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31
#1430.
미국 가다 (5)
“하, 미치겠네. 저 형은 어떻게 쉽게 가는 게임이 하나가 없냐?”
한진성이 손톱을 물어뜯는다.
평소였다면 주저 없이 타박했을 조미혜도 이번만큼은 한진성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저 덜덜 떨리는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간절한 눈으로 경기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2대 2.
5판 3선승제로 진행되는 결승이 결국 마지막 경기까지 왔다.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고, 또 한 번 이기고 또 한 번 지고의 반복이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는 기분이다.
“으으, 속이 안 좋아.”
“진정 좀 해. 오빠가 이길 거야.”
“질 것 같았으면 지금까지 보지도 않았어. 이기기야 하겠지. 당연히 이겨야지! 근데 좀 쉽게 이기면 어디가 덧나나! 만날 뭔 패패승승승 아니면 패승패승패…… 아니다! 승패승패승이야!”
“그러니까 꼭 랩 같네.”
“끄응.”
한진성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내가 이러다가 위궤양 생기지!”
“그만 좀 징징거려. 진짜 경기하는 유민이 오빠는 지금 얼마나 힘들겠어?”
“으음…….”
한진성이 그건 인정한다는 듯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제5경기를 준비하는 박유민의 얼굴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표정했다.
‘긴장을 한 거야, 안 한 거야?’
이제 5경기까지 왔으니 긴장이 풀렸을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 경기니 더 긴장될 것 같기도 하고.
한진성이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이런 거 못해.’
겨우 한 경기로 1년 동안 쏟아부은 노력의 결과가 나와 버린다니, 이거 딱 수능 같지 않은가.
‘수시가 최고지.’
한진성은 중간 평가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런 극단적인 긴장은 정말 사양이었다.
“유민이 오빠 대단하다. 보는 우리도 위가 아픈데, 유민이 오빠는 얼마나 떨릴까?”
“……수능 칠 때의 나 같지 않을까?”
조미혜가 눈을 흘겼다.
“오빠는 망쳐도 그 꼴, 잘 쳐도 그 꼴인데, 유민이 오빠랑 비교나 돼? 유민이 오빠는 지금 져도 전국 수석이라고! 이거 세계 대회잖아!”
“너는 같은 말을 해도 사람을 슬프게 하는 뭔가가 있어.”
“그게 아니라 오빠가 같은 말을 해도 개념이 없는 뭔가가 있겠지!”
“……거 봐.”
한진성이 서글픈 눈으로 한숨을 내쉬자, 조미혜가 혀를 차 댔다.
강진호는 그 일련의 광경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내려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히 젖어 있다.
‘죽겠군.’
살면서 이렇게까지 긴장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와도 딱히 긴장하지 않던 강진호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몸에 날붙이가 틀어박히고 옆구리에 박힌 검이 반대쪽으로 꿰뚫고 나왔어도 그냥 ‘죽는구나’라는 생각 외에는 별 감상이 없던 강진호가 아닌가.
하지만 지금 강진호는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들 만큼 긴장한 중이었다.
“……아, 나 죽어.”
최연하도 마찬가지의 감상인지, 연신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닦아내는 중이었다.
“이게 원래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보통은 아닌데…….”
명승부는 명승부다.
5경기까지 오는 와중에 장기전만 세 번. 그것도 피를 말리는 일진일퇴의 반복이었다.
“세계 대회는 쉽게 우승한다던데.”
한진성이 한숨 쉬며 말한다.
“그건 옛날이야기고, 이제는 아니야. 작년에는 우승 못한 정도가 아니라 4강에도 못 갔다니까.”
“그래?”
“그래서 이번에 유민이 형한테 기대가 엄청난 건데…….”
강진호가 힐끔 고개를 돌려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걱정과는 다르게 박유민의 플레이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잘하고 있다는 말이 맞다.
팀원?
팀원들도 잘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승부가 쉽게 갈리지 않는 것은 상대 역시 굉장히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 커뮤 난리 났어. 역대급 결승이래.”
“그래?”
강진호는 결국 묻지 않아야 할 것을 묻고 말았다.
“5경기는 누가 이길 것 같대?”
“……진영 때문에 우리가 좀 불리하다는데?”
“그래…….”
강진호의 시선이 박유민에게로 향했다.
“형, 진호 형! 유민이 형 괜찮겠지? 내가 저기 있으면 긴장돼서 모니터도 안 보일 것 같은데?”
“괜찮아.”
강진호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긴장되는 건 모두 마찬가지야. 중요한 건 긴장하지 않는 게 아니라 긴장이 돼도 잘하는 거지.”
그건 승부의 세계에 사는 이들이 모두 지고 있는 짐이다.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서 졌다?
그만큼 추한 변명이 없다.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실력이다. 중압감을 버티는 멘탈 역시 실력의 일부분이니까.
“이 정도 중압감에 박유민이 흔들릴 리가 없어.”
“땀 좀 닦고 말해!”
“……땀 흘렸나?”
강진호가 소매로 이마를 훔쳤다.
벌써 경기 시간이 네 시간이 넘어가고 있다. 지켜보는 사람들도 이리 진이 빠지는데, 직접 경기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체력이란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소모되는 게 아니다. 그럼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왜 피로를 호소하겠는가.
뭔가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체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선수들의 얼굴에 긴장감과 피로감이 역력했다.
‘괜찮아.’
강진호는 박유민이 이 정도로 집중력을 잃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이보다 더 힘든 상황도 얼마든지 버텨낸 박유민이다.
‘가자!’
그 순간, 화면에 경기 화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시작한다!”
한진성이 격하게 양손으로 얼굴을 비비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아…… 나는 못 보겠어.”
