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48
#1347.
협의하다 (2)
“말해봐.”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
강진호가 막 입을 열려는 찰나, 첸후이가 선수를 쳤다.
“시간을 끌려는 게 아닙니다. 이건 강 선생님께도 좋은 일이지요.”
강진호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그때, 누군가가 접근하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벌컥.
문이 열리고 몇 사람이 안으로 들어온다. 고개를 돌려 들어오는 이들의 면면을 확인한 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이현수가 양손을 들어 올린 자세로 걸어 들어온다. 그의 허리춤에 총구가 겨눠져 있었다.
“중요한 내용은 저자와 상의한다고 들어서, 판단을 조금 편하게 만들어 드릴 요량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이 호의에는 감사하지.”
강진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이현수에게 던졌다. 이현수가 굳은 얼굴로 담배를 받아 들었다.
“총 치워.”
“나가라.”
첸후이가 명하자 총을 든 군인들이 절도 있는 동작을 취하며 밖으로 나간다. 겨우 자신을 겨누던 총구에서 풀려난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건 한 대 피워야 한다.
“우선은 사과드립니다. 강진호 선생과 접촉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서 말이죠.”
“접촉이 어렵다고?”
“예. 강진호 선생은 잘 모르시는 것 같지만, 강진호 선생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만나기 힘든 사람 중 하나입니다. 물론 뭐, 미국의 대통령급은 아니겠지만…….”
첸후이가 턱을 긁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할 수도 있지요. 지금 선생의 주변에는 홍왕계, 흑왕계, 창왕계의 시선이 모두 모여 있으니까요.”
강진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첸후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변화가 없는 그의 표정과는 달리 내심으로는 꽤나 큰 이상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삼왕계의 시선이 모여 있기에 강진호와 접촉하기 힘들다.
그 말인즉, 저들이 삼왕계의 시선을 피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짐작하시는 게 맞습니다.”
첸후이가 빙그레 웃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뭘 숨기겠습니까. 우리는 그들과 뜻을 함께하지 않습니다.”
이현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걸 믿으라고?”
“이런이런, 도움이 되라고 데리고 왔더니 초를 치고 있군. 당연히 믿어야지. 그럼 이 중국이란 드넓은 나라가 단 세 가지 세력으로 딱 구분이 될 것 같았나? 이건 게임이 아니야, 젊은 친구.”
“…….”
“심지어 한 번 통일되었던 국가도 상황에 따라서는 갈라지는 법인데, 암묵적인 영향력만으로 뭔가 그리 단단하게 유지될 것 같나?”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럼 그쪽을 뭐라 불러야 하죠? 뭐, 금왕이라도 나오셨나?”
“그 작명이 더럽게 유치하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비꼬지는 말아줬으면 좋겠어. 그래도 나름 중국인인데, 한국 놈이 주둥아리를 터는 걸 보면 입을 찢어버리고 싶으니까.”
이현수가 가만히 입을 닫았다.
“딱히 부를 만한 명칭은 없습니다. 굳이 불러야 한다면 이렇게 부르시면 되겠군요.”
첸후이가 손가락을 튕겼다.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우리는 세력이 아닙니다. 우리는 중국, 그 자체죠.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중앙입니다. 과거로 말하자면 황가라고 해야 할 텐데, 이해하시려나?”
이현수가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강진호는 저 비유를 제대로 알아들었다.
‘삼왕계에 속하지 않은 정치, 군사 세력이라는 뜻이군.’
과거의 황실이 무림에 관여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은 삼왕계와 거리를 두고 국가를 운영한다는 뜻이었다.
“정계라기에는 조금 애매하고.”
“뭐, 그건 차차 알아갑시다. 지금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첸후이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저 새끼, 눈이 안 웃는데?’
주름진 얼굴 속에 언뜻언뜻 비치는 눈이 소름 끼치는 빛을 발하고 있다.
“강진호 선생이 무인이라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국가는 무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랬지.”
“사실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무인이라는 건 굉장히 골치 아픈 존재죠. 현대에 존재하는 군벌 아닙니까. 시대착오적이기 짝이 없죠.”
그 사실은 강진호도 인정한다.
국가와 무인계의 동거는 서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쓸어버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해주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죠. 집에 개미가 들끓는다고 개미를 싹 죽여 버리면 바퀴벌레가 들어오는 법이죠. 그렇기에 국가는 적당수의 개미를 살려두려 합니다. 때때로 자는 사람의 발을 물고, 음식을 더럽히더라도.”
무인을 개미나 바퀴벌레에 비유하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딱히 지적할 것도 없는 비유다.
“하지만 이건 불편한 동거입니다. 더구나 그 개미가 슬슬 사람의 몸을 타고 오른다면 더는 좌시할 수가 없죠.”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릴 텐데?”
이현수의 말에 첸후이가 손뼉을 쳤다.
“그거죠. 딱 그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거죠. 사실 군대를 동원한다면 그들을 쓸어버리는 것 정도는 별문제도 아니지요.”
“내전이라도 벌일 셈입니까? 미쳤군.”
“군대라고 해서 일반적인 군인을 쓴다는 말은 아닙니다. 당신, 무인들은 본인들의 능력을 굉장히 과대평가하는 면이 있는데, 현대 병기 앞에 당신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계속해 봐.”
“그러죠. 여하튼 좋은 비유였어요.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릴까 봐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참아왔죠. 썩은 이가 셋이나 있는데, 처음에는 참을 만하더니, 가면 갈수록 아프더라 이 말입니다. 게다가 뭐가 잘못 자랐는지 이제는 지들끼리 맞부딪치면서 고통을 유발하죠.”
첸후이가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 입가를 꾹꾹 눌렀다.
