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53
#1352.
탈출하다 (2)
위긴스가 초조한 눈으로 바다 너머를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이현수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건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상황이다. 부자연스럽게 끊어진 전화는 이현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단순한 사고?
그럴 리가.
아무리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봐도 끔찍한 상황임을 외면할 방법이 없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이리 답답한 적은 처음이었다.
‘로드를 중국에 보내는 게 아니었어.’
국가와 국가가 관련된 일이다. 부외자인 위긴스는 나설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총회의 소속이지만, 한국인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총회와 정권의 협상으로 생긴 일이 아니다. 한국의 정권과 한국의 총회가 벌인 협상의 결과였다.
거기에 대고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달라질 것은 없다. 부외자의 말은 힘을 가지지 못하는 법이니까.
‘그래도 말려야 했나.’
상황이 이리 흐르고 보니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되었는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일단…….’
“거, 진정 좀 하십시오.”
“…….”
위긴스가 고개를 돌려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담배를 문 방진훈이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리 달달대면 애들이 불안해합니다. 잘 아실 만한 분이 왜 그러십니까?”
“……그렇지.”
위긴스가 깊게 한숨을 내쉰다.
설마 방진훈에게 이런 충고를 받게 될 줄이야. 평정을 잃어도 너무 잃은 모양이었다.
“원탁 놈들이 이상한 이동을 감지했다고 했습니까?”
“그렇다네.”
“그런데 이현수는 연락이 끊겼고?”
“그렇지.”
“……아주 개판이군.”
방진훈이 피식 웃고 말았다.
“일이란 게 다 그렇지. 원래 정말 심각하게 시작한 일은 의외로 쉽게 풀리기도 하고, 별것 아닌 일이 밑도 끝도 없이 커지는 게 사람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양반이 그래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인데,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탈출로나 잘 만들어주면 되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방진훈도 연신 줄담배를 피워 대고 있었다. 강진호를 만나기 전에 방진훈이 담배를 끊은 상태였다는 걸 생각하면 이제는 금연은 아주 손을 놓아버린 모습이었다.
“탈출이라…….”
위긴스의 눈이 가라앉는다.
‘해안까지만 오면 된다.’
이미 한 번 경험이 있지 않은가. 강진호가 해안에만 당도하면 위긴스가 강진호를 구출해 올 수 있다. 마법을 쓰는 이들을 모아 장기 텔레포트를 해보는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이상, 지금은 그게 유일한 방법이다.
‘이현수까지는 어떻게 해볼 수 있겠는데…….’
남은 이들은 구출해 올 수가 없다. 해안에서 헤엄을 쳐 배까지 당도한다면 모를까.
“그 이상한 움직임이라는 게 대체 뭡니까?”
“난들 알겠는가, 제대로 된 자료를 받은 것도 아닌데. 베이징의 병력이 이동한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네.”
그 병력이 뭘 지칭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원탁에서도 급보를 받자마자 이쪽으로 연락을 한 것이다. 자세한 정보는 차후에 다시 보고될 것이다. 문제는 그때까지 시간이 없다는 것뿐.
“위긴스 님.”
“사담은 나중에 나누세. 지금은…….”
“결정하십시오.”
“……뭐?”
위긴스가 방진훈을 돌아보았다. 방진훈이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는 입을 열었다.
“상황이 애매하게 굴러간다 싶으면 저는 돌입할 겁니다.”
“어딜? 저길?”
중국 땅을?
배를 끌고 중국 땅으로 밀고 들어간다고?
넘실거리는 바다를 바라본 위긴스가 떨리는 눈으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제정신인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방진훈이 아니다.
“문제가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알지 않는가.”
“위긴스 님이야말로 정신 좀 차리십시오.”
“나?”
“총회에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사태가 뭡니까?”
“그야…….”
위긴스가 입을 닫았다.
“전쟁이 나는 것도 아니고, 일의 책임을 물어 공중분해되는 것도 아닙니다. 회주님이 죽는 거죠. 회주님이 죽으면 어차피 총회는 공중분해됩니다. 늦든 빠르든.”
그렇겠지.
홍왕계가 군침을 흘리며 한국으로 밀고 들어올 테니까. 바토르나 위긴스의 힘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다.
‘아니, 그전에…….’
강진호가 없는 총회를 위해서 목숨을 걸 의리는 있는가?
위긴스는 새삼 이사들이 충성하는 대상이 총회가 아니라 강진호 개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강진호가 죽는다면 위기 이전에 총회라는 근간이 유지되지 않는다.
당장 장민부터 마교를 이끌고 총회에서 이탈할 테니까. 그게 아니면 마존을 험지로 보내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의 책임을 묻는답시고 총회와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
장민은 도무지 예상이 안 되는 자였으니까.
충성스러운 자는 예상이 쉬운 법이다. 그들의 충성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지만 보면 되니까. 하지만 장민의 충성은 거의 광기의 영역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니 평범한 이들로는 도저히 장민의 행동 패턴을 예상할 수가 없다.
“회주님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합니다. 그게 정도를 넘어서는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
위긴스가 방진훈을 한참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전에 방진훈은 총회의 회주인 적이 있었지.’
그리고 그전에는 총회 내에서 파벌을 만들어 이중걸과 대적했다고 했다.
이 순간, 위긴스는 리더가 되는 자와 보좌하는 자의 차이를 절감하고 있었다. 마스터나 방진훈, 그리고 강진호에게는 있지만, 그 자신에게는 없는 것.
그건 누구도 책임을 져주지 않는 상황에 어떤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목적을 관철하는 의지였다.
