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57
#1356.
격노하다 (1)
공항으로 가는 길은 복잡하기 마련이다.
베이징 국제공항은 연간 1억 명이 이용하는 공항이다. 이는 이용객 수로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인천공항의 세 배에 달했다.
그동안 몇 번이고 베이징 공항을 이용해 본 최연하이기에 북경에서 서우두 공항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막히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위이이이이잉!
그녀가 타고 있는 검은 세단의 앞을 경찰차가 호위한다.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는 경찰차를 보는 즉시 차들이 좌우로 길을 터준다.
덕분에 꽉 막힌 도로를 너무도 쾌적하게 달리는 중이었다.
‘진짜 얘들…… 뭐지?’
최연하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무리 봐도 공적인 일을 하는 놈들 같지는 않은데, 제멋대로 공안을 부려 먹는다.
‘그때 그놈들은 분명 군인 같았는데…….’
많은 일을 직접 겪고 있지만,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이 대체 뭔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최연하였다.
“저기요.”
최연하가 입을 열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차이커창이 슬쩍 시선을 올려 룸미러를 바라봤다.
“불편한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하나 물어봐도 돼요?”
“얼마든지 물으시죠.”
“당신들,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순간, 차이커창이 헛웃음을 흘렸다.
“기이하군요.”
“뭐가요?”
“그런 질문이야 살면서 몇 번은 받았지만, 그 말이 설마 당신의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당신은 강진호의 연인 아닙니까?”
“여자 친구라고 해주세요. 늙어 보이니까.”
“……아, 그러죠.”
최연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들은 진호 씨를 잘 안다는 듯이 말하는데, 그럼 진호 씨가 말수가 없다는 것도 잘 알 것 아니에요. 나는 들은 게 하나도 없다구요.”
차이커창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단순히 말수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까지 차이커창이 파악한 강진호는 무인계의 영역과 자신의 삶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최근 그 경계가 조금 깨지기는 했지만, 이제까지는 최연하에게 무인계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이런 일을 겪으리라고는 강진호 역시 짐작하지 못했을테니까.
“궁금한 건 우리의 정체입니까, 아니면 강진호 씨의 정체입니까?”
“물론 당신들이죠.”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일단의 협사(俠士)라고 해두죠.”
“조폭이에요?”
“……협사라고 했는데.”
“그게 조폭이잖아.”
어…….
틀린 말은 아닌가?
“비슷하다고 칩시다.”
최연하가 한숨을 쉬며 시트에 등을 기댔다.
강진호의 정체가 한국 조폭 두목이라는 것쯤이야 진즉에 알았다. 강진호나 이현수는 개념이 전혀 다르다고 항변했지만, 솔직히 그게 그거 아닌가.
‘내가 설마 조폭 두목이랑 사귀게 될 줄이야.’
연예계에 있다 보면 그런 이들과 엮이는 여자 배우들이 몇몇은 나온다. 제 손으로 제 인생 말아먹는다고 비웃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 최연하는 한국 대표 조폭 두목과 사귀는 중이다.
그것도 한국에서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노는 협사와.
“당신들이 그거죠? 그 삼합회인가, 흑사회인가 하는 사람들.”
“아닙니다.”
최연하가 코웃음을 치려는 순간, 차이커창이 말을 이었다.
“그쪽보다는 우리가 질이 좀 더 나쁘죠. 그래도 걔들은 공안을 보면 떨기라도 하니까.”
“……좋은 자진 납세네요.”
차이커창이 빙그레 웃었다.
재미있는 여자다.
‘담량 하나는 마왕이 울고 가겠군.’
차이커창이나 지금 운전을 하고 있는 이나, 무인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압박하는 기운을 뿜어낸다.
그 기운을 받으면서도 저리 태연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건, 최연하가 기본적으로 담이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진호 씨랑은 어떤 관계예요?”
“그게 왜 궁금하십니까?”
“보면 좀 이상하거든요. 당신들 엄청 으르렁대던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선물은 주고받고, 또 저를 도와주기도 하고. 도통 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관계라서 말이에요.”
