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51
#1350.
협의하다 (5)
‘자, 그러면…….’
이현수가 상황을 정리했다.
어차피 여기까지는 돌이킬 수 없는 수순이다. 계산을 하고 전략을 짤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일과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강진호가 첸후이를 응징하는 건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강진호는 기준이 명확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이현수가 겪어온 어떤 이보다 더.
만약 이중걸이나 김석일이 강진호의 자리에 앉았다면 꽤나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을 것이다.
권력을 가진 이는 그 권력을 사용해 보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하지만 강진호는 그렇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강진호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총회의 일반 회원과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고, 자신을 우대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권위가 없는 상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강진호의 권위를 만드는 것은 강력한 기준이다. 그리고 그 강한 기준을 만드는 건 바로 경고의 부재였다.
일반적인 이들은 누군가 자신의 선을 넘으려는 의도를 보이면 우선 경고를 날린다. 선을 넘는 순간, 당신과 나는 함께할 수 없다는 강력한 경고를.
그건 말일 수도 있고, 폭력일 수도 있고, 때로는 다른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강진호에게는 그런 경고의 과정이 없다.
누군가 선을 넘으려 한다면 무심하게 기다리다가 선을 넘는 순간 철저하게 응징한다.
그렇기에 강진호를 상대하는 이들은 자신이 선을 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절로 움츠러들고 조심스레 대하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그걸 알았어야지.’
이현수가 조금은 안쓰러운 눈으로 의식을 잃은 첸후이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저 잠이 첸후이의 인생에 있어서는 마지막 휴식이 될 것이다. 눈을 뜨면 현실을 마주하게 될 테니까.
이현수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강진호에게 다가갔다. 그가 태연히 걸어가고 있음에도 주변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은 감히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등 뒤에서 노한 맹수가 이를 드러내고 있는데, 누가 움직일 수 있겠는가. 움직이는 순간 목에 송곳니가 틀어박힐 텐데.
이현수가 담배를 가만히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흥분하셨습니다.”
“그래?”
강진호는 딱히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현수의 충고를 무시할 생각은 없는지, 담배를 받아 들었다.
찰칵.
담배 끝에 불이 붙으면 매캐한 연기가 방 안으로 퍼져 나간다.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되어버렸네요.”
“흠.”
강진호도 그 사실에 동의했다.
생각 이상의 난관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자, 그럼 이제…….”
이현수가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여기서 빠져나가야 하는데…….”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거, 난관인데?’
첸후이가 허망하게 당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멍청한 이는 아니다. 협상이 결렬됐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준비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저 그는 근거리에서 강진호와 직접 대면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너무 간과했을 뿐이다.
‘그럴 만도 하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위험에 노출되어 본 적이 없을 테니까.
기본적으로 힘은 속성이 있다. 첸후이가 가진 힘은 권력. 권력은 강대하다. 세상을 움직이는 이는 재력을 가진 자지만, 권력을 가진 이는 재력을 가진 이를 종 부리듯 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권력은 언젠가 폭력 앞에 무너진다.
권력이 재력을 부리고, 폭력이 권력을 무너뜨리고, 다시 재력이 폭력을 이용하는 게 변치않는 세상의 흐름이다.
첸후이는 자신이 가진 권력이 폭력 앞에 무의미할 수 있다는 걸 잊었을 뿐이다.
이젠 알게 되었겠지만, 너무 늦었다.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걸 알았다면, 저들은 회주님을 살려두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리고 아마 이 사태를 대비해서 주변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겠죠.”
“음…….”
“꽤나 위험한 길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현수가 휴대폰을 확인했다.
“심지어 여긴 전파도 안 터지네요. 총회와 연락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강진호가 이현수를 힐끔 보고 말했다.
“좀 참을 걸 그랬나?”
“안 바랍니다.”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투정하는 게 아니라 정말 바라지 않습니다. 거기서 참으면 회주님이 아니죠. 솔직히 조금 더 편한 쪽을 택해줬으면 좋겠다는 불만이야 없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만…….”
이현수가 피식 웃어버렸다.
아니.
강진호라면 이쪽을 택해줘야 한다. 그래야 강진호니까.
강진호가 이득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사람이었다면, 이현수는 진심으로 따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건 자신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정리가 안 되네.’
이현수가 담배를 물고는 불을 붙였다.
좀 쉬운 길을 택하고 싶지만 강진호는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니, 남 앞에서는 쪽팔려서 하지도 못할 말이다.
“굉장히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일단은 제일 큰 문제가 하나 있는데 말입니다.”
“뭐.”
“저거, 어떻게 합니까?”
이현수가 손에 든 담배로 리기광을 가리켰다.
강진호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어쨌거나 그들이 여기까지 온 목적은 리기광의 척살이다. 하지만 이쯤 되니 그 목적이 꽤나 불분명해졌다.
리기광의 쿠데타가 들은 것처럼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점도 그렇고…….
“굳이?”
강진호가 턱짓으로 리기광을 가리켰다.
입을 헤, 벌린 리기광의 입에서 침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연속된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무너진 모양이다.
“에이, 맛이 갔네.”
이현수가 입맛을 다셨다.
하기야 지금 상황에서는 리기광이 멀쩡하다고 해서 써먹을 구석이 없다. 리기광을 데리고 탈출하는 게 요원하기도 하고.
