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11
#1410.
석방되다 (5)
강진호는 한동안 아무런 말 없이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대답하기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강진호가 망설이는 것은 최연하의 목소리에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감정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최연하가 먼저 말을 해주었다.
“오해하지는 마요. 나는 지금의 강진호 씨한테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니까. 하는 짓은 국제 마피아나 다름없고, 나라에서 어떻게든 잡아넣으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게 좀 걸리기는 하지만.”
“…….”
많이 걸리시는 것 같은데.
아니, 애초에 저 평가가 많이 이상하다. 뭔가 하나씩 어긋나 있는 것 같은데, 따져 보면 그리 틀린 말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게 강진호 씨니까.”
최연하가 낮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솔직히 내가 다른 사람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 정신머리로 본인 성격이나 고치는 게 맞지.”
“…….”
“그런데요, 진호 씨.”
최연하가 가만히 강진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제가 처음 강진호 씨를 만난 이후로 여러 사건이 있었거든요. 파묻혀 보기도 했고, 해외에서 이상한 놈을 만나기도 했고, 이번 사건도 그렇고.”
“……그렇죠.”
그러고 보면 최연하도 강진호를 만난 덕분에 고생을 많이 했다.
새삼 그 사실을 깨닫는 강진호였다.
“그런데요…… 내가 이번에 찬찬히 생각하면서 알게 된 건데, 강진호 씨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가면 갈수록 커져요. 위험해지고.”
강진호가 살짝 눈을 감았다.
맞는 말이다.
“강진호 씨가 하는 일이 옳고 그르고를 따지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내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 그런데 제 눈에는 날이 가면 갈수록 진호 씨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건…….”
“구치소에 갇혔죠.”
“…….”
“알아요,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거란 거. 하지만 이런 일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일은 계속 생기겠죠. 큰 사고를 당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죽을 수도 있는 일이. 그런 일이 계속 터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장담할 수 없다.
반드시 터질 테니까.
이제는 강진호가 멈추려고 해도 세상이 강진호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진호 씨, 나는요…… 한 번씩 겁이 나요.”
“저…….”
“진호 씨가 어느 날 사라질까 봐, 죽을까 봐.”
강진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일은…….”
“없어요?”
“…….”
“정말 없어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강진호도 알고 있다. 자신의 삶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나 다름없다는 것을.
지금이야 한 번 삐끗했다가 다시 올라선 것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이를 악물고 끝까지 가든가, 아니면 이곳에서 엎드린 채 구조를 기다리거나.
강진호의 선택은 언제나 첫 번째였다, 언제나.
“다그치려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만두지 않을 거면 헤어지자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에요.”
“압니다.”
“그냥…… 음, 그냥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위태해 보여서요.”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호 씨가 지금 잘살고 있는 이유가 위험한 삶을 살아서는 아니잖아요. 그냥 내려놓아도 행복할 수 있잖아요. 가족이 있고, 친구도 있고, 저도 있고요. 지금도 안 늦었어요. 그냥 다 내려놓고 평범하게 살면 안 되나요?”
뭔가…….
가슴이 조금 욱신거리는 느낌이다.
최연하가 슬퍼해서가 아니라, 최연하가 말하는 ‘평범’이라는 말이 너무 절절이 와닿았기 때문이다.
저 말은 강진호가 이 세계로 돌아온 이후 어떻게든 잡으려 한 말이다.
평범한 삶.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
그 삶을 손에 넣고 싶었다.
그런데 최연하의 입에서 저런 말을 들으니, 새삼 실감하게 된다. 강진호가 지금 평범한 삶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말이다.
‘평범이라…….’
처음에는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싸웠다.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아서 언제나 그의 삶을 부수려 든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싸우지 않는 이는 지킬 수 없다. 그래서 싸우고 피를 흘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 평범한 삶에 대한 생각은 그의 머리에서 사라졌다. 더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진호 씨, 한마디만 더 해도 돼요?”
“괜찮습니다. 얼마든지요.”
“이건 조금 주제넘은 말 같은데…….”
최연하가 살짝 고민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세상에요…….”
“네.”
“진호 씨만 할 수 있는 일 같은 건 없어요.”
“…….”
최연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자기가 남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은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자기가 빠지면 모든 게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
“그런데 세상이라는 게 그렇지가 않아요. 내가 없어도 어떻게든 돌아가는 법이죠. 본인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반박할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모두 인정하기에는 조금 껄끄러운 말이었다.
“손해는 있겠죠. 진호 씨 같은 사람 흔치 않으니까. 하지만 조금 나빠진다고 해서 다 망하지는 않아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연하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는 말했다.
“한 번쯤은 생각을 해보셨으면 해요. 강진호 씨가 과연 지금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지, 지금처럼 살면 정말 행복한지. 저는요, 이제는 제 인생에서 강진호 씨가 빠지는 걸 상상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언젠가는 강진호 씨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런 일이 벌어질까 봐 겁이 나요.”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최연하를 바라봤다.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정리가 잘 안 되니까.