차이커창이 피식 웃었다.
“정확한 지적이시군요. 하지만 대답은 궁색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사실 저도 강진호 씨와 우리의 관계를 깔끔하게 정의 내릴 수는 없으니까요.”
“왜요?”
“관계라는 게 그렇죠.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홍왕계와 강진호의 관계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홍왕과 강진호의 관계, 그리고 차이커창과 강진호의 관계는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없다.
“그거, 대본에나 나올 대사 같은데요. 느와르 좋아해요?”
“딱히 즐기지는 않습니다.”
현실은 그렇게 말랑말랑하지 않으니까.
“이건 느와르가 아니라 전쟁물에 가깝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역사물 쪽이겠죠. 느와르에서는 감정으로 이득을 포기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현실에서는 철저한 이득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게 사람 아니겠습니까?”
“흐응?”
“강진호 씨와 저희의 관계를 물으셨죠? 글쎄요, 그런 게 왜 중요한지 모르겠군요. 확실한 건 지금 강진호 씨를 돕는 게 우리에게 이득이 된다는 거죠. 그는 은원이 분명한 사람이니까요.”
“그럼 내가 고마워할 필요는 없겠네요?”
“물론입니다. 이건 강진호 씨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호의니까요. 잘난 남자 친구를 둔 대가라고 생각하시죠.”
“물론 위기도 그 잘난 남자 친구 때문이고?”
“코스트 같은 거죠.”
“제멋대로네, 당신들.”
최연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내 그 웃음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진호 씨는 무사한 거예요?”
“흐음.”
차이커창이 침음을 흘렸다.
“세상에 확실한 건 없죠. 하지만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차이커창이 씹어뱉듯 말했다.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이었다면, 우리가 이 짓을 하고 있을 이유도 없죠. 사실 이건 우리가 이만큼 신경 썼으니 앞으로 잘 좀 봐달라는 아부와도 같은 겁니다.”
“아부요?”
“예. 저는 그 사람이 무섭거든요.”
차이커창이 고개를 내저었다.
너스레를 떠는 게 아니라 진짜 두렵다는 얼굴이었다.
‘이 사람도 보통 사람이 아니네.’
허세를 떠는 이는 무섭지 않다. 하지만 이리 솔직한 사람은 무서운 법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애를 쓴다. 하지만 차이커창은 자신의 약한 점을 내보이는 것에 주저가 없었다.
“여하튼 고마워요.”
“천만에요. 이건 다…….”
“뭐, 이유가 뭔지는 내가 알 바 아니고, 어쨌든 간에 그쪽이 구해준 건 사실이니까요. 조금만 늦게 왔으면 바지에 실례를 했을지도 몰랐으니까.”
“……그 감사, 받겠습니다.”
차이커창이 룸미러를 슬쩍 바라봤다. 차가운 듯 보이는 최연하의 얼굴이지만, 얼굴과는 다르게 성격은 그리 차갑지 않은 모양이다.
“다 왔습니다.”
차가 공항 앞에 정차했다.
“표는 미리 예매해 두었으니 바로 찾으시면 될 겁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저들이 할 수 없는 일이 없을 테니까요.”
“음, 알겠어요.”
최연하가 살짝 불안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 번 그런 일을 겪고 나니, 한은솔과 둘이 공항으로 들어가는 일조차도 꺼려진다.
‘그렇다고 유치원생처럼 바래다 달라고 할 수는 없지.’
“가자, 은솔아.”
“예, 누나.”
한은솔이 차에서 내리고는 트렁크에서 짐을 꺼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조수석에서 내린 차이커창이 최연하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다시 차에 올랐다. 검은 세단이 미련 없이 가버린다.
“……아이고.”
최연하가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은솔아.”
“예, 누나.”
“이게 다 무슨 일이냐?”
“…….”
“여하튼.”
최연하가 머리를 긁었다.
생각해 보면 강진호와 얽혀서 곱게 끝난 일이 없다. 이번에는 중국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고 가나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일이 터졌다.
“팔자가 사나워도 정도가 있지.”
“말투 좀 조심하세요. 누가 들을까 겁나요.”
