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89
#1388.
체포되다 (3)
“희생?”
강진호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희생이 뭔지 모른다고?”
강진호의 눈이 가라앉았다.
이자는 강진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강진호가 지금의 삶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희생했는지 짐작이나 하고 이딴 말을 지껄이는 걸까?
그런 강진호의 생각을 짐작한다는 듯이 김명찬이 선수를 쳤다.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지요.”
김명찬이 깍지 낀 손을 풀고는 종이컵을 잡았다. 아직 뜨거운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머금은 김명찬이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봤다.
“많은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하실 테니까요.”
“…….”
“하지만 회주님, 당신은 희생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계십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그럴 겁니다. 평범한 삶을 사는 이들은 생각해 보지 않는 일이니까요.”
“평범한 삶?”
“아, 물론 회주님의 삶이 평범하지 않았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회주님께서는 단 한 번도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서 몸을 낮춰본 적이 없지 않으십니까?”
강진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알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만, 김명찬의 말은 강진호의 삶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었다.
“그래서 몸을 낮추라는 건가?”
“아니요. 그저 그런 말을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회주님, 당신께서는 지금의 삶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셨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실제로 회주님께서는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째서지?”
“희생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김명찬이 선문답을 하듯 말을 던졌다.
그러고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말을 이어갔다.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거지요.”
“…….”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희생이라는 걸 자신이 피해를 입는 것이라 착각합니다. 회주님도 마찬가지죠.”
김명찬의 목소리가 점점 진중해졌다.
“희생이라는 건 아파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회주님은 주변인을 위해서 자신이 고통을 받는 것뿐이죠. 그게 희생이 되려면 회주님이 자신을 주변인들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는데요?”
강진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말이 맞으니까.
“주변인들을 위해서 자신이 어느 정도의 고통과 답답함을 감내하는 걸 희생이라 부른다면 돈을 위해서 과로를 하는 이들도 희생을 하는 거고, 부상을 참아가며 경기를 뛰는 운동선수들도 희생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그런 걸 희생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김명찬이 능글맞게 웃었다.
“그러니 회주님은 욕심쟁이라는 겁니다. 회주님은 희생하는 것처럼 굴지만, 실제로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단 하나도 놓지 않으려 하거든요. 제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다행스럽게 말입니다.”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인정하지.”
“……뭘 말입니까?”
“은연중에 나는 그쪽을 꽤나 무시하고 있던 것 같군. 경계해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지만, 실제로 그쪽을 가장 무시하고 있던 건 나였던 모양이야.”
김명찬이 피식 웃으며 안경을 밀어 올렸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군요. 기분 나쁘다고 해야 할지, 이제라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강진호도 그런 김명찬을 보며 마주 웃었다.
“그래서…….”
“…….”
“그쪽이 보기에는 이제 내가 어떻게 할 것 같나?”
강진호가 가라앉은 눈으로 김명찬을 노려보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김명찬의 목을 꺾어놓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제 예상이 의미가 있겠습니까?”
김명찬이 너스레를 떨었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점은 있죠. 저는 회주님께서 아무것도 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나?”
“예. 그게 최선이니까요.”
“최선?”
김명찬이 빙그레 웃었다.
“회주님에게 있어서 최선은 스스로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게 아닙니다. 자신은 조금 낮은 곳에 있더라도 주변인과 가족들이 행복해지는 거겠죠.”
“…….”
“이곳은 낮은 곳입니다. 회주님이 조금만 불편을 감수한다면 남은 분들은 평범한 삶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주님께서 다른 생각을 품는다면, 회주님은 조금 편해질지 모르겠지만 다른 분들의 행복은 사라지겠죠. 탈옥한 범죄자의 가족, 친구가 될 테니까요.”
강진호의 입꼬리가 더 짙게 말려 올라갔다.
“그러니 내가 감수해야 한다?”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건 회주님의 선택이겠죠. 지금 당장 저를 쳐 죽이시고 나가셔도 됩니다.”
김명찬은 조금의 조롱도 보이지 않았다.
승리한 자의 태도가 아니다.
“하지만 회주님이 그 선택을 하실 리 없다고 믿습니다. 그건 모두가 파멸로 가는 일이니까요.”
강진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김명찬이 품 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피우십시오.”
“수형자에게 이런 걸 줘도 되나?”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강진호가 담배를 물고는 불을 붙였다. 짙은 담배 연기가 방 안을 채우기 시작한다.
폐 속으로 짙은 담배 연기가 들어오자 속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다.
“회주님.”
김명찬이 강진호를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 계셔주십시오.”
“…….”
“이건 권고가 아닙니다. 부탁입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총회와 정권의 관계는 너무도 극단적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회주님이 바깥에 계시면 정리가 불가능합니다.”
“내가 뭐라도 잘못했다는 듯이 말하는군.”
“알고 있습니다. 잘못은 이쪽이 했습니다. 그러니 억지를 부릴 수밖에 없지요.”
