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67
#1466.
농락하다 (1)
콰아아아아아앙!
현대 전차가 발포하는 120㎜포의 포격은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대부분은 발사하는 그 순간 솟아오르는 폭연을 눈으로 볼 뿐이고, 먼 거리를 타격하는 자주포의 경우나 쏘는 순간 먼 하늘을 날아가는 작은 점 같은 포탄을 겨우 포착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건 보통 사람의 경우일 뿐.
강진호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포탄을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재미있군.’
한 번쯤은 더 겪어보고 싶었다.
일전에 북한에서 쏟아지는 포격에 얻어맞았을 때는 워낙에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아무리 강진호라고 하더라도 머리 위에서 가공할 속도로 떨어지는 포격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유형의 공격이었다. 아무리 강진호라고 한들 겪어보지 않은 공격에 항상 최선의 대처를 할 수는 없다.
그것도 기나긴 추격전과 전투로 육체가 극도로 상해 있는 상태라면 더더욱.
하지만 완벽한 컨디션을 되찾은 지금은 날아드는 포탄도 달리 보였다.
강진호가 손을 뻗어 바닥에 꽂아둔 적루와 청루를 회수했다. 그러고는 느긋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휘이이이잉!
그의 바로 옆으로 포탄이 스쳐 지나간다.
평범한 이 같으면 그 풍압만으로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져 나가겠지만, 강진호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현대 병기는 더없이 강하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강진호가 파악한 첫 번째 단점이 바로 이것.
쏘아진 포탄은 방향을 바꾸지 않고 날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포탄의 궤도를 수정할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일반인들 간의 전쟁에서는 얼마나 더 빠르고 강하게 포탄을 날리느냐가 관건일 뿐, 직선적 궤도를 그린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무인을 상대로 할 때는 다르다.
날아오는 포탄을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무인에게는 포탄은 그저 빠르기만 한 단선적인 공격에 지나지 않는다. 겨우 두어 걸음 이동하는 것만으로 공격의 범위에서 깔끔하게 벗어나 버릴 수 있다.
특히나 이런 소수의 포격은 말이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강진호가 지나온 곳에서 땅이 터져 나가며 폭음이 진동한다. 사막의 대지가 부서지며 사방으로 돌과 모래가 비산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딱히 서두를 것 없이 느긋하게 걸어 나갈 뿐이었다.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담배 연기가 폭연과 뒤섞이기 시작한다.
“오폭?”
레지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럴 리가.
한 문 정도는 오폭을 할 수도 있다. 일단 지금 그들은 지진의 여파로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니까. 하지만 세 문이 동시에 오폭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나 그 오폭이 모두 한 곳에 떨어진다는 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피했다고?’
전차의 포격을 보고 피했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레지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도 태연한 태도.
바로 등 뒤로 전차의 포격이 떨어졌음에도 느긋하게 이쪽으로 걸어오는 강진호의 모습이, 이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확신케 한다.
그제야 상대를 인간이라 생각하지 말라던 필의 말을 이해한 레지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레지의 두 눈에 살기가 어렸다.
‘곤죽으로 만들어주지!’
“이차 포격! 바로 이어가! 표적의 생사를 확인하지 않고 화력을 쏟아붓는다!”
“예!”
“다른 포들도 복구되는 대로 포격을 개시해라! 먼지로 만들어 버려!”
“예!”
부관의 우렁찬 대답이 바로 이어진 포격의 굉음에 묻혔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사막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진동은 조금 전의 지진과는 달랐다.
포격과 포격이 이어지며 만들어진 전장의 진동이다. 이 진동을 느낄 때마다 레지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상대를 짓뭉갠다.
‘현대전의 꽃은 역시나 포병이지.’
다른 사단장들이 들으면 반박하려 애쓰겠지만, 어차피 현대전이란 포병과 공군이 박살 내놓은 곳을 보병이 점령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눈치와 혹시 모를 민간인의 피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포병의 가치는 몇 배는 더 올라간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그 가치를 지금 저자도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 그 가치를 실감하는 순간, 산목숨이 아닐 테니까.
레지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주머니에 든 담배를 꾹 잡은 레지가 아쉬운 얼굴로 손을 뗐다. 전투 중에 담배를 피우는 건 금지된 일이다. 영화에서라면 로망이 되겠지만, 실전에서는 군법을 어기는 짓일 뿐.
‘괜히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여줘서 사람 피 말리게 하는군.’
레지가 완전히 여유를 되찾았다.
콰아아아아앙!
쾅! 쾅!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눈앞 전체가 흙먼지로 뒤덮인다. 흙먼지가 너무 자욱하게 일어나 사막의 모래폭풍이라도 보는 것 같다.
저 안에서 살아남는다?
글쎄.
벼락을 열댓 번 맞고도 살아날 정도의 운이라면 포격과 포격의 틈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과 대항할 의지는 완전히 상실한 뒤일 것이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이이이이이!”
레지의 명령에 커다란 복창이 뒤따랐다.
연신 화력을 쏘아내던 전차들이 사격을 멈춘다. 포신에서 새하얀 연기가 담배 연기처럼 치솟아 올랐다.
그 대신에 전차들이 담배를 피워주는 것 같다는 생각에 레지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연기가 걷히기를 기다렸다가 적의 상태를 확인한다.”
“찾을 수 있겠습니까? 먼지 하나 안 남았을 것 같은데요?”
“노력은 해봐야지.”
될 수 있으면 살점이라도 찾아내고 싶다. 단신으로 기계화 사단과 맞서 싸우려 한 이의 무덤을 만들어주고, 신병이 들어올 때마다 방문하게 만들고 싶은 기분이다.
