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76
#1375.
돌아오다 (5)
[이 멍청한 놈아!]귀를 찢는 고함 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터져 나온다. 휴대폰 스피커가 이만한 소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였다.
위긴스가 양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이 소리를 더 듣고 있다가는 고막이 터지고 말 것이다.
“일단 진정을 좀 하시고.”
[진정?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원래 진정 잘 안 하시잖습니까.
위긴스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나마 전화로 상대하는 게 다행이었다. 이 고함을 내지르고 있는 바토르가 지금 그의 앞에 있었다면 고막이 터지는 건 물론이고, 지금쯤 허공에서 탈탈 털리고 있었겠지.
[그런 일이 있었으면 주인을 몽골로 보냈어야 할 것 아니냐! 내가 그걸 위해 지금 몽골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멍청한 짓도 작작해야지!]“상황이 그게 아니란 말입니다.”
[상황?]“바토르 님이 몽골에 가 계신 건 홍왕계나 창왕계가 나섰을 때를 대비한 겁니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잖습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야!]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웬만하면 돌려 말하고 싶지만, 바토르가 영 말귀를 알아먹지 못했다.
“몽골 정부가 중국 정부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습니까?”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는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지.’
몽골의 무인계는 바토르의 말을 철저히 따를 것이다. 바토르는 초원의 전사. 몽골의 무인계에는 신화적인 존재니까. 하지만 몽골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초강대국에 협조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설프게 강진호가 몽골로 갔다가는 몽골 무인계와 정부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건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위긴스는 여기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바토르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그 정도도 감수하지 못할 것 같나?]“바토르 님이야 감수하시겠죠. 로드께서 그걸 감수하겠습니까? 그 성격에?”
[끄응.]“로드가 바보도 아니고, 그 정도는 생각하셨을 겁니다. 몽골로 가라고 이야기하면 그걸 따르겠습니까? 옆에 이 실장도 있잖습니까.”
[제기랄.]뭔가 때려 부수는 소리가 난다.
위긴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바토르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으니까. 강진호가 위기에 처했음이 확실한 상황인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그 무력감.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그래서 지금 주인은?]“북한으로 들어가고 계십니다.”
[북한 어디로?]“예?”
[북한에 들어가 있는 몽골인들이 있다. 접촉이 가능해. 내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은 없겠는가?]위긴스가 감탄성을 냈다.
조금 전까지 분노로 반쯤 이성을 잃은 바토르다. 그런데 순식간에 냉정함을 되찾고 있었다. 위긴스조차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냉정함을 찾지 못했는데 말이다.
‘여튼 이럴 때 보면 정말 대단한 분이라니까.’
“북한이라는 땅이 로드께 딱히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괜히 뭔가를 하려 했다가 저들에게 로드가 북한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으으음.]“일단은 이쪽에서도 최대한 연막을 피우는 중입니다. 러시아 쪽으로 움직이는 모션을 최대한 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벌면 로드께서 알아서 하시겠죠.”
[일단 알았다. 그럼 나는 최대한 빠르게 한국으로 복귀하지.]“입국 허가가 날지 모르겠습니다.”
[몽골에서 나가는 건 무리가 없다. 한국 공항에서 입국을 막는다면, 그때 도주하면 그만이다.]“예, 알겠습니다.”
[끊겠다.]전화가 끊기자 위긴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엉망진창이로군.’
그나마 아직은 모두가 이성을 붙들고 있다. 하지만 만약 강진호의 신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진짜 반도에서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겠군.’
위긴스에게는 미쳐 날뛰는 장민과 바토르를 막을 힘이 없다. 그 분노가 중국으로 향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지금 저들의 반응으로 볼 때, 그 분노는 한국 정부로 향할 게 분명하다.
최선을 다해 중재해 본다면 최악의 상황만은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과연 로드가 없어지면, 내가 그만한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회의적이다.
위긴스가 씁쓸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드, 성공하셔야 합니다.’
강진호의 죽음은 절대 강진호의 죽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총회의 붕괴를 넘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무인계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대폭발이 될 수도 있다.
위긴스가 초조한 얼굴로 위성전화를 바라보았다.
* * *
“여기 느낌이 좀 황량합니다.”
“…….”
이현수가 대답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니, 황량하다구요.”
“…….”
“말씀하신 거랑 좀 다른…….”
“장필재 씨, 제발 입 다물고 갑시다. 소풍 왔어요?”
장필재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이현수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라고 이럴 줄 알았나.’
북한을 종단한다고 했을 때, 이현수가 생각한 광경은 우거진 숲과 산을 은밀하고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에 들어서자마자 문제가 발생했다.
“뭔 산에 나무가 없어!”
“……제 말이 그겁니다.”
보이는 거라고는 민둥산뿐이다. 깊은 산 쪽은 그래도 나무가 우거져 있지만, 사람의 발길이 닿을 만한 곳은 시뻘건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덕분에 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자꾸만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연히 시간이 지체된다.
“여긴 아직 나무로 아궁이 뗀다더니, 그래서 그런 모양입니다.”
“쯧.”
