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9
#138.
징치하다 (3)
포대는 빠르게 정상을 되찾아갔다.
주영기는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마치 그가 처음부터 없던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강진호도 다르지 않았다.
“장재환.”
“일병 장재환!”
“청소.”
“……한다고 했지 말입니다.”
“다시.”
“예.”
장재환은 울상을 짓고는 걸레를 잡았다.
“하아.”
장재환이 걸레를 후임들에게 던졌다.
“얘들아, 우짜겠냐. 강진호 상병님이 침상 다시 타라신다.”
“장재환 일병님.”
“왜?”
“제 생각인데, 강진호 상병님은 여기가 호텔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직접 말씀드려라, 직접.”
“그럴 용기는 없지 말입니다.”
주영기에 대한 조사는 노수봉이 예상한 대로 다급하게 끝이 났다.
보호자가 찾아와서 온갖 의혹을 늘어놓고 항의해도 자살로 판정을 내려 버리는 일이 흔한데, 딱히 보호자의 역할을 할 사람이 없는 주영기를 자세히 조사할 사람은 없던 모양이다.
― 재경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보호자는요?”
― 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동생이 있는데, 아버지는 금치산자나 다름없습니다. 알코올중독인데…… 심각하더군요. 할머니가 청소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해 온 모양인데, 그 할머니가 얼마 전 폐렴에 걸려 입원해 있는 상태입니다. 병원비도 제대로 대지 못하고 있더군요.
“동생은 어떻게 됐습니까?”
― 이제 겨우 중학생입니다. 애가 너무 어려서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형이 입원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강진호는 수화기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겁니까?”
― 예전에 돌아가셨답니다.
“그렇군요.”
강진호는 심호흡을 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경과를 잘 지켜봐 주세요. 그리고 할머니도 지원을 좀 해주시면 좋겠네요.”
― 이미 병원비 부분은 해결해 두었습니다. 아이는 법적인 문제가 해결이 덜 되어서 시설로 옮기기는 어렵지만, 우선 사회복지 단체에 의뢰를 해놓은 상태입니다. 힘을 좀 쓰면 아버지를 금치산자로 만들어 양육권을 빼앗아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급한 대로 성심에 옮겨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착한 아이들이니 잘 지내줄 것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동생이 영기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곧 면회할 수 있을 겁니다. 할머님은 아직 주영기 씨가 입원했다는 사실을 모르시더군요.
“할머니 쪽은 괜찮으신가요?”
― 지속적으로 관리를 받으면 쾌차하실 수 있겠지만, 몸이 너무 약해진 상황이라 앞으로 계속 일을 하시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생활비 쪽은 제 쪽에서 다 대주세요.”
― 예,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전화드릴게요.”
― 고생하십시오.
강진호는 전화를 끊고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
오후가 되자 강진호는 새로운 방문자의 호출을 받아야 했다.
“네가 강진호인가?”
“예.”
“반갑다. 나는 남태식 소령이다. 기무사에서 나왔다.”
“예.”
“앉아라.”
강진호는 남태식이 가리킨 곳에 앉았다. 포대장실에는 그와 남태식 둘뿐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벌어진 일 때문에 네게 협조를 구하고자 왔다.”
“예.”
“혹시 이번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나?”
강진호는 가만히 남태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강진호의 시선을 받은 남태식이 설명을 시작했다.
“자살 사건으로 대충 묻어버리려는 모양이더군.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자살을 시도했다면 그 원인이 있어야지. 그런데 아무 원인도 없는 애가 갑자기 비관 자살을 한다는 게 말이 되나? 꼭 밖으로 나가겠다는 의지가 있는 아이가 자살을 할 이유가 없지.”
“…….”
“분명 부조리가 있어. 분명히 누군가 괴롭힌 사람이 있을 거야. 그런데 너무 깨끗하게 나오더라, 이 말이지. 적극적으로 파고드는 사람도 없고. 어떠냐? 내 말이 틀렸어?”
“저는 모르겠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라…….”
강진호를 가만히 바라보던 남태식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 피우나?
“예.”
“한 대 하지.”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지만, 남태식은 담배를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다. 강진호는 별수 없이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찰칵.
담배에 불이 붙고 끝이 타들어 간다. 남태식은 자신도 담배를 한 대 물고는 불을 붙였다.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
“사람이 자신의 목에 구두끈을 맨다는 게 쉬운 일 같아? 뭐 대단한 곳에 매달린 것도 아니야. 마음만 먹고 다리만 폈으면 살 수 있는 상황이라고. 그런 상황에서 끝까지 다리를 펴지 않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강진호는 깊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뿜었다.
“조금만 도와주면 된다. 나는 지금까지 왔다 갔던 저런 썩어 빠진 것들이랑은 다른 사람이다. 단 한 사람만 용기를 내주면 내가 해결할 수 있어.”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걔 동기였잖아. 들은 말이라든가, 징후 같은 걸 본 게 없냐? 잘 생각해 봐.”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이봐! 강진호!”
남태식이 역정을 냈다.
“사람이 하나 죽어가는 일이다! 그런데 이백 명이나 있는 부대에서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만, 저는 정말로 아는 게 없습니다. 다른 애들에게 물어보시는 게 낫겠습니다.”
“야! 강진호!”
강진호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남태식이 깊이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봐.”
“예.”
강진호가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남태식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방조도 살인과 다를 게 없다. 너는 지금 네 동기의 억울함을 묵인한 거야.”
강진호가 문을 살짝 열고는 조용히 말했다.
“아마 아닐 겁니다.”
“응?”
탁.
문이 닫히고 강진호가 밖으로 나가자 남태식은 꺼져 버린 담배에 다시 불을 붙였다.
“빌어먹을.”
