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67
#1366.
증명하다 (1)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장필재는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을 굴렀다.
터지는 폭음이 그의 고막을 찢어버릴 듯 달려든다. 동시에 머리가 웅웅 울리고 뱃속이 뒤집힌다.
‘다 미쳤어!’
세계가 뒤섞인다.
장필재 역시 평범한 세상을 사는 사람은 아니다. 그가 사는 세상은 세계의 이면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정보를 빼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게 장필재의 삶이었다.
하지만 지금 장필재의 눈에 펼쳐진 광경은 그런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섰다.
‘이 미친 새끼들, 도로 한중간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는 시야에 검은 연기와 불꽃이 들어온다. 영화 촬영도 아니고, 현실에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바닥에 처박혀 데굴데굴 굴렀음에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이나 지금의 상황이 그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었다.
뒷감당은?
나라 한복판에서 대전차미사일을 쏜 후폭풍을 정말 감당할 수 있나?
여기가 중국이라서?
아니.
아무리 중국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통제가 잘되는 국가라고 하더라도, 완벽하게 인민을 짓누를 수는 없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만한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했단 말인가?’
저 강진호를?
우드드득!
뼈가 부러지는 느낌이 난다.
이제는 과연 전신에 멀쩡하게 붙어 있는 뼈가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끄으…….”
장필재가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누워버리고 싶은 심정이야 간절하지만, 이대로 널브러졌다가는 정말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우둑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 장필재의 눈에 초토화된 도로의 모습이 들어왔다.
“허…….”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온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하기야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한 지는 이미 꽤 됐다.
강진호를 만난 그 순간부터 그의 일상이 비일상의 영역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회주님!”
멍하니 있던 장필재의 의식을 일깨운 것은 이현수의 커다란 고함 소리였다.
‘강진호 씨?’
그제야 저 폭염 속에 강진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없을 수도 있겠지.’
전차의 장갑도 찢어버리는 대전차미사일이다.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 그 폭발에 휘말리고도 살아남는다?
아무리 무인이고, 아무리 강진호라고 해도…….
그 순간, 불어온 바람에 지옥의 문처럼 검게 불타던 연기가 천천히 걷혀졌다.
“…….”
장필재가 두 눈을 부릅떴다.
아직 채 불이 꺼지지 않은 도로 위에 강진호가 우뚝 서 있다.
‘부상? 아니…….’
양팔로 얼굴을 감싸고 있던 강진호가 두 손을 내리더니, 몸에 붙은 불을 손으로 털어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말이 되나, 저게?’
어떻게 사람이 저런 폭발 속에서 버틸 수가 있는가. 아무리 강진호가 한국 최고의 무인이고 인간이라기보다는 괴물에 가깝다지만, 저 정도 화력이면 괴물을 잡고도 남는다.
그런데 저 사람은 괴물조차 버티지 못할 폭발을 그 몸으로 버텨낸 것이다. 그것도 마치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혈마조차 눈을 크게 뜨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투투투투투투!
그 순간, 어둠을 뚫고 다섯 대의 헬기가 허공에 나타났다. 프로펠러가 만들어내는 바람이 주변을 휩쓸었다.
‘이거…….’
장필재는 아마 지금 이 광경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 위에 우뚝 서 있는 한 남자.
그리고 그 남자를 위협하듯 움직이는 다섯 대의 헬기.
‘영화에서도 이런 광경은 못 보겠지.’
너무 인상적이어서 지금의 상황을 잊어버릴 정도다.
“그래도 사람인데…….”
이 말은 장필재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입을 벌리고 강진호를 바라보는 혈마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 어…… 음.”
혈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천시적종. 그냥 빤한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좀 질린 것도 사실이다.
헬기로는 강진호를 잡을 수 없다. 대전차 미사일의 화력이 개인화기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건 사실이지만, 그 속도는 절대 탄환에 미치지 못한다.
눈으로 보고 총을 피해 버리는 사람에게 몇 발의 미사일을 날리든 맞을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맞추기만 한다면 잡을 수 있다. 어떻게든 맞추기만 한다면.
그게 혈마의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혈마는 자신의 계산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괴물은 괴물이군.’
손에서 식은땀이 배어난다.
“이래서 오기 싫었던 건데.”
혈마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일생에 단 한 번도 상대해 보지 못한 괴물.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친인처럼 느껴지는 마교의 신화가 지금 그의 눈앞에 있다.
탁탁.
강진호가 어깨에 붙은 불을 털어낸다.
그러고는 무심한 눈으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더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런 상황에?’
혈마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천천히 연기를 빨아들였다.
“후우.”
낮은 숨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온 연기가 헬기가 만들어내는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강진호는 헬기 따위는 관심이 없다는 듯 혈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재미있는 짓거리를 하는군.”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언제나 영활하게 움직이던 혈마의 혀가 꽤 뻣뻣해졌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혈마는 지금 제대로 당황하는 중이었다.
“생각해 보면 너희는 예전에도 그랬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화포를 동원한다거나 독을 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으니까.”
혈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그래서 비겁하다 말할 생각이십니까?”
“…….”
“당신이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는지 모르겠군요. 무엇보다 살아남는 게 우선입니다. 방법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거죠.”
“딱히 비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강진호가 담배를 깊게 빨고는 피식 웃었다.