“봐! 못 보긴 뭘 못 봐! 이기고 지는 게 뭔 상관이야. 유민이 형이 여기까지 와서 경기하는데, 져도 자랑스러운 거지! 우리가 봐야 할 거 아냐!”
“그건 그런데…….”
“배에 힘주고 봐! 나는 끝까지 볼 거야.”
한진성이 주변을 보며 말했다.
“너희도 마찬가지야! 형 경기 놓치지 말고 봐! 알았어?”
“응, 형!”
“알았어!”
아이들을 다독이는 한진성을 보며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옛날의 박유민 같군.’
박유민과 스타일은 다르지만, 보육원 아이들을 챙기고 이끄는 건 다를 게 없다.
‘그래, 그랬지.’
한때 박유민은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도 보육원을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스스로를 챙기기도 힘든 일정 속에서도 어떻게든 보육원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려던 사람이다.
그런 박유민이기에 모두가 박유민을 좋아하는 것 아닌가.
“유민 씨…… 이기겠죠?”
최연하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 나온다.
최연하는 게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아나운서가 이겼다는 말을 해주기 전까지는 누가 이기는지, 지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까지 이렇게 간절한 얼굴로 박유민을 응원하고 있다.
[자, 마지막 경기 시작됩니다. 이 경기의 승자가 월드 챔피언십의 승자가 됩니다. 올해 최고의 팀이 이 경기로 결정이 되겠습니다.] [양 팀 선수들, 정말 멋진 경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 이긴다고 해도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경기력의 향연이죠!] [괴물이에요! 다들 괴물이에요!] [왜 결승이 5판 3선승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7판 4선승제였으면 시청자분들도 만족하고, 저희도 만족했을 텐데요. 이건 제가 한 번 건의를 해봐야겠습니다.] [선수들 잡을 일 있으세요?] [선수들도 행복할 겁니다. 저는 그렇게 믿어요.] [화면에 보이는 선수들의 얼굴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다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 내고 있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경기를 보러 오는 거죠! 전 세계에서 지켜보는 거죠!] [네. 지금 박유민 선수의 얼굴이 보이고 있습니다. 아, 대단합니다. 박유민 선수! 오늘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드의 귀환! 노익장!] [워낙 프로 생활을 일찍 시작하고, 일찍부터 결과를 남겨서 굉장히 나이 들어 보이는 측면이 있지만, 실제 나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죠. 아직은 한창 전성기라고 해도 될 나이입니다. 노익장은 좀…….] [하하하! 노익장이 나쁜 말이 아니잖습니까?] [아뇨. 의미가 틀렸다구요.]해설들이 티격태격하는 동안에도 경기는 진행되고 있었다. 강진호는 화면 안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2대 2라…….’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아마 이곳에 올라온 이들치고 박유민만큼 열심히 하지 않은 이들은 없을 것이다. 다들 밤잠을 줄이고, 쉬는 시간을 줄여가며 게임에 몰두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놀이에 불과한 게임이지만, 이들에게는 인생이고 삶이다.
“아, 차라리 시상식 가거나 같은 장면 백 번 찍는 게 낫지, 진짜 속 썩겠네.”
최연하가 발을 동동 굴렀다.
강진호들이 있는 곳은 과도한 긴장감이 흘렀지만, 그 외의 곳은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다. 경기가 시작된 지 겨우 조금 지났건만 아직도 함성 소리가 쏟아지고, 각 팀을 응원하는 챈트가 연이어 나온다.
그리고 그 축제의 한 중간에서 박유민이 경기를 하고 있다.
강진호의 자리에서는 박유민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원형으로 마주 보게 되어 있는 경기석의 뒤쪽으로 응원석이 배치되어 있기에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박유민의 의자와 살짝 나와 있는 뒤통수뿐이었다.
강진호가 가만히 기감을 돋워 박유민의 기운을 느꼈다.
‘흥분, 긴장, 불안, 그리고…….’
즐거움인가.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기겠네.”
“네? 저것만 보고 알아요? 난 하나도 모르겠는데.”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유민이 상태가 좋아 보여서요.”
“……튀통수도 잘 안 보이는구만, 둘이 뭔 텔레파시라도 통해요? 예전부터 둘 관계가 심상치 않아 보이더만.”
“…….”
최연하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외면하며 강진호가 가만히 박유민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기분이다.
강진호는 언제나 박유민을 존중했다. 그가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 도움이 없었어도 박유민은 언젠가는 제 길을 찾았을 테니까.
그는 그저 그 시기를 조금 빨리 당겨준 것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강진호는 박유민을 자신에게 종속된 이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친구로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강진호는 미묘한 섭섭함을 느끼는 중이다.
‘완전히는 아니었구나.’
상처 입은 동물을 치료해 주고 떠나보내는 마음이라고 할까.
그의 도움 없이 완전히 스스로의 힘만으로 우뚝 선 박유민을 보고 있으려니, 미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다들 그렇게 성장하는 거겠지.’
나아가는 건 강진호만이 아니다.
모두가 나아간다.
박유민도, 최연하도, 친구들도, 그의 가족들도, 총회의 사람들과 보육원의 아이들도…….
하루하루 자신의 전장에서 싸우고, 상처 입고, 극복하면서 더 큰 사람이 되어간다.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원장 수녀님.”
저기 유민이가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는 수녀님이나 제가 없이 혼자서도 말이에요.
강진호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 그럼 너는 어떠니?
글쎄요, 수녀님.
그저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녀님이 말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
강진호가 웃으며 눈을 떴다.
“이겨라! 박유민!”
강진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지르자, 보육원 아이들과 이현수까지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그 커다란 함성 속에서 또 하나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