이현수가 눈을 찌푸렸다.
현장에서 계획이 틀어지는 일이야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당황하지 않고 최선의…….
“계획대로 된다면.”
“…….”
강진호가 그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달렸다.
‘저 양반, 뒤끝 있네.’
그걸 여기서 꺼내나.
순간, 다른 생각을 해서인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여기서 잠시 쉬어 가죠, 회주님.”
“음.”
강진호가 두말없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현수가 배낭을 풀고 그 안에서 물을 꺼내 강진호와 장필재에게 내밀었다.
“나는 괜찮아.”
“저는 주십쇼.”
장필재가 물을 받아 들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으으.”
마치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한 듯한 반응이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겁니까?”
“앞으로 이틀은 더 달려야 합니다.”
“이틀이라니…….”
장필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해외 공작원이다 보니 가혹하다고 해도 좋을 만한 훈련을 소화했고, 중국에 있으면서도 꾸준히 운동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 이들이 산을 타는 속도는 가혹하다 못해 살인적이다.
“너무 느린데.”
강진호가 불만 어린 눈으로 장필재를 돌아보았다.
“그냥 업고 가는 게…….”
“안 됩니다, 회주님.”
이현수가 단호하게 반대했다.
“지금 이 속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어떤 변수가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죠. 회주님의 체력을 최대한 안배해야 합니다.”
“차라리 빨리 돌파하는 게 나은 것 아닌가?”
“목적지가 안전지대라면 그 말이 맞죠.”
이현수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북한을 뚫고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 모든 게 해결된다면 이현수도 강진호에게 멱살을 내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한국으로 돌아간 뒤가 진짜 문제일 수도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금은 천천히 이동하면서 강진호의 상태를 만전으로 유지해야 한다.
물론 본인은 지금 답답해 죽을 지경인 것 같지만.
“그런데 이거, 생각보다 사람이 더 없는 것 같은데요?”
장필재의 말에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한국만 해도 도심지를 벗어난 산에서 사람이 길을 잃고 죽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인구밀도가 그만큼 높은 한국도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넘쳐 난다는 뜻이죠. 북한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땅은 비슷한데 사람이 반밖에 안 되니까요.”
“음, 그렇죠.”
“그리고 한국이야 산책이나 취미로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여기야 뭐…….”
돈도 안 나오는데 굳이 산을 오르려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리고 산속이라면 그들이 강진호들을 발견하기도 전에 이쪽에서 먼저 발견하고 피해갈 수 있다.
“생각보다 시시하네요.”
“제가 말했잖습니까,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니라고. 북한의 경계는 휴전선에 대부분 몰려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철통같았다면 북파공작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나올 수가 없죠.”
장필재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너무 느려.”
강진호가 이현수를 보며 말했다.
“속도를 올린다. 하루 정도까지 줄여.”
“회주님.”
“시간 끌어 좋을 게 없어. 지금이야 속도라도 낼 수 있지만, 낮이 되면 더 느려진다. 어두울 때 최대한 빠르게 이동해야 해.”
이현수가 강진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현수가 체념한 얼굴로 순순히 멱살을 내주려고 할 때였다.
“잠깐.”
“예?”
강진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예.”
“아까 한 말 있잖아.”
“무슨 말이요?”
“여기는 등산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
“아, 그거요? 예. 그렇죠.”
“확실한가?”
“……제가 북한을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상식적으로는 그렇다는 거죠. 탈북자들 인터뷰 같은 걸 보더라도 산나물이나 버섯 채취, 혹은 땔감 구하는 것 말고 산을 오르는 문화는 거의 없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
강진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아무래도 환영 인사가 온 모양이군.”
“……예?”
“주변으로 뭔가가 접근하고 있다. 수가 굉장히 많군.”
이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만요. 그게 말이 안 되는데?”
그들이 북한으로 들어왔다는 걸 아는 이들은 없다. 도청은 모두 피했고, 인민군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북한 놈들이 무슨 수로 그걸 알고 대비를 한단 말인가.
“회주…….”
“무인이군.”
“…….”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쪽을 과소평가한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뭔가 더 있든가.”
이현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강진호가 선수를 쳤다.
“계획대로 될 리가 없지.”
와, 뒤끝 장난 아니네. 진짜.
“뒤로 바짝 붙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돌파해야지.”
강진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야밤에 불빛은…….”
“어차피 저놈들도 알아, 이 근처에 있다는 거.”
이현수가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찰칵.
강진호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아공간에 손을 밀어 넣는다. 적루를 꺼낸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작전 변경이다. 목표 지점까지 최속으로 이동한다.”
이현수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눈빛을 하더니 한숨을 쉬고는 장필재에게 다가갔다.
“왜?”
“이리 오십쇼.”
“예?”
이현수가 장필재를 꽉 움켜잡았다.
“준비됐습니다, 회주님.”
강진호가 손을 뻗어 이현수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이미 한 번 경험해 본 이현수는 눈을 질끈 감고 하늘에 기도했다.
‘제발 목만 안 부러지게 해주십시오.’
안타까운 기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