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72
#1471.
종결짓다 (1)
조여온다.
목을 잡은 손이 조여오기 시작한다.
필 버튼은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강진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그 순간 그를 찾아온 것은 더없는 절망이었다.
알 수 있다.
손이 닿은 것만으로 느낄 수 있다. 그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손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팔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쇳덩어리 같다.
그제야 필 버튼은 자신이 누구에게 싸움을 걸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시험한다고?’
누가?
그가 강진호를?
멍청한 짓.
정신이 나가 버린 이나 할 수 있는 발상이다.
왜 미리 이해해 보려 하지 않았을까.
이 상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더없이 많았다. 이 훈련을 개시하기 전에 강진호의 능력을 단 한 번만 확인해 봤더라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강진호가 H27에서 벌인 일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라도 했으면…… 아니, 그보다 먼저 강진호가 동아시아에서 한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 버튼은 그 모든 기회를 제 발로 차버렸고, 그 결과로 강진호를 대면하게 되었다.
절망스럽게도 말이다.
“끅…….”
목을 조여오는 강력한 힘 앞에 필 버튼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더없이 간절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런 눈 할 것 없어.”
강진호가 희게 웃었다.
“이건 네가 시작한 일이니까.”
강진호가 필 버튼의 목을 조이는 손에 힘을 가한다.
“끄르륵.”
뭔가 괴이한 소리와 함께 필 버튼의 몸이 뒤로 한껏 젖혀졌다. 그의 입에서 게거품이 흘러나오고,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프랭크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근거리에서 곰이나 사자를 대면한다고 해도 이리 긴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배가 부른 짐승은 굳이 인간을 사냥하지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인간은 허기와 관련 없이, 그리고 자신의 의도로 인간을 사냥한다는 면에서 맹수보다 백배는 더 위험했다.
프랭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다 죽을 수도 있소.”
강진호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돌아간다. 목을 조이는 손에서는 힘을 전혀 빼지 않은 채 강진호가 프랭크를 바라본다.
“누구지?”
“……프랭크 윌슨 중장이오. 육군 제3군단의 군단장. 당신이 싸운 사단의 상급자요.”
“그렇군.”
강진호는 이내 흥미를 잃었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명령을 받아 그에 맞선 군인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강진호가 군대와의 전투에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그들에게는 의지가 없다.
적이 누구든, 어떤 상황이든 그저 시키는 대로 싸우고, 시키는 대로 물러날 뿐이다.
말하자면 군인은 도구.
칼에 찔렸다고 해서 칼에 화를 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화를 내야 할 것은 칼이 아니라 칼을 든 사람이다.
강진호의 기준으로 프랭크나 레지는 칼일 뿐이다. 그 칼을 들고 휘두른 이는 지금 강진호의 손에 잡혀 있는 필 버튼이다.
강진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자 필 버튼이 퍼뜩 경련을 일으켰다.
“주, 죽는다니까!”
프랭크가 기겁하여 소리쳤다.
하지만 강진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프랭크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게 뭐?”
“……예? 지금 뭐라고?”
“죽으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
프랭크가 입을 다물었다.
“너는 오히려 그걸 부추겨야 하는 것 아닌가? 무능한 상사는 강대한 적보다 더 위험한 존재지. 이런 놈이 살아 있으니 이런 멍청한 짓을 벌이는 거야.”
동의한다.
심정으로는 백번 동의하고도 남을 말이다. 강진호가 이곳으로 뛰어들지 않았다면, 오히려 프랭크가 필 버튼을 때려 죽여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전쟁에서 상관 살해가 벌어지는 이유를 오늘 뼈저리게 실감한 프랭크였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그래도 그는 미국의 차관입니다. 그를 죽이면 문제가 커집니다.”
“상관없어.”
“하지만…….”
“다른 논리를 생각해 보는 게 좋겠군.”
강진호가 프랭크의 말을 잘랐다.
“문제는 이미 커졌으니까.”
“…….”
프랭크는 강진호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이 있는 자라면 동의할 수밖에 없다. 벙커 바깥에 벌어진 참상을 보고도 이 일을 수습할 수 있다고 믿는 이가 있다면, 그 쓸모없는 머리를 떼어내는 쪽이 이로울 것이다.
여기에 차관 하나 더 죽는 정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건 그저 훈련일 뿐입니다.”
“훈련?”
강진호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이건 실전이 아니니까.”
“예. 분명…….”
“하지만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지.”
“…….”
프랭크가 입을 다물었다.
“보이나?”
강진호가 턱짓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얼마나 죽었을까?”
“…….”
프랭크도 눈이 있다.
반파된 전차에서 기어 나오는 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건 아니다. 강진호가 나름 저들에게 온정을 베풀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모두가 살아 있을 수는 없다.
하늘로 치솟았다가 바닥으로 추락한 전차 안에 타고 있던 이들은 무슨 수를 써도 살릴 수 없으니까. 부상자까지 포함한다면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 멍청한 짓거리가 시작된 순간, 누군가는 죽어. 그건 내가 될 수도 있고, 저들이 될 수도 있지.”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숨이 넘어가는 듯 꺽꺽대는 필 버튼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죽이려 하는 자는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해야지. 죽고 죽이는 난장을 벌여놓고 뒤에서 구경만 하겠다고?”
웃기는 소리.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다.
강진호는 그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뿐이다.
프랭크가 식은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말했다.
“그게 당연한 건지도 모릅니다.”
“…….”
“하지만 그 책임은 당신이 아니라 미국이 물어야 합니다. 나는 그가 이대로 죽는 것 역시 책임에서 회피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진호가 묘한 눈으로 프랭크를 바라봤다.