“두고 갑니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리기광이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쿠데타는 불가능하다. 아니, 리기광이 제정신이라고 해도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쿠데타 자체가 존재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어디서부터였지?’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뭔가 걸리는 게 있다.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 거슬리는지 잡아내기는 힘든데, 짙은 위화감이 강진호의 신경을 쿡쿡 찌르는 중이다.
‘우선은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먼저다.’
생각은 나중에도 할 수 있다.
“자, 그럼…….”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호위들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너희도 맨정신으로 여기서 빠져나가면 목숨 부지하기 힘들잖아? 적당히 기절시켜 줄 테니, 자진 납세하자.”
“…….”
“대답하지 마. 그냥 반항만 안 하면 알아서 해준다.”
미동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들도 상황을 파악했는지, 반항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현수가 한 명, 한 명의 경동맥을 조여 의식을 끊어놓았다.
듣는 귀가 사라지자 이현수가 미간을 좁혔다.
“회주님.”
“음.”
“베이징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최연하 씨를 먼저 확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괜찮아.”
“예?”
“세상에는 자존심 하나로 사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
강진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이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 * *
“하…….”
소파에 늘어진 한은솔이 고개를 까딱까딱했다.
목에 금 목걸이를 채우고 손에 금반지만 몇 개 끼워주면 영락없는 힙스타의 자세다.
“은솔아.”
“예, 누나.”
“적당해 해라. 목 부러지겠다.”
“헤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제가 이래보겠어요.”
최연하가 한은솔을 보며 피식 웃었다.
‘하기야.’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원래 연예인 매니저라는 게 목 디스크가 올 만큼 굽실대야 하는 직업이라지만 그건 신입 때의 이야기일 뿐, 최연하 정도 되는 배우의 매니저는 연예계 먹이사슬의 상급에 처하는 위치다.
그런 이가 중국에 오자마자 갑질이란 갑질은 다 당하고, 비상식적인 처우를 웃음으로 넘겨야 했으니 스트레스가 오죽했겠는가.
그런데 상황이 역전돼서 역으로 갑질을 원 없이 했으니, 그 기분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조정을 좀 더 해야 하긴 하는데, 대충 견적은 나온 것 같아요.”
“흐응.”
“회장님이 전화 한 통 해주신 덕분에 누나가 못 들어가는 스케줄에 우리 애들을 쓸 수 있게 됐어요.”
“그게 더 좋은 일이지.”
“그렇죠. 정말 좋은 일이죠.”
일단 한국과 중국의 연예계는 돈의 단위부터가 다르다. 한국이 아무리 연예 사업으로는 중국과 비할 수 없는 곳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내수시장의 파이가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버리면 도리가 없다.
중국의 B급 연예인이 한국의 S급 연예인 이상의 개런티를 받는 일이 부지기수다.
이번 계약으로 스케줄을 제대로 잡지 못하던 소속사 배우들의 숨통이 트였다.
‘돈은 더 트였고.’
이번 건으로 얼마를 벌었는지를 계산해 보면, 헤벌쭉 벌어지는 입을 주체할 수가 없는 한은솔이었다.
“좋냐?”
“당연히 좋죠.”
“좋기도 하겠다. 지금 중국에서 1년 살아야 할 판이구만.”
“그래도 이번에는 스케줄이 그렇게 빡빡하지 않잖아요. 거리가 그리 먼 것도 아니니, 한 주에 한 번씩 왕복하면 될 거예요.”
“비행기 값은 하늘에서 떨어져?”
“누나 호텔비보다 쌀걸요?”
어?
그러네?
“촬영지도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적당히 한국 오가면서 밥도 잘 챙겨 먹고 하자구요. 당장 저부터 중국에서 1년은 힘들어요.”
“하긴 너도 한식파지.”
찌개 없으면 밥 못 먹는 인종.
최연하가 쭉 기지개를 켰다.
‘일이 잘 풀리긴 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참 희한하네.’
대체 그 사람은 누구기에 이만한 일을 이리 쉽게 해결해 버리는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원래 계약하려던 금액의 배를 퍼 줘서라도 어떻게든 계약을 따내려 들지 않던가.
‘그 사람도 이상하고, 그런 사람이랑 친구처럼 이야기하는 강진호 씨도 이상하고.’
여하튼 주변에 이상한 사람들 천지다.
“그런데 내가…….”
그때였다.
똑똑.
“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한은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강진호?
아니, 강진호야 키가 있으니 문을 열고 들어오면 될 테고, 그럼 누가 찾아왔다는 뜻인데…….
‘여기에 찾아올 이들이 있나?’
있다고 하기도 뭐하고, 없다고 하기도 뭐하다. 중국에서 그들을 찾아올 만큼 친분 있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지만, 호텔에서 서비스 점검을 위해 들르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고, 계약 관계자들이 추가 논의를 하거나 친분을 다지기 위해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누구십니까?”
한은솔이 문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문 옆에 설치되어 있는 인터폰을 들었다.
‘응?’
화면 안에는 빈 복도만 보인다.
“내가 잘못 들었…….”
그 순간.
우드드득!
문고리가 뒤틀렸다. 스위트룸의 보안을 위해 더없이 단단하게 만들어진 문고리가 마치 마르지 않은 찰흙처럼 우그러졌다. 그 광경을 보며 한은솔이 경악하여 눈을 크게 떴다.
쿵!
문이 벌컥 열리며 안쪽으로 누군가가 우르르 밀고 들어온다. 그들의 복장과 어깨에 견착된 자동소총을 보는 순간, 한은솔이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확보하라!”
최연하의 얼굴에서도 핏기가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