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54
#1353.
탈출하다 (3)
“홍왕이요?”
살짝 고민을 해본 이현수가 곧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홍왕이라면 자신이 계약을 성사시켜 주겠다고 장담한 이가 누군가에게 위협당하는 꼴을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그야 홍왕은 궁극의 가오충이니까.’
강진호도 나름 허세가 있는 편이지만, 홍왕에게는 비할 수 없다. 홍왕은 정말 허세가 전신에 배어 있는 사람이다. 다만, 그 허세를 허세가 아니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뿐.
“하지만 최연하 씨가 위협을 당한다는 걸 알아야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주변에 정보원이 상주하고 있다.”
“예?”
“거미줄처럼 퍼져 있었는데, 몰랐나?”
“……저야 모르죠.”
내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음, 그렇지.”
강진호가 살짝 한심하다는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봤다.
이현수는 매우 억울했다. 애초에 강진호는 조류고, 이현수는 개구린데, 하늘을 날지 못한다고 구박을 하는 게 말이나 되는가.
“주변에 정보원들이 있었으니 위협을 받으면 즉시 반응할 거다, 이거죠?”
“그전에 움직임을 파악했다면, 고위직이 직접 움직였겠지.”
이현수가 허허 웃고 말았다.
‘여기까지 보고 움직이신 건가?’
한 번씩은 강진호에게 자신이 정말 필요한가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지?”
아니네. 필요하네.
“표정이 왜 그래?”
“아니요. 미묘한 과대평가와 과소평가가 함께 있었습니다만, 이제 정리가 됐습니다.”
“응?”
그냥 평소에는 별것 없는데, 한 번씩 번뜩인다 정도로 정리하자.
‘일단 그럼 조금 편해질 텐데.’
최연하의 구출을 머리에 넣지 않아도 된다면 상황이 확실히 나아진다.
문제는 그걸 감안하더라도 최악에서 조금 벗어난 정도라는 것 정도?
이현수가 굳은 얼굴로 밖을 바라봤다.
머리가 복잡하지만, 여기에 오래 머무르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저들의 포위망은 좀 더 단단해질 테니까.
“생각을 해봤습니다만.”
“음.”
“강행돌파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강진호가 뚱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봤다.
“아니…….”
이현수가 억울한 듯 항변했다.
“제가 무슨 제갈량도 아니고, 남의 나라 한가운데서 달아날 방법을 무슨 수로 찾습니까?”
“그래서 정말 하나는 물어보고 싶은데…….”
“예?”
“왜 따라왔냐?”
“…….”
강진호의 말에 이현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솔직히 여기에 이현수만 없으면 강진호의 탈출이 두 배는 쉬워졌을 것이다.
“두고 가시든가요.”
“안 그래도 고민 중이야.”
“진짭니까?”
“…….”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따라오지 말라고 했더니만, 부득불 따라와 일을 키운다. 다음에는 절대 이현수를 대동하고 이런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강진호였다.
“어떻게든 되겠지.”
“매번 그랬죠. 뭐, 베이징에 남아 있는 애들을 미리 빼둔 게 다행이네요.”
정확하게 말하면 빼뒀다기보다는 시킬 일이 없어서 먼저 한국에 돌려보낸 거지만.
홍왕에게 들켜 버린 이상 숨는 게 의미가 없다. 딱히 필요도 없는 놈들을 호텔비까지 낭비해 가며 체류시킬 이유가 없어 한국으로 돌려보냈다.
그놈들이 들었다면 호텔이 아니라 호스텔이었다고 항변하겠지만 말이다.
“그럼 이제 우리만 빠져나가면 되는군.”
“별일 아니죠.”
이현수가 피식피식 웃는다.
별일 아니지, 별일이 아니야.
인민해방군이 나선 일이다. 이 안전가옥 주변이 어떤 상황일지는 불을 보듯 빤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홍왕의 귀에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강진호를 죽이려 들 것이다.
그에 반에 이곳에 있는 사람은 강진호와 이현수, 둘.
그나마 이현수는 전력이라기보다는 짐 덩어리에 가까웠다.
“잠깐만.”
강진호가 이현수를 두고 리기광에게 걸어갔다. 그러고는 리기광의 윗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잡았다.
