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69
#1468.
농락하다 (3)
“뭐 하고 있는 건가, 군단장!”
필이 사색이 된 얼굴로 고함을 내질렀다. 아니, 그건 고함이라기보다는 겁에 질린 아이의 비명 소리에 가까웠다.
치이이익, 치이이이익―
벙커 안에 설치된 모니터에 노이즈가 끼기 시작한다. 드문드문 이어지는 화면에 보이는 광경은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그가 예상한 광경에서 아득하게 멀어져 있었다.
“대체 뭐 하는 건가! 기계화 사단이야! 미군의 모든 힘이 집중된 이들이라고! 그런 이들이 사람 하나 잡지 못해서 이러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탓하는 게 아니다.
떠는 것이다.
필 버튼은 지금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인?
물론 강하지.
하지만 그 무인이 기계화 사단의 화력을 몸으로 버텨낸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무인들이 고평가되는 이유는 그들이 전장이 아니라 시가지를 주 무대로 삼기 때문이다.
인마 살상용 화력을 배제하고, 개인화기만을 상대할 때는 무인의 존재가 병사 이상의 힘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엄폐물과 자신을 보호해 줄 민간인이 없는 사막이라면, 무인 따위 화력에 찢겨 나가는 평범한 병사나 다를 게 없다.
그게 필 버튼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는 자신의 몸으로 필 버튼의 생각을 완전히 뭉개놓고 있었다.
“뭐 하는 건가, 중장! 지금 당장 저 무능한 사단장 대신 자네가 지휘를 하게! 지금 당장!”
필 버튼의 발작과도 같은 요구에도 프랭크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레지 머서는 무능한 자가 아닙니다. 지금 레지는 최선의 대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이 꼴을 보고도 그딴 말이 입에서 나온단 말인가!”
“흥분하신 건 알겠지만, 일선 지휘관의 명예를 더럽힐 수 있는 말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사단장의 잘못이 아닙니다.”
프랭크의 말은 단순히 레지를 변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프랭크는 정말 이건 레지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문제는 오히려 저쪽이지.’
저 괴물.
저 괴물이 문제다.
프랭크가 지금 지휘를 한다고 해도 레지 이상의 뭔가를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일선 사단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이가 사단장 본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더 끔찍한 꼴만 보이겠지.
레지의 대처는 파격적이고, 또한 정석적이었다.
문제는 저 괴물이 그 모든 대처를 순식간에 무위로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가! 왜 사람 하나 잡지 못해서!”
“……차관님.”
프랭크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자는 하이에나 정도는 쉽게 죽일 수 있습니다.”
“무슨 빤한 소린가?”
“하지만 사자는 말벌을 잡을 수 없습니다. 도망가는 게 고작이죠.”
“…….”
필 버튼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저자의 속도는 우리가 따라갈 수 없습니다. 공격은 먹혀야 공격이고, 상대의 육체에 닿아야 그 의미가 있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가진 공격 수단으로는 저자의 스피드를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프랭크의 결론은 그랬다.
‘이건 이미 결론이 나와 있는 승부였다.’
저자가 지금 검끝을 사단으로 향하지 않고, 이 벙커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왔다면 과연 저지할 수 있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육중한 전차로는 저자의 속도에 맞춰 포신을 돌리는 게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미 벙커에 도착한 강진호에게 포신을 겨누는 걸 성공했다고 해도 사격은 불가능하다.
벙커째로 날아갈 테니까.
“저자를 상대로 기계화 사단을 부른 건 실책입니다.”
“지금 내가 잘못했다는 건가?”
“그런 말이 아니라…….”
프랭크가 손을 들어 입가를 주물렀다.
초조한 건 그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소중한 병력들이 박살 나고 있다.
그 순간이다.
“빌어먹을! 안 돼!”
다연장에 불이 붙으며 미사일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그 끔찍한 광경에 프랭크가 자신도 모르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기이한 호선을 그리며 미사일들이 전차와 자주포 위로 떨어진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거대한 진동이 벙커를 뒤덮었다. 아마 미사일 중 하나가 벙커에 떨어진 모양이다.
흔들림을 감당하지 못한 프랭크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아아아악!”
바닥에 나뒹군 필 버튼이 볼썽사나운 비명 소리를 질러 댄다. 프랭크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필 버튼을 노려보았다.
‘저 병신 새끼 때문에!’
적이 저런 자인 줄 알았더라면 프랭크는 절대로 이 미친 짓에 함께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의 역량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의 말을 들은 것이 그의 실수였다.
‘아니, 남 탓 할 것도 없지.’
상대의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한 건 그도 마찬가지니까. 질끈 깨문 프랭크의 입술에서 피가 주르륵 배어 나왔다.
“항복하겠습니다.”
“뭐? 지금 뭐라고 했소?”
“더 이상은 무의미합니다. 피해만 늘릴 뿐입니다.”
“중장, 미쳤소? 우린 미군이오! 미군 2개 사단이 단 한 사람에게 항복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정신 나갔소?”
“정신 나간 건 당신이지!”
프랭크가 이를 갈았다.
“눈이 있으면 보라고, 이 미친 새끼야! 이건 전쟁놀이가 아니야. 지금 이 순간에도 막대한 병력과 돈이 먼지가 되고 있다고! 빌어먹을, 지금 죽은 사람의 수가 몇이나 될 것 같아!”
프랭크가 필 버튼에게 과격하게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필 버튼을 질질 끌어 모니터 앞에 들이밀었다.
“보여?”
“…….”
필 버튼의 눈에 초토화가 되어버린 바깥의 모습이 들어온다.
