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18
#1417.
수습하다 (2)
“나는…….”
김명찬이 멍하게 뇌까린다.
피할 수 없는 죽음.
이미 내려진 선고.
그에게 있어서 달아날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구치소의 독방에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나 그를 내려다보는 이 악마가 존재하는 이상은 말이다.
“나는…….”
김명찬이 실없이 웃는다.
“그래, 내가 했지…….”
모든 것은 김명찬이 시작한 일.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김명찬이 벌인 일이다.
세상에 퍼진 그 어떤 이야기도 지어낸 것은 없다. 중국에 강진호를 죽이라 요청한 것도 김명찬이고, 북한에 돈을 찔러주고 강진호를 죽일 것을 요구한 이도 다름 아닌 김명찬이다.
아마 곧 그 사실까지 퍼지겠지.
그리고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뇌물도, 그의 가족들의 비리도, 심지어는 과거에 있던 그의 더러운 행적마저도…… 그 어느 것 하나 진실이 아닌 것이 없다.
강진호는 그저 김명찬의 치부를 세상에 드러나게 했을 뿐이다.
“나……는 잘못되었는가?”
김명찬이 멍한 목소리로 묻는다.
강진호가 그 질문에 멈춰 선다.
“대답해 봐……. 강진호, 나는 잘못되었는가? 그래서 내가 벌을 받는 건가?”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웃기지도 않는 질문이다.
“아니. 너는 잘못되지 않았다.”
“…….”
“그저 약했을 뿐이지.”
김명찬의 몸이 살짝 떨린다.
강진호가 씹어뱉듯 말했다.
“네가 조금 더 강했더라면, 이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만큼 강했더라면, 지금 너는 바깥에서 축배를 들고 있었겠지. 넌 그저 그만큼 강하지 않았을 뿐이야.”
김명찬이 웃어버렸다.
지금까지 들은 어떤 비난보다, 그리고 어떤 위로의 말보다 그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말이다.
그 말을 한 이가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자이자, 그에게 죽음을 선사하러 온 지옥의 사자라는 것이 아이러니할 뿐.
“어차피 세상은…….”
“약육강식이지.”
“그래……. 나는 약했군. 그래서 먹히는 거야. 이해가 가……. 이해가.”
어떤 말도 이유도 결국에는 가져다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강진호의 말은 세상의 진리를 깔끔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가 좀 더 강했더라면 지금 강진호를 구치소에 처박아두고 편히 잠에 들 수 있었겠지.
약했기에 그럴 수 없던 것이다, 약했기에.
김명찬이 기이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나는 나약했다.”
“잘 아는군.”
“그렇다면 저들은 뭐지?”
“…….”
김명찬의 얼굴이 기이한 빛이 감돈다.
“그럼 저들은 왜 지금도 저리 떵떵거리며 살아갈 수 있는 거지? 내가 약했다면 저들도 약했을 텐데? 왜 나만 이곳에 박혀 이렇게 죽어야 하는 건가. 저들은 아무것도 놓지 않았는데, 왜 나는? 왜? 왜!”
강진호가 가만히 김명찬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몰라서 묻는 건가?”
“…….”
“저들 역시 약하다. 하지만 적어도 너보다는 강하다는 거겠지. 가장 먼저 사냥당하는 건 무리에서 가장 약한 개체니까. 그게 새끼여서든, 늙고 병들어서든.”
“흐…….”
뭔가 말을 하려던 김명찬이 격렬하게 배를 움켜잡았다.
“쿨럭! 쿨럭! 크으으……. 쿨럭!”
사레가 들려 폐를 뱉어낼 듯 기침하던 김명찬이 입가를 닦으며 강진호를 돌아본다.
“……그럼 저들 역시 아직 안전한 건 아니로군.”
“글쎄.”
강진호가 고개를 살짝 젖혔다.
“배가 부르다면 굳이 사냥할 이유도 없지 않나?”
“웃기는 소리.”
김명찬이 두 눈에 광기를 담아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너는 배가 부르지 않아. 너는 언제나 굶주려 있지. 내가 저지른 실수가 있다면 네가 언제든 피를 바라는 마귀라는 것을 몰랐다는 거겠지. 그렇지 않나?”
“글쎄.”
강진호가 모호하게 웃는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어차피 너는 여기서 끝날 텐데?”
“의미, 의미라……. 크흐흐흐.”
김명찬이 실성한 듯 웃어 댔다. 헝크러진 머리가 제멋대로 뒤흔들린다.
“나는…… 나는 평생을 대의를 위해 살아왔다.”
김명찬이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이제 내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내가 잡으려 한 것들은 내게 침을 뱉고 돌아섰지. 남은 건 이 비루한 몸뚱아리와 살을 태우는 증오뿐이지.”
