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59
#1358.
격노하다 (3)
강진호가 비어버린 담뱃갑을 손으로 구겼다. 주머니를 더듬어 보니 더 남은 담배가 없다.
‘하나 더 챙길 걸 그랬나?’
평소 만약을 대비해 담배 한 갑 정도는 예비로 들고 다니는 강진호지만, 이제는 그 예비마저 다 떨어졌다. 아마 한동안은 꼼짝없이 강제 금연에 들어가야 할 모양이다.
그때, 이현수가 주머니에서 새 담배 한 갑을 꺼내더니 강진호에게 던졌다.
탁.
담배를 받아 든 강진호가 미묘한 시선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기본이죠.”
이현수가 주머니에 든 담배 몇 갑을 들어 쫘악 펼친다.
“…….”
이건 센스가 좋은 걸까, 개념이 없는 걸까?
강진호가 피식 웃고는 담뱃갑을 깠다.
찰칵.
매캐한 담배 연기가 목을 찔러 댄다.
폐 속으로 깊숙이 담배 연기를 밀어 넣은 강진호가 한참을 기다리다가 천천히 한 모금을 뿜어냈다.
‘나른하군.’
안가로 쳐들어간 이후부터 쉴 새 없이 무언가를 겪다가 이제야 조금 쉬는 느낌이다.
“상태는?”
“버틸 만합니다.”
이현수가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안색은 숨길 수 있는 게 아니다. 핏기 없는 얼굴과 짙은 다크 서클이 지금 이현수의 상태를 말해준다.
그렇겠지.
쫓긴다는 건 그런 거니까. 아무리 이쪽이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누군가 쫓아온다는 감각은 체력을 급속도로 소진시킨다. 이현수의 체력으로는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옛 생각이 나는군.’
과거, 정도무림의 공적으로 몰려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던 기억이 난다.
사방에서 몰려오던 적들.
달아났다 싶으면 앞을 가로막고, 떨쳐 냈다 싶으면 어느새 포위되어 있다.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달아나고 또 달아났다. 나중에는 환청이 들리고, 환상을 볼 지경이었다.
쩌적쩌적 갈라지는 목과 터질 듯한 심장, 그리고 언제라도 등 뒤에서 칼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공포.
떠올리는 것만으로 전신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기억이다.
‘기분이 좀 더럽군.’
지금도 쫓기고 있지만, 그때와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
탈출구가 있으니까.
쫓기더라도 달아날 곳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강진호가 깊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이현수.”
“예, 회주님.”
“이종욱이 저렇게 나왔다면, 적은?”
“……여전히 둘 중 하나입니다.”
이현수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이종욱이 정말 우리에게 탈출구를 제공한다면, 그를 아군이라고 봐도 될 겁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김명찬이라는 거군.”
“예.”
이현수가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는다.
“하지만 그것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김명찬이 이리 나오는 이유도 자의가 아닐 수 있으니까요.”
“……그건 무슨 말이지?”
“그 역시 정치인이고, 조직에 묶인 몸 아니겠습니까? 더 윗선에서 명령이 내려온다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법이죠.”
더 윗선이라…….
강진호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건 입으로 내기에는 너무 큰일이다. 대한민국 총리의 위에 있는 사람은 단 하나뿐이니까.
“회주님.”
이현수가 조심스레 강진호를 불렀다.
“왜?”
“하나 여쭤도 되겠습니까?”
“새삼스럽게.”
“그렇죠. 새삼스럽죠.”
이현수가 어색하게 웃는다.
하지만 이 질문만은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없다. 말에 실린 무게가 너무도 무겁기 때문이다.
“만약 총리가 배신을 한 게 맞다면…….”
이현수가 살짝 말꼬리를 흐렸지만, 강진호의 얼굴은 변화가 없었다.
그저 무거운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타탁.
담배 끝이 타들어 간다. 이현수는 재촉하지 않고 강진호가 생각을 정리하길 기다렸다. 강진호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이현수는 그 의견을 받아들일 것이다.
“생각할 것도 없지.”
강진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고민조차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배신이 어쩌고 할 생각은 없어.”
강진호가 생각하기에 김명찬과 자신, 그리고 정권과 총회는 서로를 배신했다고 여길 만큼의 친교를 쌓지 않았다.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약속을 한 적도 없고, 한시적이나마 적대시하지 않겠다는 계약을 한 적도 없다.
그저 서로가 가는 길이 같기에 잠시 함께한 사이에 불과하다.
그런 주제에 의리를 논한다는 건 너무 순진한 말이다.
“다만…….”
강진호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어쨌든 그쪽에서 나를 노린 건 사실이지. 그럼 그 대가를 치르면 돼.”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말이지만, 그 안에 모든 게 담겨 있었다. 강진호의 대가라는 건 너무도 간단하니까.
“모두를 적으로 돌리실 생각이십니까?”
“관여한 자라면.”
“……알겠습니다.”
총리가 관여했다면 총리까지.
그리고 더 윗사람이라면…….
이현수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솔직히 거기까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총리에서 더 윗선으로 올라가 버린다면 그들이 상대해야 할 건 ‘국가’가 되어버릴 테니까.
