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64
#1363.
북진하다 (3)
부우우우웅!
과격하게 도로를 달리던 지프의 속도가 조금 줄어들었다. 지프의 상태를 고려하여 속도를 줄인 장필재가 슬쩍 시선을 올려 뒷좌석에 앉은 강진호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강진호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 재빨리 눈을 깔았다.
꿀꺽.
마른침이 절로 넘어간다.
‘아니, 미친! 저런 사람이면 미리 말을 해줘야 할 것 아냐!’
분위기 파악 못하고 우육면이나 탐하던 인간이 저런 괴물이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중국에 있느라 강진호라는 이름조차 이번에 처음 들은 장필재로서는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총알이 안 박히는 사람이라니.
생전 듣도 보도 못했다.
아니, 강진호는 겨우 그런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장필재는 오늘 본 광경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죽어서도 잊지 못할 수도 있다.
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운전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장필재는 필사적으로 핸들을 움켜잡았다.
“바꿔줍니까?”
“아, 아닙니다.”
이현수가 장필재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장필재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를 이현수가 아니다.
‘충격이었겠지.’
강진호가 싸우는 걸 눈으로 본다는 건, 평범한 이들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일 것이다. 그나마 이 정도에서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되레 장필재의 대단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장필재 씨.”
“예? 아…… 아, 예!”
“정신 좀 차리세요.”
“죄, 죄송합니다.”
장필재가 마른침을 삼켰다.
“제가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보통은 다 처음이지.
그래도 대화를 조금 나누니 긴장이 풀린다는 듯 장필재가 먼저 운을 뗐다.
“무인이란 이들은 다 회주님 같은 겁니까?”
“설마요. 그랬다가는 세상이 남아나겠습니까?”
격하게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저런 사람이 몇 명만 더 있었다면 세상이 뒤집혀도 벌써 몇 번은 뒤집혔을 것이다.
“회주님이 특별한 겁니다. 비슷한 수준에 근접한 몇몇은 있지만,감히 회주님과 비견될 수 있는 사람은 한국에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몇 없지.
“그, 그렇군요. 그럼…….”
이종욱의 그 조심스러운 언행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도 단 하나만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저, 그럼 회주님께서는…….”
“네.”
“힘과 권력을 동시에 갖추신 분 아닙니까?”
“그렇죠.”
“그런데 왜…….”
“…….”
이현수의 볼이 살짝 떨렸다.
그의 귓가에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니, 그게 상황이……. 네, 물론 그렇죠. 네……. 아니, 전화를 안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지금까지…… 어, 네. 네, 죄송합니다. 네……. 아뇨, 아니죠. 그래야죠. 제가 그랬어야죠. 네.”
이현수가 슬쩍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귀 막으세요.”
“……네.”
뭘 어쩌겠는가.
대대로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던 독재자도 잔소리에서 벗어난 적은 없는 법이다.
“석가모니께서 어떻게 인간으로 태어나 부처가 되셨는지 아세요?”
“글쎄요.”
“결혼해서 그렇습니다.”
“…….”
“나는 안 하려구요.”
“저두요.”
조금 전에 사람을 두부처럼 썰어 넘기던 강진호와 지금 전화를 받으며 쩔쩔매고 있는 강진호가 동일 인물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하기야 따져 보면 암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에서 우육면이나 흡입하던 강진호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지.
장필재가 슬쩍 룸미러로 강진호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식은땀?’
강진호의 이마에 맺힌 습기가 보인다.
장필재는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운전에 집중했다.
그리고 강진호는 지금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사람을 중국 한복판에다 그냥 던져 놓고! 네? 이게 할 짓이에요?]“죄, 죄송합니다.”
[몸은?]“네?”
[다친 데는 없냐구요!]“아, 멀쩡합니다.”
[어디 생채기 하나 났어봐. 머리채 다 뽑아버릴 거야!]“…….”
아직 대머리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강진호가 슬쩍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확실히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진짜 괜찮아요.”
[그럼 왜 연락을 안 해!]와…… 이게 왜 이렇게 연결이 되나? 빠져나갈 구석이 없네.
수화기 너머로 씩씩대는 숨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심호흡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조금 차분해진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괜찮아요.”
[진호 씨.]“네?”
[나는 그 중국 애들이 보호해 주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여기 숙소도 엄청 좋고, 밥도…… 내가 아직 밥은 안 먹어봐서 잘 모르겠는데…… 괜찮겠지, 뭐.]역시나 홍왕이 최연하를 보호한 모양이다.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일단 마음이 놓인다.
[애들이 좀 개념이 없어 보이기는 하는데, 그래도 친절하게 굴려고 노력 중인 것 같으니까 내 걱정 안 해도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얘들 말로는 한국에 무슨 일이 있다는데.]“설명하기 쉽지 않아요. 그런데 곧 해결될 겁니다.”
강진호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그는 차이커창이 최연하들을 한국으로 보낼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최연하들이 한국으로 갔다가 인질이 될 수 있다는 생각까지는 못했다. 이건 차이커창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빨리 해결하라고 할 생각 없어요. 위험하면 하지 마요. 나 그냥 여기 살아도 되니까. 중국 음식도 생각보다 먹을 만하고, 볼 것도 많아요.]강진호가 아무 말 없이 살짝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 이제부터 중국 스케줄도 많아서 여기 몇 년 산다고 별일 없어요. 돈도 많이 버는데 뭐가 걱정이야. 그러니까 무리하지 마요. 그러다가 다치지 말고!]“걱정 안 해도 됩니다.”
