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81
#1380.
도착하다 (5)
“놓쳤다고?”
“……예.”
왕룽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언제나 냉정과 여유를 유지하던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확실하게 잡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느냔 말이야, 이 잡종 새끼야!”
“죄송합니다!”
“이 멍청한!”
왕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의 놓인 재떨이를 잡아 던졌다.
퍼억!
재떨이가 부관의 머리를 후려치고는 튕겨 나갔다. 꽁초가 사방으로 비산하고, 재가 바닥을 더럽힌다.
부관의 머리가 그대로 깨지며 피가 얼굴을 적셨다. 하지만 부관은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고 부동자세를 유지했다.
“이 병신 같은 새끼들! 도대체 니들이 제대로 하는 게 뭐가 있어! 기회가 왔을 때 잡아 죽이기를 했나, 그게 아니면 도망가지 못하게 막기를 했나! 빤히 눈 뜨고 놓쳐서 북한으로 보내더니, 그 북한에서도 죽이는 데 실패했다고?”
성난 짐승처럼 포효하는 왕룽의 기세에 부관은 눈 하나 깜짝하지 못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어설픈 모습을 보인다면 왕룽은 주저 없이 권총을 뽑아 그의 머리를 날려 버릴 것이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거야! 어디 한 번 지껄여 보란 말이다! 그 주둥아리에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니 새끼의 창자를 뽑아서 개먹이로 줄 테니까!”
부관이 부동자세로 대답했다.
“강진호가 탈출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게 꼭 공화국에 해가 된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뭐야, 이 새끼야?”
“부총참모장님, 저희는 이번에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실패로부터 얻은 것도 있습니다.”
“계속해 봐. 니 대가리에 총알구멍이 날지, 아니면 내가 내 아가리에 총구를 쑤셔 박을지 결정해야 할 테니까.”
부관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결과적으로는 상황이 나쁘지 않습니다. 저희는 강진호를 잡지 못했지만, 그의 무력과 성향을 파악했습니다.”
“그래, 아주 잘 파악했지. 수많은 병력과 시간, 그리고 돈을 물처럼 써 재낀 끝에 아주 좋은 걸 알았지.”
“그는 길들여지지 않는 이입니다.”
“그걸 누가 몰라서…….”
“그렇기에 그는 중국의 삼왕과 절대 협조하지 않을 겁니다.”
왕룽이 열린 입을 다물고 부관을 노려보았다.
“그래서?”
부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땀과 피가 뒤섞여 물처럼 흘러내렸다.
“처음부터 전제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는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런 이를 개로 만들려고 한 게 실수입니다. 그를 왕으로 인정하고 대등하게 협상을 했다면 상황은 전혀 달랐을 겁니다.”
“……계속해 봐.”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그와…….”
“우리가 그놈에게 몇 발의 총알을 때려 박은 줄 알고 있나? 너 같으면 협상장에 나오겠어?”
“저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라면 나올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왕이라 불리는 이들의 사고방식은 일반인과 완전하게 다릅니다.”
왕룽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니까…… 어차피 강진호를 처리하지 못한 이상, 이번 일을 포함한 대가를 지불하고 다시 협상을 시도해 보자?”
“예.”
“그걸 해결책이라고 지껄이고 있나, 이 무능한 잡종 새끼야!”
“그의 가치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부관이 발작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아니, 고함이라기보다는 비명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뭐가?”
“아무리 저희가 숨기려 해도 삼왕은 결국 우리가 강진호와 대적했다는 것을 알 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되는 병력을 쏟아부었는지, 그러고도 강진호를 잡지 못했다는 것도!”
왕룽이 이를 악물었다.
부관의 말은 분명 사실이었다. 최대한 일이 새어 나가지 않게 조심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삼왕의 정보망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리 쉽게 속일 수 있었다면 삼왕이 삼왕이라 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공개 망신을 당하고 삼왕계의 압박을 받아야 하니 축배라도 들라는 말이냐?”
“그게 아닙니다. 삼왕 역시 강진호의 힘을 더는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새삼?”
부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강진호의 존재는 저희에게도, 삼왕에게도 미지에 가까웠습니다. 그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홍왕과 싸우고도 살아남아 한국으로 돌아갔다, 과장을 보태면 홍왕과 동수를 이루었다는 것뿐입니다.”
“그렇지.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지?”
부관이 왕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부총참모장께서는 그걸 믿으셨습니까?”
“…….”
왕룽의 고개가 살짝 꺾였다.
믿었냐고?
아니. 믿지 않았다.
세상에는 수많은 뜬소문이 돌아다닌다. 물론 강진호가 홍왕과 조우하고도 살아남았다는 말이야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강진호가 홍왕과 대적할 수 있는 존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기껏해야 허세 섞인 무용담, 그게 아니면 홍왕을 깎아내리기 위한 과장.
둘 중 하나일 거라 생각했다.
“마찬가지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홍왕이야 직접 겪었으니 알겠지만, 창왕이나 흑왕은 그 말만으로 강진호를 인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바로 우리 덕분에?”
“북한이 군을 모조리 동원하고도 그를 놓쳤다는 사실까지 알려진다면 더더욱 그의 가치는 오를 겁니다.”
“……가치가 오른 만큼 강진호와 손을 잡는 이는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예! 바로 그렇습니다.”
왕룽이 웃어버렸다.
“그러니까, 그 강진호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 못한 것도 우리고, 강진호의 평가를 올려준 것도 우리고, 그 높아진 평가만큼 더 많은 것을 지불하고 그와 손을 잡아야 하는 이도 우리라는 건가?”
“……예.”
“환장하겠군.”
이제는 화를 낼 기력조차 없다.
