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80
#1479.
돌아가다 (4)
한은솔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신기하네.’
이상한 느낌이다.
MK의 건물은 강남 한복판에 있다. 건물도 최신식으로 지어졌고, 내부 인테리어는 더없이 현대적이다. 그 디자인과 편의성을 따진다면, 최근 잘나가는 IT 기업들의 사옥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총회는 굳이 표현하자면…….
“폐교?”
“…….”
“아, 아니면 예전 뭐 군사시설이라든가?”
특징 없어 보이는 회색의 건물이 중앙에 떡하니 자리해 있고, 그 아래로 이차선 도로를 따라 작은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저 네모반듯한 회색 건물을 보고 있으려니,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다. 여기가 MK의 모회사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리모델링할 때가 지나기는 했죠.”
이현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지어진 지 50년이 넘은 건물이다. 게다가 당시의 기술력으로 이런 산 중턱에 저만한 건물을 올리는 게 쉬운 일일 리가 없다. 대충 설계도와 기술자 몇몇을 데리고 무인들이 직접 자재를 나르며 지은 건물이다.
본인들이 쓸 건물을 직접 짓다 보니 부실 공사가 있을 리 없고, 덕분에 비슷한 연식을 가진 건물들에 비해서는 아직 튼튼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
‘성냥갑 같기는 하지.’
따지고 보면 내부도 오래된 학교와 비슷하다. 하기야 당시에는 모방할 수 있는 큰 건물이 그런 것들 밖에 없었을 테니까.
“돈도 많은데, 새로 좀 짓지.”
최연하가 살짝 역정을 냈다.
“……그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기숙사를 신축할 때마다 저 흉측한 건물을 갈아엎어 버리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저 본관은 총회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아무리 이곳이 방문자가 극히 드문 곳이라고는 해도, 총회의 안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이현수가 저런 건물에 만족할 리가 있겠는가.
최연하의 말대로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번번이 좌절되는 이유가 있다.
“리모델링? 신축? 굳이 이걸 왜? 무인이 수련하는 데 예쁜 건물이 왜 필요해? 여하튼 영남회 출신 놈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김석일, 그 새끼가 그런 번지르르한 것에 집착했지. 그래서 그 새끼 지금 어떻게 됐냐? 동해 바다 따뜻하다디?”
방진훈의 반응은 이해한다.
그는 총회에서 나고 총회에서 자란 내추럴 본 총회인이니까. 어찌 보면 외인 출신인 이현수가 총회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본관 건물을 갈아엎는 것이 탐탁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묵은 감정을 거의 털어냈다고는 하지만, 이건 이성이 아닌 감성의 문제였다.
“건물을 새로 짓는 건 불필요한 일이지. 그런데 문은 좀 고쳐야겠다. 지금보다 두 배로 넓혀줘.”
바토르는 건물이고 나발이고, 문을 통과 할 때마다 아크로바틱을 해야 하는 것에 커다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문만 고쳐진다면 건물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입장이니, 도움이 될 리가 없다.
“왜?”
“아뇨. 일단 미관이…….”
“왜?”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왜?”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일 문제가 강진호다.
이 파멸적인 미적 감각을 가진 그의 상사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 건물을 예쁘게 단장한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건 설명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걸 이해할 사람이면 통장에 수백억 쌓아두고 몇 년째 삼선 추리닝만 입고 다니지는 않겠지.’
그렇게 포기하게 된 일이다.
차라리 자금의 압박이라든가, 건설이 어려워서 생긴 문제라면 이해라도 하겠건만, 돈은 넘쳐흐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총회 아래쪽에서 기숙사 신축을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니 속이 썩는다.
“뭐가 어려운데요?”
“그게…….”
한숨을 쉬던 이현수가 고개를 번쩍 들어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뭐? 왜?”
“……이사님.”
왜 이 생각을 못했지?
그러고 보면 가장 큰 장애물을 치워 버릴 수 있는 인간 지게차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심지어 이 인간 지게차는 강진호라는 바윗덩어리는 물론, 위긴스와 방진훈이라는 암 덩어리도 한 방에 처리가 가능한 초고성능 지게차다.
“회주님이 이 정도면 됐다고 리모델링하지 말랍니다!”
“여하튼 그 인간 진짜!”
최연하가 눈을 부라린다.
‘나이스!’
그래도 배우라고 평균 이상의 미적 감각을 가지고 있는 최연하에게 이 삭막한 총회의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 고문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 양반은 그렇다 치고, 다른 사람들은 불만 없어요?”
“말도 마십시오. 수도관은 오래돼서 물만 틀면 녹물 나오지, 비 오면 냄새나고 비 새지, 화장실은…… 아오, 화장실은 말도 하기 싫습니다.”
“……그런데 불만 없이 일한다구요?”
“불만이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말을 못하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 일하는 애들이 MK로 간 애들을 얼마나 부러워하는데요. 거기는 화장실에 비데도 있다면서요?”
“…….”
최연하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진호 씨는 그걸 다 듣고도 그러는 거예요?”
“거기까지 보고가 안 올라갑니다.”
“이 실장님은 뭐 하구요.”
“……제 위치를 한 번씩 오해하시는데, 저도 이사님들 거쳐야 회주님께 직접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나름 민감한 문제라…….”
이현수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내게 이런 날이 오다니.’
총회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 강진호와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이현수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한다면, 그만큼 파워가 강하기 때문에, 강진호가 안 된다고 하는 건 무슨 수를 써도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이 순간.