하지만 우선은 이 말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상황이 과해진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강진호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이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강진호의 본심이다.
“어느 순간부터 제가 뭔가를 하지 않아도 더 큰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니까요.”
홍왕과 싸우고, 일본과 전쟁을 벌이고, 그리고 이제는 정부와도 싸웠다.
그가 상대해야 할 적들은 나날이 강해진다. 강진호가 딱히 뭔가를 한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그리고 강진호가 상대해야 할 적은 앞으로도 더 강해질 것이다. 언젠가는 홍왕과도 그 결판을 내야 하고, 삼왕계 역시 그저 강진호를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
이미 기호지세다.
강진호가 멈추려고 해도 저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강진호라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 걸 용납하지 않으니까. 저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강진호와 총회 역시 계속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끝없는 투쟁과 끝없는 싸움.
두렵지는 않다.
강진호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가 죽는 게 아니다. 그가 죽고 나면 그와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이 그 없이 남겨진다는 것이다.
최연하도, 그의 가족들도, 그의 친구들과 총회의 동료들도.
그 없이 남겨지게 될 것이다.
강진호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 하나였다. 그가 감당하지 못하는 일은 결국 그가 아닌 그의 주위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닙니다.”
“어떤 생각요?”
“최연하 씨가 말한 대로 다 내려놓고 그냥 평범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지.”
“…….”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한지를 떠나서, 그럴 수 있다면 내가 조금 더 좋아질까 생각해 본 적은 있죠.”
강진호가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더라구요.”
“어째서요?”
“구분되는 게 아니니까.”
“…….”
강진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예전이었다면 가능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처음에는 그걸로 족했죠. 가족과 함께 그냥 행복하게 사는 걸로 좋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강진호가 따뜻한 눈으로 최연하를 보며 말했다.
“누굴 놓고 누굴 놓지 않아야 제가 행복해질까요?”
“…….”
“보육원 아이들과 더는 보지 않는다면 시간이 조금 더 생기고 편안해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럴 수 있나요? 친구들은? 총회의 동료들은?”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구분할 수 없는 거예요. 예전의 저는 가족만으로 충분했죠. 하지만 그건 가족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가족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이젠 아니구요?”
“네.”
이건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
“이젠 많아요. 가족도 중요하죠. 하지만 친구들도 중요하고, 보육원의 아이들도 중요해요. 그리고 조금 골치 아프긴 하지만 총회 사람들도 중요하죠. 그리고…….”
강진호의 시선이 최연하를 담는다.
“최연하 씨도 소중하구요.”
“아, 오글.”
“…….”
“알았어요. 드립 안 칠게요. 계속해 봐요.”
“딱히 계속 할 말이…….”
살짝 고민하던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정할 수가 없어서 그래요. 최연하 씨가 말한 대로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으면 조금 더 편해질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저는 어디까지를 내려놔야 하고, 어디까지를 지켜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다 안고 간다구요?”
“쉽지는 않지만.”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설프게 내려놓는 것보다는 그게 더 마음이 편하니까.”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욕심이 많다고 해야 할지.”
강진호가 희게 웃었다.
둘 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참…….”
최연하가 뭔가 말을 하려는 듯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참 진호 씨답네요.”
“…….”
“사람이라는 게 참 이럴 때보면 이상하죠. 그렇게 대답 안 하기를 바랐는데, 또 진호 씨가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으면 실망했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애매하게 구는 여자들 엄청 싫어했는데, 나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네.”
최연하가 조금 개운해졌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제 이런 이야기 안 할게요. 대신 하나 약속해요.”
“뭘……?”
“죽지 마요.”
“…….”
강진호가 황당한 얼굴이 되어 눈을 끔뻑였다.
“사고는 쳐도 좋아요. 구치소에 갇혀도 되고, 우주정거장에 갇혀도 이해할게요. 대신에 어디 가서 죽어버리지는 말아요. 약속해 줄 수 있죠?”
강진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웃지 마요, 정 드니까. 나 지금 솔직히 좀 열 받았거든.”
“맛있는 거 먹으면 풀릴지도 모르죠.”
“웃기시네!”
최연하가 몸을 획 돌려 차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같이 가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강진호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최연하가 슬쩍 고개를 돌려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았다.
‘여하튼 초지일관한 사람이라니까.’
그래서 강진호가 좋은 거긴 하지만.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강진호가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꿀 거라고는 최연하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강진호가 알기를 바랐다.
그가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건 그에게 받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그의 행복이라는 걸 말이다.
웃으며 옆에 서는 강진호를 본 최연하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 찍었다.
“아픈 척이라도 좀 해요!”
“아야.”
“에이, 진짜!”
강진호의 팔을 당겨 팔짱을 낀 최연하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지금은 이걸로 됐어.’
지금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