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63
#1462.
돌입하다 (2)
“이게 뭐 하는 짓거린지 모르겠군.”
레지 머서가 황량한 사막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군인들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어린아이 소꿉장난도 아니고.”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지금 이 일이 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일단은 이 일이 극비라는 것부터가 기이하다.
극비라니.
이만한 병력을 동원해 놓고 보안 유지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무려 2개 사단이라고.’
아무리 보병이 아니라 기계화 사단이라 사람의 수는 생각 이상으로 적다고 하지만, 그래도 2개 사단이다.
심지어 이 일에는 원래 2개 사단이 아니라 군단이 통째로 동원되려 했다는 말이 있었다. 군단장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지만.
‘그럴 리가 있나.’
이게 무슨 2차 세계대전도 아니고, 미군 1개 군단이 통째로 동원되는 작전이라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 정도의 전력이라면 유럽도 털어 먹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레지 머서였다. 특히나 그 군단이 제3군단, 그러니까 기계화 군단이라면 전 세계 어느 국가도 감히 대적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아니.
거기까지도 필요 없지.
지금 여기에 있는 전력만 가지고도 웬만한 국가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점령할 수 있다.
이건 절대 오만이 아니다.
평범한 이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군의 전력에 대한 지식이 약간만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레지의 생각이 절대 허무맹랑한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단장님.”
“음.”
작전장교가 그에게 다가와 짧게 경례를 붙였다.
“2기갑여단과 3기갑여단의 배치를 완료했습니다.”
“수고했다.”
레지가 슬쩍 대열을 갖춘 전차들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대체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군. 저 팔자 좋은 양반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들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그들의 눈에 낮은 구릉이 보였다. 사방이 볼록하게 솟아 있는 저 구릉은 모래언덕 같은 게 아니다.
특수 콘크리트로 만든 임시 벙커다.
물론 제대로 두께 기준을 지켜 만들어낸 벙커에 비한다면 그 방호력은 보잘것없는 수준이지만, 없는 것보다 백배는 낫다. 일단 웬만한 건물의 방어력은 깔끔하게 넘어서니까.
그리고 저 벙커의 안에 필 버튼이 틀어박혀 있다. 벙커가 완성되자마자 필 버튼은 벙커 안에 틀어박혀 단 한 걸음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겁쟁이 같으니.’
작전장교 역시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저리 겁이 많으면서 무슨 일을 하겠다고 굳이 여기까지 온 건지 모르겠습니다. 대충 모형이나 마네킹 하나 세워둔다고 해도 딱히 달라질 건 없을 텐데 말입니다.”
레지가 피식 웃고 말았다.
“꼭 그리 생각할 건 아니지. 나는 저 자세를 높이 평가하네.”
“……그렇습니까?”
“벌벌 떨면서도 자신이 이 작전에 참가했다는 업적 하나는 남기고 싶다는 거지. 두려움을 초월하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라니, 굉장하지 않은가.”
“비꼬시는 건지, 감탄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확하게 둘 다라고 해두지.”
말 그대로였다.
굳이 이곳으로 와 어떻게든 할 말을 하나 더 만들어내는 그 집념에는 감탄을 보내고 싶지만, 그 집념의 원동력은 비꼬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장에서 큰 이와 지휘부에서 큰 이의 차이겠지만.
“사단장님, 저는 이 임무에 대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적도 불분명하고, 목적도 불분명하지 않습니까?”
“임무가 뭐라고 했지?”
“소수의 특수부대를 통한 요인 암살에 대한 방어입니다.”
“빤히 알면서 불분명하다니, 자세가 안 되어 있구만, 대령.”
작전장교가 눈을 찌푸렸다.
“애초에 이 임무 자체가 말이 안 되잖습니까. 소수의 특수부대를 통한 암살을 방어하는 데 사단이 동원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임무에 대한 의문은 언제나 환영하지. 그런 자세가 군을 더 발전시킬 수 있으니까. 하지만 대령,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줄 수 없는 게 유감이로군. 나 역시 지금 이 빌어먹을 임무에 대해 명확한 해석을 하지 못했으니 말일세.”
“윗대가리들이란…….”
“자네가 말한 윗대가리에 나도 포함된다는 걸 잊지 말도록. 정면에서 비꼼을 당하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이지.”
“제가 설마 사단장님을 비꼬겠습니까?”
레지가 가볍게 웃었다.
이만한 전력이 한 곳에 동원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실탄을 장전하고 실전을 치르기 위해서 이만한 병력이 동원되는 건 근 20년 내에는 없던 일이다.
하지만 레지는 딱히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
어설프게 운용을 하다가 자체적으로 사고가 나는 경우면 모를까, 이만한 병력을 상대로 소수의 특수부대가 위협이 될 리 없다.
‘정신 나간 짓이지.’
훈련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상황일 때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 살 먹은 어린아이에게 물어도 이 훈련이 가정하고 있는 상황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대답하지 않을까?
“혹시 모르지.”
레지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들이 살아남을 방법을 마련하는 훈련일지도.”
“그럴 거면 백악관 지하 벙커에나 처박혀 있는 게 나을 텐데요.”
“나도 그걸 권하고 싶네.”
필 버튼에 대한 악감정이 클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일선 지휘관들이란 군사 전문가가 아닌 이들이 군의 운용에 개입하는 것에 극도로 거부감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좋은 말이 나올 수 없다.
