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73
#1372.
돌아오다 (2)
“그래서…….”
김명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놓쳤다고?”
국정원장 최기남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 놓쳤다는 말을 하기에는 이릅니다, 총리님.”
김명찬이 표정을 풀지 않자 최기남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들이 갈 곳은 빤합니다. 하얼빈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고 있을 겁니다.”
“……블라디보스토크?”
“예. 그곳에서 밀항을…….”
“확실한가?”
“예, 확실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종욱이 만들어놓은 선을 확인했습니다. 정확하게는 장필재가 구축한 선 같지만, 이종욱에게…….”
“이보게, 국정원장.”
“예, 총리님.”
“자네에게서 확실하다는 말을 들은 게 이번이 몇 번째인 줄 아는가?”
“……죄송합니다.”
최기남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기본적으로 국정원장이라는 자리는 총리보다 지위가 낮은 건 분명하지만, 이렇듯 총리의 면박을 받을 만한 위치는 아니었다.
임기가 보장되는 선출직과 다르게 임명직은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자리고, 국가의 기밀을 다루는 국정원이 임명직에 휘둘리게 되면 제대로 업무를 볼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게 관례인 국정원장과 총리지만, 김명찬은 보통 총리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복심(腹心)이라고까지 불리던 이다. 가진 권력이 이전까지의 총리와 같을 수 없다.
“군을 동원했다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막을 수 없었단 말인가?”
최기남이 대답 없이 입을 다물었다.
무척이나 무례한 짓이지만, 김명찬은 그런 최기남의 무례를 지적할 수 없었다.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기에는 그의 머리가 너무도 복잡했다.
“인민군을 동원하고도 단 두 사람이 하얼빈까지 오는 걸 막지 못했단 말인가…….”
김명찬의 얼굴이 점점 더 굳어졌다.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던 김명찬이 고개를 들어 최기남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대책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국경을 철통같이 방비할 것입니다.”
“베이징에서 하얼빈까지의 이동도 막지 못한 이들이 그 넓은 국경을 방어할 수 있다고? 평범한 이들도 국경을 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텐데, 그 강진호가 국경을 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건가?”
“……물론 저 역시 막아낼 가능성이 높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막아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그들의 경로를 파악하는 겁니다.”
“계속해 보게.”
“그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결국 해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바다 위에서는 무인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김명찬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니까…… 유유히 바다로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격침시키겠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 순간, 김명찬이 책상을 내려쳤다.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나?”
김명찬의 얼굴이 노기에 휩싸였다.
“그런 빤한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는 놈들이었으면, 죽여도 벌써 죽였어!”
“모든 변수를 감안하고 있습니다. 배가 탈취당할 것을 감안하여 주변으로 배를 접근시키지 않고 오로지 잠수함만으로 작전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잠수함 역시 해군의 잠수함이 아니라 중국의 잠수함을 이용합니다.”
“…….”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해로로 접어드는 순간, 그들은 죽은 목숨입니다. 지금 파악해야 할 것은 그들이 동해를 이용하느냐, 서해를 이용하느냐일 뿐입니다.”
김명찬이 짜증이 잔뜩 눈으로 최기남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도리가 없지.’
사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강진호를 상대하는 데 국군을 동원할 수 없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중국은 무인들을 상대하는 데 인민군을 동원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겪어온 역사가 있기에 한국에서는 군이 움직인다는 것이 타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김명찬이나 최기남 같은 권력자에게는 더더욱.
그럴 권한도 없지만, 만약 김명찬이 어떤 의도로든 군을 움직이려 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채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온기도 들지 않는 구치소에서 재판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타인의 손을 빌려야 하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이 답답함을 해결할 방법은 요원했다.
“국정원장.”
“예, 총리님.”
“그가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
“…….”
“자네와 내 목숨 따위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닐세.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물론입니다.”
김명찬의 얼굴에 짙은 수심이 머물렀다.
“러시아 쪽은 접촉을 했나?”
“……중국 쪽에서 접촉하고 있을 겁니다.”
김명판이 피식 웃고 말았다.
“우리 쪽의 일을 처리하는데 그저 중국이 하는 대로 손가락이나 빨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군.”
“죄송합니다, 총리님.”
“자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겠는가.”
김명찬이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야 김명찬이 낮게 입을 열었다.
“이보게, 국정원장.”
“예, 총리님.”
“자네를 믿겠네. 빈틈없이 처리해 주게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그래. 나가보게.”
“예. 그럼.”
국정원장이 관저를 빠져나가자 김명찬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찰칵.
담배에 불을 붙인 김명찬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꼴이 말이 아니군.’
며칠째 잠을 자지 못했더니 머리가 제대로 돌지 않는 느낌이다.
상황이 여기까지 흐르자,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어디서부터 틀어진 걸까?’
완벽한 계획이라 생각했다.