김명찬이 일그러진 기세를 뿜어낸다.
마치 쓰레기 더미에 붙은 맹렬한 불꽃 같다.
“……그러니 한 번쯤은 내 사소한 증오에 몸을 맡겨도 괜찮지 않을까?”
김명찬이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어내 걷는다. 그가 향한 곳은 독방 한구석에 놓인 책상이었다. 그 책상 아래에서 종이 뭉치를 꺼낸 김명찬이 강진호의 앞으로 돌아온다.
강진호가 흥미롭다는 듯 종이 뭉치를 바라보았다.
“뭐지?”
“모든 것이지.”
김명찬이 끅끅대며 웃어 젖혔다.
“내 모든 더러움, 그리고 비열함이지. 내가 기억해 둔 저들의 모든 추악함이 여기에 있다. 이거 하나면 저들 모두 파멸하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
“…….”
강진호의 눈이 가라앉는다.
“거래라도 할 셈인가?”
“거래? 거래라고? 흐하하하하핫!”
김명찬이 광인처럼 웃어 젖혔다. 얼마나 격렬하게 웃었는지, 두 눈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거래? 거래? 미쳤구나, 미쳐 버렸어. 강진호, 거래라니! 내게 뭐가 남았다고 너와 거래를 하지? 네가 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나? 그래, 거래. 거래를 하지, 강진호. 이걸 줄 테니, 나를 죽여줘. 제발…… 제발 나를 죽여줘. 제발…….”
김명찬이 눈물을 쏟으며 그 자리에 무너졌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김명찬이 원고 뭉치를 부여잡고 흐느낀다.
“……잠들 수도 없고, 눈을 뜰 수도 없어. 두렵다……. 나는 너무 무섭다, 강진호. 내일이 너무 무섭다. 감기지 않는 눈을 감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할 때마다, 차라리 내일 눈을 뜨지 않기를 기도한다……. 나는…… 나는 이제 사는 게 너무 무섭다.”
강진호가 가만히 김명찬을 내려다보았다.
없다.
그가 알던 대한민국의 총리 김명찬은 이 자리에 없다.
남은 것은 추하게 늙어버린 한 인간뿐이었다.
너무나 인간다워서 누구나 고개를 돌려 버리고 싶은, 적나라한 인간만이 이곳에 남아 있었다.
“돌려주지.”
“…….”
김명찬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강진호가 그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나는 할 수 있어.”
“……네가?”
“나를 쉽게 생각하지 마, 김명찬.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이 상황을 되돌릴 수 있어. 네 모든 명예와 직위도 되찾아줄 수도 있지. 너도 짐작가는 바가 있을 텐데?”
김명찬의 눈가에 피눈물이 흘러내린다.
마귀가 그를 유혹한다.
귓가에 속삭인다.
모든 것을 버리고 타락하라고, 김명찬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거름 덩어리에 처박고 재물을 탐하는 짐승이 되라고 말이다.
“그걸 이리 넘겨.”
“…….”
“네 모든 것을 되돌려 주지. 저들 모두를 네 꼴로 만드는 대가로 말이야.”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차피 인간은 서로 밟고 살아남는 것 아닌가. 저들은 너를 버렸다. 그러니 너도 저들을 버리면 돼. 그럼 저들이 가진 모든 영화와 영광을 네가 독차지하게 되겠지. 간단한 일이야. 그렇지 않나?”
김명찬이 눈물을 흘리며 강진호를 바라본다.
무언가 끊어진 듯 헤 벌린 입이 서글프고 또 서글프다.
“아는구나……. 너는 아는구나, 강진호…….”
심장을 저미는 것 같다.
김명찬이 흐느끼며 말했다.
“내가 할 수 없다는 걸…… 아는구나. 그러니 내게 기회를 준 거겠지. 지옥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을 내 손으로 걷어차야 하니까.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없으니까.”
알고 있다.
강진호가 왜 그에게 손을 내미는지.
그걸 알면서도 김명찬은 자신을 지옥의 업화 속으로 던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죽어가며 김명찬으로 고통받을 것인가.
김명찬이 아닌 이가 되어 살아 영화를 누릴 것인가.
다른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부우우욱.
부우우욱.
김명찬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 뭉치를 갈갈이 찢어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괴성을 뿜어내며, 피눈물을 흘리며 찢는다. 손톱이 부러지고 뒤집혀도 조금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찢고 또 찢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찢어낸 종이 조각이 마치 눈처럼 휘날렸다.
마침내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지자 김명찬이 바닥으로 무너졌다.
그를 유지하고 있던 마지막 하나까지 모두 빠져나갔다.
그러면서도 지킨 건 하나.
긍지.
