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41
#1440.
회담하다 (5)
강진호가 영 껄쩍지근한 얼굴로 앞쪽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바라보았다.
“여기로는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물러서십시오!”
아니, 저 미친놈들이.
어트랙션을 타러 들어가는 길에 폴리스 라인 같은 줄이 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줄을 검은 슈트를 입은 사내들이 정리하며 관광객들을 좌우로 밀어낸다.
“자,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
그런 후, 윌리 리스가 환하게 웃으며 강진호와 최연하를 반겼다.
길게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강진호 쪽을 바라본다.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다.
최연하는 어느새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꺼내 죄인처럼 얼굴을 가린 뒤였다.
“강진호 씨.”
“……네.”
“쪽팔려 죽을 것 같아요.”
“…….”
평소에도 나름 마음이 잘 맞다고 생각했지만, 이 순간만은 정말 격하게 최연하에게 공감하는 강진호였다.
‘아니, 이렇게까지는 필요 없다고!’
그냥 티켓이나 하나 잘 끊어주면 알아서 파고들 수 있는데.
어차피 이곳도 한국의 다른 놀이공원들처럼 패스트 패스가 있다. 하루에 발권이 한정되어 있는 패스트 패스만 몇 개 더 챙겨 줘도 관람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 텐데.
“옆으로 비켜주십시오. 공무 중입니다.”
“아니, 뭔 놀이공원에서 공무를…….”
“협조 부탁드립니다.”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별말 없이 옆으로 물러난다.
한국이었으면 아마 지금 난리가 났을 텐데, 미국은 공권력이 강하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공권력이 강한 거지, 사람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
옆으로 밀려난 이들이 누구 하나 잡아먹을 것 같은 얼굴로 강진호와 최연하를 노려보았다.
“…….”
지은 죄도 없이 괜히 원망을 받는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이 세상으로 돌아온 이후로 이렇게까지 민망한 적이 있었던가.
“대체 무슨 공무이기에…….”
“체포해!”
“아, 아닙니다. 지금 당장 비켜 드리겠습니다.”
그만하라고, 이 미친놈들아!
강진호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그러자 윌리 리스가 강진호의 눈치를 살피고는 굳은 얼굴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미리 다 확보를 해놨어야 하는 건데, 어떤 기구를 타실지 모르다 보니 모든 기구를 다 확보해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걸 왜 확보하는데요?”
“그야 쾌적한 관람을 위해서죠.”
네가 지금 우릴 쾌적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나?
응?
미국인은 생각의 기준이 나랑 조금 다른가?
“……굳이 이런 건 안 해주셔도 됩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간단한 일이지요. 사실 더 많이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저희도 적당히 눈치를 봐야 해서…….”
눈치?
무슨 눈치?
이게 눈치를 보는 사람들의 행동인가?
지금 주변 사람들이 우릴 외계인 보듯이 보고 있는데?
이게 눈치라고?
“사진 찍지 마십시오! 사진 찍는 분들은 연행하겠습니다!”
“거기! 휴대폰 내려놔!”
수치스럽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차라리 동물원의 원숭이가 부러울 지경이다.
최연하가 넋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헬기 탈 때까지는 좋았는데.”
딱히 예약도 하지 않았건만 그랜드캐니언을 가자마자 헬기가 대기하고 있던 건 최고였다. 헬기에 타서 내려다보는 그랜드캐니언은 장관 중의 장관이었으니까.
그 뒤도 괜찮았다.
다른 헬기로 갈아타고, 복잡한 도심을 지나 이곳까지 단번에 날아온 것도 더없이 즐거웠다. 천하의 강진호조차도 이들의 배려에 살짝 마음이 흔들릴 정도였으니까.
‘거기까지였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이놈들은 정도라는 걸 모르나?
놀 줄 모르는 사람에게 잘 논다고 칭찬해 줬더니, 정도를 모르고 막 나가 버리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곳에서 이런 짓이라니.
“차라리 야간에 통째로 전세를 낼 걸 그랬나 봅니다.”
하지 말라고!
제발 좀!
“아, 길이 열렸네요. 들어가시죠.”
“…….”
강진호가 주변을 힐끔힐끔 보다가 최연하에게 넌지시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 와서 돌아가는 게 더 눈에 띄어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일단 빨리 들어가요. 어서.”
“……네.”
강진호가 최대한 태연한 얼굴을 하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불만과 호기심이 반쯤 뒤섞인 시선들이 강진호와 최연하에게로 꽂힌다.
그중 동양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눈에 띌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버리는 강진호였다.
‘놀이공원이랑은 상성이 안 좋아.’
그러고 보면 예전에도 놀이공원에 갔다가 대형 사고가 터지지 않았던가.
지금이야 호위를 한다고 이 미친놈이 주변에 군 병력을 깔아놨으니 그런 사고가 벌어질 일은 없겠지만…….
‘이게 스케일인 큰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냥 무식한 건지.
도무지 저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는 강진호였다.
“어색해 보이시네요.”
“…….”
강진호가 떨떠름한 시선으로 윌리 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윌리 리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한 번씩 느끼는 거지만, 회주님께서는 굉장히 소박하신 것 같습니다.”
“……소박?”
“예. 가진바 지위나 권력에 비해서 스스로를 굉장히 낮추는 경향이 있으시네요. 미국에 방문한 중동의 권력자들 중에서는 자신들의 가족이 이용할 동안 놀이공원 전체를 비우라는 요구를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미친놈들인가.
