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78
#1377.
도착하다 (2)
파아아아아앙!
하강하던 육체가 그대로 갈라진다.
불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도시.
이현수의 눈에는 잘려 나간 시체에서 뿜어지는 피가 마치 흑백영화에서 내리는 비처럼 보였다.
단번에 십여 명에 가까운 이들이 절명했지만, 비명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강진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대체 얼마나 가혹한 수련을 받아야 동료가 순식간에 죽어 나가는데도 일말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섬뜩함이 밀려온다.
지금 상대하는 이들은 지금까지 이현수가 본 적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기물.
분명 뜨거운 피가 흐를진대, 전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인민복을 입은 이들이 손에 든 나이프를 휘두르며 떨어져 내린다. 철갑을 씌운 듯 무표정한 얼굴과 달빛을 받아 빛나는 군용 나이프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파아아아앗!
강진호의 적루가 다시 휘둘러진다.
접근하던 이들이 허리가 잘려 바닥으로 나뒹군다. 하지만 분명 허리가 잘렸음에도 가공할 속도로 바닥을 기어와 강진호의 다리를 향해 나이프를 휘둘러 댄다.
강진호가 접근하는 이를 걷어차며 몸을 옆으로 날렸다.
쿵! 쿠웅! 쿵!
비처럼 바닥으로 떨어진 이들이 바닥을 박차며 강진호를 추격한다.
“회주님!”
“알아!”
이곳에서 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발목이 잡히는 순간, 포위망은 더 단단해질 것이다. 아무리 강진호라 해도 끝도 없이 밀려오는 이들을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나 민간인을 섞어 보내는 공격이라면 더더욱.
아무리 강철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강진호라지만, 죄 없는 이들을 모조리 죽일 수는 없다.
결국은 그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 심력을 낭비해야 한다.
‘일부러 이런 식으로 계획을 짠 거라면,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주 개 같은 새끼네.’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거리는!”
“이제 20㎞ 정도입니다!”
“위긴스와 미리 연락해!”
“예!”
이현수가 품 안에 든 위성전화를 꺼냈다. 어깨가 뜯겨 나가는 것 같지만, 지금은 엄살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이 속도로 이동하면서도 전화가 터질까?’
이현수의 고개가 본능적으로 위쪽으로 향했다.
‘전파…….’
그 순간, 이현수의 눈이 천천히 커지기 시작했다.
달.
하늘 위에 떠 있는 달에 검은 점이 박혀 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그 검은 점이 점점 더 확대된다.
‘저, 저거?’
“회주님?”
이현수의 목소리에 강진호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러고는 얼굴을 굳힌다.
파아아아앗!
강진호의 발이 바닥을 박찼다. 사람의 발로 바닥을 걷어차는데 폭음이 터지며 흙먼지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리고 점점 커지던 검은 점이 이내 확연한 형태를 갖추며 강진호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산이 폭염으로 뒤덮였다.
비산한 흙먼지가 먼지구름을 만들고, 통째로 뽑혀 나간 나무가 장난감처럼 허공으로 튕겨 나간다. 폭발이 만들어낸 후폭풍이 주변을 뒤덮으며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터지고, 터지고 또 터진다.
마치 이 산을 통째로 없애 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포탄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현수가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질러 댔다. 전신이 으스러지는 것 같은 통증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고막이 찢어지고 압력에 코피가 터진다.
‘이 미친 새끼들!’
장필재는 이미 의식을 잃었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강진호가 없이 이 공격을 맞았다면, 아마 시체조차 찾지 못할 수준으로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미친놈들!’
고작 세 사람을 잡기 위해서 포대를 동원한다는 생각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북한이 아니라면 세상 어디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TOT가 쏟아진다. 최소한 대대 단위, 아니, 그 이상의 포병이 동원된 게 분명했다.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아 제대로 발포가 될지가 의문이라던 북한의 곡사포가 아직 현역으로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는 걸 강진호들을 상대로 증명하는 중이었다.
“숙여!”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현수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와 동시에 다시 귀를 찢는 굉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쿨럭!”
배 속에서 올라온 핏물이 목을 타고 뿜어진다.
윙윙거리는 귀와 질끈 감아버린 눈이 방향감각을 날려 버렸다. 그저 들썩이고 휘청일 뿐이다.
감았던 눈을 뜨자 등 뒤의 광경이 들어왔다.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산. 곳곳에 앙상하게 솟은 나무는 불타오르고, 포탄이 떨어진 자리는 곳곳에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지옥과도 같은 광경이다.
“방향!”
강진호의 말에 이현수가 재빠르게 GPS를 들었다.
‘빌어먹을!’
하지만 충격을 너무 심하게 받았는지, GP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GPS를 몇 번이나 후려쳐 본 이현수지만, GPS는 그럼에도 정상으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아!’
이현수가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의 눈에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이 보였다. 한국이라면 힘들겠지만, 이곳이라면 가능하다. 별자리와 북극성의 위치를 순식간에 파악한 이현수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앞쪽으로 그대로 쭉 가시면 됩니다!”
그 순간, 이현수의 얼굴에 뜨뜻한 무언가가 흩뿌려졌다.
‘뭐…….’
입술에 닿은 액체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진다.
‘피?’