“그런데 치과에 갔더니 이런 말을 하더군요. 미련스럽게 참지 말고 임플란트를 해라.”
짝. 짝. 짝.
첸후이가 감동했다는 듯이 세 번의 박수를 쳤다.
“그것참 좋은 해결책이죠. 최근에 나온 임플란트는 오히려 이보다 좋은 면도 있답니다. 내 몸에서 나온 내 것은 아니지만, 원래의 것들을 대체할 수 있다면 못 쓸 것도 없지요.”
강진호가 머리를 살짝 긁었다.
“살면서 온갖 소리를 다 들어봤지만, 임플란트 꼴이 될 줄은 몰랐군.”
“비유가 조악하단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적절한 면도 있었지요?”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이놈들은 지금 삼왕계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외부의 세력, 그러니 총회를 앉히고 싶다는 뜻이다. 정확하게는 강진호를 위시한 총회를 끌어들이고 싶다는 의미였다.
“뭐가 다르지?”
“다르지요, 다릅니다. 여기는 중국 아닙니까. 아무리 그쪽들이 강하다고 해도 중국에서는 활동에 한계가 있는 법이죠. 운영하고 관리할 수는 있지만,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일본만 해도 그렇다.
완벽한 대승을 거두고 일본으로 밀고 들어갔음에도 반발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설사 그 소요를 모두 제압한다고 해도 일본을 장기적으로 지배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 판단을 이미 내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중국?
‘말도 안 되지.’
관리할 엄두도 나지 않는 땅이다. 저들이 나서서 지원을 해준다면 명분을 얻고 관리할 수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 중국 내에 총회의 세력을 만들고 집권한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럼 우리는 딱 가려운 곳만 긁을 수 있게 되는 거죠. 집을 지키는데 굳이 호랑이를 세 마리나 풀어놓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적당한 늑대 한 마리면 감히 도둑이 들 수 없죠.”
“늑대가 아니라 개겠지.”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건 그쪽도 얻을 게 많은 거래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강진호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현수가 담배를 넘기고는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주었다.
“후우우.”
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얻을 게 있다?”
“막대한 돈, 중국의 무인계에 대한 지배권, 한국 총회의 절대적인 안전의 확보.”
첸후이가 빙그레 웃는다.
“자잘한 건 수도 없겠지만, 이 셋이 일단 가장 와닿지 않겠습니까? 우리와 손을 잡고 삼왕계를 밀어낸다면, 동아시아는 무주공산이 됩니다. 중국 땅에서 당신들이 벌이는 사업은 관리를 받아야겠지만, 한국이나 일본은 마음대로 하십시오.”
폐 속으로 밀려 들어간 담배 연기가 천천히 다시 입을 통해 빠져나온다.
머리가 조금 깨이는 느낌이었다.
“듣고 보니 나쁜 제안은 아니군.”
“저도 목숨 귀한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설마 제가 어설픈 제안을 가지고 마왕의 앞에 나타났겠습니까?”
능글맞다.
하지만 여유롭다.
차이커창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껄끄러운 이였다.
“몇 가지 묻지.”
“얼마든지 그러시죠.”
“쿠데타도 거짓인가?”
“아닙니다. 조금 부풀려진 것뿐이지요. 북한을 얼마나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북한 내에서 쿠데타 시도는 꽤나 자주 일어납니다. 다만, 뭔가 이뤄지기도 전에 진압될 뿐이죠. 이번에 우리는 그저 저놈을 조금 보호해 줬을 뿐입니다. 그리고 적당한 시기에 맞춰 불러들인 게 답니다.”
첸후이가 양팔을 벌리며 과장되게 몸을 흔들었다.
“그런데 짜잔, 이렇게 만나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현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제정신이 아니야.’
강진호 하나를 불러들이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벌인다?
대륙의 스케일이라고 해야 할지, 싸이코들의 미친 짓이라 해야 할지.
강진호가 흥미롭다는 듯 첸후이를 바라봤다.
“모든 일은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아무리 실무진들이 대화를 나눈다고 해도 만나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조금 무례했지만, 덕분에 서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벌주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왜 이자가 여기에 나왔는지 알 것 같다.
이자는 사람을 요리할 줄 안다. 능수능란하게 조이다가 풀어 제낀다.
“장소를 여기로 정한 이유는 삼왕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함인가?”
“정답입니다. 사실 안가라는 개념은 중화의 땅에는 딱히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놈들의 시선을 피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곳은 삼왕계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강진호 선생이 돌아갈 때도 누구 하나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첸후이가 슬쩍 뒤쪽을 돌아보았다.
“대신 죽은 이들이 좀 불쌍하긴 하지만…….”
아마도 리기광을 호위해 온 이들은 모두 죽은 듯했다.
이현수는 허무함과 황당함을 동시에 느끼는 중이었다. 정부와 총회가 사활을 걸고 시도한 일이 겨우 이 만남을 위함이었다니.
‘아니. 황당한 게 아니야.’
이건 힘이다.
강진호도, 이현수도, 그리고 김명찬조차도 상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중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북한을 움직여 상황을 꾸미는 건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건 삼왕계만이 아니었던 거지.’
무인이기에 시야가 좁아졌다.
삼왕계는 결국 중국의 소속일 뿐이다. 무인과 무인의 싸움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불문율?
불문율은 정해지지 않았기에 불문율이다.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자, 어떠십니까, 회주님?”
호칭의 격이 살짝 올라갔다.
“나쁜 제안이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그쪽 역시…….”
“그래서…….”
“…….”
강진호가 첸후이의 말을 잘랐다.
“내가 거절한다면 어쩔 셈이지?”
첸후이의 눈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동시에 방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