왕룽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지.’
왕룽이 정말 화가 난 이유는 강진호를 놓친 것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강진호를 공격하며 삼왕계에 자신들의 전력을 노출했다. 그리고 어쩌면 삼왕을 적대하려는 의도마저 들켰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삼왕의 압박을 이겨내야 한다.
“정치에는 흔한 일입니다, 부총참모장님.”
“주둥아리 처 다물어, 찢어버리기 전에.”
부관이 입을 꾹 닫자 왕룽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왕룽이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부관이 왕룽 모르게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왕룽이 자리로 돌아간 것만으로 머리에 총알구멍이 날 위험은 넘겼다고 봐도 된다.
“회유가 가능하다고 보는 건가?”
“물론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치렀어.”
“전쟁을 치른 국가가 동맹을 맺는 경우는 너무 흔해서 굳이 언급을 드리기도 민망합니다.”
“……자신만만하군.”
부관이 단호하게 말했다.
“세상에 불가능한 거래는 없습니다. 문제는 얼마나 손해를 감수하느냐입니다. 우리가 그에게 저지른 일을 모두 만회할 정도의 보상을 안겨준다면, 웃는 낯으로 손을 마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왕룽이 쓴웃음을 지었다.
지독히도 현실적이고, 지독하게 듣기 싫은 말이다.
가능이야 하겠지. 세상에 불가능이 없다는 건 왕룽이 가장 잘 안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 버린 일들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도 커졌다.
“접촉해.”
“예!”
“일단은 조율한다.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내가 주석을 따로 찾아뵙고 허가를 받아오겠다. 저들이 원하는 걸 알아내라.”
“예!”
“이번 일도 제대로 처리 못한다면 너는 살아남지 못한다.”
“알고 있습니다.”
“아니. 모르고 있어.”
왕룽이 부관을 보며 말했다.
“이번 일마저 잘못된다면, 죽는 건 네가 아니라 나다. 그리고 나는 혼자 죽을 생각이 없어.”
“절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왕룽이 막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이었다.
왕룽과 부관의 고개가 동시에 문 쪽으로 돌아갔다.
“무슨 소란…….”
쾅!
문이 격렬하게 열린다 싶더니, 한 사람이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너, 여기가 어디라고…….”
부관이 목소리를 높이려다 입을 닫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살기 어린 눈으로 부관을 노려본다. 그 기세에 눌린 부관이 입을 꾹 닫고 눈을 피했다.
“이거…… 실례가 많습니다?”
왕룽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금세 본래의 표정을 회복하고 입을 열었다.
“여긴 무슨 일인가, 차이커창?”
차이커창이 고개를 돌려 왕룽을 바라본다.
“제가 여기에 왜 왔는지를 모르실 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아주 재미있는 짓을 저질러 주셨더군요. 저희도 좀 끼워주시지그러셨습니까?”
왕룽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여우 새끼가 호랑이를 등에 업더니, 주제를 모르고 주둥아리를 터는구나. 건방은 정도껏 떨도록 해라. 홍왕의 위세가 언제까지 너를 보호해 주지는 않을 테니까.”
“이거, 귀한 분께서 제 신상까지 걱정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유들유들한 차이커창의 목소리에 왕룽이 손에 든 담뱃갑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얼굴은 더더욱 냉정해져 갔다.
“약속도 잡지 않고 함부로 찾아올 정도로 내가 만만해 보이던가?”
“제가 감히 그럴 담량이 있겠습니까?”
차이커창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그럴 담량이 없지만, 홍왕의 사자는 그럴 담량이 있는 법이죠.”
“홍왕께서…….”
왕룽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문다.
차이커창은 왕룽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
“홍왕께서는 이번 인민군의 행위에 깊은 실망과 분노를 표하셨습니다.”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우리는…….”
“입을 조심하십시오. 홍왕의 통찰을 무시하는 발언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
왕룽이 죽일 듯한 눈으로 차이커창을 노려봤다.
“홍왕께서는 앞으로 인민해방군의 움직임을 지켜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당장 그대들의 목숨을 거둬가지 않는 이유는 국가에 종사하는 그대들에 대한 존중, 그리고 주석에 대한 예의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단!”
차이커창이 말없이 왕룽을 노려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고 쥐 죽은 듯한 침묵이 방 안을 물들였다.
긴 침묵 뒤에 차이커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뿐입니다.”
“…….”
“그럼.”
차이커창이 몸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 차이커창이 고개만 살짝 돌려 왕룽을 바라보았다.
“아, 참고로 다른 두 왕은 우리처럼 신사적이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가 알아챈 것을 그들이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요. 부디 다음에 만날 때까지 살아 계시길.”
차이커창이 빙그레 웃고는 밖으로 나가 버린다.
으드드득.
왕룽의 입에서 이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 잡종 새끼가…….”
부들부들 떨던 왕룽이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한참을 그대로 움직이지 않던 왕룽이 손을 내리고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부총참모장님…….”
“괜찮다.”
이 험난한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흥분할 때와 흥분하지 않을 때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은 침착할 때였다.
“한국으로 사람을 보내 마왕과 접촉해라.”
“예!”
“무슨 조건이든 좋다. 걸 수 있는 건 모두 걸어서 반드시 협조를 얻어내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파멸한다.”
“명심하겠습니다.”
“나가봐.”
“예!”
부관이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자, 왕룽이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러고는 그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눴다.
‘죽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
진짜 중요한 것은 저 무뢰배들에게서 중화를 되찾아오는 것이다. 그것만 할 수 있다면 왕룽은 가루가 되어 죽는다고 해도 웃을 수 있다.
“너희의 세상이 영원할 거라 생각하지 마라, 삼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