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43
#1442.
견학하다 (2)
강진호는 아래 펼쳐진 끝없는 사막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경비행기에서 바라보는 사막은 꽤나 장관이었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계속 보고 있으려니, 이내 지루함이 몰려왔다.
“조금 더 가야 합니다.”
윌리 리스가 그런 강진호의 심정을 이해했는지 쓴웃음을 머금었다.
“외딴 곳에 있다 보니 오고 가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합니다. 이것만은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현수가 흥미가 동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사막 한가운데 시설이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혹시 51구역이?”
“아, 그건 아닙니다. 그쪽을 잠시 훈련장으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다른 용도로 쓰고 있습니다.”
“흐음, 잠시 쓰기는 했다는 거군요.”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한다.
“51구역?”
강진호의 물음에 이현수가 바로 대답을 해주었다.
“네바다주 한중간에 위치한 미국의 비밀 군사기지입니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데다 접근이 완전히 통제되어 있는 곳이라 온갖 말이 나오죠. 가장 유명한 가설은 거기가 미국의 외계인 실험장이라는 말이었는데…….”
“그냥 무인들이 썼다는 건가?”
“맥 빠지네요.”
“그러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윌리 리스가 흐뭇하게 웃었다.
‘외계인보다 니들이 더 신기해.’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 본다면, 강진호들이나 외계인이나 괴이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런 놈들이 저리 실망한 기색을 흘려 대다니.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거길 잠깐 사용하다 다른 곳으로 옮긴 것뿐입니다. 그 뒤에 거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흐음, 그럼 아직 가능성은 남은 건가…….”
이현수가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외계인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에, 그게…….”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시다시피 무인으로 살다 보면 기본적으로 귀신이나 유령 같은 오컬트적인 요소에는 관심이 안 갖잖습니까?”
“음, 그렇긴 하죠.”
“그러니 유일한 희망은 외계인이란 말이죠. 지구 밖은 무인이 닿을 수 없는 곳이니, 신기한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윌리 리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사이, 이현수가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는 강진호를 보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회주님?”
“외계인은 강할까?”
“…….”
“…….”
이현수가 잠시 고민을 하다 말했다.
“글쎄요. 다른 곳에서 지구까지 오려면 과학이 엄청 발달했을 테니, 무력이 셀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리고 미국에 잡혀서 실험당하고 있으면 더더욱 셀 것 같지는 않고.”
“그럼 됐어.”
“……네.”
금세 51구역에 흥미를 잃은 강진호를 보며 윌리 리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진호가 금지 구역에 들어가고 싶다고 요구해 오기라도 하면 가장 곤란해지는 사람이 바로 그니까.
윌리 리스의 시선이 옆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로 옮겨갔다.
‘나이트 위긴스.’
솔직히 말하면, 그의 입장에서는 강진호보다 오히려 위긴스가 조금 더 껄끄러운 존재였다.
윌리 리스에게 있어서 강진호가 먼 땅에서 온 이국의 왕 같은 느낌이라면, 위긴스는 인접국의 최고급 귀족 같은 느낌이다. 가진바 권력이나 힘이라면 당연히 강진호가 더 강하겠지만, 위긴스에게는 그의 실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지식이 있다.
그래서 위긴스의 앞에서는 긴장을 하게 된다.
위긴스의 시선이 윌리에게로 향했다. 아마 윌리의 시선을 느낀 모양이었다.
위긴스가 윌리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전에 뵌 적이 있었던가?”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몇 번 회담장에 따라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저는 자리에 앉을 수도 없는 애송이였지만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가 애송이였을 때도 위긴스는 이미 나이트였다는 뜻이다.
‘이만한 거물이…….’
머리로는 알고 있는 정보지만, 막상 위긴스가 강진호를 보좌하는 모습을 보니, 강진호의 대단함이 새삼 와닿았다.
“기억을 하지 못해 미안하군. 내가 워낙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말일세.”
“충분히 이해합니다, 나이트.”
“나는 이제 나이트가 아닐세.”
“아, 실례했습니다. 미스터 위긴스.”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기대하겠네. 다만, 다음에는 조금 더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주면 고맙겠네. 보통은 이런 식으로 바로 회주님과 협의에 들어가지는 않을 테니 말일세.”
뼈가 있는 말이었다.
윌리가 슬쩍 헛기침을 해 무안함을 표현했다.
사실 위긴스의 말대로 정식으로 협의를 진행할 생각이었다면 다짜고짜 강진호와 접촉하는 게 아니라 총회와 연락을 취하는 쪽이 옳다.
“죄송합니다.”
“아닐세. 다음에는 그리해 주면 되네.”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윌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일은 없었다. 그 웃음 속에 숨어 있는 날카로움에 찔린 윌리가 차마 위긴스를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사람 하나 추가된 것뿐인데 이렇게나 압박을 느끼다니.’
윌리가 가장 놀란 점 중 하나는 저 나이트 위긴스가 겨우 총회의 이사직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총회에는 위긴스 말고도 이사가 셋이나 더 있다.
‘위긴스급이 셋이라니…….’
물론 그들 전부를 위긴스급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위긴스와 비등한 직책을 맡을 사람이 셋이나 더 있다는 게 총회가 얼마나 강대한 세력인지를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나이트 위긴스는 원탁에서도 다른 나이트들과는 차별화되는 존재였으니까.
“활주로에 진입합니다!”
