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3
#142.
움켜쥐다 (2)
“가, 강진호?”
김학철은 눈꼬리가 찢어지도록 눈을 부릅떴다.
강진호?
강진호가 왜 여기에 있는가.
그림자를 걷어낸 강진호가 가만히 김학철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여기에 있는 게 뜻밖이십니까?”
“……왜, 왜?”
“뭘 물으시는 건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빙긋.
강진호는 미소를 지었다.
“이유라면 빤하지 않습니까? 영기가 그러더군요.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가, 강진호, 강진호!”
김학철은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여기서 강진호가 나온단 말인가.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인간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귀신이거나 악마라고 생각했다.
주영기의 원혼이 달라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수없이 해보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눈앞의 이 괴이한 것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왜 강진호가 나온단 말인가.
김학철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눈앞에 보이는 강진호가 귀신이든 사람이든 상관없었다. 확실한 것은 눈앞의 강진호가 지금 자신의 목숨줄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지, 진호야……. 진호야, 왜 이러는 거야. 여, 영기 때문에 그러지? 내가 자수를 할게. 내가 자수하면 되잖아. 너에 대해서도 절대 발설하지 않을게.”
강진호는 어느새 무표정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색깔 없는 그 얼굴이 너무도 섬뜩하게 다가왔다.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김학철 상병님. 제가 왜 그 노트를 태워 버렸는지 모르시겠습니까?”
“……으응?”
강진호가 가만히 김학철의 얼굴 바로 앞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를 감옥으로 보내고 싶지 않아서야.”
김학철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한없이 낮고 불길한 목소리. 그가 그림자에게서 들은 바로 그 목소리였다.
강진호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이지만,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강진호가 정말 그가 알던 강진호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이건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그 무언가였다.
그저 잔혹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강진호에게서 풍겨오는 분위기는 분명히 뭔가 달랐다.
가슴을 파고든 손이 심장을 직접 움켜잡고 조이는 듯한 느낌.
“웃어.”
강진호가 웃었다.
한쪽 입꼬리만이 말려 올라가는 비웃음.
“웃어, 웃어야지. 즐겁지 않아? 네가 영기를 가지고 놀 때는 즐거웠잖아. 그런데 왜 네가 그 대상이 되었을 때는 웃지 않는 거지? 나는 이렇게나 즐거운데?”
미쳤다.
이놈은 미쳤다.
강진호의 얼굴에 어린 광기를 본 김학철은 자신에게도 그 광기가 전염되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 미쳤다.
“자수를 하겠다고?”
큭큭대는 웃음소리.
웅웅대는 보일러 진동 소리.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그것은 마치 지옥의 오케스트라 같았다.
“걱정하지 마. 벌을 받고 싶다면 내가 벌을 줄 테니까. 자, 오늘이 육 일째다. 기억해. 오늘과 내일만 버티면 네게 자유를 줄 거야. 그러니까…….”
강진호가 김학철의 손을 잡았다.
“거 봐, 새끼야! 별일 없잖아! 내 말 맞지?”
김학철은 멍한 눈으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기상 알림 소리와 함께 눈을 뜨자 노수봉이 빙긋 웃으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학철이 홀린 듯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김학철을 보며 노수봉이 낄낄 웃어 댔다.
“여하튼 등신. 거 봐,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어때? 오늘은 꿈도 안 꾼 거 같네. 또 꿈 꿨으면 비명 지르면서 일어났을 거 아냐.”
“…….”
김학철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낭도 개지 않은 그가 홀린 듯한 걸음으로 생활관 밖으로 나갔다.
“저 새끼, 왜 저래?”
노수봉이 얼떨떨한 얼굴로 김학철을 따라 나섰다.
지금까지 악몽을 꿨을 때와는 반응이 확연히 다르기는 하지만, 지금의 김학철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뭐지?’
김학철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구석에서 말리고 있던 대걸레를 들고 나와 앞부분의 걸레를 분리하고 자루만 빼냈다.
“……야, 너 뭐해?”
초점이 풀린 눈으로 고개를 돌려 노수봉을 바라보던 김학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노수봉 병……장님.”
“응? 응.”
실제 시간으로 따지면 아주 잠깐의 침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수봉에게는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마치 억겁과도 같이 느껴졌다.
“조심하십시오.”
“응?”
그 순간, 김학철이 대걸레 자루를 들고 앞쪽으로 미친 듯이 뛰쳐 나가기 시작했다.
“저, 저 새끼가!”
뭔가 사고를 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으아아아아아!”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를 지르며 달리던 김학철이 1생활관의 문을 걷어차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뭐, 뭐야!”
“이 새끼 뭐야!”
1생활관 안에서 기겁을 한 이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에 이어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들이 한 번 더 터져 나왔다.
“잡아!”
“강진호 상병님!”
“왜, 왜 이러십니까, 김학철 상병님!”
“잡으라고! 잡아! 저 새끼 잡으라고!”
비명이 마구 터진다. 노수봉은 1생활관을 향해 뛰면서 연신 욕을 내뱉었다.
저 미친 새끼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전력으로 몸을 틀어 반쯤 구르듯이 뛰쳐 들어가 보니, 이미 상황이 정리되어 있었다.
생활관 사람들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 무리는 머리를 감싸고 있는 강진호를 빙 둘러싸고 있고, 다른 무리는 발악을 하며 고함을 지르고 있는 김학철을 내리 누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놔! 놓으라고! 놔! 죽여야 해! 내가 죽기 전에 죽여야 한다고! 으아아아아! 놔아아아아아아!”
