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88
#1387.
체포되다 (2)
수형복을 입은 강진호는 독거실에 앉아 있었다.
기본적으로 입건되어 구속된 이는 우선 유치장에 들어가서 조사를 받고, 조사 내용에 따라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구치소로 옮겨진다고 알고 있지만, 강진호는 조사를 건너뛰고 바로 구치소로 들어왔다.
이게 불법적인 것인지, 아니면 합법의 영역에 있는지 강진호의 지식으로는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저들 역시 강진호를 그냥 수형자로 대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몸수색은 생략되었고, 방 배정 역시 다인실이 아니라 독방으로 결정되었다.
정계나 재계의 거물들이나 받을 만한 대접이지만, 그런 대접을 받는다고 해서 딱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는 강진호였다.
강진호가 고개를 슬쩍 내려 자신이 입은 수형복을 바라봤다.
영화나 뉴스에서만 보던 옷을 지금 강진호가 입고 있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황당해서 웃음이 나온다.
‘별 경험을 다 해보는군.’
고개를 돌려 입구 쪽을 바라보니, 커다란 물통과 음식이 담긴 식판이 놓여 있었다.
‘밥이 잘도 넘어가겠군.’
강진호마저 밥을 먹을 생각이 들지 않는데, 평범한 사람이 죄를 짓고 이곳에 들어오면 과연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강진호가 가만히 벽에 등을 기대고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분노?
아니, 그런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뭔가 담담해지고 있다.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생생해진다.
‘이 벽이 지금 나를 가두고 있다는 말이지?’
웃음이 난다.
이건 소꿉장난이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한 아이의 주변에 동그랗게 금을 그리고는 그 안에서 나오면 안 된다고 웃어 대는 장난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금 강진호는 저들이 걸어온 장난에 어울려 주고 있다. 언제까지 이 웃기지도 않는 장난에 어울려 줄 것인가가 문제일 뿐이다.
그때, 누군가가 문 쪽으로 접근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강진호 씨, 접견입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접견?’
하루 만에 올 사람이 있나? 아니, 애초에 구치소에 들어온 첫날부터 접견이 가능한가?
철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교도관 두 사람이 입구에 서 있다.
“식사를 마치셨으면 식기를 씻어서 반납하셔야 합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해주십시오. 나오시면 됩니다.”
강진호는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도관 하나가 수갑과 포승줄을 잡고 강진호에게 다가오려 한다. 하지만 선임으로 보이는 교도관이 손을 들어서 후임을 제지했다.
“포승…….”
“됐어.”
“하지만?”
“됐다니까.”
후임이 순순히 뒤로 물러난다.
선임으로 보이는 교도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강진호 씨, 최대한 사정을 봐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강진호 씨도 최대한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이자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다.
막을 수 없는 것으로 기분 나쁘게 만들어 사고를 유발하느니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신 이곳에 가두어두겠다는 의미다.
빤한 수작이지만, 어울려 줄 만하다.
“누가 접견 온 거죠?”
“가보시면 압니다.”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 그대로 가보면 알겠지.
입구로 걸어 나가자 교도관 두 사람이 호위하듯 양쪽으로 달라붙는다.
“이쪽으로.”
강진호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안내하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광경이 낯설다.
빛바랜 흰색으로 칠해진 벽들과 푸른빛이 감도는 회색으로 칠해진 철문들도, 그리고 철문 사이로 나 있는 철창들까지…… 모든 광경이 어색하기만 했다.
닫혀 있는 창살문을 두어 개 통과하고 나서 도착한 곳은 일반적인 접견실이 아니라 작은 방이었다.
교도소장실, 아니면 탕비실?
어디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접견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구치소의 면회는 강화 아크릴을 사이에 둔 접견실에서 행해진다. 강진호의 짧은 상식으로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여기 앉으시면 됩니다.”
교도관이 중앙에 놓여 있는 테이블의 의자를 뺐다. 그러고는 친절하게 자리를 가리켰다.
강진호는 이렇다저렇다 할 말 없이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미처 입을 열 틈도 없이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는 전혀 모르는 얼굴.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강진호 씨.”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꽤나 보고 싶었던 얼굴이지만, 좀처럼 볼 수 없던 사람.
대한민국의 총리인 김명찬이 웃는 낯으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몸이 들썩한다.
스스로는 침착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김명찬도 그 기색을 보았는지 살짝 질린 얼굴을 했다가 이내 침착한 안색을 되찾았다.
“자, 다 나가지.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교도관이 없으면 돌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있어도 마찬가지야. 저 사람이 마음만 먹는다면 내 모가지 하나 따는 건 일도 아니지. 괜히 피해만 늘릴 뿐이야.”
“예? 저 사람이요?”
김명찬과 함께 들어온 이가 의아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런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체구는 오히려 평범한 이들보다 살짝 작은 느낌이다. 키야 작지 않지만, 마른 체형이라 그리 힘이 느껴지는 타입은 아니다.
‘국보법 위반이라더니, 북파공작원이나 뭐 그런 건가?’
“소장.”
“예, 총리님.”
“시간 끌지 말고 시킨 대로 하게.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네.”
“예, 알겠습니다.”
“아, 잠깐.”
총리가 교도관들을 불렀다.
