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14
#1413.
종결하다 (3)
“회장님, 얼마나 고초가 많으셨습니까!”
“고초는 얼어 죽을 고초! 사람이 행동거지를 똑바로 못하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아냐!”
“몸이 많이 상하신 것 같습니다. 보약이라도 한 재 지어 드릴까요?”
“보약은 빌어먹을! 새파랗게 젊은 놈…… 아니, 새파랗게 젊은 몸에 보약이 왜 필요해! 내 때는 맨밥만 잘 먹어도 약이 필요 없었어!”
“회장님이 안 계신 동안 회사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회장님이 돌아오셨으니, 이제 금방 정상화가 될 겁니다.”
“회장 하나 자리 비웠다고 문제가 생길 회사면 망해야지! 돈 받아 처먹고 일하는 놈들이 얼마나 무능력하면 회장이 없다고 회사가 엎어지냐, 이거야!”
강진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 알겠는데…….”
MK에 출근한 것까진 좋았다. 구치소에 있느라 회사를 제대로 케어하지 못했으니까.
출근하자마나 황민수가 찾아온 것까지도 괜찮았다. 회장인 강진호가 사장인 황민수에게 보고를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니까.
문제는 그 황민수가 이상한 혹을 달고 왔다는 점이다.
강진호가 눈앞에 앉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왜 여기서 이러시는…….”
“뭐?”
황정후가 눈을 부라린다.
“……아닙니다.”
죽을 맛이다.
“네놈은 출소했으면 얼른 찾아와서 인사는 못할망정 이 늙은이가 직접 찾아오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오셨는데요.
강진호가 곤란해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황민수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회장님, 회의 중입니다만.”
“회의? 회의? 이놈아, 내가 아니었으면 이 회사는 생기지도 못했어! 그런데 어디 이제 와 텃세를 부리려고 해! 너희 회사 회의할 테니까 나더러는 꺼지라 이 말이냐?”
“그, 그런 말이 아니라…….”
“에이이잉!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강진호가 매우 황당한 얼굴로 황정후를 바라보았다.
누가 누굴 거둬?
거꾸로 아닌가?
이게 그 동북공정인가 하는 그건가?
“……회장님, 언제 가십니까?”
“이놈이 이제는 아비를 쫓아내려고!”
“좀 가십시오, 좀.”
강진호를 더 황당하게 만드는 것은, 그 와중에 이상하게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아 보인다는 점이었다.
강진호가 구치소에 가기 전만 해도 남보다 못한 사이였던 두 사람이 아닌가. 황민수를 데리고 오는 데 황정후의 허락을 따로 받아야 할 정도였다.
“사이가 좋아지신 것 같은데…….”
“이게 사이가 좋아 보입니까?”
“네 눈은 옹이구멍이냐?”
“…….”
황정후가 혀를 차더니 입을 열었다.
“사업 크게 한다는 놈치고 감방 들락거리지 않는 놈이 없다지만, 죄목이 그게 뭐냐? 국보법이라니, 내가 살다 살다 기업 오너라는 놈이 국보법으로 감옥 들어갔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황민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니! 누명 쓰고 감옥 다녀오신 분한테 그게 할 소립니까? 위로는 못할망정!”
“위로는 얼어 죽을 위로! 평소에 처신을 잘했어봐라! 감옥에 가나! 나는 회사를 오십 년 경영하면서 경찰서도 한 번 가본 적 없다.”
“뭐가 없어요. 예전에 술 먹고 길에서 주무셔서 파출소에서 연락 왔는데!”
“이놈아, 그 이야기는 왜 또 꺼내!”
강진호가 흐뭇하게 웃었다.
‘집에 가서 해라, 집에 가서.’
왜 부자 싸움을 남의 회사에서 하고 있나. 그것도 회장실에서.
“여하튼!”
황정후가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고생 많았다.”
“고생은요.”
“일은 다 해결된 거냐?”
“음, 그게…….”
강진호가 뒷머리를 긁었다.
해결이 됐다고 할 수도 있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강진호가 머뭇거리는 걸 본 황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만, 될 수 있으면 저놈들과는 얽히지 않는 것이 좋다.”
“예.”
“정치인이라는 것들은 찰거머리 같은 것들이야. 돈이 나오는 곳이라면 어디든 들러붙어서 빼 먹으려 들지. 기업가들이 정치인에게 학을 떼면서도 그놈들을 어쩌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아느냐?”
“힘이 있어서요?”
“아니다.”
황정후가 고개를 저었다.
“집요하기 때문이야. 저놈들은 원한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작은 원한이라도 기억해 뒀다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떻게든 복수하려 드는 놈들이 정치인들이다.”
황정후가 쓴웃음을 지었다.
“얽히지 마라. 원한이 있다고 짓밟으려 들지도 말고, 은혜를 입었다고 갚으려 들지도 마라.”
“…….”
“왜 대답이 없어, 이놈아.”
“그런 이야기는 일찍 좀…….”
“구치소에 갇혀 있는 놈이랑 무슨 이야기를 해!”
“…….”
황정후가 못마땅한 듯 강진호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다, 알았어! 간다, 이놈아!”
“아, 가시라는 말이 아니라…….”
“됐다! 끄응, 내가 무슨 복을 누리겠다고 여기까지 찾아와서는! 나도 회의 있어!”
“예. 조심해서 가십시오. 금방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일없어!”
쿵!
문이 격하게 닫힌다.
한바탕 폭풍이 쓸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강진호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잡고 소파에 몸을 기대자, 황민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해하십시오. 회장님이 멀쩡히 나온 모습을 보겠다고 아침부터 찾아오셨습니다.”
