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65
#1464.
돌입하다 (4)
“저기 보이는 것 같습니다만?”
레지가 눈을 찌푸리고는 망원경을 들어 부관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뭔가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저게 단가?’
거리 때문에 명확하게 확인이 되지 않는다. 영상을 확보하면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겠지만, 일단 눈으로 들어온 것만 보건대, 절대 다수는 아니다.
많아봐야 30명 이내.
30명이라는 숫자는 기준에 따라서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지만, 레지의 사단을 상대하기에 결코 많지 않은 숫자라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라도 동의할 것이다.
“농담이 아닌 모양이로군.”
레지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웬만하면 좋게 받아들이고 싶지만, 가면 갈수록 가관이다. 이쯤 되면 저들이 작당을 하고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민간인일 확률은?”
“주변이 완전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다만, 워낙 인적이 드문 사막이라 민간인이 들어오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이 있으니 확인해 보겠습니다.”
레지가 미간을 좁혔다.
차라리 그쪽이 현실성이 있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
“선공…… 으음, 아니지.”
레지가 고개를 저었다.
눈에 빤히 보이는 곳이라면 포격으로 날려 버리는 것에 문제가 없다. 그럼 깔끔하게 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훈련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레지는 군인. 정체불명의 적에게 선공을 가한다는 것은 미묘하게 거슬리는 일이다. 기본적으로 교전 수칙에 어긋나기도 하고.
“일단은 대기한다.”
“포격이 가능합니다.”
“대기해!”
“예!”
부관이 물러서자 레지가 살짝 눈을 좁혔다.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당장 포격을 가해 날려 버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군인은 냉정해야 하는 법. 다른 무엇보다 상부에서는 그런 결과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제대로 된 전투와 확실한 데이터.
자주포 역시 그들의 전력임이 분명하지만, 싱거운 결과를 낳는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차라리 근거리에서 확실…….
“으음?”
순간, 레지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무 거리가 멀어 작은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들이 갑자기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빛이라고?’
레지가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곳은 사막.
작열하는 태양이 사람을 괴롭히는 사막이다. 이 사막에서 저만한 빛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건 괴이한 일이다.
‘저게 대체 뭐지?’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더 큰 의문으로 대체되었으니까.
작열하던 빛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허공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기이한 문양이 그려졌다.
“……타국에서 개발한 신무기라도 되는 건가?”
레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응전합니까?”
“빌어먹을, 포탄이라도 맞았나? 발포하고 나서 뭐라고 할 셈이지? 저 새끼들이 빛을 뿜어내고 허공에다 낙서를 해서 자주포로 날려 버렸다고 할까?”
“……죄송합니다.”
레지가 짜증을 억누르며 허공에 그려지는 문양을 노려보았다.
‘뭔가 해봐라.’
바로 날려 버릴 테니까.
그 순간이었다.
허공에 그려진 문양이 천천히 아래로 하강하더니, 땅에 스며들었다. 레지는 그 기이한 조화를 멍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스며들어?’
그걸로 끝이었다.
잠잠해진다.
“대체 뭘…….”
그런 후,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걸 알기까지는 결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우우우웅.
“음?”
낮은 진동 소리가 들린다.
마치 벌 떼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거슬리는 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파고든다.
“무슨 소리지?”
이내 레지는 깨달았다.
지금 이 소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흔들린다?’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아까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싶더니, 몸 전체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바닥을 바라보니 자갈들이 덜덜 떨리면서 조금씩 이동하는 게 보인다.
“지진?”
그리고 그건 갑자기 찾아왔다.
콰르르르르르릉!
대지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잔 떨림이 점점 커지더니, 이내 확연히 느낄 만한 진동이 되었고,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몸을 가누기도 힘든 커다란 흔들림이 되어 진지를 뒤덮었다.
“뭐, 뭐야!”
“지진이다!”
“침착해! 침착하라고! 자리를 지켜!”
하지만 부질없는 외침일 뿐이었다.
진동은 이내 지진이 되어 그들을 덮쳤다.
“으아아아아!”
레지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서서 버티려고 했지만, 그럴 수 있는 진동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쉐이커 병에 가둬진 채 마구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가 다시 붙기를 반복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레지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자세를 낮춰! 당장! 뭐라도 붙들어!”
그 고함이 먹혔는지, 아니면 본능적으로 살아날 방법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는 이들은 모조리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빌어먹을!’
갑자기 웬 지진이란 말인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흔들린다. 그가 흔들리고 있는 건지, 아니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 흔들리고 있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다.
당연히 둘 다겠지. 제기랄!
입술을 질끈 깨문 레지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지진을 정통으로 얻어맞았다고는 하지만, 무너질 게 없는 이 사막에서는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좁은 전자 내부에 타고 있던 이들이 부딪쳐 부상을 입는 정도겠지.
그러니 잘 정비를 해내면…….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마치 뭔가 폭발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포격?’
아니다.
비슷하지만 달랐다. 이건 터지는 소리와는 다르다. 차라리 끊어지는 소리에 조금 더…….
‘끊어진다고?’
의문이 들었다.
끊어지다니, 대체 뭐가…….
그리고 그 의문은 금세 풀리고 말았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형태로 말이다.
쿠르르르르르릉!
바닥이 뒤틀린다.
