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
#13.
학교 가다 (6)
어디쯤 흘러왔을까
기억은 희미해지고 향기마저 낯설어
잊히고 사라진 시절은
이젠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데
시간은 흘러간 걸까
아픔은 희미해지고 추억조차 낯설어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은
이젠 아련하게 멀어져 가는데
그 시절, 나는 사랑을 했고
그 시절, 나는 세상을 걸었고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수 있다면
뭔가 굉장히 잘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프로처럼 기교가 뛰어나다거나 성량이 좋아서 쏙쏙 들어온다거나 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강진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노래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 닿는다.
마음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언제쯤 흘러왔을까
시간은 멈추지 않고 아픔마저 멀어져
잊히고 사라진 시절은
이젠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 시절, 나는 사랑을 했었고
그 시절, 나는 세상을 걸었고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 시절을 돌아보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되었네
그 시절 나는 사랑을 했고
그 시절 나는 세상을 걸었고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수 있다면
노래가 끝나고 점수가 나왔지만, 그때까지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기이한 여운이 노래방 안을 감돌고 있었다.
“……우와!”
한세연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너 진짜 노래 잘한다.”
태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원래 이렇게 노래를 잘하지 못했는데.”
“나 이 노래 아는데…… 음정, 박자 다 틀렸어. 그런데 이상하게 듣기 좋네.”
그들이 알 리가 없었다.
이 노래 한 곡에는 강진호가 중원에서 떠돌던 시절의 한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러니 기교가 없어도 울림이 있는 것이다.
원곡을 듣지도 못하고 수십 년을 불러오다 보니 많은 부분이 변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별로 슬픈 노래 아닌 것 같은데, 나 울 뻔했어…….”
“나도.”
강진호는 씁쓰레 웃었다.
그들이 슬픔을 느꼈다면, 강진호 역시 그때의 기억을 떠나보내지 못했다는 뜻이리라.
이 세계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그의 가슴 안에는 중원을 떠돌던 세월들이 강하게 남아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젠 잊어야지.’
지나간 세월을 굳이 잡을 필요는 없었다. 잊을 수 있다면 빨리 잊는 것이 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중원에서의 삶이 강진호를 바꿔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변화가 이 세계를 살아감에 있어서 긍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언제나 피와 죽음과 함께하던 삶은 현대를 살아감에 있어서 짐이 되면 짐이 되었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더 불러봐.”
“아는 노래가 없어.”
“그럼 그거 또 불러줘.”
“됐어. 뭘 또…….”
강진호는 손을 내젓고는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아이들은 아쉬운 듯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지만, 그렇다고 더 재촉을 하지는 않았다.
한세연이 슬그머니 다가와 강진호 옆에 앉았다.
“한 번만 더 불러주면 안 돼?”
“다음에.”
“그럼 다음에 노래방 또 같이 오는 거다?”
“알았다.”
한세연의 말에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여운이 남긴 했지만, 다음 노래가 시작되자 얼마 못 가 가라앉은 분위기는 씻은 듯 사라져 버렸다.
가벼운 세대다.
하지만 그게 좋았다.
굳이 무거울 필요도 없고, 다른 이의 감정에 그리 이입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을 즐기고 재미있게 사는 것.
중요한 건 그것이었다.
한참을 그리 노래하고 즐기던 아이들은 시간이 모두 끝나자 자리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추가 시간도 안 주네.”
“비싼 데라 그래.”
“비싸면 더 잘 줘야지!”
태호가 연신 투덜거렸다.
강진호는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없군.’
하늘은 그저 검기만 했다.
보통 사람들이 공해에 찌들어 보기 싫은 하늘이라 말하는, 저 시커멓기만 한 하늘이 강진호에게는 무엇보다 반갑게 다가왔다.
별 하나 없는 어두운 하늘이 안정감을 준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에게 있어서 밤하늘이란 이런 것이었다.
별이 금방이라도 우수수 떨어질 듯한 맑은 하늘은 잊고 싶은 기억과 함께하니까. 그 별 가득한 하늘을 보며 강진호는 언제나 이런 하늘을 그리워했다.
이곳의 밤하늘은 그가 중원에서 보던 하늘과는 다르다. 그러니 이곳에서의 삶도 중원에서의 삶과는 다르겠지.
“집에 갈 거야?”
한세연이 슬쩍 다가와 말을 건넨다.
“그럼?”
“카페라도 갈래?”
“됐어.”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용무는 다 보았다. 더는 사양이었다. 노래를 하러 온 것이고, 노래를 하고도 분위기를 맞춰준다고 자리까지 지켜줬으니 강진호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다.
“그럼 나도 집에 갈래.”
한세연의 말이 끝나자 아쉬운 듯한 탄성 소리가 살짝 새어 나왔다.
“아, 그래?”
한세연이 집으로 간다고 하자 다른 남자아이들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말은 안 해도 다른 남자들은 모두 한세연에게 마음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티를 제일 덜 내는 것이 태호지만, 그조차도 아쉬운 듯한 눈을 했다.
‘어설픈 우정인가?’
강진호가 한세연을 좋아한다고 알고 있으니 의리상 티를 못 내는 것뿐이지, 이태호도 그녀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예전의 강진호는 이런 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둔감했던 모양이다.
의리를 지키려 하는 것은 기특한 일이지만, 강진호가 보기에 그건 쓸데없는 배려였다.