오늘 뭔가 입이 험해지는 느낌인데?
“그런 요구를 하는 이들이 정말 있다고? 그걸 또 들어주고?”
“당연히 들어줄 수 없죠. 대부분은 말입니다. 이곳을 비우는 건 단순히 권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이곳은 국가의 소유가 아닙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대부분은’이라는 단어가 거슬리는데.”
윌리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실제로 두어 번 비운 적이 있기는 합니다. 주변의 눈치고 뭐고 이득이 크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까라면 까는 이들에게 잘못이 있을 리가 없다. 문제는 그런 것을 요구하는 이들의 정신상태다.
“그런 걸 요구하는 이들이 많은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요구하지 않는 이들은 다른 분야에서 또 굉장한 걸 요구하기 마련이죠.”
윌리 리스가 고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그게 당연한 겁니다.”
“……당연하다고?”
“예. 회주님도 마찬가지 아니십니까?”
“나는…….”
“검집 속에 명검이 있으면 뽑아보고 싶은 게 사람이죠. 그걸 실제로 남에게 휘두르지는 않는다 해도 말입니다.”
강진호가 입을 닫았다.
이 말은 반박할 수 없다.
사람이란 그런 법이니까.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용하지 않는 권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그만한 권력을 손에 쥔 사람 중에 권력을 함부로 사용하는 게 자신의 목을 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걸 알면서도 사용해 보고 싶은 거죠.”
윌리 리스가 씨익 웃었다.
“영원히 뽑히지 않을 검 같은 걸 누가 가지고 싶어 하겠습니까?”
“……확실히.”
비유를 들으니 절실히 와닿는다.
사람들은 권력자가 권력을 함부로 사용하는 걸 비난한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자신이 가진 권력을 그저 쥐고 있기만 한다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사람은 쥐꼬리만 한 권력만 가지고 있어도 사용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리 생각한다면 국가를 움직일 만한 권력자들이 겨우 놀이공원을 비워 달라고 하는 건 귀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회주님이 이상하다는 거죠.”
강진호가 슬쩍 돌아보자, 윌리 리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가진 권력은 어마어마한데, 그 권력을 휘두를 생각은 없잖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오늘 회주님께서 이곳을 비우라고 하셨으면 저희는 비웠을 겁니다.”
“…….”
강진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 걸 요구할 리도 없겠지만, 그 이전에 나를 좀 과대평가 하는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윌리가 고개를 내저었다.
“권력이란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걸 들어줄 수 있는 이가 권력을 잡는 법이죠. 지금 이 순간만큼은 회주님이 저희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권력자입니다.”
그 ‘저희’가 무엇을 의미하는 가가 관건이다.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걸 나에게 그리 말해줘도 되나? 내가 권력이 있다는 걸 알아서 좋을 게 없을 텐데?”
“일시적인 관계라면 그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회주님과의 항구적이고 영원한 친교를 다지고 싶은 겁니다. 그런 이가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지 못하고 손해 보는 거래를 한다면, 지금 당장이야 이득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손해는 보는 법이죠.”
강진호가 묘한 시선으로 윌리 리스를 바라보았다.
‘꽤나 전향적인데.’
하는 말만 듣고 있으면 정말 이들이 강진호에게 큰 호감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물론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인 만큼 저 말이 모두 본심일 리는 없겠지만, 여하튼 강진호에게 호감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서 안 타시겠습니까?”
“타죠.”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이들은 나를 분석하고 있겠지.’
조금 전, 당황한 얼굴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이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정보 정도는 준 것이나 다름없다.
딱히 숨겨야 할 이유도 없지만 말이다.
‘재미있군.’
그동안 강진호를 상대한 이들은 언제나 힘으로 짓누르려 했다. 그리고 설사 앞에서는 좋은 척 대하더라도 뒤로는 딴생각을 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방식은 강진호가 처음 겪는 스타일이다.
겪어보니 나름 재미가 있다. 물론 강진호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도 저들이 의도한 바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지.’
강진호가 가벼운 미소를 입에 담았다.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다라…….
윌리 리스의 말은 강진호의 일면을 정확하게 찌른 말이었다.
하지만 강진호를 제대로 본 말이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완전히 틀린 말이다.
왜냐면 강진호는 권력을 휘두르지 않기 위해 참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진호는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는 관심 자체가 없다.
왜냐면 그보다 더한 것을 휘두르는 데 이미 중독이 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강진호에게 중요한 힘은 권력 따위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폭력.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데서 오는 충족감 따위, 더 강해지는 쾌감에 비한다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알고 있어야 할 텐데.’
조금 전, 윌리 리스가 말한 권력자의 속성을 강진호 역시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권력자들이 언제고 자신의 권력을 사용할 기회를 찾는 것에 반해 강진호는 그저 자신의 무력을 사용할 기회를 찾을 뿐이다.
저들이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면 별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알게 되겠지.’
강진호가 얼마나 자신의 힘을 휘두르는 데 목말라 있는 사람인지 말이다.
“뭐 해요?”
“아, 갑니다.”
강진호가 최연하를 따라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금 당장은 즐기는 것으로…….
“저것들은 대체 뭐야?”
강진호가 헛기침을 하며 옷깃을 세워 얼굴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