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62
#1361.
북진하다 (1)
“갑시다!”
이현수가 재빠르게 앞으로 튀어나갔다.
하지만 그 발은 이내 멈출 수밖에 없었다. 등 뒤에 따라붙는 인기척이 없다는 걸 깨달은 이현수가 다급하게 뒤를 돌아봤다.
“뭐 해!”
“어…… 어어, 어?”
장필재가 혼이 나간 표정으로 웅얼댄다.
평소였다면 놀란 장필재를 달래고 납득시켰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이현수가 장필재에게 달려들어 주먹으로 머리통을 후려쳤다.
쿵!
“이 병신 새끼가!”
그러고는 모로 휘청이는 장필재의 멱살을 잡고 확 당겼다.
이현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장필재는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이현수의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이끌려 왔다.
‘빌어먹을, 우리는 한 방에 뒈진다고.’
이미 거의 정리가 된 전장이지만, 위험도가 없지는 않다. 쓰러진 이들 중에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이도 있을 수 있고, 원거리의 저격수는 아직 여전히 이쪽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강진호야 저격이 날아들든 기관총이 불을 뿜든 위험할 게 없겠지만, 이현수나 장필재는 아니다. 눈먼 총알 한 방에도 그들은 여기서 생을 마감할 수 있다.
그러니 달릴 수밖에.
이현수의 눈에 지프를 확보한 강진호의 모습이 들어온다. 마기를 걷어낸 강진호가 태연한 얼굴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까지…….’
그 순간, 강진호가 움직였다.
“어?”
카앙!
저 멀리 있던 강진호가 이현수의 바로 앞에 나타난다. 쭉 뻗은 적루와 날카로운 금속음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말해준다.
“저격입니까?”
“하나 더.”
카아앙!
적루를 휘둘러 날아오는 탄환을 튕겨낸 강진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느려.”
“이게 최선입니다! 이게!”
“음…….”
강진호가 이현수를 호위하며 지프로 향했다. 이현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저격은 더 이상 날아들지 않았다.
“으아아! 씨발!”
지프 바로 앞까지 장필재를 끌고 온 이현수가 축 늘어져 있는 장필재를 던지듯 내동댕이쳤다.
쾅!
지프 문에 처박힌 장필재가 튕겨 나와 바닥을 한 번 구르고는 멍한 눈으로 고개를 든다.
“운전해, 이 새끼야!”
장필재가 지프와 이현수를 번갈아 바라본다.
“후…….”
이현수가 장필재의 멱살을 움켜잡고는 턱을 한 번 후려쳤다.
“…….”
“정신 못 차리네, 이 새끼!”
두어 번 더 장필재를 후드려 깐 이현수가 그의 목을 확 당기며 이를 갈았다.
“잘 생각해. 여기서 한 번만 더 어리바리 타면 두고 간다. 지금 나는 내 목숨 지키기도 빠듯한 사람이야. 너까지 신경 써줄 여력은 없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장필재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지, 목이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움직여!”
장필재가 다급하게 차에 오르고는 시동을 걸었다. 이현수가 보조석에 올라타자, 강진호가 뒤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회주님!”
“음.”
강진호가 훌쩍 뛰어올라 지프의 뒷좌석에 오른다. 그러자 장필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가아아아아앙!
지프의 바퀴가 과격하게 공회전하더니, 이내 쏜살처럼 앞으로 치고 나간다.
미처 정비되지 못한 바닥 때문에 차가 무시무시하게 요동쳤지만, 그 정도 흔들림에 신경을 쓸 사람은 여기에 없다.
“꽉 잡으십시오! 달립……. 이 씨발! 문이 닫혔잖아!”
“그대로 가! 그대로!”
“문이 닫혔다구요! 저기, 저거 군용 트…….”
파아아아앙!
그 순간, 장필재를 당황하게 만든 군용 트럭이 반으로 갈리며 좌우로 튕겨 나간다.
“…….”
뻥 뚫린 입구를 본 장필재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뭐가 있다고?”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필재가 이를 악물고 액셀을 끝까지 내리밟는다. 지프가 뒤집어질 듯 요동치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빌어먹을!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강진호들을 태운 지프가 빈민가를 벗어나 도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갈겨!”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이들이 뒤늦게 총격을 가하지만, 지프는 금세 그들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 * *
“이 잡종 새끼들아! 잡아! 잡으라고! 당장!”
뤄자오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쳤다.
‘안 돼. 절대로 저놈들을 빠져나가게 두어서는 안 된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배어 나온다.
그는 왕룽에게 반드시 강진호를 잡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강진호를 잡지 못할 시에는 목을 내놓겠다는 말도 했다.
왕룽의 앞에서 한 말은 얼버무릴 수 없다. 만약 그가 여기서 강진호를 놓친다면, 두 가지 선택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하나는 스스로 깔끔하게 목숨을 끊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왕룽에게 잡혀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겪으며 비참하게 죽는 것이다.
어느 쪽도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 지옥 같은 양자택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기서 강진호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빌어먹을, 여기서 더 뭘 하란 말이냐!’
숲 지형에서 강진호를 잡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민가에 병력을 끌고 들어왔다. 그런데도 강진호에게 조그만 타격조차 주지 못했다.
‘아니다. 여기까지는 어차피 예상했어!’
심대한 타격을 주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가 원한 건 강진호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정도의 타격이다. 그것조차 실패했다는 건 뼈아프지만, 일단 그가 원하는 시나리오까지는…….
“실패했네요.”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뤄자오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그러고는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눈으로 고개를 천천히 뒤로 돌렸다.
꽤나 순진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너…… 너?”
“부참모장께서는 결과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소장님께서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에 실패한 모양이시군요.”
