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86
#1385.
벌어지다 (5)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집까지 모셔다 드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운전은 하실 수 있습니까?”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관심을 받고 보살핌을 받는다는 건 좋은 일이다. 솔직히 말해 중원에 있을 때는 그런 것을 조금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강진호가 세 살 먹은 애는 아니잖은가.
운전을 해서 집에 돌아간다는 게 저런 반응을 받을 일인가.
“호들갑 좀 떨지 마.”
“로드께서는 부상자십니다!”
“마존이시여, 이건 호들갑이 아닙니다! 마존의 옥체가 손상되지 않았습니까!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네가?”
“예, 마존이시여!”
“운전을?”
“저 운전 잘합니다.”
“…….”
강진호는 이 순간 왜 친구들이 자신의 차에 타기 싫어했는지를 이해해 버렸다.
‘이런 기분이구나.’
죽으면 죽었지, 장민의 손에 자신의 목숨을 맡기고 싶지는 않다. 심지어 사고가 나도 죽을 위험은 거의 없는 강진호일진데도 말이다.
“내가 알아서 간다.”
강진호가 한숨을 쉬고는 자신의 애마로 향했다. 간만에 봤는데도 먼지 하나 없는 걸 보면, 그가 없는 사이에도 총회에서 관리를 한 모양이다.
‘쓸데없는 데서 사려 깊다니까.’
강진호가 피식 웃고는 차에 올랐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현수까지 호들갑을 떨자, 강진호의 얼굴이 조금 진지해졌다.
“문제라도 있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회주님을 혼자 두고 싶지 않은 겁니다. 총회에 있다면 몰라도 회주님이 총회를 떠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언제는 이미 끝난 전쟁이라더니.”
“전쟁이 끝나도 미친놈들이 결사대를 짜서 발악하는 일이야 흔합니다.”
강진호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다들 걱정이 과해진 것 같군.”
“걱정이 아니라…….”
“그럴 필요 없어. 저들도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을 테니까.”
도끼로 내려쳐도 베어지지 않는 나무에 주머니칼을 들이미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걱정하는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지금은 오히려 여기에 있는 게 좋지 않은 판단이 될지도 모른다.
“일단 나는 한동안 출근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
“내가 저들이라면 발악을 그런 식으로 하지는 않을 거야.”
이현수와 위긴스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
“그렇긴 하겠네요.”
“일단 경호를 좀 더 강화하겠습니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호가 김명찬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진호의 가족을 생포할 것이다. 절대 죽이지 않고 생포한다. 그러고는 가족을 인질 삼아 강진호와의 협상을 시도할 것이다.
강진호는 절대 그 상황을 용납하지 않겠지만, 위기에 몰린 김명찬이라면 해볼 수 있는 수단이다.
그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간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살펴 가십쇼!”
부우우우웅.
강진호를 실은 차가 총회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고비는 넘은 것 같은데.”
방진훈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김명찬, 그 새끼가 모습을 감추다 보니 뭐가 개운하지가 않은 느낌입니다. 잡아서 족쳐야 하는데.”
“세상 일이 다 그렇지.”
위긴스도 쓴웃음을 머금었다.
‘무엇보다 일단 로드께서 냉정하시다는 게 고무적이로군.’
강진호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몸도 돌보지 않고 김명찬을 죽이러 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쪽이 몇 배나 확률이 높았다.
강진호를 구출하는 것 다음으로 그의 골머리를 썩인 일이 한국으로 돌아온 강진호를 어떻게 진정시키느냐였으니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의외로 강진호는 굉장히 침착했다.
이게 침착한 건지, 아니면 분노가 극에 달해서 오히려 냉정해진 건지까지는 위긴스가 판단하기 어렵지만, 일단 상황이 더 이상 급박해지지 않는다는 게 어디인가.
“답답한 마음이야 이해하네.”
“웬일로 저한테 그런 말을 다 하십니까? 평소대로 구박 안 하시구요?”
“나도 답답하니까.”
“…….”
위긴스가 이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런 마음 먹을 것 없네. 이건 참는 게 아니야. 확실한 거지. 나도 이번에는 대충 넘어갈 생각이 없네. 관련된 놈은 개미 새끼 하나 남기지 않을 생각이니까.”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사람 겁나게.”
