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08
#1407.
석방되다 (2)
“그래서 집에 가셨습니까?”
“……그렇지.”
“호오.”
이현수가 싱긋 웃었다.
“역시 최연하 씨는 고단수네요.”
“응?”
“거기서 회주님과 데이트를 갔다면 내심 어머니가 기분이 좋으셨을 리가 없죠. 석방된 아들에게 집밥 먹이려고 준비하셨으니까요.”
“……그래?”
“예. 최선의 대처였다고 봅니다. 덕분에 점수 제대로 딴 거 아닙니까?”
“난 잘 모르겠는데?”
이현수가 검지손가락을 펴고는 좌우로 까딱까딱 흔들었다.
“그래서 회주님이 문제인 겁니다. 여심이라는 건 민감한 법이죠. 제가 말하는 대로만 하면 손해 볼 일은 없을 겁니다.”
위긴스가 안으로 들어오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그렇게 잡혀 사나?”
“자, 잡혀 사는 게 아닙니다! 져주는 거죠!”
“그래. 보통 그렇게 이야기하더군.”
“요즘 같은 세상에 좀 져주고 사는 게 죄가 됩니까?”
“아무도 죄라고는 하지 않았네. 그저 훈수 두는 게 웃겨서 그러지.”
“끄으응.”
이현수가 뭔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을 하려 들자, 위긴스가 깔끔하게 선수를 쳤다.
“어디 이야기해 봐. 교차 검증해 볼 테니까.”
“……이야기는 무슨 이야깁니까. 저는 할 말 없습니다.”
“쯧쯧, 한심하긴.”
이현수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사실 여자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그나 강진호나 도긴개긴이다.
“로드, 석방을 축하드립니다.”
“……독립운동하다 나온 것도 아니고, 축하는.”
강진호가 어색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죄송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도움이 되지 못해서.”
위긴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구치소에서 나온 강진호를 만나는 것도 늦었다. 생각 같아서는 집으로라도 당장 찾아가고 싶었지만, 위긴스는 위긴스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쓸데없는 말은 그 정도로 하지.”
강진호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쪼르르륵, 쪼르륵.
“…….”
하지만 연신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고 있으면 영 긴장이 되지 않는다.
“뭔 커피를 세 컵을…….”
“나오고 나니 땡겨서.”
“……이해는 합니다만.”
하루에도 몇 잔씩 먹던 커피를 제대로 먹지 못했으니 땡길 만도 하다.
“콜라는 충분히 드셨습니까?”
“이상하게 그건 나오고 나면 안 땡겨.”
“…….”
이 인간도 확실히 이상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위긴스였다.
“그래서…….”
강진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 왔나?”
좌우로 앉은 이사진들을 보며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밖에서 보는 건 오랜만이군.”
“좋은 구경 했지요.”
방진훈이 낄낄대며 웃었다.
“제 평생에 회주님이 죄수복 입은 모습을 볼 거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이야, 그거 완전 영화 같았는데. 느와르 한 편 찍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나가.”
“잘못했습니다.”
이사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라면 웃을 일이 없겠지만, 지금은 무슨 말을 들어도 웃음부터 나온다. 강진호가 석방되어 이렇게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니까.
“그러니까 일단은…….”
쪼오오옥.
“아, 커피 좀!”
불만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강진호는 신경 쓰지 않고 느긋하게 커피를 원샷했다.
구치소에 갇혀본 적도 없는 것들이 석방된 사람의 기분을 알겠는가.
탁, 커피 컵을 내려놓은 강진호가 소파에 등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보고해 봐. 분명 나에게 말하지 않은 일들도 있었겠지.”
구치소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다. 사람을 더 갑갑하게 만들 뿐이니까.
강진호가 먼저 운을 떼자 다른 이들도 말을 하기가 편해졌다.
위긴스가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원탁 쪽에 소란이 있었습니다.”
“원탁?”
“예. 로드께서 유럽으로 넘어갈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는 걸 알고부터 마스터와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한 나이트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심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마스터의 일을 방해하는 정도로…….”
“색출해.”
“로드, 말씀드렸다시피 노골적이지 않았습니다. 은근히 발목을 잡고 늘어진 정도라 따로 문책을 하기에는…….”
“괜찮아.”
“로드?”
강진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정도가 딱 좋지.”
“…….”
“전에도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지킬 걸 지키면 손대지 않는 이에게는 공포를 느끼지 않는 법이야. 공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오기 때문에 공포인 법이지.”
“하나…….”
“처벌의 원칙이 정해지면 사람은 그 선에 맞춰 움직인다. 거꾸로 말하면, 원칙을 어기지 않는 이상은 자신은 안전하다고 믿어버린다는 뜻이야. 그럼 겁날 게 없어.”
위긴스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영 상식과는 멀어 보이는 강진호지만, 이런 부분을 이야기할 때는 과연 수많은 이들을 이끈 마교의 교주로서의 위엄이 드러난다.
“조금 발목을 잡았다?”
“그렇습니다.”
“그럼 발목을 잡은 손을 잘라 버려야지.”
위긴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로드. 그간의 정황을 제대로 파악해 보고드리겠습니다.”
“다음.”
이현수가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MK 쪽에 가해진 압류와 거래 차단이 모두 해제됐습니다. 3일 내로 정상화를 완료할 수 있을 거라고 보고가 왔습니다.”
“보고?”
“물론 회주님께죠. 제가 뭐라고 보고를 받겠습니까.”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다른 문제는?”
“사실 따져 보면 회주님이 구치소에 갇혀 있었다는 게 문제였을 뿐, 저희가 받은 피해는 거의 없었습니다. 문제가 된 것도 회주님이 석방되면서 모두 해결됐습니다.”
