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59
#1458.
시험하다 (3)
윌리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상황이 어찌 되었는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최근 경찰들의 유색인종에 대한 불합리한 대응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자국민 중심주의와 패권주의가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다.
물론 군인인 윌리가 정책의 방향을 왈가왈부할 건 아니다. 문제는 그 일련의 영향으로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이들이 슬금슬금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점이다.
‘저 빌어먹을 놈이!’
그가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경찰을 노려보았다.
전형적인 백인 경찰.
이가 갈린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달려가 저놈의 주둥아리에 도넛을 쑤셔 박아버리고 싶다.
하지만 강진호가 저리 버티고 있는데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너는 조금 있다 보자, 빌어먹을 놈.’
일단은 어떻게든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회주님, 이 일은…….”
그때였다.
그의 옆에 있던 이현수가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꾹 찌른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현수의 얼굴에 다급함이 떠올라 있다.
‘어엇?’
심지어 H27에서도 보여주지 않은 얼굴이다. 강진호가 천 명과 대적할 상황에서도 이현수는 담담했다. 그런데 지금 이현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다.
그 얼굴을 보고 나자 윌리의 뇌리에 강진호의 보고서에 적혀 있던 한 글귀가 떠올랐다.
자신보다 주변 문제에 민감함. 주변인들을 과하게 중요히 여기는 타입.
윌리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아차!’
놓쳤다.
그 보고서의 정보를 신뢰할 수 있다면, 지금 강진호는 자신이 무시받거나 불이익을 받은 것 이상으로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런 강진호의 앞에서 빤한 말을 늘어놨다가는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 그가 들인 공이 이 작은 사건 하나로 모두 날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자 눈앞이 깜깜해지는 느낌이었다.
“어…….”
뭔가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운을 떼기는 했지만,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정신 차려!’
입술을 질끈 깨문 윌리가 고개를 들었다. 이럴 때는 어설픈 수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차라리 정공법으로 나가는 게 나을 것이다.
윌리가 강진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일단 죄송합니다, 회주님.”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누구한테 사과하는 건지 모르겠군.”
“아…….”
윌리는 자신의 실수를 알아챘다. 그러고는 재빨리 몸의 방향을 튼다.
“죄송합니다, 최연하 씨.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저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쪽이 뭔데 저한테 사과하죠?”
저지른 사람은 여전히 저러고 있는데, 왜 윌리가 대신 사과하냐는 뜻이었다.
‘그러니까요.’
윌리가 나직하게 이를 갈았다.
이 상황만 모면한다면 저 경찰 놈을 갈아서 소시지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생각을 하며 윌리가 입을 열었다.
“당사자를 사과하게 만드는 것도 분명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겨우 그 정도로 끝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방으로 올라가 계시면 제가 곧 책임자들을 모두 이끌고 찾아뵙겠습니다.”
“책임자요?”
“최소한 청장은 나와야죠.”
윌리가 낮게 숨을 내뿜었다.
“관련된 이들은 다 갈아버리겠습니다. 그러니 노여움을 풀어주십시오.”
“흐음.”
윌리의 대처가 마음에 든다는 듯 최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럼 그렇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윌리가 고개를 돌려 강진호의 눈치를 살폈다. 최연하가 괜찮다고 했으니 진행해도 되겠냐는 의미다.
강진호가 입에 문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
“후우우우.”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가라앉은 눈으로 윌리를 바라봤다.
“기대하지.”
“…….”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 건지 말이야.”
지금까지 본 강진호와는 너무도 다른 표정과 분위기에 윌리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내 선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상부로 연락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그럼 괜찮지. 내가 그런 일로 멘탈이라도 나갈까 봐 그래요?”
강진호가 최연하를 가만히 살폈다.
억지로 센 척하는 게 아니다. 지금 최연하는 정말 별다른 동요가 없어 보인다. 그녀의 기운은 강진호의 생각 이상으로 안정되어 있다.
“일단 돌려보내지그랬어요. 그러다 유치장에라도 끌려가면 어떻게 하려고.”
“강진호 씨가 와서 풀어주겠지.”
“…….”
어, 그렇지. 그렇긴 하지.
“못 풀어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럼 벽이라도 뚫고 데려가겠지.”
“…….”
어…… 그것도 그렇지.
강진호의 얼떨떨한 표정을 본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농담이에요. 내가 설마 강진호 씨한테 그런 것까지 바랄까 봐. 한다고 해도 내가 말렸을 거예요.”
최연하를 빤히 보던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요. 빡치니까 그냥 지른 거지.”
“…….”
“어떻게 그런 일 하나하나마다 뒷일을 생각하며 살아요? 나는 그렇게 못 살아.”
당당하다.
화끈하다.
하지만 이게 좋은 게 아닐 텐데…….
최연하가 어깨를 쭉 펴며 말했다.
“나는 콩밥 먹으면 콩밥 먹었지, 저런 말 듣고 그냥은 못 넘어가요. 그런데 뭐? 내가 돈을 주고 합의를 하라고? 내가 뒈지면 뒈졌지, 그 꼴을 어떻게 봐요!”
확실히 그건 맞는 말이다.
“여하튼 일 키워서 미안한데, 이건 어쩔 수가 없어요. 아, 생각하니 더 짜증 나네. 그냥 힐로 대가리를 찍어버렸어야 하는 건데!”
“……그러다 총 맞아요.”
“쯧.”
최연하가 혀를 차자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강진호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움직일지 모르지만, 강진호가 아는 최연하는 그런 걸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최소한 강진호에게 전화라도 했겠지.
