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23
#1422.
재건하다 (2)
[너, 어떻게 된 거야?]세상에는 뒷북을 울리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몰론 ‘박유민’이라는 사람도 그중 하나였다.
[구치소라니, 이게 뭔 일인데?]그리고 세상에 둔한 사람은 수도 없이 많지만, 이만큼 둔한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갑자기 전화해서 한다는 소리가 그 이야기야? 대체 언제 적 일을…….”
[지금 봤으니까 그렇지.]그러니까 왜 그걸 지금 봤니.
산속에 들어가 도라도 닦았니?
물론 이렇게 둔하고 심심하면 뒷북이지만, 그럼에도 강진호가 박유민을 인간적으로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미안하다, 진호야. 내가 먼저 알았어야 하는 건데. 그랬으면 한국으로 바로 들어갔을 건데. 내가 기사를 못 봤어. 대회 기간에는 원래 악플 때문에 인터넷에 안 들어가거든. 내가 소심해서 악플 하나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려서.]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보통은 이런 경우에는 이런저런 원망이나 변명을 늘어놓는 게 보통인데, 박유민은 우선 사과부터 한다.
강진호는 박유민의 이런 점이 좋았다. 그에게는 없는 부분이다. 박유민을 보고 있으면 그가 인생을 얼마나 막살고 있는지 새삼 반성하게 된다고 할까.
“괜찮아.”
[다른 애들도 알면 전화 해주면 될 텐데, 보육원 애들까지 하나같이 나한테 말을 안 해줬네. 어떻게 이래?]아, 원망은 하네.
강진호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서 그렇지.
[왜?]“대회 중이니까.”
[아니, 그깟 대회 뭐가 중요하다고!]아니, 니가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그건 보통 내가 해야 하는 말이지. 대회 나가는 사람이 넌데, 네가 그러면 어떻게 하나.
[대회야 또 나가면 되잖아. 이런 일이 있었으면 내가 먼저 알고 한국에 들어갔어야 하는데.]“됐어.”
이럴까 봐 박유민에게는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강진호가 아는 박유민이라면 정말 만사를 제쳐 두고 한국으로 와버릴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건 안 될 일이다.
프로게이머가 대회를 포기한다는 건 자신의 프로 생활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경기 중에 부모의 부고를 들어도 눈물을 흘리며 경기를 마무리한 이들의 미담이 세상에 회자되는 분위기에서 친구가 죄를 지어 구치소에 갔다고 경기도 아니고 대회를 포기한다?
그건 매장되고도 남을 일이다.
[아니, 그래도…….]“유민아.”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 내가 네 전화 받고 있잖아.”
[…….]“잘 해결될 일이어서 따로 연락 안 했다. 괜히 신경 쓰게 할까 봐. 내가 만약 정말 죄를 지어서 붙잡혀 들어갔으면, 연락을 했을 거야. 그냥 사소한 오해가 있던 것뿐이야.”
[거짓말. 그래도 연락 안 했을 거면서.]날카로운데?
강진호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던 그때의 박유민은 어디로 갔을까, 서글픈 일이었다.
[그럼 정말 별일 없는 거지? 다시 잡혀 들어간다거나?]“구치소 구경은 이제 그만하려고.”
이건 진심이다.
색다른 경험이긴 하지만, 두 번은 안 하고 싶다.
[다행이다. 진호야,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어.]이상한 부분에서 심약하다.
그 많은 관중들 앞에서 태연하게 경기를 하는 걸 보면 심장이 강철로 만들어졌나 싶을 때도 있는 박유민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런 사생활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소심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긴 그게 박유민의 재미있는 점이지만.’
강진호가 미소 짓고는 말을 이어갔다.
“대회는 좀 어때?”
[삼 일 뒤에 결승이야.]“어? 벌써?”
[벌써라니.]강진호가 뒷머리를 긁었다.