흔들리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뒤틀리고 있었다.
쩌적, 소리와 함께 마른 사막의 바닥에 기다란 금이 가기 시작한다.
‘서, 설마?’
레지의 눈에 핏발이 섰다.
“빌어먹을! 꽉 잡아아아아아아!”
갈라진 바닥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곳곳이 솟아오르고, 또 내려앉았다.
“으아아아아악!”
갈라진 바닥으로 떨어진 이의 처절한 비명이 귀를 파고들었다.
끼이이이이잉!
바닥이 뒤틀리며 포진을 갖추고 있던 전차들이 옆으로 기울고, 심지어 갈라진 바닥 아래로 추락하기까지 한다.
끔찍한 지진.
인간이 만들어낸 화기들은 강력하지만, 자연재해 앞에서는 그저 무력할 뿐이었다. 바닥에 궤도를 붙여야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화포들은 바닥이 무너지는 순간, 그 가치를 잃어버린다.
진형이 완전히 무너졌다.
레지는 바닥에 바짝 엎드린 자세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왜 하필 지금, 그리고 이곳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지진이 벌어진단 말인가.
“사, 사단장님, 대책을! 여기에 있다가는 피해가 커집니다!”
“이탈해야 합니다!”
말은 쉽지!
당장 어디가 더 갈라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제멋대로 솟아오르고 꺼져서 어린아이가 짓밟아놓은 찰흙처럼 되어버린 지형에서 대체 어떻게 이탈하란 말인가.
어설프게 이동을 시도했다가는 피해만 더 커질 뿐이다.
“닥치고 엎드리기나 해!”
레지가 비명과도 같은 고함을 질러 대자, 주변의 부관들도 이를 악물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안전할 상황이 아니다.
쩌적, 쩌저저적.
갈라진다.
바닥에 시커먼 선들이 뻗어온다. 저 선이 갈라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너무도 빤하지 않은가.
레지는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눈으로 그 선들을 바라보았다. 그를 향해 뻗어오는 선들이 마치 사신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전신이 이내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어들었다.
쩌적, 쩌저적.
‘제발!’
천천히 전진해 오던 검은 선이 레지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아…….”
콰드드드득!
하지만 채 안심하기도 전에 바닥에 쩌억, 갈라지더니, 사람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그의 앞에 엎드려 있던 부관이 쩌억 갈라진 틈 사이로 추락한다. 레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도와줄 수가 없다.
바로 앞에서 생때같은 수하들이 죽어 나가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레지를 짓밟았다.
“끅, 끄으윽.”
“아!”
하지만 이내 들려온 신음 소리에 레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윌슨!”
바닥을 기어 갈라진 틈 사이로 다가간 레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 사단장님.”
아래를 바라본 레지의 눈에 의문이 어렸다.
‘얕아?’
갈라지는 기세로 봐서는 바닥도 보이지 않을 무저갱이 자리하고 있을 것 같건만, 실제로 틈의 바닥은 그리 깊지 않았다. 높아봐야 겨우 2, 3미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지진이라는 건 지표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이만한 흔들림이라면 이곳에 절벽이 생겨나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그의 눈에 보이는 깊이는 사람 둘이 설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내 지진이 잦아들었다.
우우우우웅.
커다란 흔들림이 이내 작은 진동으로 변하더니, 결국에는 잔 떨림 수준까지 약해졌다.
레지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
처참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다.
누가 이곳을 사막이라 부르겠는가.
곳곳이 쩌억 갈라져 시커먼 입을 드러내고, 갈라지지 않은 대지도 제멋대로 솟아오르고 푹 꺼져 있다.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건만, 벌써 전쟁을 몇 번은 치른 듯한 모양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대지에 발을 붙이고 있던 이들이 무사할 리가 없었다.
틈으로 빠진 전차, 뒤집혀 버린 자주포. 그리고 솟아오른 대지에 반쯤 걸쳐진 채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전차들까지…….
붕괴.
이건 붕괴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의 뒤에 위치한 벙커에서 머리를 감싸 쥔 필 버튼이 고함을 지르며 나왔다.
하지만 레지가 해줄 만한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세상에…… 주여.”
필의 신음 소리가 지금 레지의 기분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이, 이래서야…….”
필의 눈이 흔들렸다.
이곳에 2개 사단의 화력을 집중했다. 하지만 그 화력은 지금 이 순간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저 뒤집힌 전차들과 연기를 뿜어내는 자주포들이 대체 뭘 할 수 있겠는가.
기본적으로 화포는 대지에 궤도를 붙이고 정확한 표적의 좌표를 인식해야 의미가 있는 물건이다. 하지만 이래서는 좌표를 안다고 해도 사격을 할 수가 없다.
“훈련…… 훈련을 멈춰주십시오, 차관님. 자연재해입니다. 이대로는…….”
“아, 아니야.”
“예?”
레지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것이 보인다.
“재, 재해가 아니야. 이건…….”
재해가 아니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뭔가 지적을 하려던 레지가 입을 다물었다.
‘그 빛.’
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빛무리와 기괴한 문양.
그렇다면 설마 그게?
레지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당연히 조금 전 빛을 뿜어 대던 이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런 후, 레지는 보았다.
멀지 않은 곳.
어느새 훌쩍 가까워진 곳에서 한 남자가 그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