잠시 리기광의 머리를 잡고 있던 강진호가 손을 떼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뭘 하신 겁니까?”
“혹시 모르니까.”
강진호가 리기광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이제 제정신 차리는 일은 없을 거야.”
“……잘하셨네요. 원래 나쁜 놈이기도 하고.”
인민의 고혈을 빨아먹는 어쩌고 라는 수식어가 딱 적당한 인간이니까.
여하튼 정리는 완전히 끝났다. 이제 탈출만 하면 된다.
이현수가 안색을 바꿨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길은 하나뿐이다.
“회주님.”
“말해.”
“저는 두고 가십시오.”
“…….”
“농담 아닙니다.”
이현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마 위긴스 님이 저번 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이동하는 와중에 전화로 연락해 보시고, 전화가 안 되면 이 포인트로 가시면 됩니다.”
이현수가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보여준다. 낯설고도 익숙한 중국 지도의 해안 부분에 붉은 점이 찍혀 있다.
“그럼 위긴스 님과 함께 탈출할 수 있을 겁니다.”
강진호가 지도를 슬쩍 보고는 고개를 들어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이현수의 얼굴에 비장함이 어려 있다.
“웬만하면 죽는 순간까지 총회의 정보를 불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고문까지 버틸 자신은 없네요. 손톱에 가시만 박혀도 진저리를 치는 타입이라…… 차라리 깔끔하게 죽이고 가십시오.”
“죽여?”
강진호가 어이없다는 듯 이현수를 바라봤다.
“널?”
“예. 뭐, 폼 좀 잡아보고 싶은 마음이 반쯤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지만, 반은 진심입니다. 잡혀서 온갖 고문 다 당하고 죽느니, 깔끔하게 죽는 게 나으니까요.”
강진호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피식피식 웃었다.
“이게 뭐 그렇게 진지해질 상황인가?”
“주변에 적이 쫙 깔렸을 겁니다.”
“새삼스레.”
아무래도 강진호의 상황 파악과 이현수의 상황 파악이 다른 모양이다.
이현수가 말한 대로 이 주변에는 적이 쫙 깔려 있다. 그리고 아마 어떻게든 강진호를 잡아 죽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상황만 놓고 보면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강진호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진지하게 선택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네, 이해합니다. 그럼 여기서 죽이고 가십시오.”
“……영화 찍어?”
“예?”
“느와르는 취향이 아니야.”
천천히 담배 연기를 뱉어낸 강진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선택해. 업힐래, 잡힐래?”
“……무슨 말씀이신지?”
“네가 너무 느리다. 내가 업고 가거나 목을 잡고 달리는 수밖에 없다. 선택권을 주지.”
“두고 가는 거 아닙니까?”
“정말 필요하다면 그럴 각오 정도는 있지. 하지만 지금은 그리 대단한 상황은 아냐.”
이현수가 미묘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눈에 습기가 차는 모양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이현수는 모른다.
강진호가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것은 무학이고 싸움이다.
하지만 강진호가 정말 잘하는 게 또 하나 있다.
도주.
두 번째 삶 당시, 강진호는 정파인들과 시비가 붙다가 일이 커져 천하공적으로까지 몰린 사람이다. 덕분에 지금으로 따지면 산둥반도에서부터 정파의 포위망을 뚫고 마교의 영역까지 도망쳤다.
그때, 강진호는 지금으로 따지면 겨우 이명환 정도 되는 실력으로 고수들이 지금보다 몇 배는 버글버글거리는 정파의 천라지망을 뚫어냈다.
이건 어쩌면 마교의 교주가 된 것보다 더 대단한 업적이다. 마교의 교주는 세대마다 한 명씩 나오지만, 그 실력으로 정파의 천라지망을 뚫은 이는 몇 백 년에 한 번 나오기도 어려우니까.
그런 강진호에게 이 정도 포위망쯤이야.
“감사합니다, 회주님.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얼른 가십시오. 제가 마지막까지 회주님을…….”
덥썩.
강진호가 두말없이 이현수의 뒷목을 움켜잡았다.
“솔직히 업고 가고 싶지는 않으니, 그냥 이렇게 간다.”
