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92
#1391.
적대하다 (1)
“……맡아주겠다는 변호사가 없습니다.”
위긴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변호사가 없다고?”
“예.”
“한국의 변호사들은 내가 아는 변호사들과는 뭔가 다른 건가? 돈만 주면 악마도 변호하는 이들이 변호사 아닌가?”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이현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정부에서 압박을 넣고 있는 모양입니다.”
“압박? 지금 정부의 압박이라고 했나?”
“예.”
위긴스가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부릅뜬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변호사라는 놈들은 정부의 작은 실수 하나를 물어뜯어 돈으로 바꾸고, 정부가 압박을 하면 그걸 다시 소송 걸어서 떼돈을 버는 아귀 같은 놈들 아니었는가? 나는 적어도 그렇게 알고 있네만?”
“물론 영미권에서는 그럴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국의 변호사들에게는 그 정도의 힘이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은 굉장히 민감한 법입니다. 함부로 변호하겠다고 나설 수가 없습니다. 이미지가 있으니까요.”
“이미지? 겨우 이미지 때문에?”
위긴스의 어이없다는 표정을 보며 이현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미국이나 영국과 다르게 한국에서는 아직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변호를 한다는 게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나 북한이라는 골치 아픈 놈들이 버젓이 한국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말입니다.”
“이해를 못하겠군. 그렇다면 지금까지 국보법으로 수감된 이들은 다들 제대로 된 변호를 받지 못했다는 건가?”
“사실 그쪽으로 전문적으로 움직이는 변호사들이 있습니다만…….”
“그렇지. 당연히 그래야지. 그럼 그들과 접촉을 해보면 될 것 아닌가.”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해봤습니다. 하지만 회주님의 변호는 맡고 싶지 않다고 하는군요.”
“어째서?”
이현수가 입술을 오물거렸다.
“부자라서요.”
“……지금 뭐라고 했나?”
“돈이 많은 재벌이라서 굳이 변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답니다. 비싸고 좋은 변호사를 고용하라더군요.”
위긴스가 의자에 늘어졌다.
그의 상식으로는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이게 뭐 하는 나라야?’
변호사라는 건 서비스직이다.
법률을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대행해 주는 이들일 뿐이다. 근본적으로는 세무사나 회계사와 그리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뭔 놈의 변호사가 일을 가리고, 돈을 준다는데도 일을 받지 않는가.
그의 상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살던 영국이나 미국이었다면 지금쯤 잘나가는 로펌들이 서로 자기가 변호를 맡겠다고 진을 치고 있을 일이건만…….
“그래서 변호사를 구할 수 없다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변호를 맡겠다는 이를 찾을 수야 있겠죠. 그리고 정 안 되면 국선 변호사라도 선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부에 압박을 넣을 수 있는 잘나가는 로펌을 섭외하는 데 실패했다는 거죠.”
위긴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망할.”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가 이해하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상황이 이리되어 버렸다는 것뿐.
“……영국의 변호사들을 불러올 수만 있어도 걱정이 없을 텐데.”
“법이 다르니까요.”
위긴스가 초조한 듯 허벅지를 톡톡, 두드렸다.
“일단 어떻게든 괜찮은 변호사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네. 로드께선 최대한 합법적으로 이 사태를 풀고 싶은 모양이니까.”
“……예.”
“빌어먹을 놈들.”
위긴스가 이를 갈았다.
그들이 강진호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체포하지만 않았더라도 상황이 이리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 안 되면 일단 김명찬을 박살 내놓고 수습을 하는 극단적인 조치도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가족들이 강진호가 구치소에 구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접견을 신청하고 있는 이상, 강진호는 제 발로 구치소를 나가기가 어려워진다.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기에 애초부터 양립은 무리라고 그만큼 말씀을 드렸는데도…….”
“이제 와 그런 말을 해서 뭐 합니까. 그래서 하시던 건 어떻게 됐습니까?”
“곧 결과가 나올 걸세. 이게 생각만큼 빨리 처리되는 일이 아니라서.”
이현수가 법 쪽을 담당했다면, 위긴스는 외교를 담당하는 중이었다.
“희망은 있습니까?”
“그게…….”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라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닐세. 기본적으로 유럽 연합은 원탁과 긴밀한 공조를 이루고 있으니까. 원탁에서 요청하는 일이라면 최우선적으로 처리해 주려고 했겠지.”
“……지금은 좀 다르다는 말로 들립니다만?”
“문제가 두 개 있네.”
“예?”
위긴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나는 지금 EU의 의장이 독일 수상이라는 거지. 알다시피 독일은…….”
“우리와 최악이죠.”
“그렇다네.”
마스터가 원탁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강진호에게 가장 크게 당한 나라 중 하나가 독일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는 나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독일과 프랑스만은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였다.
하필 그 독일의 수상이 지금 EU의 의장을 맡고 있는 것이다.
“감정이 좋을 수가 없으니, 요청이 들어와도 빨리 처리하려 들지 않을 걸세. 의장이 꾸물대고 있으니 다른 회원국들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테고.”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본래 이럴 때는 내가 영국의 의회를 통해서 독일을 압박하고 일처리를 빨리할 수 있록 만들어야 하는데…….”
위긴스의 얼굴이 더 일그러질 수 없을 만큼 일그러졌다.
“알다시피 지금 영국이…….”
“어, 음…….”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브렉시트군요.”
“그러니까.”
이현수의 얼굴에 짜증이 어렸다.
“아니, 대체 영국은 왜 그렇게 대책이 없답니까?”