“그저 장로님의 말에 공감했을 뿐이네. 내 마당에 꽁초를 던지게 내버려 두면, 언젠가는 돌을 던지고 쓰레기까지 밀어 넣기 마련이지. 꽁초를 버린 놈의 머리를 깨버려야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법이야.”
“담배 피우지 말라는 겁니까?”
“……관두세.”
위긴스가 혀를 차고 몸을 돌렸다. 그의 옆으로 이현수가 따라붙었다.
“장필재가 깨어나는 대로 정보선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총회가 가지고 있는 정보선 중 국정원과 관련된 곳은 없나?”
“그쪽은 워낙 접근하기가 어려워서…….”
“정치인들을 활용해 보게. 재경부 장관을 활용할 수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위긴스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절대 빠져나가게 두지 않는다.’
응징은 확실해야 한다. 다시는 누구도 총회를 노린다는 꿈을 꾸지 못하도록.
* * *
“다녀왔습니다.”
“아들!”
강진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백현정이 환하게 웃으며 걸어왔다.
“다녀왔어?”
백현정이 양팔을 벌린다.
강진호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신발을 벗고 백현정에게 다가갔다.
‘이게 가족이란…….’
쫘아아아악!
“아야!”
강진호가 등짝에 날아든 손길에 기겁을 하여 뒤로 살짝 물러났다.
온화하고 자상하던 어머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분노에 불타는 여장부가 서 있었다.
“이놈의 자식이 미쳐 가지고!”
“…….”
“중국 간다던 놈이 연락도 없이! 전화도 안 받고! 오기로 한 날은 한참 넘기고! 네가 정신이 있어, 없어?”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겨서…….”
“그래서 연락도 못했다고?”
강진호가 뒷머리를 긁었다.
“죄송해요.”
백현정이 강진호를 위아래로 훑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별일은 없었지?”
“네.”
“너희 회사에서 회장님 별일 없으니 걱정 마시라고 연락 안 해줬으면 정말 경찰서 찾아갈 뻔했다. 너는 어떻게 사람이 그리 무심하니? 내 배로 낳은 자식이지만, 한 번씩 이해를 못하겠다, 인석아.”
“죄송합니다.”
강진호가 어정쩡하게 서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부모님에게 혼나는 건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천하의 강진호도 이럴 때는 대응할 방법이 없다.
“들어와! 밥부터 먹게!”
“예!”
강진호가 후다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소파에 앉아 있던 강은영과 강유환이 혀를 찼다.
“내 혼날 줄 알았다, 저놈.”
“오라비는 좀 맞아야 돼. 엄마가 걱정을 얼마나 했는데.”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럴 때 그의 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려고 한 게 아니고…….”
“저, 저…….”
강유환이 혀를 빠르게 찬다.
“또 변명부터 늘어놓으려고. 사내새끼가 잘못했으면 당당하게 잘못했다고 하고, 죄송하다고 하면 될 것이지, 그걸 또…… 어휴!”
강진호가 점점 작아졌다.
“거 봐, 아빠. 아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니까. 그래도 괜찮아. 이쁜 딸이 있잖아.”
“이쁘…… 응, 그래. 이뻐졌지. 많이 이뻐졌지.”
“그거 무슨 의미야, 아빠?”
“여보, 그래도 애 배고플 텐데, 밥부터 먹입시다. 내가 상 차릴 테니까.”
“아니, 아빠. 그게 무슨 의미냐고! 아빠?”
강유환이 헛기침을 하며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강진호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가서 우선 씻고, 옷 갈아입고 나오거라. 피곤했을 텐데.”
“예. 죄송해요.”
“됐어. 사내새끼가.”
강유환이 강진호의 등을 팡, 치고 욕실로 밀어 넣었다.
“엄마 화 풀리게 조금 오래 씻어. 알았어?”
작게 속삭이는 말을 들으며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예.”
“얼른 들어가.”
“일단 갈아입을 옷 좀…….”
강진호가 방으로 가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문을 닫은 강진호가 살짝 웃고는 옷을 벗는다.
