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48
#1447.
입증하다 (2)
장내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간다.
그들의 시선에 다가오는 강진호의 모습과 쓰러져 있는 크리스의 모습이 동시에 잡혔다.
지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단 한 방에…….’
크리스는 결코 실력이 없는 이가 아니다. 그가 실력이 부족했다면 감히 이런 상황에 홀로 나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 중에서는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가 바로 크리스다.
그런데 일격.
단 일격에 쓰러졌다.
그것도 제대로 뭔가를 갖춘 일격이 아니라, 모기를 쫓는 듯한 손짓에 얻어맞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도 되지 않는 꼴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차이가 극심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심지어 직접 공격을 한 크리스조차도 자신이 강진호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다.
사람이 모기를 죽여도 저리 쉽게 죽일 수는 없다. 그렇다는 건 크리스와 강진호의 격차가 사람과 모기의 차이를 뛰어넘는다는 말이지 않은가.
‘그럴 리가 없다.’
지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곳에 있는 SOB들은 미국의 모든 역량이 집약된 슈퍼 솔져들이다. 가장 과학적인 방식으로, 가장 스마트하게 훈련된 이들이 바로 SOB다.
설사 그 방식이 아직은 동양이나 원탁의 수준을 뛰어넘지는 못할지 몰라도 이만한 차이일 수는 없었다. 절대로!
북받침을 주체하지 못한 지미가 고함을 내질렀다.
“뭐 하는 거냐! 당장 적을 쓰러뜨려라! 지금 당장!”
그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넋이 나가 있던 이들 중 몇몇이 정신을 차리고는 주변으로 신호를 보냈다.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으니 자신의 분대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다.
강진호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금 지루하다는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죽여도 좋다! 그럴 각오로 한다!”
분대장들의 독려에 SOB들이 정신을 차리고는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수는 언제나 힘이 된다.
홀로, 혹은 그들의 분대만으로 강진호를 상대했다면, 지금쯤 그들은 패닉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천 명에 가까운 동료들이 있다.
게다가 이곳은 그들의 홈그라운드.
개도 자신의 집 앞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가는 법이다. 이곳은 언제나 그들이 훈련을 하던 곳이고, 무엇보다도 미국의 영토다. 아무리 강진호라고 해도 이곳에서 제멋대로 날뛸 수는 없다.
그런 이유들이 그들의 굳은 몸을 풀어주었다.
“덮쳐!”
끊임 없는 훈련.
수천 번, 수만 번 훈련하고 또 훈련한 일.
뭔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가장 앞서서 달려드는 분대장의 움직임을 보는 순간, 그들은 자연히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거기까지.
몸을 날린 그들이 본 것은 가장 먼저 뛰쳐 들어간 분대장이 제 위치에 서기도 전에 가공할 속도로 뒤로 튕겨나는 모습이었다.
절로 고개가 돌아간다.
튕겨 나간 분대장의 몸이 도열해 있는 병사들을 파고들었다. 마치 볼링공이 볼링핀을 무너뜨리듯이 분대장의 몸에 실린 힘을 감당하지 못한 이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뭐?’
저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나?
뭔가 그들이 아는 현실이 부정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다. 분대장이 당해 버린 이상 강진호의 목표가 그들로 바뀌리란 사실을 곧 깨달아 버렸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실수는 감당하지 못할 적에게 함부로 달려든 것.
그리고 두 번째 실수는 감히 강진호를 앞에 두고 시선을 돌린 것이었다.
홍왕조차도 하지 않을 오만한 짓을 저지른 대가는 즉시 찾아왔다.
강진호가 손을 뻗어 자신에게 대검을 휘두르는 이의 팔을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가볍게 휘둘러 그를 잡아 던져 버렸다.
콰아앙!
사람이 포탄처럼 날아가 인간을 종잇조각처럼 날려 버린다.
콰아앙!
콰아아앙!
두 번, 세 번…….
연이어 사람이 날아가고 연이어 폭음이 터졌다.
반 메이덴은 자신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 강진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르다.
강하고 어쩌고를 논할 일이 아니다.
그의 집중력이 더없이 높아진 만큼, 그가 보는 세계는 더없이 느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느려 터진 세계에서도 강진호는 홀로 유유히 움직였다.
금방이라도 하품을 할 듯 지루하기 짝이 없다는 얼굴로 다가와 자신의 멱살을 움켜잡는 모습까지 모두 똑똑히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 역시 알 수 있었다.
목 어림에서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 싶더니, 이내 시야가 제멋대로 바뀌기 시작한다.
“끄륵…….”
몸의 피가 모두 거꾸로 솟는 것 같은 강렬함.
그리고 곧 전신이 터져 나갈 것 같은 거대한 충격이 의식을 날려 버린다.
콰앙!
처음 뛰쳐나온 이들을 모두 제자리(?)로 돌려보낸 강진호가 입에 문 담배를 빼 재를 털었다.
그러고는 낮게 숨을 내쉬었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 모양인데…….”
강진호가 눈가가 살짝 찌푸려진다.
“한 번에 덤비라니까.”
괜히 귀찮게 여러 번 손을 쓰지 않아도 되게 말이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저보다 더 무서운 말이 없었다.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던질 수가 있지?’
던져진 이들이 살았는가 죽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들을 받아내려던…… 아니,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이 떼 부상을 당했다는 점이다.
사람 하나당 적어도 열 명 이상씩.