워낙 다양한 사건이 터지고 문제가 많이 생기다 보니, 시간을 잊었다. 사실 구치소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감도 잡기 힘들었으니까.
독방 생활이라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흠, 그래?”
삼 일 뒤라…….
강진호가 볼을 긁었다.
“잠깐. 삼 일 뒤에 결승이라면…… 결승까지 올라간 거야?”
[응. 운이 좋았어.]운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릴.
세계 대회에서 운 좋게 결승에 가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이럴 때 하는 말이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다. 실력이 있는 사람만이 운을 잡아낼 수 있다.
“축하한다.”
[아니, 아직은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아니야. 결승에서 질까 봐 걱정돼 죽겠어. 차라리 빨리 떨어지는 게 낫지, 준우승은 진짜 지옥 같대.]“너, 결승에서 진 적 없잖아.”
[그러니까 더 무섭지.]아, 그것도 그렇네.
강진호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지금 연습 바쁠 텐데, 내가 시간 끌면 안 되겠네. 얼른 연습해.”
[그래, 진호야. 몸 잘 추스르고, 한국 가서 보자. 이번에 내가 못 가서 미안하다.]“미안은 무슨.”
강진호가 피식 웃고는 전화를 끊었다.
개인적으로는 구치소에 갇혀 있으며 사회에서 오래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박유민의 결승이 내일이라는 말을 들으니 실감이 난다.
거의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대회가 벌써 끝나…….
“끝난다고?”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아니, 대회를 한 달 동안 하는데 끝날 때까지 전화 한 통 못해준 것 아닌가.
생각해 보니 박유민도 대단하다.
아무리 강진호가 사정이 있었다지만, 그전에도 시간은 충분했는데 안부 전화 한 통 안 한 친구에게 서운함을 말하기는커녕 사과만 하다니.
뭔가 가슴 안 어딘가에 이미 예전에 가져다 버렸다고 생각한 양심이라는 곳이 쿡쿡 찔리는 느낌이었다.
“미국이라…….”
LA라고 했나?
강진호가 손을 뻗어 인터폰을 들었다.
“어, 들어와 봐.”
물론 그의 인터폰은 이현수의 집무실로 연결되어 있다.
“부르셨습니까?”
재빨리 달려온 이현수가 문을 열고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강진호가 이현수를 부르는 일은 흔치 않다. 보통은 시킬 것이 있어도 보고를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일상이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를 하다 보니 굳이 따로 부를 필요도 없는 게 사실이고.
여하튼 그런데도 강진호가 이현수를 따로 불렀다는 것은 다급하게 시킬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표 좀 구해줘.”
“무슨 표요?”
“유민이가 출전한 대회 표.”
“박유민……. 네? 박유민 씨요? 미쿡에서 하는 그거? 어메리카?”
“……발음 꼬지 말고.”
이현수가 멍하게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불러 시키는 게 겨우 그거라는 말인가.
“잘 생각하셨습니다.”
“응?”
“고생하셨는데, 이 기회에 쉬고 오시는 것도 괜찮죠.”
이건 이현수의 본심이었다.
강진호는 지금까지 너무 과하게 달려왔다. 아무리 그를 둘러싼 상황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지만, 결국 제 능력을 넘어 달린 사람은 고장이 나기 마련이다.
많은 이들이 과로나 공황장애로 고생하는 이유가 결국에는 재충전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냥 가서 경기만 보고 오지 마시고, 관광도 좀 하고, 맛있는 것도 드시면서 재충전을 하고 오십시오. 일정 넉넉하게 잡으시구요.”
“흠.”
강진호가 볼을 긁었다.
“이사님도 같이 가시는 겁니까?”
“이사? 최연하 씨?”
“네.”
“음, 생각 안 해봤는데.”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하기야 일정이 빈다면 같이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같이 여행을 가자고 몇 번 말을 해놨는데, 가는 여행마다 그 꼴이 나버렸으니.
