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80
#1379.
도착하다 (4)
“으…….”
방진훈의 손이 갈 곳을 찾지 못했다.
살짝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가, 그리고 얼굴을 매만졌다가 뒤통수를 긁었다.
손뿐만이 아니다.
제자리서 통통 뛰었다가 앞으로 슬쩍 나갔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선 채로 다리를 떨고, 숫제 주저앉을 듯 숙였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천태훈이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정 좀 하십쇼.”
“야, 이 새끼야! 내가 지금 진정할 상황이냐!”
방진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핏발 선 눈을 본 천태훈이 ‘아, 뜨거라’ 뒤로 물러섰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세였다.
“당장 북한에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우리가 달달댄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야! 너는 냉정하고 침착해서 참 좋겠다, 이 새끼야! 부럽네, 아주 그냥!”
천태훈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흥분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지금은 일단 방진훈을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괜찮으실 겁니다. 어디, 그분들이 쉽게 당하실 분들입니까? 사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어떻게 죽여야 할지 견적이 안 나오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방진훈이 조금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천태훈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래도 사람 일이라는 게…….”
“…….”
천태훈이 허망한 눈을 했다.
‘아니, 사부님이 언제부터 이렇게 부정적인 사람이셨지?’
예전에는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중걸과 싸우던 사람이 아니었는가.
‘하기야…….’
생각해 보면 납득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강진호 한 명이 사라지는 순간, 총회는 그 정체성을 잃고 붕괴할 테니까. 그럼 오히려 강진호가 등장하기 이전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 되어버릴 확률이 높다.
일단 당장 한국에 들어와 있는 저 마교도들부터 적으로 돌아서 버릴 확률이 높으니까.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상황들을 머릿속에 떠올린 천태훈이 자신도 모르게 가슴 앞으로 양손을 모았다. 저도 모르게 기도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왜 방진훈이 저렇게 초조해하는지 되레 이해하고 만 천태훈이었다.
“여하튼 이 개새끼들.”
방진훈이 이를 갈았다.
상황을 여기까지 몰고 온 놈들을 생각하니,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르는 느낌이다.
“사, 사부님, 저기!”
“응?”
방진훈이 격하게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설치되어 있는 마법진이 빛을 뿜어낸다.
“오!”
방진훈이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아직은 안심하지 못하는 방진훈이었다. 일이 잘못되어 위긴스만 귀환하는 상황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으니까.
방진훈이 눈에 힘을 주고 빛을 응시했다. 그러자 이내 빛이 조금 약해진다 싶더니, 그 안에서 사람의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회주님!”
눈앞의 형상이 완전해지는 순간, 방진훈이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방진훈의 눈에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강진호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회주님, 괜찮으십니까? 빌어먹을! 빨리 의사 불러!”
“호들갑 떨지 마.”
강진호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살짝 피가 난 것뿐이니까.”
살짝?
방진훈이 어이없다는 듯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전신이 피투성이다. 머리카락까지 피에 젖어 떡이 져 있는데, 이게 살짝이라고?
“치료하셔야 합니다.”
“해야지.”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총회 지하에 만든 연구실입니다.”
“총회인가.”
강진호가 잡고 있던 이현수들을 놓았다. 그러자 두 사람이 바닥으로 털썩 쓰러졌다.
“끄으…….”
이현수가 신음을 흘리며 바닥을 밀어낸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킨 이현수가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고는 벽에 등을 기댔다.
“으…… 진짜 죽는 줄 알았네.”
“회주님! 치료를…….”
이현수가 방진훈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아니, 저도 부상잔데…….”
“넌 죽어도 돼.”
“……예?”
“아니, 죽었으면 좋겠다.”
“헐…… 예전 악감정 끌고 오시기 있습니까?”
“시끄럽다. 닥쳐.”
“넵.”
방진훈이 강진호의 상태를 상세하게 살폈다. 확실히 강진호의 말처럼 내상은 보이지 않는다. 속이 상하지 않고, 외부만 상한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비켜봐.”
강진호가 방진훈을 가볍게 밀어내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부상이신데…….”
“새삼스럽게.”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이현수의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깊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저도 한 대 주십시오.”
강진호가 두말없이 이현수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담배를 받아 불을 붙인 이현수가 벽에 등을 기댔다. 몽롱하게 눈이 풀려 나간다.
“……이번에는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그렇지.”
강진호도 이 말에는 동의했다.
“무슨, 전쟁터에 갔다 오신 반응인데…….”
“전쟁터였지.”
“그 말이 딱 맞습니다.”
“엥?”
방진훈이 두 사람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설명을 듣기 위해 돌아보자,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군. 자네가 그 포격이 쏟아지던 모습을 눈으로 봤어야 하는데.”
“네? 포격이요? 그만한 무인들이 북한에 있단 말입니까?”
“아니. 정말 포격.”
“예?”
방진훈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시간을 조금 더 끌었으면 포격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폭격이 쏟아졌을 수도 있네.”
“……미친놈들인가?”
방진훈이 말을 잇지 못했다.
북한에서 나름 고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정말 군대가 동원돼서 포를 쏘아대는 상황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럼 저 부상이?”
“그렇다네.”