김학철의 고함은 고함이라기보다는 절규였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처절한 공포가 듣고 있는 이들은 절로 섬뜩하게 만들었다.
“강진호오오오오! 강진호오오오오오!”
몇 번이고 강진호의 이름을 내뱉으며 알아들을 수도 없는 저주의 말을 퍼붓던 김학철이 이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살려줘, 살려 달라고……. 내가…… 내가 잘못했어……. 으흐, 흐으으윽…….”
노수봉은 더 이상 웃을 수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습관처럼 내뱉던 욕지기도 더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김학철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수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강진호가 머리를 감싸고 있던 손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괘, 괜찮냐?”
“예.”
강진호는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호야, 진짜 미안하다. 내가 대신 사과할게. 저 새끼가 요즘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래. 이게…… 아니, 이게 문제가 되는 일인 줄은 알겠는데, 아직 간부들이 보지 않은 거 같으니까, 어떻게 한 번…….”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그래줄래? 고맙다. 내가 사례할게.”
“그보다…….”
“응?”
노수봉은 문득 강진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미묘하다고 느껴졌다.
특징 없는 미소인데도 이상하게…… 이상하게 불길했다.
“김학철 상병님의 몸이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몸조리 잘하라고 해주십시오. 하루 남았잖습니까.”
“……응?”
노수봉은 강진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지만,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하면 영창은 물론이고, 구속까지도 당할 수 있는 사안을 그냥 넘어가 준다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이었다.
그 순간, 1분대의 분대원들이 우르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저 새끼 옮겨.”
“예.”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울고 있는 김학철을 분대원들이 업어 옮긴다.
노수봉은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생활관을 빠져나왔다.
……하루 남았다고?
그게 무슨 의미지?
* * *
“하루, 하루…… 하루만 더…… 하루, 하루! 하루만! 하루…….”
이제 더 이상 김학철은 사람 몰골을 하고 있지 않았다. 하루라는 말을 중얼거리는 김학철의 입가에서 침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다.
퀭하게 파인 두 눈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안쓰러운 게 아니라 섬뜩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입실은 언제 한대?”
“내일 앰뷸 오기로 했습니다.”
“씨발.”
노수봉은 머리를 내젓고 말았다.
“씨발, 이럴 때 차량이 통제되어서는.”
김학철의 상황을 본 포대장이 지체 없이 입실시키려고 했지만,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 때문에 차량 운행이 전면 중지되었다.
덕분에 노수봉은 하루 더 김학철이 미쳐 가는 꼴을 지켜보아야 했다.
“근데 저 새끼, 아까부터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하루만 더 버티면 된다고 하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루?”
“예. ‘하루만, 하루만’ 하는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루?”
“그렇던데 말입니다.”
아까 강진호도 하루 남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김학철도 하루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고?
“……야, 아까 저 새끼 5생활관 쳐들어갔을 때, 보이는 놈 아무나 후린 거냐, 아니면 강진호를 집어서 후린 거냐?”
“강진호, 강진호 하고 발악을 하는 거 못 보셨습니까?”
노수봉의 미간이 좁아졌다.
“……뭔가 좀 이상한데?”
* * *
김학철의 눈에 핏발이 섰다.
참아내면 된다.
오늘 하루만 참아내면 된다.
손톱이 뽑히는 고통도, 생니를 뽑아내는 고통도 지금 당장이라도 의식을 앗아가 버릴 만큼 끔찍했지만, 오늘만! 오늘만 참아내면! 오늘만!
오늘이 약속한 칠 일째였다.
강진호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감탄했어. 생각보다 정신력이 강하군.”
감탄?
사람을 이 꼴로 만들어놓고 감탄한다고?
“흐흐…….”
김학철이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이젠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는 더 이상 이 꼴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 때문인지도 알 수 없었다.
“미, 미안하다…….”
“응?”
“잘못했다. 내가…… 내가 잘못했어. 괴롭힘을 받는다는 게 이런 건 줄 알았더라면, 나, 나는 그러지 않았을 거야. 난,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그렇군.”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좋아. 반성을 하든, 반성을 하지 않든.”
“바, 반성하고 있어. 정말 피눈물이 나도록 반성하고 있어. 저, 정말이야. 믿어줘. 제발, 제발 믿어줘.”
김학철이 울음을 터뜨렸다.
제발.
제발 이제 그만.
더는 버틸 수가 없다. 제발, 제발 여기서 그만…….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은 약속이지. 그러니 이제 너에게 자유를 주지.”
입을 벌린 김학철의 입가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환희와 절망이 제멋대로 뒤섞여 엉망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기침을 하며 김학철은 몸을 떨었다.
이제, 이제 끝이다.
이제 겨우…….
“내일 밤까지는 말이야.”
“…….”
무슨 소리를 들은 걸까?
김학철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너에게 자유를 주지. 내일 밤까지는 자유다.”
김학철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더없이 잔인하고.
더없이 악마 같은.
“이상하지? 사람들은 왜 반성을 하면 죄가 사라진다고 믿는 걸까? 반성을 하든 하지 않든 저지른 일은 사라지지 않는데 말이야. 그렇지 않나?”
강진호의 손이 몸에 닿자 김학철은 경기를 일으켰다. 이미 그의 얼굴을 타액으로 젖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꼴을 하고 있었다.
강진호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자, 이건 단순한 분풀이야. 선이고 악이고, 그런 저열한 것이 끼어들 일이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 내일까지 편히 쉬도록 해. 우린 아직 나눠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까.”
“으으으…… 으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김학철이 터뜨린 비명과 강진호의 광소가 한데 어울려 어두운 보일러실을 가득 울렸다.
인세의 지옥이 이곳에 강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