강진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새 사이가 조금 좋아진 것 같은데?”
“회장님의 일로 상의를 몇 번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제 일이나 회사 일이 아니다 보니 제가 움츠러들 일이 없어서…….”
강진호가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사안의 심각함이야 이쪽이 더 할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황민수가 잘못한 게 없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황민수가 재경에 근무할 당시에는 이런 대화가 언제나 황민수의 실수에 대한 것이었을 테니까.
“축하할 일 같습니다만.”
“……둘이 있으면 아직 여전합니다. 다만, 그래도.”
황민수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예전보다야.”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언젠가는 두 사람만 남아도 웃으며 이야기할 날도 오겠지.
“말은 저렇게 하시지만, 어떻게든 정치권에 줄을 대보려고 애쓰셨습니다. 욕도 엄청 하셨는데.”
“그렇겠죠.”
황정후라면 그랬을 것이다.
입으로야 언제나 못마땅한 점만 이야기하는 사람이지만, 속으로는 잔정이 깊으니까. 강진호 때문에 속을 많이 끓였을 게 분명하다.
‘여기저기 걱정을 많이 끼쳤군.’
강진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는 어때요?”
“말씀드렸다시피 이제는 거의 정상화가 됐습니다. 사실 그동안 가장 문제가 됐던 건 통장이 막힌 게 아니라 새로운 업종 신고가 통과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이것만 해결되면 큰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겁니다. 어찌 보면 전화위복이 된 면도 있고요.”
“전화위복?”
“그리 급하게 진행할 일은 아니었는데, 제가 마음이 급해 빨리 진행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덕분에라고 할 일은 아니지만, 여하튼 시간을 번 덕에 조금 더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네요.”
아니, 다행이라고 하면 안 되나?
“다들 회장님을 믿고 기다려 준 덕분입니다. 저는 정말 단 한 명의 가맹점주도 이탈하지 않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보통 이런 일이 터지면 계약 해지는 물론이고, 위약금이나 손해배상까지 청구하는 게 보통인데.”
황민수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뭔가 반성이 되더라구요. 사업을 하면서 언제나 합리성을 우선시해 왔는데, 제가 하던 방식대로였다면 가맹점주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않았을 겁니다.”
“알던 사람들이라 그렇죠.”
“원래 아는 사람이 더 무서운 겁니다. 회장님이 그동안 인덕을 제대로 쌓아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그냥 무서워서 그런 것 같은데…….
정확하게 말하면 강진호가 아니라 이현주나 이현수가 무서워서 계약 해지를 언급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같아도 말 못하지.’
강진호도 가끔씩은 자신이 이현수의 상사라는 것에 안도하는데, 아랫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렇다고는 해도 끝까지 강진호를 믿고 기다려 준 사실이 고맙지 않다는 건 아니다.
뭐랄까…….
그동안 강진호가 총회와 총회의 회원들에게 해온 일이 인정받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회장님께서 돌아오셨으니, 빠르게 진행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허가만 떨어지면 일사천리일 겁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이라뇨. 고생은 회장님이 하셨죠.”
황민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리 좋은 거라고 할 순 없겠지만, 장악력 하나만큼은 아버지 이상일지도 모른다.’
황정후는 재경 그룹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대의 재벌들이 급변하는 세상과 다양한 사업에 대응하기 위해서 총수의 영향력을 줄여온 반면, 재경은 여전히 황정후가 제왕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좋은 말로는 현대에 남은 마지막 초인이 몸담고 있는 기업이고, 나쁜 말로는 구시대적 기업이다.
하지만 MK에서 강진호가 끼치는 영향력은 재경에서의 황정후를 간단히 넘어선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 어린 사람이 대체 어떻게 평생을 재경에 몸담으며 신화를 만들어낸 사람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궁금한 황민수였다.
“이현주 실장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래요?”
“변호인단을 구성하고, 회장님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서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나중에 꼭 그 공을 언급해 주셔야 합니다. 노력한 것이 대가를 받지 않으면 사람은 노력하지 않게 되는 법이니까요.”
“명심하죠.”
대충 할 말을 끝냈다고 생각한 황민수가 진짜 묻고 싶은 것을 꺼냈다.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예?”
“회장님의 석방이 있던 시점부터 재경부 놈들이 엄청 협조적으로 변했습니다. 간이라도 빼 줄 기세더군요. 차관이 직접 와서 착오가 있었다며 사과하고 갔습니다. 혹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이야기하라고 하더군요.”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렇군요.”
“너무 공손하게 나와서 화도 못 냈습니다.”
아무래도 정권 쪽에서는 확실히 김명찬을 버리고 강진호와 화해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TV만 틀면 김명찬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다방면으로 강진호에게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MK도 그렇지만, 총회 쪽으로도 연락이 계속 오고 있다.
강진호가 느긋하게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러자 황민수가 물었다.
“그럼 이제는 다 해결이 된 겁니까?”
“아니요.”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하나 남았습니다.”
“어떤?”
“한 대 피워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강진호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라이터를 켜 불을 붙였다. 천천히 담배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약속을 지키러 가야 합니다.”
“예?”
황민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본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저 담배를 입에 물고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어떤 기분이지, 김명찬?’
궁금하다.
짐작하는 것과 그 입으로 직접 듣는 것은 다르니까. 하지만 이 궁금함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강진호가 직접 들으러 갈 테니까.
강진호를 본 김명찬이 어떤 말을 할지 짐작하는 건 지금의 강진호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유희였다.
강진호의 입매가 비틀리는 것을 본 황민수가 숨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