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1
#140.
징치하다 (5)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낮이 가고 나면 밤이 찾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김학철이 아무리 악을 써도 밤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 이 새끼. 안색 질린 거 좀 봐.”
노수봉이 혀를 찼다.
“아, 병신아. 그냥 꿈꾼 거라고.”
“……예.”
“자다 보면 자기 목 조르고 하는 애들 있더라니까. 가위 눌리면 그런대. 좀 심하게 눌리면 그럴 수도 있지.”
“예.”
“애초에 애들이 불침번을 다 서는데 너를 어떻게 소리 소문 없이 잠도 안 깨우고 데리고 갈 수가 있냐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지는 해를 바라보는 김학철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스며들어 있었다.
“자, 기억해. 일주일이야. 이제부터 시작하지.”
그 말만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 공포에 질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주일.
그 말은 앞으로 여섯 번은 더 그가 찾아온다는 말이 아닌가.
‘찾아오긴 뭘 찾아와!’
김학철은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재떨이로 던졌다.
그건 꿈이다.
그저 꿈일 뿐이다.
애초에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말이 되지 않는다. 부러졌던 뼈가 어떻게 다시 붙는단 말인가. 착각이라고 하기에는 뼈가 부러질 때의 감각과 고통이 너무 생생했다.
아니, 생생하니 꿈이 아닌 것인가?
“씨발.”
혼란스러움을 참지 못한 김학철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씨발? 너 나한테 그런 거냐?”
“아닙니다.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조심해, 새끼야.”
“예.”
김학철은 침을 뱉고 먼저 생활관으로 향하는 노수봉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현실이 아니라고 해도 문제는 문제지.’
그런 악몽을 꿀 만큼 김학철이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압박을 받을 일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주영기.
김학철은 머리를 부여잡고 의자에 앉았다.
‘그럴 생각까지는 아니었는데…….’
죽일 생각이야 누가 했겠는가. 그저 좀 답답해서 욕을 하게 된 거고, 욕을 하고도 고쳐지지 않으니 화를 낸 거고, 화를 내다 보니 순간적으로 욱해서 때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 점점 더 심해진 것뿐이다.
죄책감?
물론 있다. 사람이 그렇게 되었는데 내가 너무 심하게 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야 누가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정말 김학철은 주영기가 그런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
알았다면 거기까지 주영기를 몰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병신 같은 새끼가 자살이나 하고.”
물론 아직 죽은 건 아니다.
하지만…….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젖힌 김학철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꿈이야.’
이건 꿈이다.
꿈이 아니고서야 사람의 모습이 그렇게 어둠에 덮여 있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아무리 보일러실이 어둡다지만 한두 번 들어가 본 것도 아니고, 그 안에서 사람이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되, 검은 구름을 뭉쳐 놓은 것 같은 그림자일 뿐이었다.
세상에 그런 것이 있을 리 없으니, 그건 꿈이 분명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답은 빤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냐고!”
미쳐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히 현실이 아닌 것을 알고 있는데!
분명 알고 있는데, 가슴을 옥죄는 듯한 불안함이 도무지 가시지를 않는다.
‘저 새끼만 아니었으면…….’
그가 주영기를 괴롭힐 때마다 낄낄대며 부추기던 노수봉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괴로운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막말로 그가 무슨 힘이 있어서 주영기를 괴롭히겠는가. 노수봉이 시키지 않았다면 그는 주영기를 건드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야 그도 자연히 주영기를 괴롭히게 되었지만, 그건 너무 익숙해진 결과였다.
“에이 씨!”
김학철이 고개를 휘휘 젓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강진호가 밖으로 나왔다.
“…….”
강진호와 김학철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야, 강진호.”
“상병 강진호.”
“너 새끼야, 그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노트 태웠을 때.”
“무슨 말씀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살짝 찡그린 눈으로 강진호를 노려보던 김학철이 한숨을 쉬고는 먼저 고개를 돌렸다.
“아니다, 아무것도.”
김학철은 신경질적인 걸음으로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강진호는 아무 표정 없는 얼음장 같은 얼굴로 김학철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자야 하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하면 잠이 들까 무서웠다.
눈을 감고 잠에 들어버리면 어제 꾼 꿈을 또 꾸게 될까 봐 겁이 난다. 악몽이 무섭다고 말하는 이들을 비웃은 적도 있었으나 김학철은 다시는 그들을 비웃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꿈이란 것이 이만큼이나 무섭다는 걸 알게 되어버렸으니까.
하지만 그의 몸은 그의 의지를 천천히 배반하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뜬 눈이 서서히 감긴다.
몇 번이고 살짝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했을까.
피곤함을 이기지 못한 김학철이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그의 머리맡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헉?’
언제 이리 깊이 잠들어 버렸을까?
눈앞을 덮고 있는 어둠에 정신이 번쩍 든 김학철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니, 고개를 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고개는 쇠못으로 고정이라도 해둔 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몸.
습기와 온기가 뒤섞여 불어오는 열풍.
축축한 바닥.
그 모든 것이 이곳이 어디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으으읍…….”
김학철은 필사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아냐.
이건 꿈이 아냐.
꿈이 아니라고!
비명을 지르고 발악을 했지만, 그의 몸은 미미한 미동만을 보일 뿐이다.
아직 아무것도 벌어지지 않았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김학철을 견딜 수 없게 몰아가고 있었다.
