닐 것이다.
‘안전가옥이라…….’
강진호가 안력을 돋워 숲 사이로 보이는 흰색의 콘크리트 건물을 응시했다.
군사적으로 본다면 허술하기 짝이 없는 건물이지만, 여기서 ‘군사적’이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애초에 저 건물은 군을 방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니까.
특정한 요인들의 주변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저리 좋은 입지는 흔하지 않다.
현대의 스파이들은 콘크리트를 먹고 산다.
전자 기기가 먹히고, 사람들 사이에 뒤섞일 수 있고, 몸을 숨길 수 있는 벽이 쳐진 공간이 있을 때, 그 능력이 발휘된다.
그런데 이런 숲속에서는?
‘발각이나 안 되면 다행이겠지.’
일례로 어제 만난 장필재가 이곳으로 잠입하려 든다면?
아마 다섯 발짝을 떼기도 전에 발각되어 지하실로 끌려갈 것이다. 그런 뒤, 태어나 처음 먹은 음식이 뭔지까지 모조리 불고 나서야 죽을 수 있는 꼴이 되겠지.
안가를 친다는 말에 이종욱이 왜 그리 당황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의 개념에서 안가는 절대 돌입이 불가능한 난공불락의 요새다.
하지만 강진호는?
‘뭐라고 해야 할지 설명이 어렵긴 하지만.’
기분이 좀 이상하다.
이처럼 인가와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중국의 숲은 그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니까.
중원.
두 번째 삶에서 그가 마교에 몸담았을 때, 대부분의 전투는 이런 곳에서 치러졌다. 어쩌면 그때 당시에 이곳도 한 번쯤을 들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곳은 강진호에게 있어서는…….
“홈그라운드라는 건가?”
피식 웃음이 나온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어쩌면 저들보다 강진호가 이곳을 더 잘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말이다.
‘앞에 다섯, 위쪽에 셋.’
강진호가 기감을 넓게 퍼트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숲에 불과하지만, 강진호에게는 숲 곳곳에 매복하고 있는 이들의 기척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평범한 이가 멋모르고 이 숲에 다가갔다가는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것이다. 아니면 의식을 잃고 숲 밖으로 옮겨지든가.
‘평소에도 이런 건가?’
강진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상시 유지되기에는 경계가 과한 느낌이다. 확실히 정보가 새어 나간 게 맞는 것 같다. 기감으로 전해져 오는 경계 병력의 긴장이 그 확신을 더 강화해 주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숲을 지키는 이들과 안가를 지키는 이들은 누군가 처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는 뜻.
하지만…….
‘상관없지.’
강진호가 나무에 등을 기대고는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찰칵.
그러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를 천천히 빨아들이자 베이징에서는 맡을 수 없던 신선한 공기와 담배 연기가 함께 폐 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예전에는 이걸 못했지.’
과거와 별다를 게 없는 장소에 서 있지만, 과거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건 돌아온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일 것이다.
불빛이 없는 숲에서 담뱃불은 생각보다 멀리까지 보인다.
그리고 이런 숲에서 담배의 냄새는 말도 안 되는 거리까지도 퍼지기 마련이다.
평범한 군사작전에서도 야간에 담배를 피우는 건 금지되어 있는데, 지키는 이들이 평범하지 않은 곳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건 이쪽의 위치를 대놓고 노출시키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후우우우.”
천천히 담배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기감을 넓게 퍼뜨렸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움직임이 시작됐다.
숲을 둘러싸고 있던 인기척들이 천천히 이동을 시작한다. 일부는 자리를 지키고, 일부는 강진호를 둘러싸오고 있었다.
‘체계적이군.’
이들이 얼마나 엄격한 훈련을 받았는지를 보여주는 광경이다. 강진호가 아닌 평범한 이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완벽하게 포위되는 그 순간까지 주변에 누가 다가온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물론 강진호는 경우가 조금 다르지만.
강진호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강행돌파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막아서는 이들은 모조리 쳐 죽이는 것이 강진호의 스타일이니까. 이곳이 현대이고 강진호가 과거와는 달라졌다지만, 이건 강진호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였다.
다만, 하나 다른 것은…… 저들은 강진호를 막는 게 아니라 침입자를 막는다는 사실이다.
적이 강진호라는 것을 인식하고 맞서는 것과 기계적으로 상대를 막아서는 것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변명이 조악하군.’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어쩌면 이제 강진호는 쓸데없는 피를 보는 게 지겨워진 건지도 모른다.
“후우우우.”
깊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느긋하게 내뿜은 강진호가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았다.
포위망이 점점 더 조여온다.
다오밍이 손을 들어 스코프를 조였다.
‘후우우우.’
숨소리도 낮춘다.
‘어느 미친놈이 저기서 담배를 피우는 거지?’
지시를 내리는 지휘관의 목소리에 담긴 혼란이 다오밍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를 무능하다고 욕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다오밍이 지시를 내렸어도 똑같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냥 미친놈인가, 아니면…….’
침입자의 정체를 짐작하기가 어렵다.
만약 안가를 노리고 온 이라면 작전 지대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 다시없을 병신이라면 시도해 볼 만한 일이지만, 그런 이가 이런 상황에 투입될 리가 없으니까.
그럼 평범한 이가 우연히 근처를 지나다가 담배를 물었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시간과 상황이 너무 공교롭지.’