김명찬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사과로 면피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 목을 원한다면 드리지요. 하지만 이건 제 일이 아닙니다. 이건 국가의 일입니다.”
“…….”
“보장하겠습니다. 밖에 계신 가족분들의 안전, 그리고 MK에 대한 지원, 총회에 대한 안전까지. 모든 것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회주님이 교도소 생활을 하는 데도 불편함이 없게 해드리겠습니다. 외출은 물론이고, 교도소 내에서 허락되지 않은 일들도 제 직권으로 허가해 드리겠습니다.”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대한민국 총리의 권한이 그 정도나 되나?”
“물론 원래는 불가능합니다.”
“모든 사람은 법 아래 평등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지?”
“……회주님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없는 죄를 뒤집어씌웠는데, 그만한 대접은 해드려야죠.”
“그런 말을 지껄이면서 양심의 가책도 없는 모양이지?”
“네. 전혀 없습니다. 어차피 회주님은 살인자가 아닙니까?”
“…….”
김명찬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법으로 따지자면 회주님은 진즉에 사형을 당했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죄 하나 씌우는 게 뭐가 그리 문제겠습니까?”
강진호가 웃고 말았다.
이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그 죄와 이 죄는 별개의 문제지만, 그런 것을 일일이 따져 물을 정도로 강진호의 양심이 빈약하지는 않다.
“그러니 회주님께서 조금 참아주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회주님의 삶과 그리 다른 것도 없잖습니까? 회주님만 참으시면 모든 것은 해결될 겁니다.”
강진호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담배를 빨았다.
김명찬을 만나게 되면 분노로 이성을 잃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김명찬을 만나보니,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냉정해진다.
“나만 빠져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회주님.”
김명찬이 낮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모든 일의 원인은 회주님입니다. 회주님이 등장하고부터 세상이 뒤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제 와 회주님이 사라진다고 해도 완전히 정리가 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지금 같지는 않을 겁니다.”
“총회를 너무 무시하는 발언 같은데?”
“그 말씀은 회주님의 영향력을 너무 쉽게 본 말씀이십니다. 회주님의 영향력은 회주님이 생각하시는 이상입니다.”
강진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사람을 이 꼴로 만들어놓고 잘도 그런 말이 나오는군.”
“회주님께서 잡혀주실 생각이 아니었다면, 누가 회주님을 잡을 수 있었겠습니까?”
강진호가 담배를 커피에 던져 넣었다.
그러고는 가만히 김명찬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눌린 김명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직 정리가 되지 않으셨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주님, 서로가 같이 사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회주님께서 제 제안을 받아주신다면, 정리가 끝나는 대로 회주님을 사면시키고 복권시켜 드리겠습니다. 막대한 보상금도 약속하겠습니다.”
“거기까지.”
강진호가 담담한 목소리로 김명찬의 말을 끊었다.
“더 지껄이지 않는 게 좋아. 슬슬 그 목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했으니까.”
김명찬이 입을 닫았다.
강진호는 말로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정말 그 목소리가 거슬리는 순간, 김명찬의 목을 잡아 비틀어 버릴지도 모른다.
함정에 빠진 것은 강진호지만, 줄타기를 하는 사람은 김명찬이었다. 애초부터 이건 공정한 거래도, 정정당당한 협상도 아니다. 한 쪽은 자신의 목을 걸고, 다른 한 쪽은 그저 시간만을 건 불공정 거래였다.
“돌아가.”
“회주님.”
“개소리 잘 들었어. 그쪽 생각은 알았으니까, 이제는 내 차례겠지. 돌아가. 그리고 기다려. 내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알게 될 거야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바로 말이야.”
김명찬의 안색이 살짝 하얗게 질렸다.
강진호의 말에 숨은 뜻을 짐작하지 못할 그가 아니다. 강진호가 김명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결정을 한다면, 그 순간 그의 앞에 나타나겠다는 뜻이다.
찾아온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살짝 핼쑥해진 얼굴로 김명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 보겠습니다. 회주님이 정리를 끝내실 때쯤 다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그동안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 할 테니, 불편한 점이 있으시다면 교도관들에게 바로 말씀을 해주시면 됩니다.”
강진호가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두드리려던 강진호가 잠시 멈춰 섰다. 그런 후,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하나만 묻지.”
“…….”
“그 모든 제안에 하나가 빠져 있군.”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치 굶주린 짐승 같은 강진호의 눈이 먹이를 포착하듯 김명찬을 잡아 붙들었다.
“너는 네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나?”
“…….”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돌아가. 내가 너를 찾아갈 테니까. 그게 언제가 됐든, 그때 너는 절대 쉽게 죽지 못할 거야. 약속하지.”
강진호가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교도관이 문을 열고 강진호를 데리고 나갔다.
홀로 방에 남겨진 김명찬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 담배를 잡았다.
갑에서 담배를 빼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입에 문 김명찬이 몇 번이고 불을 붙이려다가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의 이마는 이미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호랑이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민 것뿐이다. 진짜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이 많다.
김명찬이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