절로 눈물이 샘솟고 입가로 침이 마구 흘러나온다.
“으으읍.”
김학철의 눈동자가 천천히 돌아간다.
보지 않으려 했다.
차라리 눈을 질끈 감는 것이 몇 배는 더 낫다는 것을 그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란 공포는 참아낼 수 있어도 호기심을 참아낼 수는 없는 존재니까. 마치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공포 영화를 보는 심정처럼 말이다.
김학철의 눈동자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옆으로 돌아간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어제 보았던 곳이다.
보일러실에서 가장 어두운 구석.
어제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던 바로 그곳.
보지 않으려 했지만,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곳.
그의 의지를 배반한 눈이 보일러실의 구석으로 향했을 때, 김학철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없어?’
오늘은 없다, 오늘은.
오늘은 어제와는 다른…….
“어떻게 생각해?”
그때, 그의 귓가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학철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등 뒤에서 그 악마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서!
“으으읍.”
전신이 터져 나가라 힘을 주고 악을 썼지만,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꿈이라고?
이게?
입을 움직일 수 있었으면 처절하게 웃어 젖혔을 것이다.
이게 꿈이라고? 이게?
“으흐흐흡.”
비명이 흐느낌이 되어 새어 나온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이 그의 머리를 하얗게 탈색시키고 있었다.
“오늘이 이틀째야. 너와 나의 내기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생각해 본 적 있어?”
김학철은 대답할 수 없었다.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모양이군. 좋아. 하지만 이제는 생각해야 할 거야. 자, 기억해. 이제 육 일 남았어.”
사내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배어 있었다.
장난?
사람을 이런 꼴로 만들고 괴롭히는 것을 장난이라고 생각한다고?
그건 악마나 할 수 있는 짓이다.
악마나!
그때, 그의 눈 바로 앞으로 악마의 눈동자가 나타났다.
“흐읍!”
붉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김학철은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망스럽나?”
뭔가 다르다.
어제는 무섭기만 했다.
하지만 오늘은 눈앞의 이 흉물스러운 검은 그림자에게 지독한 분노가 밀려들고 있었다.
“왜 화를 내는 거지?”
그림자가 전혀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이건 네가 하던 짓이잖아.”
“…….”
김학철의 눈동자가 천천히 떨려왔다.
내가 하던 짓?
이게?
그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주영기.
……이게 내가 주영기에게 한 짓이라고?
그림자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정확하게 알아볼 수는 없지만, 그 움직임이 전달하는 감정만큼은 너무도 확연하게 느껴졌다.
비웃음.
그림자는 낮은 비웃음을 띤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성하나?”
김학철은 고개를 정신없이 끄덕였다. 물론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그의 머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지?”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나는 네가 반성하든 말든 관심이 없는데 말이야.”
우두두둑.
“끄으으으읍!”
그림자가 짓밟은 손가락뼈가 모조리 부러져 나간다.
“끄읍! 끄으읍!”
어제와는 전혀 다른 고통이었다.
좀 더 민감한 곳의 뼈가 부러진 만큼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
눈물이 얼마나 새어 나왔는지, 눈이 퉁퉁 부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진정해.”
악마는 아주 작게 속삭였다.
악마의 손끝에서 뭔가가 길게 자라난다.
손톱이 아니다. 손톱은 송곳처럼 저렇게 길고 뾰족하게 자라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길게 자라난 송곳 같은 것이 지금 부러진 김학철의 손끝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 되기도 한다.
차라리 모르면 겁을 먹을 필요도 없겠지만, 이미 알고 있다는 인식은 고통이 찾아오기도 전에 심장을 맞게 만들 것 같은 공포로 사람을 괴롭힌다.
악마도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손톱 바로 앞에서 송곳이 멈추어 선다.
그러고는 악마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기억해 둬.”
무엇을?
뭘 기억하라는 건가.
“오늘을 기억해, 오늘을. 내일…… 나는 다시 올 테니까. 자, 이제 육 일이다.”
악마의 송곳이 천천히 김학철의 손톱 아래로 파고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악!”
“아! 씨발, 진짜!”
김학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괴성을 질러 댔다.
노수봉은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김학철에게 베개를 던졌다.
“아니! 이 씨발, 왜 그러냐고! 왜!”
하지만 김학철은 노수봉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맨발로 침상에서 뛰어내리더니 밖으로 뛰쳐나갔다.
“……진짜 저 새끼가 미쳤나?”
노수봉이 얼이 빠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김학철을 따라나섰다.
“허억! 허억! 허억!”
전력을 다해서 질주한 김학철이 도착한 곳은 보일러실이었다.
숨을 고르며 보일러실의 굳게 닫힌 철문을 노려보던 김학철이 떨리는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습기 찬 훈풍이 확 밀려오는 느낌과 함께 어두운 보일러실의 광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야, 너 미쳤어?”
노수봉이 뒤늦게 따라와 소리를 질렀지만, 김학철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야?”
김학철의 앞으로 와 그를 흔들려던 노수봉이 김학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뭘 보는 거야?”
김학철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을 살핀 노수봉이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닥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말라붙은 한 방울의 붉은 액체.
“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학철이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히익! 히이이익!”
“야! 학철아! 인마, 왜 이래!”
“으아아아아아아악!”
김학철의 영혼을 찢어내는 듯한 비명이 보일러실을 쩌렁쩌렁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