“……네?”
“이 악물어라. 혀 잘린다.”
“어…… 어어? 어?”
그 순간, 강진호가 냅다 달려 안전가옥의 유리창을 발로 걷어찼다.
콰앙!
방탄유리가 터지는 소리는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방탄유리를 일격에 날려 버린 강진호가 그 기세 그대로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히익!”
이현수가 기겁을 한다.
‘아니. 미친! 이렇게 빠져 나가면!’
“쏴라!”
그렇지!
순간적으로 대량으로 콩을 볶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한 이현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파아아앗!
하지만 걱정할 건 총이 아니다.
순간적으로 얼마나 가속을 했는지, 몸이 길쭉하게 늘어나면서 전신의 피가 다리로 쏠리는 느낌이 났다. 머리에서 피가 빠지면서 일순간 의식이 확 멀어졌다 돌아온다.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다.’
이현수가 없는 내력을 알뜰살뜰 끌어 모아 머리로 밀어 넣었다. 내력으로 보호라도 해야 의식을 잃지 않을 판이었다.
어떻게도 의식을 되찾은 이현수의 눈에 스쳐 지나가는 주변 경관이 들어온다.
‘와, 쩐다!’
이게 얼마나 빠른 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살면서 이보다 빨리 움직인 적이야 있었겠지. 강진호가 아무리 빨라봐야 비행기보다 빠르겠는가.
‘하지만 비행기는 숲을 달리지 않는다고! 빌어먹을!’
나무가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다. 뭔가 보인다 싶으면 이미 지나쳐 멀어져 있다. 세상이 입체감을 잃고 길쭉하게 늘어난다.
‘와, 이건 토한다.’
강진호가 방향 전환을 할 때마다 내장이 한쪽으로 쏠렸다가 반대쪽으로 다시 쏠리기를 반복하는 느낌이다. 롤러코스터에 환장하는 이들을 강진호의 손에 딱 1분만 들려주면, 3대조 조상님까지 소환하여 잘못했다고 빌겠지.
내가 지금 딱 그런 심정이니까.
“멈춰…….”
강진호가 앞을 틀어막는 이를 달리는 속도 그대로 걷어찼다.
콰앙!
사람이 사람을 차는데 기차에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단 일격에 즉사한 시체가 말 그대로 튕겨 올라 회전하다가 바닥으로 추락한다.
‘미친놈이.’
달리는 차 앞을 막아서면 안 된다는 건 어린이집에서도 배우는 일이다.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달리는 차도 아니고, 달리는 강진호의 앞을 몸으로 막는단 말인가.
하지만 아무래도 중국에는 미친놈이 꽤나 많은 모양이다.
“위!”
이현수가 기겁을 하여 소리쳤다. 우거진 나무 위에서 단도를 든 십여 명의 특수부대가 강진호를 향해 직선으로 뛰어든다.
이현수를 잡지 않은 강진호의 오른손이 순식간에 아공간을 파고들어 적루를 뽑아낸다.
그러고는 달리는 속도 그대로 위쪽을 십여 차레 베어낸다.
촤아아아악!
바닥에 닿지도 못하고 조각조각 나버린 시체가 피 비를 뿌렸지만, 그 피는 강진호의 몸조차 적시지 못했다. 가공할 속도를 유지하며 달려 나간 강진호가 두 눈을 붉게 물들인다.
슬쩍 옆을 바라보는 강진호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맺혀 있는 걸 본 이현수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휴대폰을 들었다.
“왼쪽! 왼쪽! 회주님, 이 방향 아닙니다! 왼쪽으로!”
“알아.”
“왜 반대로 달립니까! 몽골 갈 일 있어요?”
“하…….”
강진호가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자, 잠시만…… 우웨에에에에엑!”
강진호가 이현수의 목을 잡은 손을 놓고 살짝 물러났다.
배 속의 모든 것을 게워낸 이현수가 고개를 들자, 강진호가 다시 목을 잡는다.
“꽉 잡아.”
뭘?
강진호가 반대 방향으로 다시 전력 질주를 시작하자, 이현수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차라리 여기 두고 가지.’
그럼 곱게 죽지, 곱게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