위긴스의 말에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 일은 총회와 정부의 싸움이 아니라 강진호와 정권의 싸움이었다.
그러니 총회를 건드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강진호가 실각한 다음에도 총회는 정부와의 공조를 이어가야 했을 테니까.
“그럼 이제는 저쪽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군요.”
“어떻게 나올 것 같은데?”
“방법이 있겠습니까?”
위긴스가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로드께서는 너무 쉬운 답을 주신 겁니다.”
“내가?”
“예. 아마 로드께서는 그래도 함께해 온 동료를 자신의 손으로 파멸시키는 것이 저들에게는 꽤 큰 고통이라고 생각하셨겠지요.”
“…….”
“하지만 그건 틀렸습니다. 저들은 아마 로드가 생각하신 이상으로 잔인하고 철저하게 김명찬을 파멸시킬 겁니다. 정치인들이란 목적을 위해서 원수와도 웃으며 손을 잡고 아주 사소한 이득만으로도 함께하던 동료의 등에 칼을 꽂는 걸 주저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음…….”
“그들에게 내리는 벌로는 너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부족한가?”
“예.”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연기를 천천히 뿜어내고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로드?”
그 의미심장한 미소에 위긴스가 의문 어린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난 그런 걸 바란 게 아냐.”
“하면?”
강진호가 대답 없이 가볍게 웃었다.
“그렇겠지. 저들은 김명찬을 철저하게 파괴하겠지. 그게 자신이 살아남는 법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종욱의 말대로 윗선을 직접 건드리는 건 내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지.”
위긴스는 입을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건 부담이 크다.
“그냥 확 받아버리면 안 됩니까?”
방진훈이 불만 가득한 말투로 투덜거렸다.
“뒷감당은 어떻게 하고?”
“뒷감당이고 나발이고, 이건 좀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지들은 지멋대로 찔러볼 수 있는데, 우리는 얻어맞을 거 다 얻어맞고도 반격도 못한다니.”
“반격을 못한 게 아니잖은가.”
“아니긴 뭘 아닙니까, 한 대도 못 때려봤는데. 이게 뭔 조선시대 양반 놈들 회초리 치는 것도 아니고, 잘못한 놈은 따로 있는데 노비만 후려치고 있는 판 아닙니까?”
“……그런 문화가 있었나?”
“아니, 이 양반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더니, 그걸 모른단 말입니까?”
이현수가 어이없어하며 되물었다.
“그래도 영국인인데, 그걸 어떻게 압니까?”
“영국인이 아닌 것 같으니까 그렇지! 저 양반 민증 까봐야 돼.”
민증 없다고!
한국인이 아닌데 민증이 왜 있습니까, 이 양반아!
“여하튼!”
방진훈이 우격다짐으로 화제를 다시 끌고 갔다.
“저는 마음에 안 듭니다. 우리가 좀 처 맞더라도 제대로 한 반은 먹였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죽이자는 소리 안 하는 거 보면 많이 발전했네.”
“죽이기는 뭘 죽입니까?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
방진훈에게 저런 말을 들으니 세상 억울한 위긴스였다.
“그럴 거야.”
“……예?”
뜬금없이 나온 강진호의 대답에 방진훈이 고개를 돌렸다.
“한 방 먹일 거라고.”
“생각하시는 게 있습니까?”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말 그대로야. 우리는 직접 할 수 없지. 부담이 되고 뒷감당이 어려우니까.”
정권의 보복이 두려운 게 아니라, 세상의 눈이 부담스럽다. 총리야 어찌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윗선은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다.
관심도가 다르다.
총리야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임하는 일이 심심하면 벌어지는 자리지만, 윗선은 다르다. 작은 일만 벌어져도 국민이 직접 관심을 가진다.
“그렇죠.”
“그럼 우리가 안 하면 되지 않나?”
“중국을 이용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지.”
“그럼 대체?”
방진훈의 물음이 강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위긴스를 돌아봤다.
“방금 위긴스가 말했잖아. 정치인이라는 것들은 조금의 이득을 위해서 동료의 등에 칼을 꽂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고.”
“그렇죠.”
“그럼 정권은 이 상황을 풀기 위해 누구보다 잔인하게 김명찬을 파멸시키겠지. 그렇지 않나?”
“아, 변죽만 울리지 말고 말씀을 좀 해보십시오.”
“그럼 김명찬은 가만히 있을까?”
“……아!”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동료라고 생각해 온 이가 철저히 적으로 돌아서는데, 김명찬이 의리를 지킬 사람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럴 위인이면 이런 일은 시작도 안 했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는군요. 과연.”
이사들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인다.
“저들이 잔인하게 몰아붙일수록 김명찬은 머리가 복잡해지겠지. 그리고 파멸하면 파멸할수록 보이는 게 없어질 거야. 죄를 안고 죽는다는 건 돌아올 수 있는 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지. 잃을 게 없어진 사람이 굳이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을 감싸야 할 이유가 있을까?”
같이 죽는다.
강진호라면 그럴 것이다.
그럼 김명찬은 어떨까?
‘아마 비슷하겠지.’
강진호가 직접 본 김명찬은 독기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가 간단히 매장당할 리가 없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 들 것이고…… 만약 방법이 없다면?
“지켜보자고, 권력에 붙은 아귀들이 서로 물어뜯는 모습을. 이만한 구경거리도 흔치 않지.”
강진호가 느긋하게 소파에 기대 담배를 피웠다.
그 모습을 지켜본 위긴스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강진호는 저 모습이 더 잘 어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