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44
#1443.
견학하다 (3)
“와, 이건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은데?”
그 뭐냐, 그 외계인 나오던 영화.
물론 그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SF 분위기가 물씬 나는 미래형 건물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놀라웠다.
중앙에는 거대한 광장이 보이고, 좌우로 복도가 이어져 있다. 심지어 광장의 한쪽 벽면에는…….
“저, 저거 버X킹인가?”
프렌차이즈 버거 가게가 입점해 있었다.
‘이것들…… 또라이인가?’
기밀을 지킨답시고 사막 지하에다 기지를 건설해 놓고는 거기다 프렌차이즈 버거 가게를 입점시키다니. 사고방식이 어떻게 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리를 하는 이들도 모두 군인입니다. 특정한 지역에 납품받은 재료를 공수하고 있죠.”
“……그래도 됩니까?”
“어려울 것 없죠. 돈은 모두 지불하니까요. 기본적으로 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공짜로 제공됩니다.”
뭔가 공짜라는 말을 듣자마자 회가 동하는 기분이다. 이따 들러서 하나 먹어도 될…….
“헐,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네.”
가만히 보면 없는 게 없다.
“……아니, 여기 군인들 훈련하는 곳 아닙니까? 영내잖아요. 이건 뭔 쇼핑몰 같은데요?”
“당연한 겁니다.”
윌리 리스가 되레 그리 물어보는 이현수를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 있는 이들은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들입니다. 그 대가를 연봉으로 지급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수련을 하는 데 어떠한 불편도 없도록 하는 게 국가가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크으.”
이현수가 눈물이 난다는 듯 눈가를 훔쳤다.
“그 당연한 걸 당연하게 할 수 있는 나라가 별로 없거든요.”
딱히 한국만이 아니다.
이건 그냥 미국의 위엄일 뿐이다. 이만한 자본을 투자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윌리 리스가 막 몇 마디를 덧붙이려는 순간, 안쪽에서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도착하자마자 윌리 리스를 향해 가볍게 경례를 한 사내가 강진호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이 H27구역을 책임지고 있는 지미 보어 소령입니다.”
강진호가 지미의 손을 맞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강진호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강진호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은 만나는 이들마다 그를 당연히 알고 있는 것 같다. 편한 부분도 있지만, 아직 강진호가 그런 일들을 자연히 받아들인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시설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윌리 리스에게 바통을 넘겨받았다는 듯 지미가 강진호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강진호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미를 따라 걸었다.
“시설이 굉장히 큰 것 같은데?”
지미가 빙그레 웃었다.
“처음 지어진 크기에서 이리저리 증축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실제로는 이 크기를 다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여기 몇 명이나 있지?”
“이 기지에는 오천 명 정도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전투 요원은 아니고, 전투 요원은 이천 정도입니다.”
오천 명이라…….
그 정도면 여단급이다.
여단급의 병력이 모조리 지하에서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라니, 이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미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위엄을 피부로 실감하는 강진호였다.
“굉장하군.”
“하하, 그리 놀라실 것 없습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니까요. 네바다에만 해도 이런 곳이 몇 곳 됩니다. 전부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요.”
그 말에 위긴스마저 깜짝 놀랐다.
“이런 곳이 몇 군데나 더 있다고 했는가?”
“여기만큼 크지는 않지만, 그렇습니다.”
“허…….”
위긴스도 혀를 내둘렀다.
아니, 오히려 위긴스이기에 강진호 이상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개념이 애매한 강진호와 다르게 위긴스는 이만한 시설에 그만한 인원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한지 잘 아는 사람이다.
영국이었다면 모든 국력을 쏟아부어도 이만한 시설 하나를 만들기도 벅찼을 것이다.
원탁이 이곳과 비슷하긴 하지만, 원탁은 기본적으로 전 유럽의 연합체의 성격을 띠고 있지 않은가. 영국 단독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만한 시설이 몇 개나 더 있다니.
“미국, 미국하더니만…….”
이러니 미국이라는 말이 나오지.
강진호도 이런 규모에는 할 말을 잃은 듯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의 주변으로 군복을 갖춰 입은 군인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쪽으로는 근육 트레이닝 센터와 수영장이 있습니다.”
“……잠시만요. 수영장이요? 지하에?”
“수영장이 지하에 있지 못할 이유라도?”
“물이 엄청 들어갈 텐데요. 여긴 사막이잖아요?”
지미가 빙그레 웃었다.
“사막이라고 해서 지하수가 없는 게 아닙니다. 다만, 깊은 곳에 있어 지표까지 끌어 올리는 게 힘들 뿐이지요. 이곳은 충분히 깊은 지하에 있다 보니 지하수를 쓰기에 용이합니다.”
이젠 모르겠다.
이현수가 그냥 웃어버렸다. 여긴 그들이 가진 상식으로는 해석이 안 되는 곳이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된다.
“이쪽은 병사들의 숙소입니다. 방을 보여 드릴까요?”
“아뇨. 굳이 거기까지는…….”
괜히 봤다가는 자괴감만 들 것 같다.
‘내 집보다 좋을지도 몰라.’
이현수는 지금도 충분히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다. 괜히 어설프게 다른 삶에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지금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싶지는 않다.
위긴스가 주변을 둘러보다 말했다.
“식료품은 어찌 해결하는가. 그만한 이들이 먹을 음식을 마련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조리는 이곳에서 직접 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하다 보니 식재료를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외부로부터 공수해 오고 있습니다.”