기장이 소리치자, 윌리가 상념을 접고 입을 열었다.
“벨트…… 의미가 없겠군요. 곧 도착합니다.”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속도를 늦춘 비행기가 사막 위로 내려섰다. 말 그대로 사막이다 보니 적당히 평탄화해 둔 땅이 활주로의 역할을 대신했다.
이내 비행기가 착륙에 성공하고, 문이 열렸다.
이현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문밖을 바라봤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비행기로 날아오다 보니 방향감각이 없다. 밖에 보이는 거라고는 사막뿐이니, 주변을 보고 방향을 짐작하기도 어렵다. 거리로 봐서는 네바다주 사막의 일부분일 텐데…….
‘아마 지도에는 안 나오겠지?’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눈으로 확인해 보면 될 일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이현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생각과는 다르게 선인장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땅과 자갈뿐이었다.
‘삭막하네.’
그리고 그 한편에 길게 늘어진 철조망이 보였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윌리 리스가 앞장서 일행을 안내했다. 그를 따라 조금 걷다 보니 바리게이트로 막혀 있는 입구가 나온다. 윌리 리스를 확인한 경계병들이 경례를 붙이고는 재빨리 바리게이트를 치웠다.
이현수가 그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총이라…….’
경계병들이 들고 있는 총이 눈에 확 들어온다. 예전에는 총든 이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없던 이현수지만, 중국에서 군인 놈들에게 학을 뗀 이후로는 총 비슷한 물건만 봐도 움찔하게 되었다.
이현수가 영 마뜩찮은 얼굴로 군인들을 바라보다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입구를 통과하자 황량한 벌판과 함께 작은 건물 몇 개가 보였다.
‘이게 단가?’
이현수의 미간이 좁아진다.
힘을 보여준다기에 규모도 나름 기대했는데, 저기는 기껏해야 백 명도 들어가기 힘들어 보였다.
‘정예만 모아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호오.”
그때, 위긴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하인가?”
“그렇습니다.”
이현수가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러고 보니 원탁도 그랬죠.”
“그렇지. 아무래도 그런 구조를 띨 수밖에 없지. 무인들이 많아질수록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고, 규모가 커지면 눈에 띄게 되지. 규모는 늘리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면 결국에는 땅을 파고 들어가야 하는 법이지.”
위긴스가 가만히 시선을 내려 아래를 바라보았다.
“흐음, 과연.”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위긴스를 보며 이현수가 불만을 터뜨렸다.
“혼자만 그렇게 아는 척하지 마시고, 같이 좀 알면 안 되겠습니까?”
“어려울 것 없지. 돌아가는 대로 마나 탐지에 대한 수련을 하자꾸나. 내가 아주 확실하게 터득시켜 주지.”
“아,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걱정할 것 없다. 딱 일주일이면 충분하지.”
“…….”
그 뒤에는 ‘사람을 갈아 넣으면’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게 분명했다.
괜히 한 번 찔렀다가 본전도 못 찾게 생긴 이현수가 불쌍한 얼굴로 강진호를 돌아봤지만, 강진호는 이현수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저기로 가면 되나?”
“예, 회주님.”
앞쪽에 보이는 건물에 도착한 이들이 작은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내부는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이쪽입니다.”
윌리 리스가 건물 벽에 다가가 섰다. 그러고는 벽을 몇 번 두드렸다.
그러자 그가 두드린 곳이 덜컥 열리더니, 작은 금고 같은 것이 튀어 나왔다. 비밀번호를 눌러 금고를 연 윌리 리스가 안쪽 센서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철컥.
뭔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벽이 위로 올라가고, 커다란 엘리베이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야, 이거 신기하네.’
이현수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일전에 원탁에 쳐들어갔을 때도 비밀 문을 통과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마법적 잠금장치를 열고 들어간 것이라 감흥이 덜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뭐라고 할까…….
‘스파이 영화 같은데?’
뭔가 자신이 영화 속 등장인물이 된 것 같아서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느낌이다.
우우우웅.
엘리베이터가 자동으로 열렸다.
기대한 것과 달리 엘리베이터는 최신식이라기보다는 조금 올드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꽤 멋지다고 생각한 이현수가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권총이라도 하나 챙겨 올 걸 그랬네요.”
“총은 쏠 줄 아나, 이 실장?”
“하하, 대한민국 남자는 기본적으로 모두 군사교육을 받는다는 걸 잊으셨군요. 물론이죠!”
“권총을?”
“……그건 잡아본 적 없네요.”
소총이라고 할 걸 그랬나?
남은 이들이 모두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문이 닫혔다.
철컹.
그러고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깊은 곳에 있는 모양이네요.”
윌리 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설 자체가 애초에 무인들을 위한 시설이 아니었으니까요. 처음 이곳이 생긴 이유는 핵실험 때문입니다.”
“자국 내에서 핵실험을 한다구요?”
“흔한 일입니다. 특히나 네바다는 예전부터 미국의 핵 실험장이었죠. 이곳에서 터진 핵이 다른 모든 나라에서 터진 핵보다 많을 겁니다. 핵실험이 딱히 필요 없는 시절이 되어서 미리 파놓은 핵 실험장을 수련장으로 개조한 거죠. 물론 규모는 좀 키우긴 했습니다만.”
한참을 내려간 끝에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H27구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
윌리 리스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와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내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와!”
이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도저히 지하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드넓은 공간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