“이왕이면 함께 다녀오십시오. 출장에 껴서 가는 걸 여행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여행은 사적으로 가는 거죠.”
“음, 물어보고.”
이현수의 조언이 마음에 든다는 듯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진행하지.”
이현수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럼 최연하 씨와 회주님의 표를 구하고 항공권까지 준비해야겠군요.”
“아니.”
“네?”
“보육원 애들 데리고 가야지.”
“…….”
이현수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보육원?
어? 보육원?
“보, 보육원이요? 자, 잠시만요, 회주님. 걔들 수가…….”
열, 스물, 서른?
아니, 넘는 것 같은데?
“어린애들은 안 데리고 가도 돼. 걔들한테 유민이는 찾아와서 놀아주는 아저씨 같은 거니까. 그런데 나이가 있는 애들은 가고 싶을 거야.”
“그렇죠, 그렇겠죠. 그런데…….”
아니, 중학생부터 잡아도 서른 명은 될 것 같은데?
그 표를 어떻게 구하지? 그것도 따로따로 떨어져 앉으면 의미가 없는데?
이현수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별것 아니라고 쉽게 생각한 미션이 가면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기분이다.
“이, 일단은 알아보겠습니다.”
“응. 그래.”
“아니, 그런데 걔들은 학교 다니잖습니까? 결승전만 바로 보고 돌아온다고 해도 출결에 문제가 생길 텐데요?”
“요즘은 그런 것도 있다던데? 체험…… 체험 뭐라더라?”
“체험 학습이요?”
“음.”
“……게임 보러 가는 걸 체험 학습으로 해결한다구요? 회주님, 아직 세상의 발전은 회주님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선생들이 그걸 인정해 줄 리가 있겠습니까?”
강진호가 빙그레 웃었다.
“그걸 인정시키는 게 네 능력 아닌가.”
와…….
이게 이렇게 되나? 이게?
이현수의 볼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농담이야. 걱정 안 해도 돼. 결승전이 일요일이니까, 보고 바로 돌아오면 하루 정도 결석하거나 일정에 따라 등교할 수 있을 거야. 그 정도는 괜찮겠지. 신경 쓰이는 애들은 안 가도 된다고 할 거니까.”
강진호의 말에 이현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럼 좀 낫네요. 그 정도면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무마해 볼 수…… 잠시만요.”
이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결승전이 언제라구요?”
“주말.”
“다음 주?”
“이번 주.”
아, 그렇구나.
어디 보자, 오늘이…… 어, 목요일이네. 그럼 토요일에는 출발을 해야 하니까…….
이현수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틀 안에 그 많은 사람들의 표를 구하란 말씀이시죠? 심지어 갈 사람 안 갈 사람이 정해진 다음에? 거기에 항공권을 수배하고 숙소까지 마련하고?”
“그렇지.”
이현수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죽창이라도 있으면 내가 진짜!’
냅다 찔러 버릴 텐데!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사람한테 일을 시키려면 최소한의 시간은 보장을 해줘야지! 한 번씩 보면 강진호는 이현수를 X라에몽 쯤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다.
그게 아니면 방망이를 들고 있는 도깨비쯤으로 보든가.
이현수의 표정을 본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어려우면 안 해도 돼.”
“예. 회주님, 제 생각인데 ,애들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
“능력이 그거밖에 안 되는 걸 뭘 어쩌겠어.”
“…….”
이현수가 움찔했다.
이거, 어디선가 들었던 말 같은데?
“가봐.”
“그럼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아니야. 내버려 두고 다른 일 봐.”
“네? 회주님과 이사님 건…….”
“괜찮아. 혈마 불러서 시켜보려고. 은근히 그런 것 잘하는 것 같은…….”
우드드득.
이현수가 손에 들고 있던 볼펜을 부러뜨렸다.
“능력이요?”
“…….”
“토요일까지 준비하면 됩니까?”
살기로 번들거리는 이현수의 눈을 보며 강진호가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는 일을 사서 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