“서둘러 배치나 마무리하게. 훈련이야 간단하게 끝난다고 해도 병력들을 부대로 되돌리는 데만 하루 이상 걸릴 테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지휘를 위해 달려가는 작전장교를 보며 레지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별 병신 같은 짓거리를 다 보겠군.’
실전과 같은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라고?
‘원하는 대로 해주지.’
이 말도 안 되는 짓을 받아들인 놈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띄는 그 순간 곤죽을 만들어 버릴 셈이었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멍청한 짓거리를 하지 않겠지.
“나를 원망하지 말라고.”
멍청한 짓은 저놈들이 한 거니까.
레지가 슬쩍 고개를 돌려 벙커를 바라보았다.
쇠 컵에 담긴 커피에서 부드러운 향이 풍긴다.
“꽤 좋은 원두인 모양이군요.”
“마시던 게 있어서 가지고 왔지. 여기서는 제맛을 내기 쉽지 않지만 말이야.”
육군전력사령부 제3군단의 군단장인 프랭크 윌슨 중장이 미묘한 시선으로 필 버튼을 바라보았다.
‘여유가 넘치시는군.’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벙커 안에서 보이는 모습을 보면 세상 여유가 넘치는 사람인데, 하는 짓은 조심스럽기 짝이 없다.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벙커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있다. 심지어 화장실조차 벙커 한쪽에 어설프게 마련되어 있는 공간에서 대충 처리할 정도였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건 이런 이들이겠지.’
본인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든 절대 변수를 만들지 않는다.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오물 더미에 잠수해 빨대로 숨을 쉬는 것조차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군, 중장.”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소중한 제 부하들을 이런 광대놀음에 동참시키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예산의 확충을 약속하시지 않았다면, 저는 이 훈련을 거부했을 겁니다.”
“여전히 훈련이라는 말랑말랑한 단어를 쓰는군. 잊지 말게, 중장. 이건 훈련이 아닐세. 실전이지.”
“…….”
차관이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는 말을 이었다.
“자네가 듣기에는 그리 즐거운 말이 아니겠지만, 목숨을 보장받은 것은 나뿐일세. 자네들은 언제든 목이 달아날 수 있다는 뜻이지.”
프랭크 윌슨이 피식 웃었다.
“슈퍼맨이라도 온답니까?”
“농담이 아니야.”
차관이 굳은 눈으로 말했다.
“승리 자체에는 의미가 없네. 나는 이 헛짓거리에서 단 한 명의 희생도 발생하지 않기를 원하네. 그건 더없는 국가적 손실이자 개죽음이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프랭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지금 일선 지휘관들은 이 말도 안 되는 훈련을 진행하는 것에 굉장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프랭크가 보기에 이 훈련에 가장 큰 불만을 가진 사람은 다름 아닌 필 차관이었다.
“그렇게 이 훈련을 마뜩찮아 하시면서 왜 굳이 이런 훈련을 진행하시는 겁니까?”
“빤하지 않은가.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기 위해서지. 세상에는 직접 그 머리에다 때려 박아주지 않으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얼간이들이 존재하거든.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큰 착각 중 하나가 지위가 높은 이들은 냉정할 거라고 믿는 거지. 실제로는 그렇지 않네.”
필이 어깨를 으쓱했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안다고 현명해지는 건 아니야. 지식은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는 데 소모될 뿐이지. 결국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멍청이가 되어버리지.”
프랭크가 살짝 비꼬듯 말했다.
“그 멍청이에 자신은 절대 포함되지 않는다고 믿으십니까?”
“글쎄, 모르겠군. 나 역시 머리가 굳은 평범한 꼰대일 수도 있지. 아마 오늘 그게 밝혀지지 않겠는가?”
프랭크가 고개를 내저었다.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생각이 많은 건 좋지 않네, 중장. 자네는 군인이지. 군인의 사명은 명령에 따르는 것 아닌가. 오로지 다가올 적을 막아내는 것에만 집중하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누구라도 이곳까지 올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배치를 완료한 이상, 제가 할 건 더 이상 없습니다. 힘을 내줘야 하는 건 일선에 있는 지휘관들이죠. 차관님이야말로 윗사람이 모든 것을 제어한다는 착각을 버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신랄한 비판이로군. 수용하지.”
‘능글맞기는.’
아무리 비꼬고 찔러도 돌아오는 것이 없다. 이래서 정치인들은 상대하기가 힘들다.
“군단장님, 모든 부대의 배치가 완료되었다는 보고입니다.”
“각자 자리를 지키도록.”
“예!”
부관이 경례를 붙이고 벙커 밖으로 나가자 프랭크가 필 차관을 돌아보았다.
“배치 완료됐습니다.”
“음.”
필이 살짝 찝찝한 얼굴로 자신의 휴대폰을 바라봤다.
“딱히 겁이 나는 건 아니지만, 이런 건 역시 긴장되는군.”
휴대폰으로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를 보낸 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이건 쇼에 불과하지.’
동원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군단 전체를 동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래서야 면이 서지 않는다. 고작 몇몇을 막기 위해서 군단 전체를 동원해야 한다는 게 저들의 유용성을 역으로 증명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
그러니 동원해야 할 것은 한 개 사단.
이 정도면 충분하다.
굳이 예비 사단까지 불러들인 것은 완벽을 추구하는 필의 성향 때문이다. 남들은 겁을 집어먹었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자, 그럼 저들이 호언장담하는 동양 놈들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구경해 볼까?”
필의 시선이 벙커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로 향했다.
“너무 싱겁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이 많은 이들을 배치하는 데 들어간 노력이 아깝지 않게.
필이 나직한 미소를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