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50
#1349.
협의하다 (4)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천천히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첸후이를 향해서 말이다.
호위하던 이들이 차가운 얼굴로 강진호의 첸후이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물러서십시오.”
강진호가 자신을 막은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여전히 짙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아니, 무례를 범하지…….”
“너희는…….”
강진호가 간결한 말로 첸후이의 말을 잘랐다.
“군인인가?”
“…….”
강진호의 질문이 뭘 의도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설사 강진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고 해도 이들에게 대답은 허락되지 않는다.
군인이란 그런 것이니까.
“너희가 무인이었다면 지금 죽었다. 하지만 군인이라면 한 번의 기회 정도는 줄 수 있지. 비켜라. 그럼 살려주지.”
무인은 스스로 정하는 존재다.
하지만 군인은 명을 따르는 존재다.
명령받은 일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분노할 필요는 없다. 살인을 저지르는 게 칼을 잡은 손이라고 해서 손에 죄가 있는 건 아니니까.
군인들이 굳은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본다.
명령을 듣는 게 이들의 일이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흔들리는 건 있을 수 없다.
“비켜.”
“…….”
강진호가 가만히 그들을 바라본다.
딱히 위협을 하는 게 아님에도 앞을 막아선 이들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압박감을 느꼈다.
무언가 목을 조여오는 느낌.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손이 목으로 움직이려 한다.
강진호가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덥석.
강진호가 손을 뻗어 자신의 앞을 막은 이의 목을 움켜잡았다.
끅!
눈에 빤히 보이는 동작임에도 이상하게도 피할 수 없었다. 목을 잡힌 이가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동료가 공격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옆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이곳에 올 때 이미 명령을 받았다.
절대 선공하지 마라.
절대 강진호의 심기를 거스르지 마라.
그들이 당황한 얼굴로 슬쩍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첸후이도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이해를 못하는군.”
강진호가 차가운 눈으로 목을 잡은 이를 노려보았다.
처음은 명령이지만, 이제는 자신의 의지다. 듣고도 판단하지 못하는 이들을 배려해 줄 정도로 강진호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끄윽…….”
목을 잡힌 군인이 몸을 뒤트는 순간이었다.
우득.
섬뜩한 뼛소리가 울려퍼지며 잡힌 이의 몸이 축 늘어진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는 이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이는 조금 전까지는 사람이라 불렸으나, 이제는 시체라는 말로밖에 불릴 수 없게 되었다.
공기가 급격하게 가라앉는다.
이곳에 있는 이치고 사람을 죽여보지 않은 이는 없다. 살인이라는 행위, 가장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에 무감각해진 인간 말종이어야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지금의 광경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목을 부러뜨린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일 때는 최소한의 저항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리 살인에 익숙한 자라도 먼 거리에서 저격을 하거나 총을 갈겨 대지 않는 이상, 바로 눈앞에 있는 저항할 수 없는 이의 목숨을 빼앗은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강진호에게는 그런 게 없다.
이자에게 있어 사람을 죽이는 건 냉장고를 열어 물건을 꺼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자는 근본적으로 그들과 다른 무언가였다.
턱.
강진호가 쓰러진 이를 넘어 첸후이에게 다가간다. 기세 좋게 앞을 막아선 이들은 차마 강진호를 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저 석상처럼 굳어 있을 뿐이다.
‘움직이면 죽는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굳이 강진호를 막으려 하는 행동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지금 뭔가를 하려 든다면 강진호는 그들의 의도를 구분하지 않고 단순히 목을 부러뜨리는 것으로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다.
알고 있기에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죽음에 뛰어드는 건 두려워하지 않는다. 명령을 받는다면 스스로의 목도 잘라 내밀 수 있다.
남이 아닌 자신들이 내린 평가였다. 하지만 이자의 앞을 가로막는 행위는 단순히 목숨을 거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했다. 그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들의 발목을 사슬처럼 움켜잡았다.
저벅저벅.
강진호는 그런 그들을 태연하게 지나쳐 첸후이에게 다가갔다.
첸후이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뭐라고 했지?”
“…….”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나를 조사했다고?”
“……그, 그렇…….”
“뭘 조사했지?”
“…….”
“내 삶?”
저벅.
“아니면 내 신분?”
저벅.
“내 상황이라도 확인했나?”
아무 의미 없는 짓이다.
총회의 회주라는 것, MK의 회장이라는 것, 한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세상을 뒤흔들 무인이라는 것, 중국의 삼왕과 동등한 사왕의 이름을 얻었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은 강진호를 설명하는 데 있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알았어야지.”
적어도 강진호와 협상을 하려 했다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 말이야.”
저벅.
강진호가 첸후이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첸후이는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깨달았다.
‘이자는 늑대 같은 게 아니야.’
늑대는 본능으로 움직인다.
늑대를 지배하는 건 허기와 생존욕이다. 먹기 위해 사냥하고, 살기 위해 행동한다.
하지만 강진호는 늑대가 아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이득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분노한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한 게 첸후이의 패착이었다.
“저, 저는 안 됩니다.”
첸후이가 억지로 입을 연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아슬아슬하게 밀려나는 삶을 필사적으로 부여잡았다.
“저는 주체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를 죽인다면 이 협상은 결렬되고, 당신은 살아 돌아가지 못하게 될 겁니다! 저, 저를 죽여서는 안 됩니다.”
“알아.”
강진호가 무감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이성적으로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모르는 모양인데…….”
“……예?”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나는 지금 충분히 이성적이야.”