이쪽도 말이 안 되고, 저쪽도 말이 안 된다. 이럴 때는 그저 조심스레 접근해서 상대가 누군지를 파악해 보는 게 최선이다.
꾸욱.
나이프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오밍의 입가가 살짝 일그러졌다.
‘총기 사용 금지라니. 시대가 어떤 시댄데.’
야간이라는 점, 소음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근처에 있는 민가까지 총소리가 들릴 수 있다는 점, 아무리 야간투시경을 사용한다고 해도 소수를 상대로 다수가 총기를 사용하면 오발로 아군에 피해가 올 수 있다는 점.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
하지만 다오밍은 그 모든 이유가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저 상층부 놈들은 아직도 무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 총기가 편리하고 더없이 훌륭한 살상 무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공을 익힌 이는 총기가 아닌 자신의 무력으로 상대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이상한 아집을 여전히 부여잡고 있는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것들.’
이제는 무인들도 변해야 한다.
당장 다오밍처럼 무인이 당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으며 활동하는 것도 몇 십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 아닌가.
무인이 군사훈련을 받고 특수부대로 투입되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세상에서 아직까지 과거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니.
‘이래서 중화가 나아가지 못하는 거지.’
[다오밍!]“예.”
[집중해라.]다오밍이 살짝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런 건 또 귀신같다니까.’
하지만 지시는 올바르다. 다오밍은 머릿속에 떠오른 불만을 날려 버리고 손에 든 나이프를 추켜세웠다.
사실 다오밍급 정도 되는 무인에게 있어서 총기는 그저 옵션 중 하나일 뿐이다. 좀 더 편리하게 적을 상대할 수 있다 뿐이지, 근거리에서라면 총보다 나이프가 훨씬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그저 귀찮을 뿐.
사그락.
낙엽을 밟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다오밍이 발소리를 더 죽이며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앞쪽으로 전진했다.
‘보인다.’
멀리서 붉은빛이 반짝인다.
담뱃불.
다오밍의 미간이 좁아졌다.
‘알고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아무리 멍청한 놈이라고 해도 이곳을 노리고 왔다면, 저리 느긋하게 담배를 피워 대지는 않을 것이다. 니코틴이 없으면 뇌가 돌아가지 않는 중독자라고 해도 어떻게든 숨어서 최대한 빠르게 담배를 피우고 작전에 돌입하지, 저리 깊은 숨으로 빤히 보이게 담배를 빨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정말 길을 잃고 우연히 이쪽으로 넘어온 이?
‘그렇다면 불쌍하군.’
당은 그런 사정을 고려해 주지 않는다. 접근하지 말아야 할 곳에 접근한 이는 그 이유를 불문하고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아야 한다.
털고 또 털어내도 먼지 한 톨도 나오지 않는다면 풀려날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면 영원히 햇빛을 보지 못하는 몸이 될 것이다.
살짝 동정심이 들었지만…… 동정은 동정이고, 임무는 임무다. 다오밍이 좀 더 빠른 걸음으로 타깃에 접근했다.
‘음?’
꽤나 근거리까지 접근하자 야간투시경에 상대의 모습이 명확하게 들어왔다.
꽤 젊어 보이는 남자.
트래킹이나 등산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일 정도로 평범한 복장.
‘진짜 길을 잃었다고?’
투시경 덕에 녹색으로 물들어 보이는 얼굴이 꽤 잘생겨 보인다는 점을 빼면 딱히 특이할 것이 없는 남자였다.
나이프를 잡은 다오밍의 손에서 힘이 절로 빠졌다.
‘별 병신 같은 놈이 사람 긴장시키고 있네.’
아무래도 체포하면서 조금 밟아줘야 기분이 풀릴…….
그 순간이었다.
사내의 고개가 미약하게 움직였다. 그러더니 그 시선의 끝이 정확하게 다오밍을 응시했다.
“…….”
다오밍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보인다고?’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지금 다오밍은 몸을 숨기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저자가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가.
우연. 그저 우연이다. 우연히 시선이 마주친 것뿐이다.
그때, 사내가 담배를 들더니 입가에 가져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사내가 문 담뱃불이 작렬하며 타오르기 시작한다.
“으…….”
감도를 높여둔 야간투시경이 일순 막대한 빛을 받아들이며 백색으로 명멸한다. 섬광탄이라도 터진 듯 눈이 찢어질 듯 아파온다.
“크!”
“빌어먹을!”
좌우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터졌다.
[투시경 해제! 당장!]다오밍이 거칠게 손을 올려 눈을 가리고 있는 투시경을 뜯어내듯 벗었다. 그러고도 눈이 떠지지 않아 과격하게 몇 번이고 문질렀다.
이윽고 눈물범벅이 된 눈을 떴을 때…….
“어, 없습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비어버린 숲과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담배뿐이었다.
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은 담배가 이제껏 그들이 본 광경이 환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다오밍이 멍한 눈으로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감각은 상대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마치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일순 사라져 버렸다.
“목표는?”
“아, 안 보입니다. 놓쳤습니다.”
“빌어먹을! 당장 찾아! 지금 당장! 사방으로 퍼져서 수색 다시 해! 어서!”
당황한 지휘관의 목소리가 숲 전체로 날카롭게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