“벙커에 처박혀서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리고, 소리나 질러 댈 거면 너는 왜 여기 있나! 네 그 한 푼 가치도 없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지금도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 미쳤냐고? 미친 건 너겠지! 아직도 인정이 안 되나?”
필이 흔들리는 눈으로 프랭크를 돌아보았다.
“항복해! 당장! 이 미친 짓거리를 끝내라고!”
하지만 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있었다.
강진호는 항복한다고 해서 상대를 살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항복이란 무의미한 일일 뿐이다.
이 벙커를 목적으로 한 이상, 강진호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 이 벙커를 날려 버리고 필 버튼의 목을 틀어쥐기 전에는 말이다.
애초에 이런 짓을 한 것부터가 실수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연이어 터진다.
벙커 위에서 콘크리트 조각이 부서져 바닥으로 비처럼 떨어진다.
“비전 바꿔! 당장! 앞쪽 비전으로!”
“예!”
화면이 전환되며 벙커 주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뚫어져라 바라보던 프랭크가 순간적으로 화면을 향해 날아오는 전차를 보며 기겁하여 바닥으로 엎드렸다.
쿠우우우웅!
말할 수 없는 충격이 전신을 휩쓴다.
“끄윽…….”
화면이 암전되어 있다. 아마 날아오는 전차에 맞아 카메라가 부서진 모양이다.
“화면! 화면 바꾸라고, 이 새끼들아!”
“예!”
필사적인 손놀림과 함께 화면이 다시 전환된다.
그런 후에 프랭크는 볼 수 있었다.
불타오른다.
슬슬 노을이 져가는 사막을 배경으로 전차들이, 자주포가, 그리고 장갑차들이 불과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지옥.
아니, 지옥이 아니겠지.
이게 전장이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광경이라는 전쟁의 참상이 지금 이곳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질적인 화면에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불타는 전차와 자주포들을 뒤로한 채 한 남자가 정면을 향해 느긋하게 걸어 나온다.
“…….”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사내가 담배를 꺼내더니, 전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느릿하게 담배를 입에 물고는 천천히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프랭크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질적이다.
너무도 이질 적이다.
뒤쪽에 보이는 참상은 너무 끔찍하여 할 말을 잃게 만들 정도지만, 저자는 그런 지옥을 마치 산책하듯 걷고 있다.
‘이건 실전도 아니라는 건가?’
프랭크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는 저자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강진호.
총회의 교주.
동양의 마왕.
그리고 그들이 상대해야 할 무인.
빌어먹을, 그따위 정보는 저자를 단 한 줌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저자를 두 눈으로 보고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는 감히 저자를 안다고 할 수 없다.
“뭐, 뭐 하는 거야! 뭐, 뭐 하는 거냐고오오오!”
필 버튼이 발작을 일으켰다.
그가 무전기를 빼앗아 들더니,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쏴! 쏘라고! 저 새끼를 날려 버려! 뭐 하는 거야! 사단장! 지금 당장 사격을 개시해!”
콰아아아아앙!
무전이 끝나기도 전에 화면이 흙먼지로 뒤덮인다.
확실히 레지 머서는 훌륭한 지휘관이었다. 그는 벙커 안의 이들이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판단을 끝낸 후, 칼같이 화력을 전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
세상에는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존재한다.
완벽한 이성과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건 ‘가능’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들뿐이다. 저들의 힘으로 강진호를 잡아낸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의 영역에 속했다.
프랭크는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 그걸 알아차렸고, 필 버튼은 아직도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레지 머서는…….
‘다른 도리가 없겠지.’
패할 게 빤하다고 해서 싸우지 않을 수 없다. 군인이란 그런 것이다. 마지막 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명령을 지키고 완수해 낸다. 그게 군인의 방식이고, 군인의 가치다.
카가강!
그 순간, 오디오가 연결되며 벙커 안에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프랭크가 눈을 부릅떴다.
콰아아아아앙!
강진호가 있는 곳이 아니라, 그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철갑탄이 떨어진다.
‘오폭?’
그럴 리가.
아무리 바닥이 엉망이라지만, 이 거리에서 오폭이 날 수는 없다. 그렇다는 건…….
“받아쳤다고?”
아니, 흘려냈다?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음속을 넘어 날아가는 철갑탄을 저 얇디얇은 검으로 비껴낸다?
차라리 젓가락으로 홈런을 치는 쪽이 현실성 있다.
하지만 그 비현실적이기 짝이 없는 일을 현실로 만들어 버리는 이가 저기에 있었다.
카아아앙!
카아아앙!
연속적으로 쏘아진 포탄이 강진호를 때리지 못하고 좌우로 튕겨 나간다.
강진호는 이제는 익숙해졌다는 듯이 한 손으로는 담배를 피우면서 다른 한 손만을 휘둘러 날아오는 포탄을 비껴 날리고 있었다.
“주여…….”
프랭크의 눈이 덜덜 떨린다.
그가 보고 있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다.
무인.
그 구시대의 망령이 지금 그의 앞에 괴물이 되어 나타났다.
‘동양의 삼왕이라 불리는 이들은 다 저 정도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까지 얼마나 저들을 오판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저자의 목적이 뭡니까?”
“뭐?”
“저자의 목표가 뭐냐고! 빌어먹을! 귀에 대검을 처박아 버리기 전에 대가리를 굴리라고!”
“저, 저자의 목적은…….”
필 버튼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나, 나를 죽이거나 제압하는 것.”
“하…….”
프랭크가 웃고 말았다.
“빌어먹을, 나까지 죽겠군.”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그 목소리에 필 버튼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눈이 화면으로 향한다.
그와 동시에 그는 보았다.
한 손에 검을 든 강진호가 검을 늘어뜨려 바닥을 긁으며 천천히 느릿하게 걸어오는 모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