냉정하게 보았을 때, 대한민국의 힘으로 강진호를 제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가진 힘의 차이는 고려의 대상조차 아니다. 강진호를 제거하기 위해 얼마나 큰 힘을 동원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한국을 터전으로 잡고 살아가는 강진호를 제거할 방법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 한복판에 기계화사단을 불러들이고, 공군의 지원을 요청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만 생각해 보면 답은 금세 나온다.
특수부대?
제대로 총을 갈겨보기도 전에 전멸할 것이다. 김명찬의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 중국 인민해방군이 그 사실을 증명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강진호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첫 번째는 강진호를 제거할 만한 힘을 동원할 수 있는 조직.
그리고 두 번째는 그만한 힘을 동원하고도 문제가 되지 않는 장소.
‘이 이상은 없었어.’
김명찬이 담배 필터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은 단 하나밖에는 없었다.
중국, 그리고 인민해방군.
완벽한 장소와, 완벽한 힘을 안배했다. 정치적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이쪽에 손해가 가지 않는 협상을 해냈다.
결과만 나왔다면 이건 김명찬의 정치 인생 최대의 치적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뒤틀렸고, 지금 동아시아는 단 한 사람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형편이다.
뭐가 문제였을까?
김명찬이 흰 웃음을 흘렸다.
‘문제가 있었을 리가 있나.’
문제가 있다면 단 하나, 완벽하게 파악했다고 생각한 강진호의 힘이 그의 예상 이상이었다는 것뿐이다.
김명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 김명찬이 방 밖으로 나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간 김명찬이 경호원들을 물리고는 구석의 방으로 향했다.
“열게.”
“예.”
잠겨 있는 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수행원들이 따라 들어오려 하지만 김명찬은 손을 내저어 그들을 막았다.
“혼자 들어갈 테니, 따라오지 말게.”
“하, 하지만 총리님.”
“시키는 대로 하게나.”
“……예.”
손을 뻗어 문을 닫아버린 김명찬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어두운 방 한구석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이 들어왔다.
“식사는 입에 맞는가 모르겠군.”
구석에 웅크려 있던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누가 보면 안기부에 잡혀온 민주화 투사인 줄 알겠네. 고문한 적도 없는데 그런 퀭한 눈 하지 말게.”
“이게 고문이지, 별게 고문입니까?”
사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현대인에게 스마트폰을 빼앗고, 컴퓨터를 안 주고, TV와 라디오도 빼앗는 게 고문이 아니면 뭐가 고문입니까?”
“책은 줬지 않나.”
“너무 옛사람이시네요, 총리님. 요즘 애들은 그런 것 안 봅니다.”
김명찬이 피식 웃고 말았다.
대가 센 건지, 아니면 자포자기한 건지, 이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오는 모양이다.
“이보게, 이군.”
“예. 말씀하시죠, 총리님.”
김명찬이 가만히 이종욱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불편한 점은 없는가?”
“설마 불편한 점이 있겠습니까? 안가로 끌려가서 손발톱 뽑히고, 뼈마디 아작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삼생 동안 감사드려도 모자랄 판인데, 감히 불편함을 논할 수는 없지요.”
“시대가 어떤 시댄데.”
이종욱이 피식 웃었다.
“이런 시대라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삼십 년 전이었으면 지금쯤 닭 모이가 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부드러운 목소리에 뼈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걸 물어보고 싶어 여기까지 찾아오신 게 아닐 텐데, 바쁜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말씀하십시오. 뭐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김명찬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이종욱에게 던졌다. 이종욱이 말없이 담배를 받아 들었다.
“신종 고문입니까? 담배는 주고, 라이터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명찬이 이종욱에게 라이터를 던져 주었다.
이종육이 별말 없이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명찬에게 다가가더니, 공손히 담배와 라이터를 내밀었다.
김명찬이 담배 한 대를 물고는 입을 열었다.
“왜 그랬는가?”
“……뭘 말입니까?”
김명찬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천천히 뿜어졌다.
“내가 자네를 신뢰한 것은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닐세. 자네의 충성심과 애국심을 믿었기 때문이지.”
“…….”
김명찬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래, 그렇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네만은 배신하지 않을 거라 믿었네. 설사 최기남이 배신하는 한이 있어도 자네는 배신하지 않고 국가에 목숨을 바칠 거라 믿었네.”
이종욱이 대답 없이 담배를 빨았다.
“그런데 왜 배신했는가?”
좁은 공간이 순식간에 담배 연기로 가득 찼다.
뿌옇고 흐린 그 공간은 마치 그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답답하고…… 불쾌한.
“배신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오해가 있으시군요. 저는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말장난을 하자는 건가?”
“말장난은 총리님이 하고 계시죠.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총리님은 지금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를 겁니다.”
김명찬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강진호와 대적하지 않는 게 애국이라는 건가? 설마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이종욱의 입가에 비웃음이 어렸다.
“총리님.”
“말하게.”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만인의 존경을 받고, 제 목숨을 걸어서까지 대의를 추구하던 이들이 권력을 잡으면 변질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김명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