위긴스에게는 그게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 시간부로 지휘권을 자네에게 모두 넘기겠네.”
“무슨…….”
“오해하지 말게. 불만의 표시라거나 될 대로 해보라는 게 아니니까.”
위긴스가 눈을 찌푸렸다.
“다만, 이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했을 뿐이네. 나는 결정을 내리는 데는 약한 사람이야. 살짝 떨어져서 조언을 하거나 비판을 할 때나 가치가 있는 사람이지. 그러니 내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이네.”
방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였다면 겸양을 떨며 사양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단 한순간 판단을 지체하는 것만으로 총회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원탁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해보십시오.”
“알겠네.”
“연락병 하나 배치해서 이현수와 회주님께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야 합니다. 일단은 정보가 부족하니까요.”
“그건 이미 하고 있네.”
방진훈이 한숨을 내쉰다.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상륙합니다. 상륙 지점을 파악해 주십시오. 공해에서 헤엄쳐 들어가는 건 너무 오래 걸립니다. 적당한 지점까지는 배로 밀고 들어갈 겁니다.”
“……그건 너무 위험하네.”
“위험은 감수합니다.”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네. 명에 따르지.”
확실히 생각이 정리된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강진호를 노리는 이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강진호가 그들을 감당할 수 있는지.
그런 건 차후의 문제다.
지금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강진호를 돕기 위한 최선의 방향을 찾아내는 것이다. 방진훈은 투박하지만 확실하게 그 방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말하게.”
“바토르 님과 공조해 주십시오. 이쪽이 밀고 들어가야 할 상황에 출발하면 너무 늦습니다. 지금 당장 국경을 넘어달라고 전해주십시오.”
“……지금?”
“별문제 없으면 다시 빠져나오면 그만 아닙니까?”
성질은.
세상에 완장을 채워주면 안 되는 이가 있다는 걸 느끼며 위긴스가 전화를 들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위긴스 님!”
누군가가 갑판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정체불명의 선박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뭐?”
위긴스의 눈에 다급함이 어렸다.
“선박‘들’이라고?”
“예. 적어도 십여 척은 됩니다!”
“이, 이런…….”
여기는 공해다. 공해상은 법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다시 말하자면, 경비정도 이곳을 단속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십여 척이 동시에 접근한다?
“어선일 확률은? 대규모 조업이라면 열 척 정도야 함께 다니겠지.”
“아직은 파악이 안 됩니다. 그리고 불을 끈 채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선이라면 불을 끄고 이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던 위긴스가 주먹을 움켜잡았다.
‘설마 중국 쪽에서?’
만약 그들이 이곳에 있다는 정보가 샜다면?
위긴스라면 이쪽부터 처리하려 들 것이다. 탈출 루트를 끊는 것은 사냥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일이니까.
‘저항은?’
불가능하다.
이곳이 육지 위라면 별문제가 없다. 아무리 군인들이 노리고 들어온다고 해도 몸하나 뺄 여력은 있는 이들만 끌고 왔으니까. 하지만 바다 위에서라면 말이 다르다.
설마 그런 일까지야 벌어지겠냐마는, 어뢰 한 방이면 배는 깔끔하게 바다로 가라앉을 것이고, 망망대해에 몸을 띄운 채 총격을 버텨야 한다.
‘몰살이다.’
몇몇이야 살아남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생존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까딱했다가는 서해 바다에서 명량해전 이후 가장 일방적인 살육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대기해.”
“방 이사님!”
“대기하라고, 새끼야!”
방진훈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보고하러 온 이가 고개를 숙였다.
“저 미친 새끼들도 사람 탄 배를 함부로 침몰시키지야 않겠지. 우리가 외교 문제를 걱정하는 것처럼 저 새끼들도 걱정할 거 아냐.”
“하지만…… 저들은 중국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그 정도…….”
“알았으니 대기해.”
“방 이사님! 달아나려면 지금밖…….”
방진훈이 보고자의 멱살을 움켜잡고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금방이라도 목을 물어뜯을 듯이 으르렁댔다.
“잘 들어, 새끼야. 회주님이 안 오면 우리도 안 간다. 여기서 죽으나 한국에서 죽으나 마찬가지야. 알았어?”
“……알겠습니다.”
더 반발했다가는 당장 방진훈에게 죽을 기세였다.
방진훈이 멱살을 잡은 손을 놓고 초조한 손으로 담배를 찾았다.
“빌어먹을, 일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자꾸 모호하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계속 터진다. 마치…….
‘덫에 걸린 것처럼.’
위긴스가 한 손을 앞으로 들어 올린 채 뭐라 주문을 외웠다.
‘뭐 하는 거지?’
한참 동안 마력을 집중하던 위긴스가 힘없이 손을 떨궜다.
“돌아가세.”
“……갑자기 무슨 소리입니까?”
“자네 말대로 중국의 배라면 대책없이 공격하지는 못할 걸세.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겠지. 한국 정부에서 민간인의 배가 공격당했다고 건수를 물 수 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런데 저 배가 중국의 배가 아니라면 어쩔 셈인가?”
“중국의 배가 아니라뇨? 중국이 아니면 누가 우릴 공격한다는 말입니까? 그럴…….”
방진훈이 입을 다물었다.
“하나 있지 않은가. 우리와는 철천지원수면서 근거리에 있는 강한 해군이.”
방진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설마?”
위긴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우리가 단단히 함정에 빠진 모양이군. 홍왕계도 찌르지 못한 급소를 찔렸어. 안일했군.”
이제는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거리만큼 접근한 배들을 보며 위긴스가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