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52
#1351.
탈출하다 (1)
철컥철컥.
머리와 상체에 총구가 연이어 겨눠진다. 한은솔은 움직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보통 영화에서 보면 이런 경우에 양손을 들어 올리던데, 막상 겪어보니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는 순간, 방아쇠가 당겨질 것 같다.
소변을 지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한은솔?”
어색한 한국어.
한은솔이 덜덜 떨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안쪽으로 추가적으로 군인들이 뛰어 들어오더니, 최연하의 주변을 둘러싸고 총구를 겨눴다.
최연하가 그들을 멍하니 둘러보더니 헛웃음을 터뜨렸다.
“영화 촬영이나 몰래카메라는 아니겠지?”
“…….”
이런 상황에서 농담을 하는 배짱을 칭찬해야 할지, 제정신이냐고 타박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니들 뭐야?”
아무래도 타박을 해야 할 모양이다.
최연하가 독 오른 고양이처럼 군인들을 노려봤다.
“최연하?”
“그럼 누구겠어. TV도 안 봐?”
“확보!”
확실한 건 이건 절대 몰래카메라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 명, 한 명에게서 사람을 잡아 죽일 것 같은 노골적인 기세가 느껴진다. 이게 연기라면 최연하는 지금 당장 배우를 은퇴하고 장사나 시작하는 게 낫다.
그녀보다 나은 연기자가 떼로 몰려다니는데, 뭘 믿고 연기를 하겠는가.
“니들…….”
“움직이지 마.”
낮은 위협이 들려온다.
중국어 실력이 높지는 않지만, 저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최연하가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머리에 바람구멍 뚫리고 싶지 않으면.”
최연하의 눈에 독기가 어렸다.
하지만 최소한의 이성이 그녀가 발작하는 걸 막고 있었다. 이들은 함부로 대할 사람들이 아니다.
살짝 뒤쪽으로 빠진 이가 총구를 겨눈 채 무전을 친다.
“목표물 둘, 모두 확보했습니다.”
[대기.]“예.”
총구가 위협적으로 움직인다.
‘이게 대체…….’
최연하의 입술이 경련을 일으켰다.
담이 크다 못해 겁대가리를 상실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 최연하지만, 이런 상황을 겪고도 평상심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자꾸 다리에 힘이 풀린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말이다.
심장이 제멋대로 뛰고, 머리가 마구 엉클어지는 느낌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지 짐작 가는 게 하나도 없다.
“우리한테 왜…….”
그때, 문 안으로 한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차가운 인상의 군인. 한눈에 이 사람이 이들의 지휘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이가 한은솔과 최연하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났군. 데리고 이탈한다.”
“예.”
명령을 받는 이들이야 그저 따르면 그만이지만, 최연하는 그럴 수 없었다.
“자, 잠깐만요! 왜 이러는 거예요!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사내가 슬쩍 최연하를 보고는 금세 고개를 돌렸다. 대답을 해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그러고는 무전기를 들어 지시를 내렸다.
“루트 확보. 목격자가 없도록 주변 통제 확실하게 해라.”
[예. 확보 완…… 잠시! 잠시 대기!]사내의 눈이 꿈틀댄다.
“상황을 정확히 보고해!”
[을(乙)조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연락이 끊겨?
왜?
사내가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정체불명의 병력이 호텔로 진입합니다.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빠릅니다. 응전합니까? 명령을!]사내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항전하지 않는다. 대기하라.”
[대기!]사내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지금 이곳으로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진입할 이들이야 너무 빤하지 않은가.
저벅저벅.
낮은 발소리가 들린다.
그러고는 이내 문 안으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어?”
최연하가 놀라 탄성을 내뱉었다.
본 적 있는 얼굴이다. 분명 저번 그 식사 자리에서…….
“차이커창.”
사내의 입에서 신음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주 화려하게 저질렀군.”
차이커창의 눈이 낮게 가라앉는다.
“물러서라.”
“총구부터 내려.”
“물러…….”
“내려.”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손을 들자 총구를 겨누고 있던 군인들이 총을 견착한 그대로 뒤로 물러난다. 그런 후, 차이커창의 뒤로 돌아가 입구를 막고 총을 겨눴다.
“여긴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겠어? 몰라서 묻나?”
“이건 우리의 일이다. 차이커창, 너는 관여할 자격이 없다.”
“관여할 자격?”
차이커창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담배를 꺼냈다.
담배에 불을 붙인 차이커창이 천천히 연기를 내뿜고는 으르렁댄다.
“너희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모양인데, 이분은 홍왕의 손님이시다. 너희는 지금 감히 홍왕의 손님께 총구를 겨눈 거야.”
“농담하는 건가? 이 여자는 강진호의…….”
“그래서?”
차이커창이 사내를 노려본다.
“홍왕께서 선언하신 일이다. 네가 감히 그 결정에 입을 떼겠다는 건가?”
“…….”
사내의 볼이 부들부들 떨렸다.
홍왕이라는 이름이 나와 버리면 따져 물을 수가 없다. 그만큼이나 삼왕의 이름은 거대하니까.
“네놈들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우리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집 안에서 개가 말썽을 부려도 일이 바쁘면 넘어가는 법이다. 하지만 선을 넘으면 아무리 바빠도 혼을 낼 수밖에 없지.”