‘마음에 드는군.’
그 몸에 단 한 점의 내력도 담지 못한 평범한 사람임에도 강진호에게 먼저 다가와 설득하려 든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넘어갈 기세를 뚫고 말이다.
이자는 무인이 아니지만, 무인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존중하고 말을 섞어주는 것이다.
‘미군도 나쁘지 않군.’
그들과는 방식이 조금 다르지만, 지금 그의 앞에 있는 프랭크나 조금 전 마주한 레지는 강진호의 기준으로도 충분히 인정할 만한 이들이다.
이런 이들이 상부에 위치하고 있으니 미군이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그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다 해도?”
“……주체의 문제입니다.”
프랭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쩌면 당신의 손에 죽어가는 것이 그에게 가장 큰 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큰 벌을 내리는 게 아니라 합당한 벌을 내리는 겁니다.”
강진호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본심을 말해봐.”
“…….”
“걱정할 것 없어. 나는 딱히 화가 나지 않았으니까. 말해봐, 중장. 원하는 게 뭐지?”
프랭크가 한참 동안 강진호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살아남은 자에 대한 보상, 그리고 죽어간 자들에 대한 명예입니다.”
“……좀 더 쉽게.”
“그가 죽어버리면 화살은 이쪽으로 돌아옵니다. 그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것은 우리의 실책이니까요. 이곳에서 죽은 이들은 명예를 잃을 것이고, 살아남은 이들은 패배자가 됩니다. 저 빌어먹을 놈이 한 짓거리 때문에 우리가 그런 멍에를 떠안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강진호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래서?”
“그놈을 살려주십시오. 그래서 이 일의 대가를 온전히 지게 만들어주십시오. 제가 원하는 건 그것 하나뿐입니다.”
부하들의 명예라…….
‘낭만적이로군.’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에 비해 실리에 밝다고 하더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아니, 애초에 서양인이니 동양인이니 하는 것도 짧은 생각이겠지.
강진호가 필 버튼의 목을 꽉 조이고는 구석으로 집어 던졌다.
콰당탕!
필 버튼이 그대로 의식을 잃고 나가떨어진다.
“걱정할 것 없어. 살아 있으니까.”
“아…….”
당장 필 버튼에게 달려가려던 프랭크가 움찔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원하는 대로 해.”
강진호가 몸을 돌렸다.
애초에 그는 딱히 필 버튼에게 원한이 없다. 이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를 받아들인 것도 강진호였으니까. 그저 그의 말도 안 되는 오판에 죽어간 이들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만들 생각이었을 뿐이다.
그 대가를 강진호가 치르게 한다는 것도 웃긴 이야기지만.
여하튼 저들이 그걸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이곳에서 얻을 건 모두 얻었고, 증명해야 할 건 모두 증명했으니까.
“감사합니다.”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돌려 프랭크를 바라보고는 벙커 밖으로 뛰어올랐다.
털썩.
강진호가 밖으로 나가자 프랭크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금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틴 것도 기적이었다. 강진호와 마주한다는 것은 사람의 심력을 순식간에 갉아 먹으니까.
“괘, 괜찮으십니까, 군단장님!”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우르르 달려와 프랭크를 부축한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난 프랭크가 얼굴 가득 흘러내린 식은땀을 소매로 닦으며 눈을 찌푸렸다.
“상황은?”
“복구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막 한가운데인지라…….”
부관들의 말을 이해한 프랭크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상부에 요청해서 가까운 부대의 헬기와 차량을 모조리 징발해 이곳으로 보내라고 해! 911에도 연락해서 구급차 보내라고 하고!”
“하, 하지만 그러면 보안이…….”
“사람 목숨보다 보안이 중요하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내가 모든 책임을 질 테니, 당장 움직여!”
“예! 군단장님!”
프랭크가 손을 뻗어 의자를 끌어 당겨 주저앉았다.
‘꼴이 말이 아니로군.’
끔찍하다.
하지만 최악은 아니었다.
진짜 최악은 이 끔찍한 상황을 실전에서 겪는 것이다. 그랬다면 필 버튼은 물론이고, 프랭크도 지금쯤은 산목숨이 아닐 것이다.
“무인이라…….”
훈련을 시작하기 전, 필 버튼의 말에 동조한 자신이 병신처럼 느껴진다. 상대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근거 없이 우월감만 가지다니.
세계 최강의 미군이라는 말에 스스로 현혹됐다. 미군이 아무리 훌륭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 해도 그걸 운용하는 이가 멍청이라면 그 화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멍청이는 당연히 프랭크다.
“후우.”
깊숙이 한숨을 내쉰 프랭크가 몸을 일으켰다.
“벙커 열어.”
“밖은 지금…….”
“당장!”
“예! 군단장님!”
프랭크가 구석에 처박혀 있는 필 버튼을 바라보았다. 한 번 눈살을 찌푸린 그가 냉정하게 고개를 돌려 벙커 밖으로 나갔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사단장과 함께 뒷일에 대해 논의하고, 그에게 사과하는 일이다.
‘난리가 나겠군.’
아마 이 결과가 전해지면 상부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 지금까지 몇 십 년간 유지해 온 교전 수칙을 근본부터 뒤집어야 할 테니까.
그 일의 당사자가 되었다는 건 그리 유쾌하지 못한 일이지만 말이다.
벙커 밖으로 나온 프랭크의 눈에 불타는 전차들 사이로 걸어가는 강진호의 등이 보였다.
그 등을 한참 바라보던 프랭크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