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49
#1448.
입증하다 (3)
숨도 쉴 수 없었다.
그저 한 사람이 걸어오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접근의 대상이 된 이들은 그걸 단순한 거리의 좁혀짐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건 더없는 폭력.
그리고 더없는 압제.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을 짓누르는 정체불명의 무언가였다.
“아…….”
강진호는 입에 담배를 문 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으으…….”
등 뒤에서는 쓰러진 이들의 신음 소리가 들려오고, 앞에서는 강진호가 천천히 다가온다.
이런 상황은 누구도 겪고 싶지 않을 것이다.
‘싸워야 하는데…….’
이럴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철이 든 이후로 그들이 해온 것은 그게 전부니까.
강자와 싸우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희생을 담보로 해 정면으로 탱커를 밀어 넣고, 상대가 그곳에 집중하는 동안 뒤로 돌아간 이들이 발목을 잡고 늘어지면 된다.
그래.
이들은 그것만을 훈련해 온 이들이다.
하지만…….
‘무슨 의미가 있지?’
완벽한 덫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덫은 그저 늑대를 잡기 위한 것. 호랑이나 곰의 발은 덫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단 한 번도 호랑이를 직접 눈으로 본 적 없는 주제에 이 정도면 호랑이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게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
그 문제를 알지 못한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게 안타까운 일일 뿐이었다.
찰칵.
강진호가 그들의 앞에 서서 새 담배를 빼 물었다.
그의 눈이 차게 가라앉는다.
“무인?”
담배 끝이 타들어 간다.
“너희가?”
강진호가 코웃음을 쳤다.
이 세상으로 돌아온 이후 제대로 된 무인을 만난 적은 거의 없다. 그를 죽이겠다고 호기롭게 달려든 이들 중 마지막 순간까지 강진호에게 겁을 집어먹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되는가.
기껏해야 엘더 나이트, 그리고 일본 최후의 결사대.
모두가 죽는 그 순간까지 한 사람도 남김없이 강진호를 향해 달려들고 또 달려든 이들은 오직 그들뿐이었다.
삼왕계와 제대로 붙는 날이 온다면 또 달라지겠지만, 이제까지는 고작 그 정도다. 냉정하게 본다면 현대의 무인들은 과거의 무인들에 비해 무위 자체는 뒤떨어질 것이 없지만, 그 자세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조차도 이들에 비한다면 당당한 무인으로 재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심지어 대가 약한 것도 아니야.’
무인인 주제에 덜덜 떨고 있다면 비웃어주기라도 하겠지만, 이들의 반응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왜냐면 이들은 군인이니까.
군인은 작전을 성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전략에 따라서는 사지에 걸어 들어가기도 하고,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군인이라면 굳이 아무런 이득이 없는 곳에 스스로의 목숨을 던질 필요가 없다. 군인이란 결국 성공과 이득을 좇는 존재니까.
그렇기에 무인계에서 이들은 가치가 없다.
이들이 홍왕에게 달려들 수 있을까?
마기를 내뿜지 않은 강진호를 앞에 두고도 머릿속으로 수많은 계산을 해야 하는 이들이 이를 드러내고 달려드는 홍왕이나 강진호의 앞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절대 무리다.
거기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총회의 마염들은 강진호를 구하기 위해서 누가 명령하지도 않았는데도 제 발로 홍왕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위긴스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강진호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이들에게 그런 걸 바랄 수 있을까?
아니.
강진호는 바라지 않는다.
이들의 무학이 어떤 수준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정말 마지막 한순간 타인의 힘이 필요할 때, 이들이 도움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다.
“후…….”
짧게 담배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조금 안타까운 눈으로 질려있는 군인들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한 번 날뛸 생각이었는데.’
이쯤 되면 괴롭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입에 문 담배를 끝까지 빨아버린 강진호가 필터만 남은 담배를 바닥에 던져 버리고는 몸을 돌렸다.
살짝 불완전연소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들은 그가 뭔가를 불태울 상대가 아니다.
저벅.
저벅.
강진호가 등을 보이고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도 모여 있는 이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강진호를 본 윌리는 하릴없이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데이터? 정보?’
헛웃음이 나온다.
‘무슨 병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거지?’
이들은 인간이 아니다.
윌리의…… 아니, 미국의 관점은 시작부터 오류가 있었다. 그들은 무인을 그저 강화된 인간의 수준에 한정해 두고 모든 계획을 짰다.
하지만 극한에 도달한 무인은 인간의 한계를 간단하게 뛰어넘어 버린다. 저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을 대체 뭘로 설명하란 말인가.
SOB 계획에 참여하면서도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군의 화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굳이 무인을 육성할 필요가 있는가.
차라리 그 자금과 인력으로 군을 늘리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어.’
무인이 무서운 이유는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 강진호가 마음먹고 누군가를 암살하려 든다면?
겨우 대물저격총과 소총으로 무장한 일반 병사들이 강진호에게서 목표물을 지킬 수 있을까?
절대 무리다.
군은 홀로 움직이는 곳이 아니다. 군을 움직이는 것 역시 사람이다. 그리고 저들은 그 사람을 죽이는 것에는 세상 무엇보다 뛰어나다.
저자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일개 사단 이상을 동원해 주변을 완전히 두르고 지하 벙커에 처박혀 통조림이나 퍼 먹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휘관이 그 꼴이 나버리면 부대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딜레마.