저들의 사고방식은 강진호와 그리 다르지 않다. 강진호 역시 누군가와 목숨을 두고 싸우는 데 있어 비겁을 논하는 게 얼마나 하찮은 일인지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가 지금 하고픈 말은 그런 게 아니었다.
“다만, 모순이 있지.”
“……예?”
“살아남고 싶다면…….”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며 하얀 이가 드러난다. 그 야수를 떠올리게 만드는 미소에 혈마가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났다.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았어야지.”
적루가 허공을 찢었다.
파아아아앙!
귀를 터뜨릴 것처럼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적루에서 뿜어진 마기가 헬기를 덮쳤다.
카가가가가각!
쇠를 강제로 뜯어내는 것과 같은, 거친 굉음!
그 굉음의 결과는 너무도 간명했다. 정확하게 반으로 찢겨진 헬기가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강진호가 움직였다.
어둠과 동화된 강진호가 혈마를 향해 돌진했다. 얼마나 빠르게 움직였는지, 그 몸이 쭈욱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막아!”
혈마의 좌우측 바닥에서 검은 그림자가 솟아오르더니, 강진호를 막아서며 붉은 손톱을 휘둘러 왔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고도 강진호는 전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움을 감출 수 없다는 듯 더 크게 웃으며 적루를 움켜잡았다.
서걱!
잘려 나간다.
마기를 두른 적루는 세상 모든 것을 베어낸다. 그것이 쇠든, 인간이든,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괴물이든.
적루는 구분없이 모든 것을 베고, 찢고, 갈아버린다.
날카로운 굉음과 함께 적루와 청루가 강진호의 앞을 막아선 흑강시들을 사분오열시켰다.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두른다.
강시들을 육편의 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강진호가 검면째 검을 휘둘러 풍압으로 육편들을 쳐 날렸다.
후두두둑!
바닥에 떨어진 육편들이 꿈틀댄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확실히 대미지를 입혔는지 조금 전처럼 회복하지 못한 채 그저 꿈틀댈 뿐이었다.
‘몸이 강철보다 강할 텐데…….’
흑강시의 위력은 이미 증명이 됐다. 그 강도는 강철을 간단히 뛰어넘는다. 하지만 강진호의 검 앞에서는 종잇장만도 못하게 잘려 나간다.
혈마는 그 광경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흑강시를 날려 버린 강진호가 그를 향해 걸어온다.
얼굴에는 여전히 보기만 해도 섬뜩해지는 미소를 담은 채 말이다.
두근.
혈마가 자신의 가슴 어림을 꾹 눌렀다.
‘공포라는 건가?’
낯선 감각이다.
그의 감정은 거세되었으니까.
하지만 강진호의 존재는 그에게 오랜 세월 잊고 살아온, 공포라는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혈마의 눈에 핏발이 섰다.
“재미있는 장난감이지만…….”
그그그그극.
강진호가 적루로 바닥을 긁으며 천천히 걸어온다.
“이미 예전에 많이 봤지.”
혈마는 강진호를 상대하는 게 처음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이미 과거에 혈교를 상대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기괴한 괴물들.
정신을 농락하는 환상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상대하는 방법은 너무도 간단하다. 그저 압도적인 힘으로 짓눌러 찢어버리면 그만이다.
한 번 베어서 일어난다면 두 번 베고, 두 번 베어서 일어난다면 수천 갈래로 갈라 버리면 된다.
“다른 건 없나?”
“…….”
혈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마교를 경계하라. 지금의 마교는 그저 쓰레기일 뿐이지만, 적천마존이 다시 강림하는 순간, 마교는 과거의 영화를 되찾을 것이다.”
중얼거리듯 말을 끝낸 혈마가 손을 들어 얼굴을 훑어 내렸다.
“고리타분한 영감들의 노파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걸 눈앞의 존재가 증명하고 있었다.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혈마 역시 허락을 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듯 제멋대로 묻기 시작했다.
“당신은 이 시대에서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
강진호의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혈마가 양손을 벌렸다.
“보입니까?”
“…….”
“지금은 이런 시대입니다.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국가를 상대로는 싸울 수 없습니다. 과학을 상대하기에 무학이라는 건 너무도 미력하죠. 그런데 당신은…… 아니, 당신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시대에 무학을 익히고 국가와 대항하려 하는 겁니까?”
혈마의 목소리에 진심이 묻어났다.
그저 시간을 끌려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강진호의 생각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강진호는 딱히 돌려줄 말이 없었다.
“그래서?”
“……예?”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
혈마의 눈이 흔들렸다.
“착각하지 마. 나는 그런 데 관심 없어. 시대는 알아서 흐르겠지. 나는 시대를 짊어지는 사람도 아니고, 무인들의 미래를 만들어주는 사람도 아니야. 내 원칙은 간단하지.”
그그그극.
강진호의 검이 바닥을 긁었다.
판결을 내리듯이.
“날 건드리는 놈은 죽인다.”
강진호의 미소가 짙어졌다.
“간단하지?”
“…….”
혈마의 얼굴이 석상처럼 굳어졌다.
어쩌면 모두가 이 강진호라는 사람을 잘못 판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억해 둬. 그게 네가 죽는 이유야.”
그 순간, 강진호의 발끝에서 검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마기로 전신을 휘감은 강진호가 지옥의 악귀처럼 혈마를 덮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