“빌어먹을, 괜히 여기에 와서는.”
이 말도 안 되는 짓거리 때문에 입은 피해가 너무 크다. 하필 이곳에 지진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궤도가 끊어지고 뒤집힌 전차와 자주포들을 정비하려면 시간이 한참…….
“……사령관님?”
“무슨 일인가?”
“저, 저기…….”
“음?”
부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다. 그 얼굴을 본 레지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나서 보았다.
하늘을 뒤덮을 듯 일어나 거대한 먼지구름.
차라리 모래폭풍에 가까운 그 먼지구름 사이로 시커먼 무언가가 보인다.
“…….”
한참을 바라본 끝에야 레지는 그게 사람의 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 소음 가득한 환경에서, 이 거리를 격하고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레지의 귀에는 발자국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이윽고…….
먼지구름 사이를 뚫고 한 사람이 걸어 나온다.
“…….”
헝클어진 머리.
먼지투성이의 몸.
하지만…….
그 몸에는 작은 생채기 하나 나 있지 않았다.
살짝 찡그린 얼굴로 머리의 먼지를 털어낸 자가 손에 든 담배를 입에 물고는 천천히 빨아들인다.
“후우우우우우.”
그런 뒤, 깊숙이 내뱉고는 담배를 바닥에 내던진다.
턱. 턱.
그의 양손이 비정상적으로 긴 장검을 움켜잡았다.
“인사는 잘 받았어.”
선명한 목소리.
어느 나라의 언어인지 알 수 없는 말이지만, 왠지 저 말뜻이 뭔지는 알 것 같다.
레지의 눈에 사내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적.
적임에 분명한 자다.
그런 이가 접근해 오고 있음에도 레지는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비현실적이기 짝이 없는 상황이 그의 냉정함을 앗아간다.
하지만 딱히 실수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가 대응하든 대응하지 못하든, 결과는 같을 테니까.
“그럼 이제 내가 인사할 차례로군.”
양손에 적루와 청루를 든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앞으로 돌진했다.
“쏴, 쏴라!”
순식간에 정신이 돌아온다.
하지만 강진호가 달려드는 속도는 레지가 정신을 차리는 속도보다 더 빨랐다.
쏘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강진호가 돌진하여 선두에 진을 치고 있는 전차를 베어낸다.
파아아아아앗!
‘뭐?’
레지의 눈이 일순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벤다고?’
검으로? 전차를?
저게 말이나 되는 시도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만들어내 전 세계의 비웃음을 받았던 대전차총검술 이후, 냉병기로 전차를 상대한다는 발상은 완전히 사장되었다.
아니, 애초에 냉병기 자체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전장에 동원되지 않는 시대다. 그런데 저 검으로 전차를 베겠다고 달려든다?
미치광이가 아니면…….
그 순간이었다.
카아아아아앙!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한 금속음과 함께 전차의 상부가 허공으로 치솟는다.
레지가 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이건 SF 영화가 아니라고!’
영화 속에서야 광선검으로 기계를 척척 잘라내지만, 현실에서는 철없는 어린애가 아니고서야 그런 시도 자체를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레지의 눈앞에서 그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의 눈에 검을 회수한 강진호의 모습이 똑똑히 들어온다. 대수롭지 않은 일을 했다는 듯 태연한 얼굴을 한 강진호가 천천히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콰아아아앙!
전차를 발로 걷어차 뒤로 날려 버렸다.
“뭐?”
날려?
전차를 차서 날린다고?
레지는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 나올 만큼 놀라 두 눈을 부릅떴다.
“이런 미친!”
M1A2의 중량은 60톤이 넘는다. 상부가 날아갔다는 것을 감안해도 50톤은 가뿐하게 넘을 것이다. 그런데 그 50톤짜리를 발로 차서 날린다고?
평범한 인간은 50톤이 아니라 50㎏짜리도 저리 차 날릴 수가 없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하지만 의문을 가질 시간은 없었다.
그의 사고보다 현실이 더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으니까.
“피해애애애애애애!”
“으아아아아아!”
치솟은 전차가 바닥으로 추락한다. 60톤짜리 쇳덩어리가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본 이들이 패닉에 빠져 사방으로 뛰어나갔다.
사람은 피할 수 있지만, 장비는 움직일 수 없는 법.
지진 덕분에 궤도가 끊어진 자주포 위로 전차가 떨어진다.
콰아아아아앙!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물리력에 자주포가 바닥에서 튕겨 나간다. 좌우로 튕겨 나간 전차와 자주포가 주변의 자주포들을 들이받고 밀쳐 낸다.
당연하게도 강진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파아아아아앗!
또 하나의 전차가 세로로 두 동강이 난다.
“아…….”
“아아…….”
전차 안에 타고 있던 이들이 벌어진 틈 사이로 보이는 강진호를 보며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칼로 전차를 잘라 버리는 자다.
그런 이와 얼굴을 마주하는 기분이 어떻겠는가.
강진호가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턱짓했다.
“내려.”
“…….”
“당장!”
말이 뇌로 전해지는 순간, 몸이 절로 움직인다. 전차에 타고 있던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네발로 달려 갈라진 전차의 틈 사이로 빠져나온다.
강진호는 그들이 내리자마자 세로로 갈라진 전차를 걷어찼다.
콰앙!
콰아앙!
반쪽이 난 전차가 축구공처럼 포진해 있는 전차들에게 날아간다.
터지는 폭음.
쏟아지는 비명.
그리고 순식간에 사막을 뒤덮어 버린 공포.
그그그극.
청루와 적루를 늘어뜨린 강진호가 검으로 바닥을 긁으며 천천히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인사는 끝났어.”
이제 제대로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