이현수가 기겁을 하여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속으로 달리는 강진호의 몸에서 피가 흩뿌려진다.
“회, 회주님! 어디를 다친…….”
“입 다물고 고개 숙여!”
“…….”
강진호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진다.
이현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무리 강진호라고 해도 이런 경험은 처음일 수밖에 없다. 이제는 구식이 되어버린 견인 곡사포라고 해도 그 사거리는 10㎞를 넘어간다.
그만한 거리에서 포격을 해 대면 인간은 대응할 수 없다. 강진호가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10㎞ 밖의 적을 어찌할 도리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포격은 포탄만 떨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때려 박을 수 있다.
지금 강진호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낸 무기의 위력이 얼마나 끔찍한지 처음으로 체험하는 중이었다.
“또 온다!”
이현수가 반사적으로 눈을 감으며 장필재를 꽉 끌어안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세상이 검게 암전하고, 의식이 순간 날아간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그는 여전히 강진호의 손에 잡혀 있었다. 하지만 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저 머리가 멍멍하고 전신이 다 으스러진 듯 아파올 뿐이다.
이현수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손끝에 축축한 무언가가 묻어난다.
‘이…….’
그의 피는 아니다.
이건 강진호의 피다.
이전에 흘린 피라면 포격의 후폭풍이 날아가거나 이미 말라 버렸을 것이다. 피가 만져진다는 건 지금 이 순간에도 강진호가 피를 흘리고 있다는 뜻이다.
“으…….”
속에서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솟구친다.
“이 개새끼들!”
이현수가 발작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방향!”
하지만 강진호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목소리로 일갈한다. 그 냉정함에 이현수조차 흠칫했다.
“제, 제가 의식을 얼마나…….”
“모른다.”
이현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목적지의 정확한 위치,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현재 내가 있는 곳의 위치다.
의식을 잃어버리면서 이현수는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렸다. 이래서는 합류 지점을 찾아갈 수가 없다.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킨 이현수가 결론을 내렸다. 지금은 일말의 망설임도 있어서는 안 된다.
“목적지를 잃었습니다. 현재로서는 합류가 불가능합니다.”
“대안은?”
“남하합니다! 목적지로 가지 않고, 휴전선을 뚫고 남측으로!”
“알았다!”
이현수가 의견을 냈고, 강진호는 조금의 조율도 없이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평소에는 투닥투닥하는 두 사람이지만, 위기에 처한 순간 서로의 의견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오랫동안 두 사람이 쌓아온 신뢰 관계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다만, 휴전선입니다! 화력이 집중되어 있을 겁니다!”
“상관없다!”
“회주님, 그럼 방향을 틀어주십시오! 저들도 지금 우리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게 아닙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위치를 교란시키면 포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현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진호가 방향을 틀었다. 그러고는 가장 울창해 보이는 숲을 향해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강진호의 입에서 답지 않은 거친 숨이 쏟아진다.
‘한계야.’
이현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포격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저들은 한 번에 넓은 범위를 덮는 포격을 한다. 일반적인 155㎜ 곡사포의 폭발 반경이 30미터를 넘어간다. 그 정도라면 피하는 게 어렵지 않겠지만, 한 번에 십여 발을 사방으로 날려 주변을 뒤덮어 버리면 아무리 강진호라 하더라도 피해내기가 쉽지 않다.
‘아니!’
혼자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이현수와 장필재를 보호하면서는 불가능하다.
‘차라리…….’
이현수가 떨리는 눈으로 의식을 잃은 장필재를 돌아보았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
그런 이현수의 기색을 알아챘는지, 강진호가 차갑게 일갈했다.
“살 거라면 깔끔한 게 좋지.”
“……이런 상황에도 그런 말씀이 나오십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위기 따위야 얼마든지 겪어봤으니까. 이번에는 그 결이 조금 다를 뿐이다.
“휴전선까지 거리는?”
“100㎞가 넘습니다.”
“……감을 못 잡겠군.”
전력으로 100㎞를 달려본 경험 따위는 없다. 얼마나 걸릴지, 얼마나 힘들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저 표정을 굳히고 달려 나갔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한다. 할 수 있는 게 하나밖에 없다면 그거라도 한다. 손을 놓고 엎어지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백배는 낫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다시 커다란 폭음이 터진다.
이현수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폭음이지만 지금까지 들어온 소리와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그것도 근처가 아닌 조금 먼 곳의…….
“으아아아아아아! 빌어먹을! 나이스!”
이현수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회주님! 저기! 저기이이이!”
강진호의 고개가 돌아간다.
그러고는 똑똑히 보았다.
불과 몇 킬로 떨어진 거리.
그 하늘을 커다란 불꽃놀이 같은 화염이 수놓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화약으로 만들어낸 불꽃이 아니다.
“빌어먹을 사부님! 좀 빨리 터뜨리지!”
마법으로 만들어낸 신호탄.
위긴스가 합류 지점을 알리고 있었다.
“회주님! 최속으로 합류해야 합니다! 곧 저기로 화력이 쏟아질 겁니다.”
“안다!”
강진호의 발이 바닥을 박찼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이제야 위치를 파악했는지, 다시 포탄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한다.
불타오르는 대지, 하늘을 검게 물들이는 시커먼 폭연, 그리고 살을 찢는 후폭풍 속을 검은 야수가 내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