[오지랖인 거 알아요. 아는데도 신경 쓰이니까 그러는 거잖아.]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여하튼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처리할 테니까.”
[금방 안 해도 된다니까! 말귀를 못 알아먹나!]“……천천히 처리할게요.”
[네. 절대 다치지 마요. 알았죠?]“네.”
강진호가 슬쩍 앞쪽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그럼 끊습니다. 또 전화할게요.”
[네.]전화를 끊은 강진호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오랜만이군.’
이렇게 속에서 뭐가 끓는 느낌을 받는 건 말이다.
“홍왕이 보호하고 있다는 겁니까?”
“그렇다는군.”
“……진짜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가 안 가네요.”
“그럴 거야.”
홍왕의 사고방식은 현대인과는 다르다. 오히려 과거의 중원인들과 닮아 있었다.
‘이 시대에 협의지사라니.’
웃기는 소리다.
하지만 그 웃기는 소리가 지금 강진호의 상황을 조금은 편히 만들어주고 있었다.
“고생하겠네요.”
“그렇겠지.”
“아니요. 차이커창 말입니다.”
“…….”
어?
어…… 그렇……겠지?
음…….
뭔가 부정하거나 화를 내야 할 상황 같은데, 부정할 수가 없다.
괜히 겸연쩍어진 강진호가 장필재를 보며 말했다.
“어디로 갈 계획이지?”
“국경을 넘어 블라디보스토크로 갈 겁니다.”
“러시아?”
“서해 쪽은 위험합니다. 배를 타는 건 더더욱 위험하죠. 동해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은 블라디보스토크 쪽에 개인적으로 마련해 놓은 선이 있으니, 그쪽으로 가서…….”
장필재가 살짝 머뭇거렸다.
뒤에 나올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한 이현수가 피식 웃고는 선수를 쳤다.
“밀항을 하겠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당당한 한국인이 한국으로 가는데 밀항을 해야 하는 상황. 그 상황을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 괜히 이들의 분노를 자극할 수 있으니까.
“밀항이라…….”
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중국으로 올 때는 위장 신분으로 오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위장 신분으로 넘어간다라…….
“이건 웬만한 정보원들도 못해볼 경험 같은데.”
“좋은 경험이군.”
강진호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런 만큼 저들에게도 좋은 경험을 하게 해줘야지.”
“물론입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저들’이 누군지 아는 장필재로서는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이현수가 휴대폰을 들었다. 그러고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전화를 받고는 소리쳤다.
“사부님!”
[로드께서는?]“무사하십니다.”
[다행이로군.]“어떻게 된 겁니까?”
그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위긴스의 전화였다. 이현수가 조금 안도한 듯 시트에 등을 기댔다.
[억류되어 있었다. 이제야 한국으로 돌아온 참이야. 거의 해안에 닿았어.]“억류요? 누가 위긴스 님을 억류한단 말입니까?”
[글쎄, 저들을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모르겠군. 국적기를 달지 않은 군함이 주변을 포위하고 움직이지 않더군. 덕분에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공격하진 않았구요?”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이더군. 오로지 우릴 해상에 묶어두는 게 목적이었던 모양이다. 싸워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바다 위에서는 무리지.]“잘 판단하셨습니다.”
[로드께서 무사하셔서 다행이다. 상황은 짐작하고 있겠지?]“예.”
이현수가 얼굴을 굳혔다.
[저들이 적극적으로 우릴 공격하지 않은 걸 보면, 최악의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특정 몇몇의 의도라고 봐야겠지.]“한국 해군이라 확신하시는 겁니까?”
[글쎄, 내가 함부로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공해에는 누구도 들어올 수 있지. 하지만 갑판에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느냐?]“……그렇죠.”
[지금 위치는?]“베이징에서 벗어나서 위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하얼빈을 경유하여 블라디보스토크로 가 밀항할 생각입니다.”
“예?”
[서해에 군함이 움직였다. 그 말은 동해에도 군함이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지. 그리고 우리와는 달리, 로드나 네가 탄 배는 포격을 피할 수 없을 거다. 그만한 위험은 감수하고서라도 목적을 달성할 생각일 테니까.]이현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강진호는 강하다. 하지만 아무리 강해도 망망대해에 빠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으십니까?”
[바다는 위험한 곳이지. 결국 발이 땅에 닿는 곳으로 움직여야지. 그쪽의 인원은?]이현수가 힐끗 장필재를 보고 입을 열었다.
“셋입니다.”
[조력자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하지만 때로는 방해가 되기도 하는 법. 세 사람이라면 미완성된 마법진으로 왕복할 수 있는 거리는 최대 100㎞ 정도다.]“그 말은…….”
[100㎞까지 접근해야 한다는 소리지. 어딘 줄 알겠나?]알지.
당연히 알지.
그런데 그거…….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시겠죠?”
[물론 제정신이다. 최적이지. 한국의 영향력이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닿지 않고, 심지어 중국도 함부로 병력을 끌고 들어갈 수 없지. 그리고 CCTV처럼 거슬리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최적의 도주로가 아닌가.]아니, 물론 그렇지. 그렇기야 한데…….
이현수가 황당함을 한껏 담아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저희더러 북한으로 가라는 소리십니까?”
강진호와 장필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북한?”
“북한?”
동시에 터져 나온 경호성에 이현수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이 양반도 미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