뤄자오의 눈이 폭풍을 만난 가랑잎처럼 흔들렸다.
“너, 누구야?”
“이런.”
사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가 소장님이라면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할 시간에 차라리 빨리 머리를 갈겨 버리겠습니다. 그럼 좀 더 편하게 죽으실 수 있지 않을까요?”
뤄자오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바보가 아니다. 이 사내가 왕룽이 보낸 자객이라는 것쯤 짐작하지 못할 리가 없다.
“아, 아직 아니다!”
“아직? 뭐가 더 있다는 겁니까?”
“그렇다! 내 작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내가 세운 계획일 뿐이다.”
“변명이 조잡한데…….”
“변명이 아니다! 강진호는 개인화기로는 잡을 수 없다. 그렇다면 강진호를 개활지로 이끌어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화력을 동원할 수 있다!”
“계속해 보십시오. 소장님이 말씀하시는 개활지가 도로 한가운데는 아니겠지요?”
“맞다.”
“……거참.”
사내가 피식피식 웃는다.
“그래서 도로로 끌어내 뭘 하겠다는 겁니까? 폭격이라도 하겠다는 발상은 아닐 테고.”
“헬기를 동원한다.”
“……헬기?”
뤄자오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강진호라고 해도 대전차미사일을 맞고도 살아날 수는 없겠지! 개활지로 끌어낼 수만 있다면 가능하다. 죽을 때까지 몇 발이고 처먹이면 된다!”
“그러니까…….”
사내가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통제되지 않은 도로, 인민들이 그대로 다니고 있는 도로에 대전차미사일을 퍼붓겠다는 겁니까?”
“다소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강진호를 잡으려면 이 정도 희생은…….”
짝. 짝. 짝. 짝.
절도 있게 들려오는 박수 소리에 뤄자오가 입을 닫았다. 사내가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좋은 작전입니다. 소장께서 수립했다기에는 무척 창의적이군요. 상상도 못했습니다.”
비꼼, 그리고 비웃음.
저 박수와 말에 담겨 있는 것들을 모를 뤄자오가 아니지만, 지금은 일단 시간을 버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다음 작전까지 지켜보라. 그러고도 내가 강진호를 죽이지 못한다면, 그때는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나는 아직 야전에 있다. 작전 중인 사령관의 목은 주석도 건드리지 못하는 법이다.”
“아, 그 말도 맞습니다. 물론 그렇죠.”
사내가 빙그레 웃었다.
굳어 있던 뤄자오의 표정이 살짝 풀린다. 일단 이 작전을 시행할 수만 있다면…….
“헬기는 오고 있습니까?”
“물론이다. 이미 불러뒀다! 그리고 알아서 강진호를 추격할 것이다.”
“아, 그러네요. 목표물은 이미 설정됐고, 화력은 있는 대로 퍼붓고?”
“그렇다!”
“소장, 하나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묻는 겁니다만…….”
“……뭔가?”
사내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럼 소장은 왜 필요한 겁니까?”
“……뭐?”
파아앗!
그 순간, 사내가 손을 휘둘렀다. 벼락처럼 휘둘러진 사내의 손이 멈췄을 때, 그 위에는 조금 전까지 그와 대화를 하던 뤄자오의 목이 들려 있었다.
털썩.
머리를 잃은 몸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사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뤄자오의 머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바닥으로 툭 던졌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머리를 보던 사내가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는 혀를 찼다.
“나는 이래서 말귀를 못 알아먹는 사람이 싫다니까.”
헬기?
대전차미사일?
평범한 사람조차 자세히 보면 탄두가 보일 정도로 느려 터진 미사일로 강진호를 잡는다?
차라리 벼락이 떨어져 강진호를 죽여주길 기도하는 쪽이 성공 확률이 높다.
“이 머리로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기어 올라왔지?”
사내가 고개를 내젓고는 몸을 돌렸다.
이걸로 제71특수여단은 더 이상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사내가 전화기를 꺼내 들고는 전화를 걸었다.
“예, 부참모장님. 네, 당연히 놓쳤습니다. 그 머저리요? 지금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데……. 잠시만요. 머리가 너무 멀어져서 통화시켜 드리기 어려울 것 같은데……. 네네, 그렇죠. 굳이 뭐…….”
사내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어간다.
“소장이 헬기를 요청했다는군요. 제 생각인데, 그건 돌리는 게 낫겠습니다. 괜히 일만 커지니까요. 도로 한가운데서 마왕이 헬기를 썰어 대는 모습이 꼭 보고 싶기는 한데…… 그거, 영화에서도 못 볼……. 네, 알겠습니다. 추격하죠.”
사내가 전화를 끊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가, 농담을 모르네.”
사람은 위트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말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소장을 좀 더 살려줄 걸 그랬다. 말하는 족족 사람의 배를 잡게 만드는 유머 감각은 어디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거니까.
“자, 그럼 이제 밥값은 해야 하는데…….”
사내의 시선이 강진호의 지프가 향한 쪽으로 돌아갔다.
“좀 무서운데.”
너스레가 아니라 그는 진심으로 강진호가 두렵다. 그의 눈으로 본 강진호는 그야말로 마(魔)의 화신. 악마의 현신이라 불러도 될 만한 자였다.
정면으로 붙는다면 뼈도 추리지 못한다.
하지만 굳이 정면으로 붙을 필요도 없다. 그는 군인. 무인이 아니다. 무인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게 목적이지만, 군인은 명령을 수행하는 게 목적이다.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
“추격해.”
스스스슷.
사내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바닥에서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솟아오르더니 가공할 속도로 앞으로 쏘아졌다.
사내가 그림자가 날아간 방향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