이현수는 자신이 꾹꾹 눌러놓은 것들이 천천히 그 머리를 들어 올리는 걸 느끼는 중이었다.
“문제가 있나?”
“아닙니다. 그저…….”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의 일도 그렇고, 중국의 상황도 그렇고…… 우려하던 일이 슬슬 벌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우려하던 상황?”
“예. 그게…….”
이현수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동안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춰온 것뿐입니다.”
“그렇지.”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이현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다.
국가와 무인계의 공존.
그건 너무도 어려운 숙제였다.
강진호는 이 공존 자체가 매우 불편하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동안 국가 단위에서 무인계를 없애려 들지 않은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쓸모가 있기 때문이죠.”
이현수가 혀로 입술을 축인다.
“쓰레기 제거용으로 사용하든, 뒷골목의 청소부로 쓰든, 혹은 그들이 하지 못하는 더러운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든, 무인계는 국가와 나름 긴말한 협조를 유지해 왔습니다.”
“우리처럼?”
“그렇죠. 사실 저희는 좀 늦은 편이죠.”
이현수는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의혹만은 놓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저들이 우리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때 어떻게 나오겠냐는 겁니다. 유럽이나 일본 같은 곳이야 괜찮습니다. 거긴 이미 정계가 무인계에 장악당해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중국이나 우리는…….”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들은 보지 않았는가.
중국의 정권이 무인계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진호를 회유하려 든 것도 그 움직임의 일환이다.
“쓸모 있는 물건은 사용됩니다. 하지만 그 물건은 두 가지 이유로 처분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쓸모가 없어지는 것. 제가 생각하기에 이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국가는 체면을 차려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현수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더 나은 물건이 나오면, 불편한 건 언제나 대체됩니다. 설사 성능이 완전히 더 뛰어나지 않더라도 말이죠.”
편리하니까.
강진호는 더 나은 물건이라는 말에 주목했다.
“우릴 대체할 이들이 있다는 건가?”
“있을 겁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키웠겠죠. 지금도 키우고 있을 것이고. 무학이란 우리만 가진 게 아니니까요.”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생각했어야 하는 일이다.
과거, 그가 중원을 지배할 당시에도 황궁에서는 황궁 무장들을 육성했다. 무림처럼 아주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시스템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 그 실력이야 진짜 무인에 미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건 사실이었지.’
당시에도 한 일을 지금 못할 이유가 없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훨씬 더 쉬울 것이다.
“중국과 한국이 무인들을 육성하고 있다?”
“한국은 모릅니다. 정권이 최근까지 무인계에 무지했던 걸 보면, 육성에 손대지는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중국은 확실합니다.”
“음.”
일리가 있는 말이다.
‘무인의 군대화라는 건가.’
그건 단순히 국가가 무인을 군사력으로 보유했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인계와 바깥세계.
철저하게 나뉘어지던 두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의미다. 군대는 곧 국가의 힘, 그리고 국가는 바깥세상의 상징이다.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핵심이 서로 섞여드는데, 두 세계의 경계를 지킨다는 건 불가능하다.
강진호가 언젠가는 무너질 거라 생각했던, 그 미약한 경계가 이미 파탄을 내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뭘?”
“……말씀드린 상황을.”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딱히 별생각 없는데?”
“예?”
강진호가 입에 문 담배를 길게 빨았다.
“내가 고민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
멍한 이현수의 표정을 보며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런 건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고민하겠지.”
“아니, 회주님이 아니면 누가…….”
“착각하지 마.”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나는 초인도 아니고, 미래를 보는 선지자도 아니야. 나는 그저 지금 당장을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이야.”
“…….”
“몇 십 년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고민하는 것? 좋지. 하지만 나는 당장 닥친 일이 더 중요하다. 그런 고민은 나중에 시간 많을 때, 생각나면 한 번쯤 해보는 걸로 충분해.”
이현수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참 속편한 소리다.
하지만 참 강진호답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세계의 경계고 나발이고 그런 말을 늘어놓고 있는 게 속편한 소리다.
이현수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일단은 지금 이 일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겠죠.”
“아는군.”
그런데 왜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놨냐는 핀잔이다. 이현수가 어색한 얼굴로 뭔가 말을 하려는 찰나였다.
강진호가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
이현수가 숨을 죽이고는 강진호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스락.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평범한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겠지만, 그래도 무학을 익혀 오감이 예민해진 이현수의 귀에는 작지만 똑똑히 들렸다. 아마 강진호의 귀에는 코끼리가 걸어오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자…….’
이현수가 낮게 숨을 내쉬었다.
적인가.
아니면…….
조금 기다리자 어둠 속에서 검은 사람의 형상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현수가 주먹을 꽉 쥐고는 다가오는 이를 노려보았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을 밟는 소리가 꽤나 크게 들릴 즈음이 되어서야 검은 그림자가 완연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
이현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장필재 씨?”
“쉿.”
장필재가 양손으로 입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중국에 정보원이 장필재 씨밖에 없습니까?”
“중국에 정보원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 신뢰할 수 있는 이는 몇 없죠.”
장필재가 긴장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손짓했다.
“일단은 따라오십시오.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