사내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비유라고 해도 개에 비유된다는 건 절대 기분 좋은 일일 수 없다. 홍왕계가 주인에 비유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돌아가라. 홍왕께서는 이런 하찮은 이유로 중화의 형제가 서로 피를 흘릴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우리는 너희의 행동을 묵인한다. 하지만 홍왕의 손님께 손을 대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사내가 이를 갈았다.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받아들이지 않아?”
차이커창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분명 웃고 있는데, 섬뜩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너희는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를 적으로 상대해야 할 것이다.”
“그럴 여유는 없을 텐데?”
“그럼 한 번 해봐.”
차이커창이 이를 드러냈다.
“너희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깨닫게 해줄 테니까.”
사내가 침묵했다.
한참 동안 차이커창을 노려보던 사내가 조금은 기가 죽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홍왕께서 저 여자를 보호한다는 말인가. 한낱 남한의 계집이 아닌가.”
“홍왕의 의도를 네까짓 놈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
“그리고 하나 더. 아무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이라지만, 나라를 이끌겠다는 놈들이 이런 비열한 수작을 벌여서는 안 되지. 홍왕께서는 너희의 비겁함에 대노하셨다.”
“잘도 바른소리를 해 대는군, 네놈이.”
차이커창이 어깨를 으쓱했다.
“말했다시피, 내 의도가 아니라 홍왕의 의도이시다. 나는 그저 그 뜻에 따를 뿐이지.”
“…….”
“긴말하고 싶은 생각 없다. 결정해라. 물러나든가, 아니면 모두 죽든가.”
사내의 미간이 좁아진다.
하지만 여기서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홍왕이 개입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다시 재고해야 한다.
강경하게 밀고 나가 설사 목적을 이룬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의도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을 확률이 높아졌으니까.
“철수한다.”
“좋은 선택이군.”
“모두 작전지역에서 이탈한다. 신속하게 집결지로 이동해라.”
“라져.”
등 뒤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던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문밖으로 나갔다.
사내가 발을 떼려는 순간, 차이커창이 담뱃갑을 흔들어 담배 하나는 빼내고는 사내에게 내밀었다. 사내가 가만히 그 담배를 노려보다가 손을 뻗어 담배를 받아 들었다.
여기서 담배를 받지 않는다면 앙금을 남기겠다는 신호다. 거기까지 갈 담량은 없다.
찰칵.
차이커창이 사내의 입에 물린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홍왕께서 마왕을 비호하시는 건가?”
“그럴 리가.”
차이커창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마왕은 적이다. 그건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홍왕께서는 적을 쓰러뜨림에 있어서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이해할 수가 없군.”
“네가 홍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왕이란 곧 용이다. 인간은 용을 이해할 수 없다. 그저 그 뜻을 짐작하고 따를 뿐이다.”
사내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갔다.
‘마왕을 비호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관계는 있다는 뜻이군.’
좋지 않은 소식이다.
혹여 협상이 결렬되고 강진호가 몸을 빼내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들의 모든 의도가 홍왕에게 전달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이번에는 물러나겠다. 하지만 우리가 너의 명령을 듣는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당연한 말이지. 누가 감히 인민해방군에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건가. 나도 그런 병신은 아니야.”
‘병 주고 약 주는군.’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밟은 사내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호텔방을 빠져나갔다.
사내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최연하가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의자까지 걸어갈 힘도 없다.
“이거, 꽤나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군요. 대신 사과드립니다.”
“……대체 뭐예요, 방금 그 사람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테니까요. 이건 저와 제가 모시는 분의 이름으로 약속드리겠습니다.”
차이커창의 살짝 인상을 썼다.
‘일이 꼬였어.’
홍왕은 최연하에게 원하는 모든 계약을 성사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평범한 이들이라면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으로 성립된 약속이라 여기겠지만, 홍왕의 기준은 그런 게 아니다.
최연하가 계약을 문제없이 마치는 것까지 이뤄져야 약속을 지켰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홍왕은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지켜야 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최연하가 다른 이들에게 끌려간다거나 중국 내에서 화를 입는 상황이 나와서는 안 된다.
‘팔자에도 없는 호위 노릇을 하게 생겼군.’
“이봐요.”
“예. 일단은 여기에서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안전한 곳으로 가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시죠.”
“됐고, 진호 씨는 별일 없는 거예요?”
“…….”
차이커창이 놀란 얼굴을 했다.
이 상황에서 이 모든 일을 강진호와 연관 지을 수 있는 최연하의 감각이 놀라웠고, 조금 전에 총구가 머리에 겨눠졌던 사람이 자신의 안위가 아닌 강진호의 안전을 생각한다는 게 또 놀라웠다.
“모릅니다.”
“아니…….”
“다만, 저는 그 사람이 위기에 처한다는 게 별로 상상이 안 가는군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최연하 씨가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그분을 돕는 일일 겁니다.”
최연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머리는 복잡하지만 결정은 빨랐다.
“안내해요. 한국으로 갈 거예요.”
“이쪽으로.”
앞서 호텔을 빠져나가는 차이커창의 머리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확실히 마왕의 예뻐할 만한 여자군.’
강단이 있다. 그리고 결정이 빠르다. 무학을 익혔다면 여장부가 되었을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상황을 좀 더 파악해야 해.’
차이커창도 지금 이 상황이 정확히 어찌 흘러가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상황이 차이커창의 예상보다 더 좋지 않게 흐르고 있다면?
‘어쩌면 마왕도 목숨을 장담할 수 없을지 모르지.’
그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