총회에 처음으로 그 강진호에게 대응할 수 있는 권력자가 강림했다.
‘이래서 삼권분립을 하는 거구나.’
아니, 다당제를 하는 건가?
여하튼!
“흠, 그렇단 말이죠?”
최연하가 영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했다.
“그거 말고는 문제가 없어요?”
“보고서 한 번 올릴까요?”
“그래주세요. 그런데 내가 그런 거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주제넘게.”
“주제라니요!”
이현수가 펄쩍 뛰었다.
“이사님은 MK엔터테인먼트의 이사이기도 하지만, MK 본사의 이사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총회의 이사이기도 하다는 뜻이죠.”
“그래요? 누가 그걸 정했는데요?”
“제가요.”
“…….”
“그렇게 신고해 뒀습니다.”
이현수가 눈을 찡긋하자, 최연하가 할 말을 잃고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물론 이럴 때 쓰려던 건 아니고, MK 전체적으로 그게 나아서 그래 뒀습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이사가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구요.”
“여하튼, 그래서?”
“당연히 이사님은 보고를 받을 자격이 있으시다는 거죠.”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알았어요. 보고서 한 번 줘봐요. 내가 보고 영 안 되겠다 싶은 건 바가지 좀 긁을 테니까.”
“이사님!”
이현수가 감격한 눈으로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런 분이 총회에 오는 걸 막았다니.’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사실 그동안을 돌이켜 보면 이현수가 얼마나 고통을 받았던가. 실리주의와 미학주의는 공존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적당히 중도를 지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망할 회사의 윗대가리들은 미학이라는 것에 1도 관심이 없다.
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실용주의의 연쇄를 끊어야 할 때였다.
“확실히 좀 삭막하기는 하네요.”
한은솔의 말에 이현수가 감격한 듯 대답했다.
“그렇죠?”
“그런데 그게…… 어?”
한은솔이 미묘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 건물 때문인가요?”
“…….”
이현수가 아무 말 없이 한은솔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성큼성큼.
목에 금 목걸이를 찬 깍두기 머리가 주머니에 손을 꽂고는 인상을 쓴 채 지나간다. 그 뒤로 동네 노는 형들이 입을 듯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람들이 담배를 물고 걸어 다닌다.
“복장 좀 신경 쓰라고 했는데…….”
“과연 복장의 문제인지는 이견이 좀 있네요. 멀쩡한 사람이 입었으면 그냥 괜찮은 패션 같은데.”
“그렇……습니까?”
얼굴이 깡패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 얼굴이 깡패다.
저놈들에게는 뭘 입혀놔도 의미가 없다. 깔끔한 정장을 입혀서 밤거리에 내놓으면, 마주치는 사람마다 신고를 해서 경찰특공대가 출동할 기세다.
“……성형이라도 좀 시킬까요?”
최연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원판이 어디 가겠어요? 눈만 봐도 범죄잔데.”
어…….
사실 반쯤은 진짜 범죄 경력이 있는 놈들인지라, 딱히 반박이 안 된다.
“저기 보면 그…….”
최연하가 지나가던 사람 중 하나를 가리켰다.
그 순간이었다.
“히이이이익!”
살짝 긴장한 얼굴로 지나가던 이가 최연하의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키는 순간, 기겁을 하며 부동자세를 취했다.
“…….”
그 반응에 최연하가 오히려 당황해서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덩치는 산만 해서 동네 조폭들이 일단 머리부터 박고 시작할 것처럼 생긴 놈이 까불다가 한 대 얻어맞은 커다란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덜덜 떨어 댄다.
“아, 아니, 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
최연하의 고개가 옆으로 삐딱하게 꺾였다.
“제가 누군지 알아요?”
“최, 최연하 씨 아니십니까? 아, 아니! 이사님이십니다!”
최연하의 얼굴이 멍해졌다.
“아니, 이 사람이 왜 이러는지…….”
최연하가 의문의 해답을 구한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자,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이들이 즉각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
최연하가 멍한 눈으로 물었다.
“이 사람들, 왜 이러는 건가요?”
“소문이…… 어, 음,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때로 소문은 거짓을 퍼뜨리지만, 가끔은 진실이 과장될 때도 있는 법이다.
MK의 직원들은 대부분이 총회에서 옮겨간 사람들이고, 그들은 여전히 총회의 회원들과 연락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MK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최연하가 강진호와 이현수를 갈아대는 모습을 목격할 수밖에 없다.
그 소문이 와전되고 또 와전되다 보니, 최연하를 직접 보지 못하고 소문만 듣는 총회 사람들은 최연하를 거의 삼두육비의 괴물쯤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무공?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
무공도 없는 일반인이 강진호를 갈아버리는 게 중요한 거지. 더 심각한 건 강진호는 남자 친구라 그런다 치고, 아무 관계도 아닌 이현수도 최연하만 보면 도망 다닌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을 평범한 일반 무인이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시, 시정하겠습니다.”
이현수가 당황하여 최연하를 달래려 했다.
사람이 사람을 괴물처럼 취급하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호오?”
하지만 최연하의 표정을 본 이현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최연하가 아주 만족한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기 마음에 드는데?”
“…….”
“이 실장님.”
“예?”
“방 하나 남으면 이사실 하나 만들어주세요.”
“…….”
“안 되나요?”
“……되죠.”
“흐응, 가끔씩은 여기로도 출근해야겠네.”
최연하가 먹이를 노리는 맹수 같은 눈빛으로 총회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는 이현수의 등으로 이상하게 식은땀이 흘러내렸다.