샤워기에서 뿜어지는 따뜻한 물을 맞고 있으려니, 전신이 노곤하게 풀리는 느낌이다.
그의 육체가 이 정도 온기에 변화할 리는 없지만, 아무리 강해진다고 한들 그는 여전히 인간이다. 육체는 강해져도 정신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좀 더 굳건해질 뿐.
문틈을 타고 들어오는 음식 냄새를 맡고 있으니, 이제야 집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난다.
‘무심했어.’
이건 반성할 일이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다. 도청될지도 모르는데 한국으로 전화를 해서 그 와중에도 강진호가 가족을 신경 쓴다는 기색을 내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어떤 이유를 댄다고 해도 무심했다는 건 사실이다. 어떻게든 연락할 방법이 없던 건 아니니까.
가족들의 안전을 지킨다는 생각만 했지, 그들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거란 생각은 크게 하지 못했다. 아직은 좀 더 섬세해져야 하는 강진호다.
샤워를 마친 강진호가 몸에 난 상처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옷으로 가릴 수 있는 부위에만 상처가 남아 있다. 길게 갈라진 피부와 화상으로 일그러진 부분이 흉하기 짝이 없지만, 며칠만 조심하면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옷을 갈아입은 강진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아버지가 앞치마를 두르고 찌개를 옮기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요?”
강유환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네 엄마가 니가 외국 생활 오래했으니 한식 먹고 싶을 거라고 계속 새로 음식을 했다. 그거 먹어 치운다고 내가 죽는 줄 알았어.”
“나는 살쪘어!”
강은영의 말에 강유환이 눈을 찌푸린다.
“그건 과자 때문 아니냐?”
“아빠, 나는 한 번씩 아빠가 어떻게 엄마랑 결혼했는지 이해가 안 갈 때가 있어.”
“잘생겼잖아.”
“……진짜 이해가 안 가기 시작했어.”
“…….”
강진호가 낮게 웃고는 식탁에 앉았다. 백현정이 프라이팬에 담긴 볶은 불고기를 접시로 나눠 담고는 강진호의 앞에 탁 내려놓았다.
“이뻐서 주는 거 아냐. 미워서 주는 거야.”
“떡은요?”
“농담이 나오네, 우리 아드님? 나는 프라이팬에 튀겨 버릴까 고민 중인데.”
강진호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밥그릇을 잡았다.
농담 한마디 했다가 본전도 못 건지게 생겼다.
“많이 먹어.”
“예.”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도 느끼지 못한 안도감이 강진호의 심장으로 스며든다.
이제야 돌아왔다는 실감이 난다.
숟가락을 든 강진호가 밥을 한술 뜨려는 순간이었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이 밤에 누구지?”
강유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늦은 새벽은 아니지만, 누군가 찾아오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인터폰을 든 강유환이 화면을 바라봤다.
“누구세요?”
[강유환 씨 댁 맞습니까?]“예. 맞는데요?”
[가스 점검 나왔습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아니, 이 밤에 무슨 가스 점검을?”
강유환이 화면에 보이는 아주머니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버튼을 눌러 문을 열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현관이 열렸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온 이는 화면에서 본 아주머니가 아니었다. 건장해 보이는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우르르 밀려 들어왔다.
“당신들, 뭐야?”
당황한 강유환이 막 그들을 막아서려는 찰나.
“경찰입니다. 강진호 씨!”
가장 선두에 선 이가 품 안에서 경찰 배지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
뒤쪽에 선 남자들은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다. 상대의 정체를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경찰요? 경찰이 왜?”
선두에 선 이가 말없이 강유환을 살짝 밀어내고는 강진호를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왔다.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거였군.’
잠잠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강진호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응이었다.
강진호의 앞에 선 경찰이 품에서 수갑을 꺼냈다.
“강진호 씨, 당신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합니다.”
철컥.
강진호의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강진호의 입꼬리가 더더욱 말려 올라갔다.
“아주…….”
입가가 살짝 벌어지며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마치 짐승이 으르렁거리듯이.
“재미있는 짓거리를 하는군.”
상황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급격하게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