“……하기야 생각해 보면 북한이 무슨 중국도 아니고, 회주님을 부상 입힐 정도의 무인이 있을 리가 없죠.”
방진훈이 어이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니, 그런데 진짜 미친놈들인가? 어떻게 사람한테 포를 쏠 생각을 하지?”
그러라고 만든 게 장사정포다.
방진훈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 그럼 설마 자주포고 곡사포고…… 뭐, 여하튼 그런 게 날리는 포탄을 맞고 살가죽만 다쳐 오신 겁니까? 저 짐 덩어리들을 데리고?”
“그렇지.”
“…….”
방진훈이 할 말을 잃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이 인간은 언제나 사람을 놀래킨다. 문제는 그 놀람의 수준이 날이 갈수록 올라간다는 것이다.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방진훈의 시선을 받으며 강진호가 벽에 등을 기댔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늘어진다.
육체적으로 받은 손상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사람의 속을 망가뜨리는 무학과 다르게 외상에 집중하는 포격을 받다 보니 살가죽이야 찢겨졌지만, 속은 멀쩡했다.
문제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이제껏 겪어온 어떤 전투보다 극심하다는 것이다.
‘전혀 다른 개념이군.’
지금까지 강진호가 싸운 적은 언제나 실체가 있었다. 아무리 강한 적이라 해도 눈앞에 있고, 한 번의 공격으로 쓰러뜨릴 수 없다면, 수차례, 수십 차례 검을 휘둘러서라도 상처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겪은 전투는 개념을 달리했다.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포탄이 날아온다. 그리고 피하고 막을 수는 있지만 반격을 할 수가 없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했다.
“위긴스.”
“예, 로드.”
“무인이 군대를 이길 수 있나?”
“겪어보셨겠지만…….”
“그렇지.”
현대로 돌아온 강진호는 이미 여러 차례 이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결론은 빤했다. 일반적인 무인은 군대를 막아낼 수 없지만, 상승에 오른 무인은 군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지금 그 생각이 뒤집어졌다.
아무리 강진호라고 해도 10㎞ 밖에서 쏟아지는 포격에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 쏟아지는 폭격에도 대응할 수 없다.
버틸 수야 있겠지.
이를 악물고 날뛴다면 몇 개의 포대는 찾아내 곤죽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겠지.
하지만 강진호가 그 정도라면 다른 이들이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빤하다. 당장 총회만 하더라도 강진호와 같은 공격을 받았을 때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바토르와 장민 정도가 전부다.
만 오천이 넘는 인원 중 단둘.
단둘이다.
강진호가 깊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그런 강진호를 보며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로드께서 지금 생각하시는 일은 과거의 원탁이나 중국의 무인들이 모두 한 번쯤 떠올린 생각입니다.”
“그렇겠지.”
“그렇기에 원탁도, 그리고 중국도 권력을 쥐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완연한 권력을 손에 넣었죠. 제가 예전부터 총회가 권력을 손에 넣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인은 사람들의 숲 안에 숨어서 군대의 힘을 피하고 있을 뿐입니다. 기생충 같은 거죠. 배 안에 들러붙어 수술로는 적출이 불가능한 기생충.”
“좋은 비유로군.”
“무인을 적대하고자 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이유야 간단하죠. 무인은 군대를 감당할 수 없지만, 사람은 무인을 막을 수 없으니까요. 어떤 군대라 하더라도 명령을 내리는 이는 있기 마련이고. 그들은 무인의 칼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균형이 유지되는 겁니다.”
강진호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알고 있던 일이지.”
실감하지 못했을 뿐.
강진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목숨을 돌보지 않을 때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로군.”
“……겪으셨듯이.”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상황은 알았다. 충분할 정도로 알았다. 그 몸으로 겪었으니까.
강진호의 눈은 오히려 차갑게 가라앉았다.
“위긴스.”
“예, 로드.”
“김명찬의 위치를 파악해.”
“바로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로드, 김명찬이 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증거는 지금부터 나오겠지.”
“……예?”
“위치를 파악해 봐. 둘 중 하나일 거다. 평소와 다를 바 없거나, 위치를 찾을 수 없거나.”
“아…….”
“만약 그가 우리에게서 모습을 감춘다면, 더 생각할 것도 없겠지.”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파악해 보겠습니다.”
“음.”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돌려 바닥에 뻗어 있는 장필재를 바라보았다.
“치료해 줘.”
“예! 그리고 회주님도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나는…….”
“받으셔야 합니다!”
방진훈이 콧김을 뿜어내자, 강진호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셋 모두 치료를 받지.”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방진훈이 아랫사람에게 시킬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와 동시에 위긴스가 강진호의 바로 옆으로 슬며시 다가와 작게 입을 열었다.
“로드.”
“말해.”
“설사 김명찬이 범인이라 하더라도 그는 총리입니다. 쉽게 건드릴 수 없습니다. 문제가 커진다면 김명찬이 아니라 정부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상관없어.”
“……로드.”
강진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나는 확실하게 알았다.”
“예?”
“공존 같은 건 불가능하다는 걸.”
“…….”
위긴스의 눈이 커졌다.
“그, 그럼…….”
“정권이든 뭐든 반발한다면 찍어 누른다. 어디 한 번 확인해 보지. 그 권력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다들 이리 날뛰는지.”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