“겁은 무슨.”
이 마당에.
최연하가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밤인데도 뿌옇게 시아를 가리는 먼지를 보고 있으려니 정이 확 떨어진다.
‘여길 다시 와야 한단 말이지?’
계약을 해두었으니 일단 한국에서 상황을 보다가 다시 넘어와야 한다. 그 생각을 하자 몸에서 힘이 더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너는 괜찮아?”
“괜찮아요. 아까 팬티 갈아입었거든요.”
“……잘했다.”
그래도 태연하게 굴어주는 한은솔을 보니 참 대견하다.
매니저라고는 하지만, 한은솔은 아직 20대 청년에 불과하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을 겪었으니 멘탈이 나갈 만도 한데, 꿋꿋하게 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얼른 가요, 누나. 일단은 이 썩을 나라부터 벗어나는 게 좋겠어요.”
“동감이야.”
한은솔이 짐을 들고 앞장 서 공항으로 걸어 들어갔다. 최연하가 슬쩍 뒤를 돌아보고는 안으로 향했다.
‘진호 씨를 두고 가는 게 좀 찝찝하긴 한데…….’
하지만 이게 최선이라는 걸 최연하는 잘 알고 있다. 드라마 대본에서 여주인공이 설치다가 인질로 잡히거나, 주인공에게 피해를 주는 시나리오는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최연하다.
사람은 자신의 주제를 알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행동해야 한다. 지금 최연하가 여기에 남아 있는 건 강진호를 돕는 게 아니라 괴롭히는 것밖에는 안 된다.
“전화라도 받지! 이 인간!”
여하튼 무슨 일만 있으면 전화기 꺼놓는 건 진짜 안 고쳐진다니까. 그만큼 잔소리를 했는데도!
최연하가 이를 뿌득 갈고는 공항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이번 일만 어떻게 잘 끝나면 다시는 전화를 꺼놓지 못하게 정신교육을 확실하게 해야겠다.
열 번 말해서 안 들으면 스무 번 말하고, 스무 번 말해서 안 들으면 서른 번 말하면 그만이지.
티케팅을 끝낸 한은솔과 최연하가 티켓을 받아 들고는 출국장을 향해 에스컬레이터를 올랐다.
다행히 바로 출발하는 비행기다.
“일단 뭐 좀 드실래요?”
“지금 먹으면 토할 것 같다. 밥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까 일단 한국에 가자. 집에 가서 좀 누워야겠어.”
“동감이에요.”
두 사람이 힘없이 게이트로 향하는 그 순간이었다.
“잠시.”
‘응?’
최연하가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차를 타고 떠난 차이커창이 어느새 그들의 뒤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차이커창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그 표정을 확인한 최연하는 직감적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터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 비행기, 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연하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설마…… 비행기에?”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차이커창이 살짝 망설이는 얼굴을 한다. 이 남자에게 이런 표정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최연하가 눈을 크게 떴다.
“아무래도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한국으로 가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저도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라 지금 단계에서 뭐라 말씀드리기 힘듭니다만…….”
차이커창이 한숨을 내쉰다.
“이쪽을 조금이라도 신뢰하신다면, 일단은 중국에 머물러 주십시오. 호위는 확실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인질이 되라는 건가요?”
“절대 아닙니다. 손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최연하가 가만히 차이커창을 노려본다.
한국으로 가고 싶다.
지금 당장.
원래라면 생각할 것도 없지만…….
“제일 안전하고 좋은 호텔로 보내줘요. 그건 되죠?”
“물론입니다.”
“가자, 은솔아.”
“……누나, 안 가실 거예요?”
“뭔 일이 생겼다잖아. 저 사람이 우리를 속일 거였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그렇긴 한데…….”
한은솔이 어정쩡하게 말끝을 흐리자 최연하가 차이커창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인지 말해주실 수 없어요?”
“……지금은 어렵습니다.”
“대충이라도.”
차이커창이 한숨을 내쉰다.
“아마도…….”
차이커창의 목소리가 최연하의 귀를 파고들었다.
“한국에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