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53
#1452.
복귀하다 (2)
“끄으으으.”
위긴스가 완전히 탈진한 얼굴로 늘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강진호가 답지 않게 안쓰러운 얼굴을 했다.
“괜찮은가?”
“…….”
위긴스의 고개가 천천히 강진호 쪽으로 꺾였다.
여기에 음산한 BGM만 깔면 바로 호러 영화의 한 장면으로 써먹어도 될 정도로 괴기스러운 동작이었다.
“괜찮냐고 하셨습니까?”
“…….”
“수치…… 수치스러운, 수치…….”
위긴스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밤새도록 사랑에 빠진 십 대 소녀의 대사를 감정을 담아 외쳐야 했던 그에게 멘탈이 남아 있는 게 더 이상했다.
“내가 살다 살다…….”
강진호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뭔가 노인 학대를 한 기분이다.
육체적으로 괴롭힌 건 아니지만, 위긴스는 차라리 육체적으로 학대를 당하는 게 낫다고 외칠 게 분명하니 별 의미가 없다.
“고생 많았어.”
“…….”
위긴스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강진호를 바라봤다. 그 번들거리는 눈을 본 강진호가 살짝 시선을 내리깔았다.
위긴스가 저런 눈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은 죄가 있기에 강진호도 딱히 별말을 하지 못했다.
“오디션은 꼭 붙었으면 좋겠습니다.”
“…….”
“아니면 제가 회사의 매출을 위해서 한 일이! 모조리 허사가 될테니까요.”
한마디,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이 가는 소리가 추임새처럼 들려온다.
강진호가 어색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딱히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예?”
“……아닙니다.”
빠득빠득 이를 갈아붙이는 위긴스를 보고 있으려니, 한동안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위긴스가 영 못마땅하다는 얼굴을 하다가 고개를 내저어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보다…….”
위긴스의 눈빛이 다시 진지해졌다.
“어쩔 생각이십니까, 로드?”
“뭘?”
“저들의 제안을 받을 생각이십니까?”
“흠.”
강진호가 소파에 등을 기댄다.
“딱히 받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나?”
“저들은 미국입니다. 강국은 강국만의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저들은 분명 우리를 이용하려 들 겁니다. 지금은 쓸개까지 빼 줄 듯이 굴지만, 우리의 효용 가치가 떨어진다면 즉각 손절하거나 입장을 바꿀 게 분명합니다.”
“그러겠지.”
“그러니…….”
“그런데 말이야.”
“예?”
살짝 톤이 올라간 목소리다. 위긴스가 의아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건 다 마찬가지 아닌가?”
“…….”
강진호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애초에 거래라는 건 그런 거지. 그럼 우리는 뭐 그리 대단한 의리가 있어서 그들과 거래를 하는 건 아니잖아. 원탁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부터 원탁과의 거래를 다시 생각해 보겠지.”
“음…….”
“아니면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손해를 계속 감수할 생각인가?”
“그건 아닙니다. 로드의 말씀이 맞습니다. 다만, 제가 저들을 경계하는 것은 저들은 애초에 우리를 이용할 생각이라는 겁니다.”
“그것도 마찬가지잖아. 우리 역시 저들을 이용하는 거지.”
“로드.”
위긴스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은 미국입니다. 잇속을 빼 먹는 데는 세계 최고의 국가입니다. 저들과 우리가 같은 의도로 움직인다면, 결국 손해를 보는 쪽은 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위긴스의 말에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소한 손해 같은 건 상관없다.”
“으음.”
“위긴스,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아. 항상 이득만 보고 살 수는 없지. 오로지 이득만 보겠다고 생각한다면, 할 수 있는 것은 한 없이 줄어드는 법이야.”
“…….”
“때로는 손해를 안고서라도 나아가야 할 때가 있다. 그뿐이야.”
위긴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호는 강진호 나름의 생각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지금은 그거면 충분하다.
“로드, 하나 여쭈겠습니다.”
“얼마든지.”
“로드께서 저들을 교육한다면, 저들의 수준이 얼마까지 올라올 것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강진호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생각에 잠긴 것이다.
“반년 정도면 쓸모 있는 수준은 되지 않을까?”
“그럼 시간이 흐르면 더 강해지겠군요.”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무리야. 기초가 없어. 아무리 수련한다고 해도 마교도 정도가 한계겠지. 문제는 마교도는 다음 세대에 더 강해지겠지만, 저들은 자신의 한계를 이미 그어버렸다는 거지.”
“으음.”
이건 위긴스도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다.
‘로드와 내 생각이 일치한다면 더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
강진호의 앞에서 꺼내지는 않았지만, 위긴스가 미국을 경계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 때문이 아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인력과 자본력은 어마어마하다. 지금이야 방향을 잘못 잡았다지만, 강진호가 그들의 방향을 잡아주게 된다면 먼 미래에는 총회의 강력한 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다.
“로드, 저는…….”
“난 그렇게 먼 미래를 보고 살지는 않아. 중요한 건 지금 당장 도움이 되는가 정도겠지.”
“그건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저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야. 이번 거래로 진짜 우리가 얻게 되는 건 다름 아닌 정보지.”
위긴스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아…….’
그 부분은 위긴스조차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정보.”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에 중국과 한국 정부를 상대하면서 느끼지 않았나. 저들은 우리를 손바닥 안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지. 하지만 우리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해. 이건 불공평하지.”