“미안하지만, 커피 두 잔 타 주겠나?”
“예, 총리님.”
곧 정리가 끝나고 다른 이들이 모두 밖으로 나갔다. 강진호는 자신의 앞에 놓인 믹스커피를 빤히 바라보았다.
“입에 그리 맞지는 않겠지만, 한 모금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여기서는 그것도 꽤 귀한 음식이니까요.”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들어 김명찬을 바라보았다.
“경험이 있는 모양이지.”
“집처럼 드나들던 시절도 있었지요. 제가 오가던 시절에 비하면 지내기가 그리 나쁘지 않을 겁니다.”
김명찬이 빙그레 웃었다.
그 표정을 보며 강진호가 실소를 흘린다.
새삼 깨닫게 된다. 정치인이라는 존재들이 얼마나 괴물들인지. 김명찬 역시 지금 강진호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를 죽이는 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강진호의 앞에서 너스레를 떨며 웃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강진호의 앞에 나타날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이자도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쓴 괴물이다.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강진호가 김명찬을 빤히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짓거리를 했군.”
“화를 내시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가 강진호 씨의 입장이었더라도 화가 났겠지요. 하지만 이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이런 방법이 아니고서야 강진호 씨를 통제할 수단이 없지 않습니까?”
김명찬이 너스레를 떨려 자신의 목을 주물렀다.
“이러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제 목이 떨어져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죠.”
“잘 아는군.”
김명찬이 가볍게 웃었다.
강진호의 눈에는 보였다.
김명찬은 최대한의 여유를 가장하고 있지만, 그의 심장 소리는 너무도 크고 빠르다. 그리고 숨도 가빴다. 평범한 이들은 보지 못할 미세한 차이가 강진호의 눈에는 똑똑히 보인다.
지금 강진호의 앞에서 여유를 가장하는 것만으로 김명찬은 가진 체력과 정신력을 모두 소모하고 있었다.
그 역시 필사적이라는 뜻이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얼마든지 물어보셔도 됩니다.”
“왜 그랬지?”
“……예?”
강진호가 살짝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말이야. 나의 존재가 당신들에게 피해가 된 적이 있었나?”
“…….”
“나는 바깥세상을 최대한 존중했어. 그렇기에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양보하고, 협조할 것은 최대한 협조했지.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고 나니 되레 궁금해지더군. 그렇게까지 나를 죽이려 한 이유가 뭐지?”
김명찬이 손을 들어 안경을 살짝 밀어 올렸다.
“수많은 질문을 예상했고, 그에 대한 답변도 준비했지만…… 이건 쫌 뜻밖이군요. 여기까지 와서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겁니까?”
“그게 가장 중요하니까.”
김명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말씀드리려면 제가 강진호 씨에 대한 일련의 일들을 지시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만.”
“이제 와 새삼?”
김명찬이 웃고 만다.
“그렇군요. 예, 그래요. 이건 법과는 관계없는 일이죠. 제가 모든 증거를 없애도 당신은 심증만으로 나를 죽이려 들겠죠. 그리 의심하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침묵은 바로 긍정이다.
“그래서입니다.”
김명찬이 차가운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최대한 협조하려 했고. 최대한 양보했다.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강진호 씨, 모르시겠습니까? 평범한 이들에게 법이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 게 법이죠. 물론 세상에는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 역시 편법의 증거가 나오면 법에 심판을 받는다는 건 달라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대통령도 법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김명찬이 목이 타는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당신들에게 있어서 법이란, 그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지켜도 되고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에 불과합니다. 협조와 양보라고 하셨죠. 알고 있습니다. 그건 저에 대한 호의였겠죠.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당신들이 정권과 각을 세우는 순간, 어떤 법도 당신들을 구속하지는 못할 겁니다.”
김명찬이 이를 갈 듯 말했다.
“국가라는 체제하에 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사병을 키우는 세력을 그대로 용인해야 할 이유가 되레 궁금하군요. 저희가 당신들에게 호의를 보여야 할 이유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강진호와 김명찬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두 사람다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애초부터 협상의 여지가 없었군.”
김명찬은 무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무인들이란 존재만으로 국가를 위협하는 사병 집단일 뿐이다. 그리고 강진호는 태생부터 무인이다.
이건 영원히 교차되지 않는 철길과도 같았다. 동행할 수는 있어도 융합할 수는 없다.
결국 언젠가는 이 사단이 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나를 죽이려 했다는 건 이해하겠다.”
강진호의 눈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 방법은 의외로군. 정말 이런 걸로 나를 잡아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김명찬이 가볍게 웃었다.
“이미 당신은 이곳에 있지 않습니까?”
“…….”
“강진호 씨, 강진호 씨는 스스로를 잘 모르는 사람 같군요. 제가 보기에 당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뭔지 아십니까?”
“…….”
“가족? 친구? 동료? 돈? 아니요,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지요. 당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삶의 균형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당신은…….”
김명찬이 살짝 섬뜩한 표정을 지었다.
“손에 쥔 무엇도 놓을 생각이 없는 욕심쟁이지요. 강진호 씨, 당신은 희생이 뭔지 모릅니다.”
말이 섬뜩한 비수가 되어 강진호에게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