먼저 좋아한다고 말한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는 것인가?
아니다. 중요한 건 누가 서로 좋아하게 되느냐다.
아직 어리기에 생각이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
전혀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굳이 그런 말을 먼저 꺼낸다는 것도 우스웠다.
“그럼 간다.”
“같이 가!”
강진호는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한세연을 바라보았다.
“이쪽 방향인가?”
“지하철역까지만. 여기 혼자 가면 무섭거든.”
“이렇게 밝은데?”
“어두운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이 무서워. 자꾸 슬쩍슬쩍 쳐다보기도 하고, 은근히 따라오는 사람도 있고.”
“그렇군.”
강진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그렇다니 강진호가 따져 물을 일은 아니었다.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어차피 가는 길인데 같이 가주는 게 어려울 것은 없었다.
“너, 노래 진짜 잘하더라.”
“그래?”
“진짜야. 나 그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 처음 봤어.”
“그거 하나밖에 못해.”
“정말?”
“그래.”
“그건 좀 아쉽네. 가수 해보라고 할 셈이었는데.”
한세연이 정말 아쉽다는 듯이 말하자 강진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수는 네가 하려던 것 아냐?”
“생각 없어. 내가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안 되겠지.”
“그래?”
“응.”
‘의외로군.’
아이들이 말하는 것대로라면 한세연은 연예인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았는데, 말하는 투를 보면 생각보다 자신에 대한 파악이 잘되어 있었다.
주변에서 저렇게 띄워주면 착각을 하거나 ‘그래도 혹시’라는 미련을 가질 만한데도 말이다.
생각보다 심지가 굳었다.
“그러고 보니 네 동생이 연예 기획사에 들어가 있다며?”
그랬지.
새삼스레 생각이 난다. 그러고 보면 한세연에게 있어서 강진호의 동생은 자신의 목표를 이미 이루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그래.”
“재능이란 게 있기는 하구나. 너처럼 노래 잘하면 동생도 금방 데뷔하겠네.”
“어려울 거야.”
“왜?”
“그렇게 쉬운 길이 아냐. 그리고 동생은 나랑 전혀 달라.”
“그래? 동생은 그렇다 치고, 넌 다른 노래 연습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안 돼.”
강진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왜?”
“연습하기도 어렵고, 난 잘생기지 않아서 어려워.”
“음…….”
한세연은 굉장히 곤란해했다.
맞다고 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아니라 말하기에도 애매했다.
사실은 사실인데, 웬만해서는 본인의 입에서는 나오지 않을 말이었다. 그리고 주변에서도 마땅히 대답해 줄 말이 없는 곤란한 이야기기도 하고.
“성형하면 되지 않을까?”
말을 꺼내놓고도 한세연은 실수했다는 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한계가 있지.”
하지만 강진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받자 한세연이 묘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굉장히 쿨하네.”
“쿨?”
“아냐. 그냥 그렇다고.”
“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두 사람은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넌 지하철 안 타?”
“걸어가면 돼.”
“그래? 그래, 그럼 즐거웠어. 내일 학교에서 보자.”
“그래.”
“그럼 안녕.”
한세연은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더니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강진호는 몸을 돌려 집을 향해 걸었다.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오늘의 나는 평범했을까?’
이 세계로 돌아와 학교를 가고, 시험을 치고, 아이들과 어울려 노래방도 가고…….
오랜 세월 동안 그와는 관련이 없던, 평범한 삶이란 것을 조금은 누려본 것 같았다.
친구들과 노는 것.
컴퓨터 게임.
그리고 마음속 뒤에 숨겨져 있을지 알 수 없는, 음모 없는 대화.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공격을 걱정할 필요 없이 걸을 수 있는 거리.
그리고 돌아갈 수 있는 집.
그가 꿈꾸던 삶.
위태롭기는 하지만, 강진호는 지금 그가 꿈꾸던 삶의 한 중간에 있었다.
강진호는 고개를 들었다.
검은 하늘.
별을 보여주지 않는, 어두운 검은 하늘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야…….’
강진호는 자신이 현대에 돌아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꿈꾸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마침내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더는 중원에서의 그 치열한 삶을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
오랜 시간 그를 지배했던 야만의 시대는 이제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신을 뒤흔드는 묘한 감흥에 강진호는 한동안 그렇게 눈을 감고 있었다.
이윽고 눈을 뜬 강진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집에 가야지.”
이제는 정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머니가 걱정하시기 전에 집에 들어가는 것이 평범한 학생이 해야 할 일이겠지.
그런데…….
“음…….”
강진호는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다.
학교로 향하는 길은 기억하고 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집을 찾아가야 하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대답해 줄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으음…….”
강진호는 한숨을 쉬고는 몸을 돌렸다.
물어물어 간다면 어떻게든 찾아갈 수 있기야 하겠지만, 그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강진호는 두말없이 학교로 향했다.
일단은 학교에 들러서 다시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주변 지리가 익숙해지기 전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평범한 삶이란 어렵구나.”
그의 적응은 여전히 험난했다.
하지만 그는 빠르게 현대에 녹아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대로 몇 년만 더 흐른다면 중원의 적천마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현대를 살아가는 강진호만이 남게 되겠지.
어쩌면 그것이 강진호가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대로…….
이대로 그저 살아가는 것.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위기는 소리 없이 찾아오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