그럼 정말로 뒷일 생각 안 하고 질러 버렸다는 건데…….
그게 참 뭐랄까…….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답이 없다면 또 답이 없고.
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어쩌겠는가, 그게 최연하라는 사람인데.
“여하튼 늦어서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자꾸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그런 말 하니까 내가 강진호 씨가 올 줄 알고 사고 친 것 같잖아요. ‘우리 아빠 온다’도 아니고.”
“아니, 아무도 그런 생각은 안 할 겁니다.”
“왜요?”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뭐요?”
“아닙니다.”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서…….”
강진호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호텔방의 입구 쪽에 나란히 서 있는 세 사람을 본 강진호가 얼굴을 굳혔다.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로니 맥케인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빌어먹을, 나더러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라고!’
로스앤젤레스 경찰국(LAPD)의 경찰청장인 그가 일개 사건 때문에 해명을 하러 나오는 일이 발생할 줄은 몰랐다.
펜타곤?
그곳에서 협조 요청이 왔다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펜타곤은 협조의 대상이지, 명령을 받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연락을 받은 곳은 펜타곤이 아니다. 시장이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 일을 지시했다.
맹세코 로니 맥케인은 시장이 그렇게 발악하는 모습을 난생처음 보았다. 평소 온화하기 짝이 없던 사람이 자기 집 침대에서 낯선 남자가 와이프와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전화기를 부술 기세로 욕을 퍼부어 댔다.
그것만이면 다행이지.
시장이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주지사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제야 로니는 시장이 얼마나 온화한 사람인지 새삼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주지사가 쏟아낸 욕설에 비하면 시장이 한 말은 교과서에 실어도 될 수준이다. 로니는 살면서 그렇게 다채롭고 감정이 실린 욕은 처음 들어봤다.
이 일만 잘 마무리된다면 래퍼로 데뷔하는 것을 권해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여하튼.
상급자로부터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격렬한 전화를 받은 로니는 지금 반쯤 정신이 나가 버린 상황이었다.
‘이 사람들이 대체 뭐 하는 이들이기에…….’
웬만한 나라의 수상급이 모욕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직속상관들이 줄줄이 전화를 걸어 쌍욕을 퍼붓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그 각국의 수상 이상의 영향력이 있을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건데…….
‘그런 사람한테 성희롱을 했다고?’
그냥 뒈지지.
총은 뭐 하러 들고 다니나, 이럴 때 입에 넣고 쏘라고 들고 다니는 게 총이 아닌가! 빌어먹을, 왜 뒈지지도 않고 살아서 그 책임을 떠넘기냔 말이다!
윌리와 레이놀드의 시선을 받은 로니가 다시 한 번 마른침을 삼켰다.
어쨌든 그는 이 경찰국의 청장.
아래에서 벌어진 모든 일은 그가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그의 선에서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더 위로 올라가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시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의 목을 날려 버리고 옥수수 농사를 권할 것이다.
죽여서 묻어버리기 좋게.
손을 들어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낸 로니가 달달거리는 걸음으로 앞으로 나섰다.
“먼저…….”
제발 혀가 매끄럽게 돌아가기를 빌면서 로니가 입을 열었다.
“이 모든 사태에 대해 책임자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소속 경찰을 관리하지 못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이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분께…….”
“방송에 나와서 사과문이라도 읽을 셈인가?”
“…….”
“누가 써준 대본이라도 읽고 있는 것 같군. 빤한 소리 지껄이지 말고 할 말만 하지.”
로니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레이놀드와 윌리가 다급하게 눈짓을 한다.
‘빌어먹을, 나더러 대체 뭘 어떻게 하라고?’
니들이야 저 사람이 누군지라도 알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대체 무슨 사과를 하란 말인가.
누군지 물어봐도 네가 알 것 없다고 대답하는 놈들이 책임은 이쪽으로 다 미루고 눈짓만 하는 걸 보니, 속이 타다 못해 뒤집어지는 느낌이었다.
“우, 우선…….”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그의 일인데.
“해당 경찰관은 면직될 것입니다. 이미 그에게서 공정하지 못한 수사를 했다는 자백을 받았습니다.”
“면직?”
“……물론 면직 선에서 끝낼 생각은 아닙니다. LAPD의 명예를 훼손하고 피해를 준 이상, 관련된 모든 부분에 소송을 걸어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흠.”
강진호가 턱을 굈다.
“그러고는?”
“교육 책임자를 비롯해 그 경관의 직속상관들도 모조리 면직되거나 징계를 받을 겁니다. 그리고 이 일을 바탕으로 경찰국 전체에 관련 교육을 실시할 생각입니다.”
강진호가 영 마뜩찮다는 얼굴로 청장을 바라봤다.
“이, 이게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이 이상 문제를 키운다면 저희도 왜 저희가 이런 일을 했는지 공표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누가 이 일에 관련되었는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진호의 이름을 언급하고 싶지 않으니 이 정도에서 만족해 달라는 소리였다.
강진호가 빤히 청장을 바라볼 때, 최연하가 입을 열었다.
“뭐래요?”
강진호가 들은 것을 설명해 주자 최연하가 눈을 찌푸렸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네?”
“다 됐고, 내가 그 새끼 죽빵 한 번만 갈기면 안 돼요? 아니, 내가 치면 안 아플 테니까, 진호 씨가 한 대만 쳐주세요. 네?”
“…….”
그러면 죽는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