“그놈들이 대책 없는 게 어디 한두 세기의 일인가! 영국은 언제나 대책이 없고, 앞으로도 대책이 없을 걸세! 그 미친놈들!”
“…….”
격렬하게 자아비판을 쏟아내는 위긴스를 보니, 더 따져 묻기가 힘들다. 이현수가 쓴웃음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결국 외교를 통한 지원도 한계가 있다는 거군요.”
“한계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네. 어떻게든 상정만 된다면 압박은 반드시 이어지네. 문제는 그 압박이 시작되는 시기를 내가 가늠할 수가 없다는 거지.”
“…….”
“게다가 로드께서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원탁의 분위기 역시 심상치가 않네. 숨길 수 없는 일이라 오픈하기는 했지만.”
“아, 그 생각은 못했네요. 마스터께선 괜찮으십니까?”
“아직은 별문제가 없는 모양일세. 마스터는 자네 생각 이상으로 유능하고 대단한 분일세. 그새 통제를 위한 장치를 꽤나 마련해 두신 모양이야.”
“으음, 그럼 다행이군요.”
“하지만 그것 역시 영원할 수는 없겠지.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마스터가 가진 원탁에 대한 지배력은 로드께 의존하는 바가 크지 않은가.”
“예, 그렇죠.”
“그러니 마스터도 필사적으로 의회를 압박할 수밖에 없어. 로드께서 풀려나셔야 원탁도 다시 안정화가 될 테니까.”
“확실히…….”
이현수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회주님이 자리를 오래 비우시면 모든 게 무너진다.’
일단 위긴스가 말한 대로 강진호가 구치소에 오래 수감되어 있다면, 당장 원탁부터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는 분명 총회에 영향을 미친다.
강력한 지배를 하던 이가 무너지게 되면, 전혀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이들이 그 지배권을 이어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다시 말해 원탁에서 마스터가 실각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원탁은 반총회로 돌아설 확률이 높았다.
‘가장 강력하고 든든한 동맹이 최악의 적으로 돌변하는 사태가 벌어지겠지.’
그것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지만, 원탁을 잃은 여파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선 지금까지 한국을 침공하기 위해서 원탁의 지원을 염두에 두었어야 할 삼왕계들도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아주 산뜻한 결론을 낼 수 있겠지.
강진호가 움직이지 못하고 원탁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총회의 전력은 최소 절반…… 아니,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7할 이상 급감한다고 봐도 된다.
막말로 홍왕계가 전력의 절반만 떼어서 한국으로 밀고 들어와도 속절없이 밀려 전멸하고 말 것이다.
“이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보통 일이 아니네요. 원탁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원탁만이 아닐세. 지금 회주님이 수감되었다는 사실이 일본에 전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가?”
“일본은 전력을 거의 상실하지 않았습니까?”
“적이 문제가 아니야. 아군이 문제지. 모르겠는가? 일본에 나가있는 원정군들은 대부분이 마교와 마염으로 이루어져 있네. 그들이 로드께서 감옥에 갇혀 있는데 냉정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무리겠죠.”
아니, 단순히 무리는 아니다.
모르긴 해도 당장 구치소 벽을 때려 부수고 회주님을 구출하겠다고 난리를 칠 게 빤하다.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구치소 벽을 부수는 순간 회주님께 개처럼 처 맞고 쫓겨나겠지만, 일단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부터 호러였다.
이현수와 위긴스가 눈을 마주쳤다.
“일단은 어, 음…….”
“최대한 그쪽에는 숨겨보도록 하지. 나는 솔직히 장민 장로가 어떻게 나올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네.”
“장민 장로님은 그렇다 치고…….”
“음?”
“바토르 님은 어떻게 합니까?”
“…….”
위긴스의 머릿속에 광분한 바토르가 구치소를 때려 부수는 광경이 생생히 재생되었다.
“……빌어먹을, 아군이 더 무섭다더니.”
보통 이럴 때 힘이 되어주는 게 동료인데, 동료들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숨겨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다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위긴스였다.
“일단은 최대한 얼버무려 보세.”
“대책이 너무 빈약한 것 같습니다만?”
“다른 수가 없지 않은가. 일단 어떻게든…….”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벌컥!
누군가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이의 얼굴을 확인한 위긴스가 살짝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문은 발로 차는 게 아니라 손으로 여는 걸세.”
“지금 그딴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TV 켜보십시오! 지금 빨리!”
방진훈의 격한 외침에 위긴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TV?”
“빌어먹을, 여기는 없구나!”
방진훈이 재빨리 휴대폰을 켜 동영상을 틀었다.
“일단 설명을…….”
방진훈의 행동을 제지하려던 위긴스가 화면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작은 휴대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위긴스의 몸을 굳게 만들었다.
[경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0대 사업가 K씨를 긴급체포했다고 알려왔습니다. K씨는 최근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무단으로 북한을 방문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경찰은 K씨가 북한을 방문한 목적을 규명하는 한편, 이적 행위가 있었는가를 중점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체포된 K씨는 최근 설립된 기업 MK의 대표이사로…….]위긴스의 얼굴이 더 이상 일그러질 수 없을 만큼 일그러졌다.
“이 개자식들이!”
이건 선전포고다.
끝까지 가보겠다는 선전포고.
“이 실장!”
“예! 이사님!”
“장민 장로와 이명환 소환해! 바토르 님께 연락해서 최대한 빠르게 총회로 복귀하라고 전하고.”
“예!”
위긴스가 이를 갈았다.
‘어디, 해보자는 거지.’
이제 브레이크는 없다. 둘 중 하나가 끝장날 때까지 서로 죽이고 죽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