첸후이의 눈이 흔들렸다.
이게?
“내가 화가 나서 눈이 돌아간 것 같나?”
강진호가 손을 뻗어 첸후이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자신을 향해 바짝 끌어당겼다.
“아니.”
“…….”
“사람에게는 선이란 게 있는 법이지. 나는 그저 정한 것뿐이야. 내가 정한 선을 넘는 이들은 살려두지 않는다고. 그리고 너는 그 선을 넘었어. 그래서 죽이려는 것뿐이야. 어때? 충분히 이성적이지 않나?”
첸후이가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강진호가 먼저 말했다.
“지금까지 너는 그 입으로 목숨을 구해왔을 거야. 그 혀를 놀려서 수많은 이들을 농락하고 파멸로 이끌었겠지. 그러니까 기회를 주지. 나는 지금부터 네 몸을 부순다. 하나하나 부수고, 마지막에 머리를 부순다. 그때까지 나를 설득해 봐. 어떤 말을 해야 내가 마음을 돌릴지 머리를 굴려봐.”
시작한다는 말도 없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진호가 땅에 닿아 있는 첸후이의 발을 짓밟았다.
우드드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퍼진다. 하지만 그 소리가 채 퍼지기도 전에 귀를 찢는 첸후이의 비명이 다른 모든 소리를 덮어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고 있을 틈이 없을 텐데?”
우드드득.
다른 한쪽 발도 으스러진다.
첸후이가 몸을 덜덜 떨었다.
두 발을 잃고서야 첸후이는 지금 강진호가 하는 말이 진담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하지만 고통으로 가득 찬 머리는 적당한 변명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생각해.”
정강이뼈가 부러진다.
사람의 뼈가 마치 수수깡처럼 마디마디 꺾여 널브러진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첸후이가 눈을 까뒤집고 경련했다.
“생각해. 내가 너를 살려줘야 하는 이유를 말이야. 나도 지금 필사적으로 찾고 있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드득.
무릎이 반대로 뒤틀린다.
“너를 살려줘야 할 이유를 모르겠군.”
차라리 강진호의 목에 총구를 겨누었다면 첸후이는 멀쩡히 돌아갔을 것이다. 함정을 파 강진호에게 부상을 입혔어도 첸후이는 살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첸후이는 선을 넘었다.
홍왕과 차이커창조차도 강진호의 주변을 건드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미쳐 날뛰는 범을 상대하는 건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니까.
하지만 첸후이는 그걸 몰랐다.
이미 늦어버린 뒤지만, 첸후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상황을 되돌릴 방법을 찾았다.
수많은 말들이 비명에 뒤섞여 방언처럼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말들은 강진호의 귀에 닿지 못했다.
“정리해서 말해.”
우드드득.
허벅지 뼈가 부러진다. 아니, 으스러졌다.
입을 쩍 벌린 첸후이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경련했다. 양 눈에서 핏줄이 터져 두 눈이 순식간에 검붉게 물든다. 흘러나온 피가 눈물에 뒤섞여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설명한다.
필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한다.
하지만 그건 머릿속에서였을 뿐이다.
입에서는 첸후이도 알아듣지 못할 괴성만이 터져 나올 뿐이었다. 소리를 질렀다가, 벌벌 떨었다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강진호는 완전히 착란에 빠져 버린 첸후이를 무감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 나를…… 나를…….”
첸후이의 입에서 처음으로 들을 만한 말이 나왔다.
강진호는 그 말을 들으며 첸후이의 한 손을 가만히 잡았다. 손과 손이 맞닿는 순간, 첸후이의 몸이 경기를 일으킨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니까.
우두두둑.
첸후이의 오른손이 프레스기에 찍혀 버린 것처럼 완전히 짓눌린다. 터져 나온 살 사이로 으스러진 뼈가 흘러내렸다.
“그, 그들이…… 당신을 죽…… 위험…….”
“틀렸어.”
“…….”
무심한 손길이 첸후이의 어깨를 움켜잡는다.
“하지만 나는 찾아냈어. 널 살려줘야 할 이유를 말이야.”
첸후이의 눈에 빛이 돌아온다.
우둑.
하지만 그 빛은 어깨와 함께 으스러졌다. 첸후이의 양팔을 완전히 박살 내버린 강진호가 첸후이를 자신의 얼굴 앞까지 끌어당긴다.
뼈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흐느적대는 첸후이의 모습이 기괴하기 짝이 없다.
“똑똑히 전해. 나를 건드린 대가를 받게 될 거라고.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거야. 나를 건드린 이가 어떤 꼴이 되는지, 그 몸으로 전하고, 그 입으로 지껄여라. 그들이 똑똑히 알 수 있도록 말이야.”
강진호가 잡고 있는 손을 놓았다.
털썩.
첸후이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져 경련한다.
“너는 머리와 그 입으로 여기까지 올라왔겠지.”
가만히 첸후이를 바라보던 강진호가 선언하듯 말한다.
“이제는 정말 머리와 입만으로 살게 되겠지. 그게 네게 좀 더 편할지도 모르겠군.”
“아…… 아으…… 아…….”
강진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한 첸후이가 경련을 일으켰다.
양팔과 양다리가 으스러졌다. 아무리 치료한다고 해도 다시는 제 모습을 되찾지 못할 것이다.
“주, 죽여…….”
“아니.”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일반인은 죽이지 않는 주의라서 말이야. 감사할 것 없어.”
때로는 죽음보다 더 비참한 삶이 있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