군은 인간을 죽이기 위해 발전했지, 괴물을 죽이기 위해 발전한 게 아니다. 충분히 괴물이라 부를 만한 저자는 현재의 무기 체계로는 저지할 수가 없다.
‘윗선에서 무인의 육성에 집착한 이유가 있었어.’
거기에 자신들의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윌리는 자신들의 육성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강진호 하나가 대대급 병력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다 못해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으니까.
저벅.
저벅.
강진호가 느릿하게 앞으로 다가와 가만히 윌리를 바라보았다.
“더 보여줄 게 남았나?”
“…….”
윌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보여줄 것?
아직 있다.
하지만 그가 준비한 어떤 것도 지금 이상의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강진호가 가만히 윌리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비행기가 준비됐으면 좋겠군.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
“아…… 지금 바로 돌아가실 겁니까?”
“그럼 또 할 게 있나?”
“…….”
윌리가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찾아내려는 순간,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이현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회주님.”
그 무거운 목소리에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이현수를 바라봤다.
“아까 버거 먹기로 했는데요.”
“…….”
아, 그랬지.
아…….
이현수가 두 개째 버거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위긴스가 그 광경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그게 넘어가나?”
“맛있지 않습니까?”
“영 느끼해서. 미국에 너무 오래 있었어. 가서 김치찌개나 먹었으면 좋겠군.”
“…….”
이현수가 위긴스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한 번 훑었다.
“왜?”
“아뇨. 전생에 한국인이셨나 해서.”
“나도 요즘은 그 생각 중이네.”
생긴 게 외국인이라 그렇지, 말하는 것부터 사고방식까지 완전히 한국인이 되어버린 위긴스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영국으로 돌아가시기라도 하는 날에는 식사도 못하시는 것 아니에요?”
“영국에 한식당이 자네 생각보다 많아. 그리고 사람들이 굉장히 오해하는데, 영국 음식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오, 그래요?”
“세계 각지의 식당이 런던에 다 모여 있거든. 인도 음식이라든가, 프랑스 음식이라든가.”
“……전통식은 안 드십니까?”
“그럼 자네들도 꽁보리밥 먹든가! 그렇게 전통이 좋으면.”
아니, 왜 화를 내시고 그러세요. 안 먹느냐 한 마디 물어본 건데.
위긴스가 영 입맛이 없다는 듯 들고 있던 버거를 내려놓았다.
“로드, 돌아가면 한식당이나 한 번 들르시죠.”
“……그건 정말 동감이야.”
그게 아니라면 중식당이라도.
강진호도 이제는 슬슬 미국 음식이 물리는 중이었다. 나름 느긋하게 쉬어보려고 준비한 일이었는데, 이런 문제가 생길 줄이야.
“음, 자유로이 오갈 수만 있어도 한국에 가서 밥을 먹고 오면 되는데.”
그때, 윌리가 끼어들었다.
“텔레포트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알고 있나?”
위긴스가 뜻밖이라는 듯이 윌리를 바라보았다. 대충 떠보려고 흘린 거긴 하지만, 저리 즉각적인 반응이라니.
“제가 모를 수가 없죠. 이미 원탁과 미국은 여러 개의 텔레포트진이 뚫려 있지 않습니까?”
“흐음?”
위긴스가 흥미롭다는 듯이 윌리를 바라보았다.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윌리가 생각 이상으로 상층부에 접근한 거물이라는 뜻이었다.
본인은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말하지만 말이다.
“좋은 관계로 흘러간다면 설치할 생각이 있어 준비는 했네만.”
물론 좋은 관계로 흘러가지 않아도 몰래 설치해 볼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이들과 깊숙이 엮여 버려 쉽지 않게 됐다.
“설치는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우린 아직 아무런 관계도 아니네만?”
“상관없습니다.”
“……어째서?”
윌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대륙을 횡단할 정도의 마법진이라면 사용하는 사람도 한정되어 있겠죠. 그건 곧 그 마법진으로 넘어올 사람은 미스터 위긴스, 혹은 회주님이라는 뜻이죠.”
“그리되겠지.”
“두 분의 방문을 저희가 사양할 이유가 없습니다. 언제든 들러주십시오.”
위긴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자, 꽤 똑똑하군.’
좋은 말로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고는 있지만, 저들이 협조할 경우에는 텔레포트진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유사시에는 파괴해 버리면 그만이라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지만.
“그럼 도움을 받지.”
“적당한 위치에 대한 목록을 넘겨 드리겠습니다. 저희도 관리가 되어야 하니까요. 민간인이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한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될 수 있으면 도시에서 가까운 쪽으로 해주게. 올 때마다 미군의 헬기를 빌려 타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까.”
“고려하겠습니다.”
이렇게 한 가지 목적은 꽤 쉽게 해결이 됐다.
그럼 이제는 본격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간이다.
“저기, 회주…….”
쪼로로로로록!
강진호가 세차게 콜라를 빨다가 빨대를 입에 문 채 고개를 돌렸다.
“음?”
“……마저 드십시오.”
“괜찮아. 말해.”
윌리가 낮게 헛기침을 했다.
“이번 방문에서 저희가 회주님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윌리는 무인이 아니다.
패배했다고 해서 깔끔하게 물러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저희는 어떻게든 한국, 아니, 총회와 좋은 관계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저희가 무엇을 해드려야 회주님께서 만족하실지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관철하겠습니다.”
강진호의 눈에 흥미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