수사는 종결되었다.
아무런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아니, 증거를 발견하려 들지 않은 덕분인지 개인적인 일로 인한 자살 시도로 결론이 났다. 후에 주영기가 깨어나서 증언을 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잠정 결론이 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그 새끼…… 깨어난데요?”
노수봉은 전화를 하며 역정을 냈다.
“다른 병원으로 보내게 두시면 어떻게 해요. 그러다가 일어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아들 감옥 가는 거 보고 싶으신 거예요?”
말투는 초조했지만 노수봉의 얼굴에는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깨어날 가능성이 없다, 이거죠? 하, 불안하네. 처리할 방법은 없어요? 네? 사고는 무슨 사고예요. 진짜 저는 한 게 없다니까요. 미친놈이 갑자기 목메는데, 제가 뭘 어떻게 해요. 괴롭히긴 뭘 괴롭혔다고.”
노수봉이 한껏 짜증을 내고는 전화를 끊었다.
“아, 씨발. 꼰대.”
처리해 줄 거면 그냥 해주면 되지, 꼭 잔소리 한마디씩은 붙여서 짜증이 났다.
“야, 김학철.”
“상병 김학철.”
“가서 그거 처리해.”
“……그거라고 하셨습니까?”
“아, 씨발. 그거 있잖아. 노트.”
“예.”
“태워 버려.”
“예, 알겠습니다.”
노수봉의 기분이 좋지 않은 듯 보이자 슬금 그의 눈치를 살피던 김학철이 포상으로 부리나케 뛰었다.
‘이제 끝났나 보네.’
주영기가 써둔 일지를 왜 굳이 지금까지 놔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알리바이를 만들 때 쓴다던데, 결과적으로 알리바이를 만들 일도 없지 않은가.
‘생각이 있었겠지.’
노수봉의 머리는 확실히 김학철보다는 비상했다. 그가 지금까지 놔두었다면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라이터를 찰칵대며 포상으로 향한 김학철이 위장막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자, 여기…… 어?”
분명히 여기에 둔 것 같은데 노트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김학철이 당황해서 손을 휘젓기 시작했다.
이게 없으면 안 되는데…….
“뭐 찾으십니까?”
김학철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가, 강진호?”
“이거 찾으십니까?”
강진호의 손에는 낯익은 연습장이 들려 있었다. 김학철이 기겁을 하여 소리쳤다.
“야, 야, 이 새끼야! 니가 그걸 왜 가지고 있어!”
주영기가 쓴 노트가 분명했다.
강진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김학철을 바라보다가 노트로 고개 돌렸다.
“이런 건 잘 보관하셨어야지 말입니다.”
“너, 이 새끼…….”
김학철은 순간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을 하는 건 노수봉의 일이었지, 그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화르륵!
갑자기 강진호가 들고 있던 노트에 불이 붙더니 크게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어?”
김학철이 얼이 빠진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재로 화해 버린 노트를 털어내며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그럼.”
강진호가 뚜벅뚜벅 걸어 생활관으로 향했다. 김학철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뭐지, 저 새끼?’
“그러니까, 그게 뭔 소리야?”
“연습장을 태웠다는 말입니다, 강진호가.”
“그러고는?”
“그러고는 중요한 물건은 잘 보관하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하, 씨발.”
노수봉이 짜증이 난다는 듯 김학철을 노려보았다.
김학철이 찔끔해서 고개를 숙였다.
“됐어. 씨발, 어쨌든 그 연습장은 이제 사라졌다는 거 아냐.”
“예.”
“확실하지?”
“그 연습장 맞습니다. 사제 거라서 구분이 확실히 갔습니다. 새로 구해 온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낡은 건 못 구합니다.”
“그럼 됐어.”
“……근데 그 새끼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한몫 챙겨 달라는 거겠지, 씨발 놈. 협박을 안 한 건 잘했다고 해줘야지. 돈 좀 쥐어 주면 되는 거야.”
노수봉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막판에 좀 꼬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다 해결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간만에 편안한 얼굴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밤이 찾아왔다.
점호가 끝나고 자리에 누운 김학철이 노수봉을 향해 말했다.
“이제 다 끝난 거지 말입니다?”
“그래. 너만 입 잘 처닫고 있으면 된다.”
“혹시 그 새끼, 깨어나지는 않겠지 말입니다?”
“반 뇌사란다. 깨어나도 그 새끼 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그 정도 힘도 없을 것 같냐?”
“……이제 좀 안심됩니다.”
김학철은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그동안 잠을 자면서도 좌불안석이었는데, 이제야 좀 편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에 빠졌던 김학철은 기이한 감각에 눈을 떴다. 자꾸 몸에 한기가 파고드는 것 같았다.
‘춥다.’
보일러병 놈이 보일러를 제대로 안 튼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한기가 들겠는…….
“읍?”
여기가 어디지?
눈을 뜬 김학철은 익숙하고도 낯선 광경에 급격히 고개를 틀었다.
‘보일러실?’
왜 자신이 여기에 있단 말인가. 몽유병이라도 생기지 않은 이상 이곳에 자신이 있어야 할 이유는 없을 텐데?
몸을 일으키려던 김학철은 자신의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는 전율했다.
가위에라도 눌린 것인가.
그때, 그의 귓가에 아주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그분은 내게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그 목소리는 마치 지옥에서 흘러나온 것만 같았다.
듣는 순간 전신이 얼어붙는 느낌.
몸이 쪼그라들고, 손발이 절로 덜덜 떨려온다.
그저 음성을 들었을 뿐인데도 김학철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뭐지?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그럼…….”
그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나는 너희에게 어떤 손을 내밀어야 할까?”
보일러실 구석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마귀가 천천히 그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