게임으로 따지자면 중국만 맵핵을 켜고 게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중국 정부와 동맹을 맺으면서 일단은 감시를 차단하기는 했지만…….
‘알 수 없지.’
동맹이 파기되는 순간, 감시가 다시 작동할 것이 분명하다. 아니, 그 이전에 저들이 정말 강진호들에 대한 감시를 그만두었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혈마를 이용해 정보를 빼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혈마가 이곳으로 넘어왔다는 게 확인되는 순간, 저들 역시 혈마를 경계할 테니까.”
“확실히 그렇습니다.”
“아마 머지않아 중국 정부군과 맺은 동맹은 흐지부지되겠지.”
“면피용으로 맺은 동맹에 불과하니까요.”
“그리고 미국은 우리가 그들과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그 동맹이 면피용이라는 것도 이미 파악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일이지.”
너무 담담하게 말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뿐.
총회와 중국의 움직임을 한눈에 들여다보는 것은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총회의 정보력은 미미하기 짝이 없죠.”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총회는 기본적으로 해외에 눈을 돌리지 않았으니까. 내부도 정리하지 못한 이들이 해외로 돌릴 여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중국과 얽히기 시작하면서 이현수와 위긴스가 중국 쪽으로 정보력을 확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 단계였다.
그렇기에 총회는 두 곳에서 정보를 보충한다.
하나는 원탁이고, 다른 하나는 국정원이다.
문제는 이 두 곳이 다 지금 정상이 아니라는 점.
원탁은 마스터가 체계를 뒤엎으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상황에 집중하느라 해외에 대한 파견을 줄이고, 내부에 집중하는 단계다. 당연히 정보력이 급감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원탁이 가진 정보력은 세계적으로 넓게 퍼져 있을 뿐, 중국을 완전히 파악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그런 곳이 있던 정보력마저 줄여 버렸으니, 지금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국정원 역시 마찬가지다.
국정원장이 구속되면서 국정원은 완전 파탄이 나버렸다. 대외적으로 국정원장의 구속이 알려진 이상, 체제 개편과 감사는 필수적이다.
덕분에 지금 국정원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게다가 총회와 국정원의 관계가 워낙 경색되다 보니 저들에게 정보를 요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다시 말해 지금 총회는 눈뜬장님이나 다름없다는 소리다.
“지금 제대로 된 정보가 나오는 곳은 두 곳뿐이야.”
“하나는 중국, 다른 하나는 미국이군요.”
“그렇지.”
“흐으음.”
위긴스가 턱을 쓸어내렸다.
‘합리적이군.’
정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미국과의 동맹은 더없는 이득이 될 수 있다.
굳이 시대를 논하지 않더라도, 전쟁에서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를 사람이 있겠는가. 더구나 총회는 이미 중국과의 정보 격차로 개고생을 했다.
몸으로 겪고도 알지 못한다면 패배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로드. 저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로드의 혜안을 미처 짐작하지 못한 점 용서해 주십시오.”
“복잡했을 테니, 그럴 수도 있지.”
강진호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그저 타국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위긴스는 미국을 그리 볼 수가 없다. 미국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하면 저들이 그 조건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십니까?”
“받겠지. 그들도 잃을 것이 없으니까. 미국의 정보를 내놓으라면 받을 이유가 없겠지만, 자신들이 적이라 생각하는 중국의 정보를 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가 중국과 소모전을 벌인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테니까.”
“이이제이를 노릴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그 정도의 관계니까.”
강진호의 말에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줘도 이득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런 걸 신경 쓰면 아무것도 못하게 되지. 그리고 어차피 별 상관은 없어. 지금의 저들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미국이 생각이 있다면 지금 당장은 우리가 중국과 전쟁을 벌이는 걸 막으려 들겠군요.”
“그렇겠지.”
“흐음.”
위긴스가 볼을 톡톡, 두드렸다.
대충 상황은 정리가 되었지만, 뭔가 명쾌하지 않은 느낌이다. 워낙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런 위긴스의 기분을 이해했는지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단순하게 생각해.”
“예?”
“관계니 거래니, 그런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지. 중요한 것은 결국 누가 더 강한가야.”
“…….”
“이들이 내 발목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입꼬리를 말아 올린 강진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위긴스는 자신의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렇군.’
강진호와 위긴스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
위긴스의 세상은 수많은 이해관계들이 얽혀 돌아가는 곳이지만, 강진호의 세상은 그저 단순한 약육강식의 세계다.
강한 자는 짓밟고, 약한 자는 빼앗긴다.
그리고…….
적어도 그 세계에서 강진호는 강자였다. 저 미국보다 더.
“동맹은 진행하는 게 좋겠습니다.”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로드의 방식대로.”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이제는 대충 미국행도 마무리가 되어간다.
생각보다 일이 커지기는 했지만, 나름 얻는 것이 있는 여행이었다.
‘이제 정리만 하면 되는군.’
저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생각이 있다면 이제 와 물러서지는 않겠지.’
“그럼 이제…….”
“아아, 저들의 연락…….”
“오디션만 합격하면 되는군요.”
“…….”
강진호의 시선이 위긴스에게로 향했다.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한 위긴스의 얼굴을 본 강진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래가겠네.’
은근히 뒤끝이 있는 위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