“위험하지 않은가?”
“혹여 외부와 연결이 끊겨도 자체적으로 6개월 이상 생존 가능한 만큼은 비축해 두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하군.”
여단급이 6개월이라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는 듯 위긴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현수는 이곳이 마치 거대한 잠수함 같다는 생각을 했다.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조라든가, 벽이 거의 쇠로 만들어졌다든가. 조금 밝은 색으로 페인팅이 되어 있어 답답한 느낌을 주지 않을 뿐. 개념 자체는 잠수함과 그리 다르지 않다.
‘하기야…….’
물속에서 생활하는 것이나 지하에서 생활하는 것이나, 딱히 다를 것이 없으니까. 외부와 차단된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건 동일하다.
“그리고 이쪽이 훈련장입니다.”
복도를 따라 걷다 보니 다시 커다란 광장과도 같은 공간이 이어졌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중앙에 거대한 필드가 있고, 벽면을 따라 투명한 유리로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 작은 훈련장들이 즐비해 있었다.
“여기서 수련을 하는 겁니까?”
“물론 훈련장이 여기뿐인 건 아닙니다. 용도에 따라서 다양한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훈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다만, 아직 저희도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수련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다 보니 여전히 이런 개방된 수련장이 필요하죠.”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설이 현대적일 뿐이지 중앙의 공간은 유럽식 수련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사들은 이런 커다란 공간에서 검을 휘두르고, 마법사들은 저런 작은 방에서 연구를 한다.
지미가 살짝 의기양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보시면 알겠지만, 저희는 전통적인 무인의 수련 방식과 현대적 훈련 방식을 조합하여 가장 선진적인 수련법을 창조해 냈습니다. 물론 지금도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결과, 미국의 무인들은 전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다고 자부합니다.”
강진호와 위긴스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뿐 아닙니다. 저희는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무인계의 고질적인 문제 역시 해결했습니다.”
“고질적인 문제?”
“통제가 어렵다는 거지요.”
지미가 씨익 웃는다.
“그동안 무인들은 그저 연합할 뿐이었습니다. 주체는 개인이 되고, 연합을 통해 자신들의 힘을 불려왔죠. 하지만 그런 방식은 결국 파탄을 초래하기 마련입니다. 국가와 척을 질 수밖에 없죠.”
“음…….”
“더구나 국가와 협력한다고 해도 무인들의 방식과 국가의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무인이지만 군인의 신분입니다. 군사훈련을 통해 군인처럼 움직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무력을 정확한 곳에 백 프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미가 강진호를 힐끔 보며 말했다.
“이들이 실전에 투입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낼지는 너무도 빤한 일이죠.”
“궁금한 게 있는데…….”
강진호의 물음에 지미가 어깨를 폈다.
“얼마든지 물으십시오.”
“여기, 흡연되나?”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지미가 당황하여 입을 뻐끔거렸다.
“아, 물론입니다.”
“그렇군.”
강진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현수가 재빨리 휴대용 재떨이를 들고는 강진호의 옆에 가 섰다.
강진호가 깊게 담배를 빨아들이고는 재떨이에 재를 털었다.
“그 외에는 궁금한 게 없으십니까?”
“있지.”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점심은 언제 먹지? 여기 밥이 궁금한데.”
“저도 궁금합니다.”
“아, 저두요. 미군 밥이 그렇게 잘 나온다는데!”
지미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이것들은 뭐지?’
이곳을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기밀이기는 하지만, 이미 무인계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에게는 굳이 숨길 것도 없는 일이니까.
강진호가 오기 전에도 몇몇이 이미 이곳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 시설과 병사들을 보고는 반쯤 질려 미국의 동맹을 자처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세 사람의 반응은 그들과는 전혀 달랐다.
마치 지금까지 본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 아닌가.
지미가 당황한 듯하자 윌리 리스가 앞으로 나섰다.
“회주님.”
“음?”
“병사들의 실력을 확인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굳이?”
강진호가 태연하게 되묻자 이번에는 윌리 리스가 당황했다.
강진호가 그들과 동행해 이곳까지 온 이유는 시설을 관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곳에서 수련하는 이들이 얼마나 강한지, 그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갑자기 말이 바뀌었다.
“화, 확인해 보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런 것 같군.”
윌리가 고개를 돌려 자율 훈련을 하고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이 짧은 시간에 그저 보는 것만으로 저들의 역량을 다 파악했다고?’
그럴 리는 없다.
하지만 이자는 워낙 상식적이지 않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 감상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안 듣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꼭 말씀 부탁드립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윌리 리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들은 전력이 안 돼.”
“…….”
“소꿉장난이 재미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야.”
옆에서 강진호의 말을 듣던 지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소꿉장난?
살면서 이렇게 모욕적인 말은 처음 들어본다.
“실제로 겪어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텐데요?”
최대한 성질을 짓누르며 한 말이다.
하지만 어투가 거칠어진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달라질 게 없어.”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말이야.”
지미가 강진호를 노려보며 일갈했다.
“얼마나 강하시기에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지 확인해 봐도 괜찮겠습니까? 제가 워낙 입만 털어 대는 이들을 많이 봐서 말입니다!”
윌리 리스가 기겁을 해서 지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하지만 이미 그 말은 강진호의 귀에 들어간 뒤였다.
강진호가 천천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말, 후회하게 될 거야.”
살짝 들뜬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