“……나는 팔지 않아.”
너무도 미약한 소리.
강진호가 아니라면 누구도 듣지 못할 만큼 작고 또 작은 소리였다.
“나는…… 나는 팔지 않는다.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김명찬이 붉게 물든 두 눈으로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다. 나는 김명찬이야. 아무리 너라고 해도 나를 타락시킬 수는 없어.”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훌륭하군.”
이건 비꼼이 아니다. 순수한 인정이었다.
세상 모두가 그를 욕해도, 그가 저지른 죄악이 하늘을 덮는다고 해도 이 단 한 번의 선택만으로 강진호는 김명찬을 존중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지.”
“…….”
“내 마음이 여려졌는지 말이야, 최근 들어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이 잦아졌거든. 그래서 나도 궁금했다. 과연 내가 너를 용서할 건지 말이야.”
강진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는 변한 게 없는 모양이군.”
그가 천천히 김명찬을 향해 걸어간다.
그러고는 경련하는 김명찬의 얼굴을 움켜잡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널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는 걸 보니 말이야.”
강진호가 웃는다.
악마가 웃는 것처럼.
“나를 봐라, 김명찬.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가 너에게 보여줄 지옥은 지금부터 시작이지.”
강진호의 눈이 붉게 물든다.
“나를 봐.”
김명찬이 멍하니 강진호의 눈을 응시했다. 피처럼 붉게 물든 눈이 점점 커진다. 믿을 수 없는 크기로 커진 붉은색이 이내 세상 모두를 붉게 물들여 버렸다.
‘이게 죽음인가?’
그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조금 편안하기까지 하다.
‘아무려면 어떤가.’
그 어떤 고통이라도 상관없다. 이제 이 삶을 끝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자신의 손으로 끝내지 못하는 삶을 누구의 손을 빌려서라도 끝낼 수 있다면, 김명찬은 더 바랄 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진짜 악의(惡意)가 무엇인지.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말이다.
털썩.
둔부에 느껴지는 아릿한 고통과 함께 김명찬이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평범한 모습으로 되돌아온 강진호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옅은 미소를 띠고 말이다.
“……나는 살아 있는 것 같은데?”
“그래.”
강진호가 웃는다.
더없이 잔인하게.
“죽일 리가 없지.”
“…….”
“아니. 넌 이제 죽지 않는다, 김명찬.”
김명찬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네게 금제를 걸었다. 너는 이제 자살도 할 수 없다. 그리고 네 머릿속에서 탁기를 뽑아냈다. 이제 너는 미칠 수도 없어. 느껴지나?”
김명찬이 두 눈을 부릅떴다.
맑다.
세상이 맑아지고 그의 정신이 맑아졌다. 젊은 시절보다 더욱 명확하게 모든 것이 느껴진다.
“이, 이게…….”
“기회를 주지.”
강진호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언젠가 나는 한 번 돌아올 거야. 그때, 네게 단 한 번 더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기회를 주지. 그때까지 살아 있어라. 지금과 같은 고통에 더해 이곳에서 나가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네가 차버렸다는 후회를 품고.”
강진호가 몸을 돌렸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한 김명찬이 괴성을 지르며 강진호에게 달려들어 그의 바짓가랑이를 움켜잡았다.
“아, 안 돼. 안 돼! 제발! 이건 안 돼! 제발! 제바아아아알!”
차라리 죽기를 바랐다.
그리고 차라리 미쳐 버리기를 바랐다.
멀쩡한 정신으로 지금의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건 김명찬에게 있어서는 지옥보다 더한 형벌이다.
거기에 희망까지 준다고?
언젠가는 강진호가 찾아와 이곳을 빠져나가 그의 모든 걸 되돌려 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희망까지 품고?
그리고 그 기회를 내 발로 걷어찼다는 후회까지 느끼란 말이냐?
사람이 이렇게 잔인할 수는 없는 법이다.
퍼억!
강진호의 발길질에 김명찬이 나뒹군다. 하지만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지 김명찬은 그저 절규할 뿐이다.
“강진호! 강진호오오오오오오! 내가 잘못했다. 내가! 내가 잘못했다. 가지 마! 차라리 나를 죽여줘! 여기에 나를 혼자 두고 가지 마라. 강진호! 강진호오오오오오오오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고개를 돌려 김명찬을 일별한 강진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남은 담배와 라이터를 김명찬에게 던졌다.
“선물이다.”
낮게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비릿하게 웃으며 돌아선다.
“다음에는 너를 용서하러 오지. 언젠가는 말이야.”
강진호의 모습이 어둠 속에 스며든다.
독방에 홀로 남은 김명찬은 목이 찢겨 나가도록 비명을 지르며 절규했다.
밤이 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