단 열 명을 집어 던진 것만으로 삽시간에 부상자가 백여 명이 넘게 생겨 버렸다.
불과 1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말이다.
우득우득.
강진호가 목을 좌우로 꺾는다. 그의 목에서 뼛소리가 울려 퍼진다.
듣는 이들에게는 그 소리마저 위협처럼 느껴졌다.
윌리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저 광경을.
강진호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어쩌면 윌리는 강진호 이상으로 그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행적, 그가 지금까지 해낸 일, 그리고 꾸며낸 것만 같은 그의 업적까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텍스트나 동영상으로 보는 강진호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강진호는 전혀 다른 생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걸음걸음마다 말도 안 되는 힘이 느껴진다.
공격하는 사람을 포탄처럼 잡아 던져 상대를 격살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하기나 한 이야기냔 말이다.
차라리 강진호가 일검으로 달려드는 이들을 모두 베어버렸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의 대응은,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힘은 윌리가 알고 있는 무인에 대한 상식을 모조리 부숴 버리기에 충분했다.
“살살하시네.”
“그러게요.”
“나름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역시 로드시지.”
“저는 애초에 걱정 안 했는데요?”
“한 명 이기더니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로군. 조금 있다 나와 따로 보지.”
“……살려주십쇼.”
그리고 위긴스와 이현수는 그 광경이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하게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윌리는 그들의 대화 중 한 부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살살이라고?’
저게?
그럼 강진호가 진심으로 나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윌리라고 했소?”
“……그렇습니다.”
위긴스가 태연하게 입을 연다.
“당신들이 한 생각은 딱히 틀리지 않았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지. 근본적으로 무인들은 통제가 너무 어려운 이들이니까. 차라리 특공대처럼 조직해서 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해봤거든.”
“…….”
“그런데 내가 왜 그걸 포기한 줄 아시오?”
“모르겠습니다.”
“쓸모가 없어서요.”
윌리의 눈이 흔들렸다.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들의 가장 큰 오착은 절대강자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는 거요. 물론 당신들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 과거의 원탁이 미국으로 강자들이 넘어가지 못하게 단속했으니까. 물론 당신들은 정보력을 바탕으로 최대한 정보를 수집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위긴스가 미묘하게 웃으며 강진호를 가리켰다.
“당신이 지금 보는 광경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을 것 같소?”
불가능하다.
윌리가 아는 모든 표현을 동원한다고 해도 그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의 십분의 일조차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수치화할 수 있는 게 있고, 수치화할 수 없는 게 있지. 그런데 저건 수치화가 안 되는 종류란 말이외다. 게다가…… 저쯤 되는 강자에게는 수라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소. 지금 당신들이 하고 있는 일은 개미를 이천 마리 모아서 곰을 잡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일이오.”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그냥 곰이 개미를 먹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
위긴스가 나직하게 웃었다.
“딱히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건 아니오. 만약 저들이 원탁으로 쳐들어온다면 원탁의 평범한 무인들은 오히려 당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마스터를 위시로 한 나이트들이 등장하는 순간, 일방적으로 학살이 벌어지겠지.”
“……저들이 그토록 나약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위긴스가 가만히 윌리를 노려본다.
“지금 뭐라고 했나?”
“…….”
“그래도 대가리라는 놈이 사태 파악을 전혀 못하고 있군. 저들이 약한 게 아니라 너희가 무능한 거지. 저만큼 좋은 인재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해주지 못했으니까. 내가 저들을 교육했다면 지금보다 세 배는 강했을 거다.”
“…….”
“새로운 방식은 때로는 혁명이 되지만, 대부분은 실패로 돌아가는 법이지. 혁명을 하려는 자는 그 누구보다 신중해야 하는 법. 아무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만 집착하는 이들은 이런 결과를 받아 들게 되는 법이다. 이 얼간이 같은 작자야.”
위긴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는 지금 꽤 분노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미군이라지만 저들 역시 무인. 잘 키워냈다면 무인계의 한 축을 이룰 만한 인재들이다. 그런 이들은 저리 망쳐 놓은 이들에 대해 분노가 일지 않을 수 없다.
그 역시 수많은 무인들을 키워본 사람이니까.
“그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라.”
“…….”
위긴스가 지미와 윌리를 씹어먹을 듯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 멍청한 머리로 만들어낸 반쪽짜리 양산품들이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 왜 저들이 전력이 될 수 없는지 말이야.”
두 사람의 시선이 위긴스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강진호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그들의 병사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물러난다.
명령만 떨어지면 지옥불에도 뛰어들 거라 생각한 그들의 병사들이 호랑이를 마주한 토끼처럼 강진호를 피해 사방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 충격적인 광경에 지미와 윌리가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수치를 모르…….”
“닥치는 게 좋아, 그 입을 찢어놓기 전에.”
“…….”
위긴스의 말에 지미가 입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위긴스의 이죽거림이 이어졌다.
“감당할 수 없는 적을 향해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걸 개죽음이라고 하지. 그리고 그 개죽음을 국가의 차원에서 강요한 곳이 있었지.”
“…….”
“불과 백 년도 안 된 과거에 귀국은 그 정신론을 비웃지 않았나. 그런데 이만큼이나 발전한 세상에서 그 비웃던 이들과 똑같은 짓을 하려 드는군. 이래서 인간이란 끔찍하다니까.”
비할 바 없는 치욕에 지미의 고개가 떨궈졌다.
이 이상 수치스러울 수 없는 패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